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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마무리 (창 47: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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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 (창 47:27-31)
 
 
1. 마무리가 안 되면 …!

미국의 어떤 자동차 딜러가 신문에 전면 광고를 냈습니다. “이 자동차는 당신이 태어나서 40세까지 산 것만큼이나 빨리 달립니다.” 누군가는 ‘나이 먹는 만큼의 속도란 도대체 얼마나 된다고 이런 표현을 썼을까?’ 하겠지만, 인생을 살아본 사람들, 특히 그 세월의 빠름을 實感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共感할 수밖에 없는 문구였습니다. 그렇지요? 아마 여러분도 지난 세월이 얼마나 빨리 흘러갔는지 실감하실 것입니다. 그는 그 광고에 다음의 문구를 추가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중간고사 준비를 하다가 잠깐 졸았는데 깨어보니 20년이 지나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그 동안 아내와 두 자녀가 생긴 겁니다.” 인생이 얼마나 빠른지 잠깐 존 것과도 같은데 어느새 40세, 세 가족을 거느린 家長이 되어 있더라는 말입니다. 이 자동차 딜러가 말한 것처럼 저와 여러분의 세월도 그렇게 빠른 속도로 흘러갔고, 시작한 지 엊그저께 같은 2010년도 이제 겨우 3주 정도 남았을 뿐입니다. 

이런 時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2010년에 대해 마무리, 결산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그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옛 중국 고사에 나오는 이야기로서, 용을 그리는데 눈동자도 그려 넣는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어떤 사물이든 혹은 어떤 일이든 마무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며, 또 어떤 경우에는 사소해 보이는 것이라도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체가 돋보이고 생명력을 띠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여러분에게 마무리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여러분의 인생과 시간의 주인이 따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2010년은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이었고 기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결산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것이 시간의 청지기인 저와 여러분의 당연한 모습이지요.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삶에 대한 결산과 더불어 앞으로에 대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2. 결산

마태복음 25장과 누가복음 19장에는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내용이라서 되풀이 하지는 않겠습니다. 이 두 비유가 말하는 것은 성도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로서, 이 땅을 살면서 주님으로부터 맡은 것과 사명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 결산의 날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야고보서 4장 13절에도 이와 같은 맥락의 비유 하나가 나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장터와 같고 우리는 거기서 장사하는 장사꾼과 같다는 것입니다. 장사꾼은 이익을 남겨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장사하여 이윤을 남기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2010년도라는 장터에서 열심히 장사를 하셨습니다. 이번 장사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그리고 얼마만큼 남기셨는지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주신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말하는 대로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달란트는 재능이며,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받은바 소질, 자질, 혹은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은사입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은 일일이 그 品目을 셀 수 없는 것으로 여러분이 가진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 가정, 직장, 건강, 그동안 얻은 것, 붙여주신 사람들, 그리고 구원의 은혜와 성령의 감동과 은사와 능력까지 …. 문제는 이렇게 많은 것을 받은 성도로서 그 모든 것을 충분히 활용하여 남기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점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것이 무엇이든, 혹은 받은 것이 적든 많든, 그것으로 남기는 삶,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지 못하면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책망으로 그 인생을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불러주신 야곱의 생애 마지막 장면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있습니다. 31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 하니라.” 즉 그는 자기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경배함으로서 인생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모습이 보여주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을 향해 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청지기로서의 삶을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여러분들도 비록 인생의 끝자락은 아니지만, 한 해의 끝자락에서 야곱처럼 하나님 앞에서 결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결산을 돕기 위하여 제가 몇 가지 항목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에 얼마나 힘쓰셨습니까?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렸습니까? 
성경을 얼마만큼 읽고 묵상했으며 그것을 여러분에 삶에 얼마나 적용했습니까? 
기도 생활은 얼마만큼 했으며 기도의 응답은 얼마나 됩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 시간, 건강, 물질, 재능 등을 맡은 청지기로서 주인 되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관리하며 충성했습니까? 

