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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이렇게 성탄을 경배합시다 (눅 2:8-20)

첨부 1


이렇게 성탄을 경배합시다/눅2:8-20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우리 서로 옆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영어로 인사합시다.“메리크리스마스”.... 
제가 인터넷에서 조사한바에 의하면 성탄절을 축하하는 인사말이 나라마다 다릅니다. 

영어로는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브라질 말로는 펠리쓰 나딸(Feliz Natal) 
헝가리어로는 볼록 카락소니(Boldog Karacsony) 
이탈리아어로는 부옹 바딸리(Buon Batale) 
스페인어로는 펠리쓰 나비닷(Feliz Navidad) 
독일어로는 프뢸리히 베인아크텐(Frohliche Weinachten) 
스웨덴어로는 글래드 율(Glad Yul) 
프랑스어로는 조이유 노엘(Joyeux Noel) 

희랍어로는 칼라 크리스토게나(Kala Christougena) 
중국어로는 솅탄 쿠와일러(Sheng Tan Kuailoh) 
일본어로는 메리 구리수마수 
러시아어로는 스로체스토봄 크리스토빔(Srozhestvom Khristovym) 
필리핀 따갈어로는 말리가양 빠스코(Maligayang Pasko) 
멕시코어로는 펠리츠 나비대드 (Feliz Navidad) 

베트남어로는 니언지엡 노엘 쭉 지앙신 부이베에(nhan dip noel chuc giang sinh vui ve) 
태국어로는 쑥싸-ㄴ완크릿쓰마아쓰(ssuk ssan oan Christmas) 
체코어로는 베셀레 바노체(Vesele Vanoce!) 
미얀마어로는 뾰쉰 차미엣바세(Pyawshwen chanmyeitbazay) 
우르두어로는 버리딘 무바랙 (호)" (Bari Din Mubaraik Ho) 

어느민족 누구에게나 우리 주님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민족을 초월하여 성탄절은 세계적인 명절로 지킵니다. 

주님의 성탄은 맞이하는 사람의 태도나 감정,그들의 처지와 입장에 따라서 서로 다르게 나타나게 됩니다. 어린 아이들이 맞이하는 성탄절은 얼마나 즐겁고 기쁠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이 풍성한 자들에게 성탄절은 즐겁고 유쾌한 날이 될 것입니다.그러나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의 성탄절은 고독하고 쓸쓸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탄생하셨을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경에는 성탄을 맞이하는 대표적인 두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그룹은 동방의 박사들입니다. 마태복음서에 소개되는 동방박사들은 풍성한 예물로 성탄을 축하했습니다.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두번째 성탄을 축하하는 그룹이 누가복음 본문에 소개되는 목자들입니다.이들은 동방박사들과 달리 아무 것도 예물로 드린 것이 없었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그들이 예물을 드렸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그들 나름대로 사 회적인 신분이나 위치로 보아 언제든지 선물을 준비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들에서 양을 지키다가 천사들이 전하여준 소식을 듣고 찾아 온 목자들에게는 예물이 있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소개되는 목자들은 선물은 없었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하는가 좋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목자들이 먼저 성탄의 소식을 체험합니다. 

8-9절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그당시 목자들은 베들렘헴 근방의 들에서 양떼를 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유대나라에서 목자들의 직업은 규례에 의하면 천한직업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목자들은 사회적은 천대를 받았던 직업입니다. 왜 그 직업이 천대를 받았을까? 무엇보다도 힘든 직업이라는 것이 이유에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들은 밤에 양떼를 지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원어의 문맥상으로는 “밤에”라는 의미는 ‘밤을 새워’라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목자들은 밤을 새워서 여러명이 교대로 양떼를 지키는 것입니다. 도둑놈들이 훔쳐가지 못하도록 들짐승들의 공격을 받는 것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기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날도 밤에 모여서 양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그들은 한밤중이었지만 잠을 자지 않고 들에 유하면서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목자들에게 찾아왔습니다. 천사들은 마리아에게 소식을 알렸고,요셉에게 알렸고,그리고 두려워하는 목자들에게 성탄의 소식을 알렸습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고 합니다.그러면서 홀연히 천군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중에 평화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귀한 기쁨의 소식을 전해들은 이 목자들은 어떻게 주님을 경배합니까? 오늘 성탄절을 맞이한 저와 여러분들이 성탄절 이 목자들의 경배를 다함께 보면서 적용하기를 축복합니다. 