전도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얼마나 순종했습니까? 전도의 열매는 얼마나 되는지요? 
말씀을 통하여 신앙과 인격과 삶은 얼마나 성숙되었습니까? 여러분 스스로가 보아도 올 초와는 달라진 모습인가요? 
여러분은 올 한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으며, 그리고 그것에 대해 얼마나 열심으로 임했습니까? 
이웃 혹은 성도와의 관계는 어떠했습니까? 혹시 한해를 보내면서 떠오르는 불편한 관계의 사람은 없습니까? 지난 한 해 여러분에게 신세를 진 사람, 사랑을 입은 사람이 많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지난 한 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을 돕고 격려하는 일을 얼마나 실천했습니까? 혹시 받기만 바라고 가만있지는 않았습니까?
지난 일 년 동안 봉사와 섬김, 사역과 사명 등은 잘 감당한 것 같습니까? 
지난 한해 여러분의 삶의 자리, 즉 가정과 직장, 교회와 사회에서 과연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습니까? 

이런 질문들로 자신을 돌아보면 아마 여러분은 萬感이 교차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지난 일 년을 가슴 벅찬 감격과 보람으로 행복하게 산 분들, 지난 한 해가 어느 해보다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린 해였던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不忠하여 부끄러운 종처럼 산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뭔가 하기는 한 것 같은데 막상 돌아보면 한 것이 없습니다. 뭔가 이루기는 한 것 같으나 돌아보니 이룬 것이 없습니다. 뭔가 잡은 것 같으나 돌아보면 잡은 것이 없습니다. 실망스러운 것들이 더 많은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에 따라 결산의 내용과 소감은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결산의 내용은 달라도 결산의 최종적인 결론은 같아야 할 것입니다. 그 결론은 무엇일까요? 

3. 고백과 감사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야곱의 후손들이 애굽의 고센 땅에 정착한지 17년이 지났고, 그 후손들은 생육하고 번성했습니다(27).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창세기가 전하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 말씀하셨고(1:28), 방주에서 나온 노아에게도 생육하고 번성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8:17). 또한 애굽으로 이주할 때 야곱에게도 주셨던 약속인데요, 오늘 본문은 그 약속이 성취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그 후손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반면, 야곱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요셉의 초청으로 가나안을 떠나 고센 땅에 정착한지 17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야곱은 147년의 생애, 즉 밧단아람, 가나안, 그리고 애굽 고센까지의 험악했던 생애를 마감해야 하는 자리에 섰습니다. 그런 야곱이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하는 고백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앞부분에 나오는 9절에 보면,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야곱이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에 도착해서 바로를 배알했을 때, 바로가 그에게 “네 나이가 얼마냐?”고 물었을 때 대답한 말입니다. 그는 먼저 자신의 삶에 대해, 그리고 조상들의 삶에 대해 “나그네”의 삶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고향을 떠나 떠도는 인생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두 가지 의도를 가진 말이었습니다. 

➊ 하나는 자신의 뒤에 서서 함께 바로를 배알하고 있는 요셉을 비롯한 아들들에게 그들이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과 그리고 반드시 그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애굽 땅은 그들이 영원히 살 곳이 아니라는 것,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말이었습니다. 

➋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제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야곱 자신에게 있어서 본향은 가나안이 아니라 천국이라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인생은 이 땅의 고향을 향한 존재가 아니라 천국이라는 본향을 향하는 존재라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살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야곱의 삶은 파란만장했습니다. 그야말로 소설과도 같은 삶이었지요. 자손이 귀한 집안의 쌍둥이 아들로 태어난 것, 태어날 때부터 형보다 먼저 나오려고 형의 발뒤꿈치를 잡은 것, 자신을 좋아하는 어머니와 형을 좋아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한 것, 그 형의 장자 권을 빼앗은 것, 아버지를 감쪽같이 속여 장자 권과 장자에게 주어진 축복을 받아낸 후 야반도주한 것, 그리고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으로 가서 라헬이라는 한 여자를 죽도록 사랑한 것, 외삼촌에게 사기를 당해 더 많은 수고와 아픔을 겪은 것,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아직도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 서슬이 시퍼런 형과의 만남에 가슴을 졸이면서 얍복강 철야기도를 한 것, 그 자식들의 불행과 자식들로 인한 마음 졸임 등 …, 정말 그의 삶은 자신의 표현대로 “험악”했습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것, 사랑과 배신, 외로움, 고난과 고통, 자식들로 인한 눈물, 극단적인 고통과 요셉으로 인한 최상의 혜택까지 ….

그러나 그가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는 말 뒤에는 숨은 의미가 있습니다. 비록 험악한 인생이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즉 애굽의 ‘바로’ 앞에 까지 이른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2010년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동행하시고 여러분을 인도하셨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때로 기쁨의 순간도 있었고, 슬픔의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때로 감격의 순간도 있었는가 하면, 때로 부끄러운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이 항상 여러분과 함께 계셨던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잊었을지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잊지 않으시고 항상 여러분을 바라보고 계셨던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금년 한 해도 여러분을 더 많이 교훈하시고, 여러분을 더 많이 연단하시고, 여러분을 더 많이 하나님의 사람답게 만드신 것을 알고 계십니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다면, 금년 한 해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있었으며, 또 여러분이 어떤 삶을 살았던 지에 상관없이 2010년은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감사할 것이 없고, 올 한해가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한 해였다고 생각하는 분은 다음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살던 두 사람이 ‘몇 날 몇 시 어느 곳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여 만났습니다. 먼저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여보게, 내가 오다가 내 말이 갑자기 뭔가에 놀라 뛰는 바람에 말에서 떨어졌네. 다행히 아무 데도 다친 곳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다리라도 부러졌더라면 큰일 날 뻔했지 뭔가! 그래서 나는 즉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서 감사를 드렸다네.” 이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갑자기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습니다. “여보게, 자네의 말을 들으니 나는 자네보다 훨씬 더 놀랍고 기적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했다네. 내가 탄 말은 아무 사고 없이 나를 이곳까지 태우고 왔다네. 이 어찌 감사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여태 그것을 모르고 있었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말에서 떨어졌으나 다치지 않은 사람과, 말에서 떨어지지 않은 사람 중에서 누가 더 감사해야 할까요? 당연히 말에서 떨어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어려움을 겪고 나서 비로소 소중한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의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어려움 없이 산 것이 훨씬 더 큰 하나님의 은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당연한 일’로 여깁니다. 여러분, 숨 쉬고 사는 것이 당연합니까? 병원에 가 보십시오.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난 한 해 가장들이 일터에서 돌아온 일과, 자녀들이 학교에서 무사히 돌아온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까? 아침에 집을 나갔다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비록 한 두 가지의 질병이 있어 한 두 번 병원에 갔고, 약도 몇 차례 먹었으나, 그래도 비교적 건강한 몸으로 가정생활, 직장생활, 교회생활 한 것이 당연한 것입니까? 우리 성도들 가운데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즉 험악한 세상에서 그렇게 특별한 어려움 없이 살아온 것이야 말로 하나님께 감사할 일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지난해가 정말 힘들고 어려운 한 해였기에, 돌이키기 싫고, 생각하기조차도 끔찍하다는 분은 없습니까? 그런 분은 다음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 팀의 명 투수였고, LA 다저스 감독을 지냈으며, 미국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낸 ‘토미 라소다’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무척이나 가난하고 어려웠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아버지는 항상 웃으면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못 마땅하게 여기던 라소다가 어느 날 아버지에게 불평을 했습니다. “아빠는 채석장에서 트럭을 모는 고된 일을 하시고, 엄마는 관절염으로 병원에 다니시고, 먹이고 입혀야 할 아이들이 다섯이나 있어 항상 어려운 형편인데, 어떻게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까?” 

그러자 라소다의 아버지는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얘야, 그 이유를 알고 싶니? 빈털터리였던 내게 지금은 멋진 아내와 다섯 명의 착한 아이들이 있고, 가꿔야 할 집도 있고, 고물이지만 몰고 다닐 수 있는 차까지 있지 않니? 그러니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야. 얘야. 만일 네게 웃음이 없다면 내 웃음이라도 빌려가거라.” 여러분, 정말 멋진 말이지 않습니까? “네게 웃음이 없다면 내 웃음이라도 빌려가거라.” 

무슨 말입니까? 지난 한 해가 ‘어쩌다가 그렇게까지 되었냐?’고 말할 정도로 비참했다고 할지라도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의 자리라도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지 않으시면 죄만 쌓는 자리가 될 것이요,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일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리이면 그곳에서 여러분의 영혼이 다시 일어서고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즉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범사에 유익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감사로 마무리하는 것, 감사로 한 해의 매듭을 짓는 것은 그 다음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비결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사는 다음 시대의 밑거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감사할 수 없는 것조차 감사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밑거름으로 하여 여러분의 인생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고, 그로 인하여 보다 풍성한 삶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할 것이 없으면 억지로라도 만들어보시고, 웃을 일이 없어도 억지로라도 웃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한 해를 결산하는 성도의 지혜입니다.

4. 소망

그 생애 마지막 자리에서 야곱이 보여주는 또 다른 한 가지가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야곱은 아들 요셉을 불러 자신의 허벅지 아래에 요셉의 손을 넣고 마지막 소원을 말했습니다.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맹세하는 것을 일명 ‘환도뼈 맹세’라고 하는데, 환도 뼈는 생명의 근원과 권위를 상징했으며, 맹세의 엄숙성과 절대성을 의미했습니다. 이것은 고대 근동의 엄숙한 서약 의식이었고, 이스라엘에서도 중요한 일을 맹세시킬 때 이렇게 했습니다. 야곱이 요셉과 다른 자녀들에게 맹세하라고 한 것은 무엇입니까?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 너는 나를 애굽에서 매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30,31).” 

야곱의 마지막 부탁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있는 조상의 묘지에 자신을 장사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신약성경의 히브리서 저자는 이것을 믿음의 행위로 보았습니다.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히브리서 11장 21절).” 즉 야곱은 믿음으로 가나안 땅을 소망하며 죽었습니다. 야곱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후손들에게 그것을 소망하도록 전수하여 주고 있습니다. 야곱의 이러한 부탁은 고향 땅에 묻히겠다는 인간의 回歸本能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복, 곧 땅과 자손의 복을 신뢰하고 소망하였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예비해 두신 유일한 기업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후손들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 그 땅의 주권을 차지할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가나안으로 데려가 줄 것을 부탁하면서, 그 후손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게 될 것을 미리 말한 것입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인 닉슨의 보좌관이었던 척 콜슨(Chuck Colson)은 자신이 한 감옥 생활 경험을 중심으로 『본 어게인(Born Again)』이란 책을 썼습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보았던 세 종류의 죄수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종류는 희망이 없는 죄수로서 자기 머리를 벽에 부딪치며 자신의 몸을 自害하는 사람들이었고, 두 번째 역시 그와 비슷하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셋째 종류의 죄수들은 감옥에서 나갈 날을 기다리며 기회 있을 때마다 운동장에 나가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감방에 있었지만 마치 내일 나갈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죠.

누군가 이 세 번째 유형의 사람들을 소망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장차 그리 될 줄로 믿고 미리 그렇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소망은 미래형이 아닙니다. 비록 미래에 이루어질 일이라도 지금 그렇게 믿고 행동하는 것이 소망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야곱에게 그 후손들이 가나안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미래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줄로 믿고 소망을 전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절망을 갖고 사는 사람들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목적인 돈이나 명예나 권세가 사라지면 끝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산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땅의 것이나 사람의 것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한 분으로도 얼마든지 배부르고 따뜻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에게 내일은 소망과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실 복에 대한 소망이 없이 내일을 바라보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야곱은 죽어가면서도 내일을 바라보았습니다. 따라서 성도의 결산의 자리는 과거를 돌아보고 지금을 계산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내일에 대한 소망을 굳게 잡는 것이 성도의 결산의 특징입니다. 비록 지난날이 힘들었을지라도, 비록 지금이 형편없이 어렵고 고단할지라도, 하나님과 그 약속을 기대하면서 소망으로 최종 마무리하는 것이 성도의 삶의 지혜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5. 결산, 고백과 감사, 그리고 소망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한 해를 정리하는 말씀을 미리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주는 성탄을 앞 둔 주일이기 때문에 성탄에 관한 말씀을 할 것이고, 그 다음 주일은 마지막 주일이지만 내년도에 대한 계획과 설계와 기도 제목을 나누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한해 삶의 결산을 반드시 하자는 것입니다. 마무리 없는 삶은 아무리 그 전까지의 내용이 좋았어도 결국 실패하는 것과 같으며, 아무리 내용이 없고 실패처럼 보이는 것도 결산의 자리에서 마무리를 잘함으로 성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그 결산에는 반드시 자신과 함께 하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감사가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보기에 지난 삶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즉 하나님을 향한 고백과 감사가 없는 결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세 번째, 성도의 결산은 소망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 다음, 즉 미래에 대한 소망으로 인생의 최종 결산을 내린 야곱처럼 성도 여러분들도 그렇게 사시기 바랍니다. 야곱의 소망이 결실하여 그 후손들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간 것처럼 오늘 여러분이 소망으로 내일을 바라본다면 반드시 그것은 결실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대한 그 이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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