1.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즉각적인 신앙의 결단이 있었습니다. 

15절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절 “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목자들은 주님이 태어난 베들레헴을 향하여 신앙의 결단을 내립니다. 

들에서 양을 지키다가 생각밖의 장엄한 광경을 목격한 목동들은 스스로 결단하였습니다. 전에 듣거나 본 일도 없는 천사들의 대 합창을 듣고 난 후, 저들은 즉시 로 발걸음을 옮겨 베들레헴으로 빨리 달려 갔습니다.기쁨의소식, 예수가 나셨다 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 기쁨의 좋은 소식이 있는 그 현장으로 달려 간것입니다. 

물론 그 결단을 하고 주님을 위하여 결단하였을때에 그들은 양들을 돌보는 일들을 누구에게 부탁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많은 손해가 있습니다. 시간적으로 많은 손해가 있습니다. 많은 고난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모든 것들을 따져서 헤아려보지 않았습니다. 

왜 그리 하였는가 ? 

이처럼 놀라운 사건,천사가 경배하고 찬송하는 위대한 구세주가 나신 것을 안 이상 주저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서 가서 현장을 확인하고 경배를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목자들은 좋은 일을 실천함에 있어서 내일로 미루고, 내년으로 미루고, 먼 훗날로 미루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즉시로 믿음으로 실천하였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나신 그 사건은 너무나도 신비로운 사건이기 때문에 믿음이 아니고서는 경배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천사들이 나타나서" 베들레헴에 오 늘 날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 너희가 강보에 쌓여 구유에 놓인 아기를 볼 것이라." 고 알려 주었을 때 사람들은 웃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거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 웃기는 소리 다 하네." 하고 조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즉시로 행동을 옮겨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천사들이 말한대로 믿고 실천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빨리 갔다는 것입니다. 

16절은 “빨리 가서”라고 했습니다.우리는 이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누가가 목자들의 거동을 기록하면서 “빨리” 갔다고 표현한 것은 공연한 것이 아닙니다. 
빨리 갔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즉각적인 순종성입니다.말씀이나 명령이 떨어졌을 때는 즉시 행동하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그것에 대해서 “예”로 반응해야 합니다.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불편함도 있고 고난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그것에 예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주님의 뜻을 순종하면서 경배하고자 할때 나의 뜻 상식과 주장을 앞세우면 안됩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성 프란시스 형제회에 가입하고자 수도원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형제회 위원들에게 수도원에 들어가 함께 수도하며 전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위원들은 이 열의가 가득한 청년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고심했습니다. 그러던 중 프란시스는 마지막으로 그 청년에게 한가지 과제를 주었습니다. 

“젊은이, 저기 배추가 한 포기 있는데 저 배추를 한 번 거꾸로 심어 보겠는가?” 

프란시스가 이런 엉뚱한 과제를 준 이유는, 청년이 상식에 맞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에 합하지 않는 요구라 할지라도 영적인 스승의 지시에 그대로 순종하는 자질이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큰 믿음은 큰 순종은 큰 결과를 가져 옵니다. 절대적인 신앙은 절대순종은 절대적인 결과를 가져 오고, 상대적인 신앙 상대적인 순종은 상대적인 결과를 가져 옵니다. 

크게 믿으면 크게 되고 작게 믿으면 작게 됩니다.목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메시야의 탄생을 의심 없이 믿은 것입니다.그리고 믿음대로 행동하였습니다.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가장 가까이서 크게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를 갖고 주님을 경배하는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그때 우리속에 주님의 이적과 표적들이 확인되어지는 축복의 결과가 생기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2. 목자들은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면서 성탄을 경배했습니다. 

17절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되” 

20절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목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을 했습니다.목자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한 것은 바로 듣고 본 것을 인하여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의 시작은 입으로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달려 가 보니 천사의 말은 이미 그대로 이루어 져 있었습니다. 저들은 숨 을 몰아 쉬면서 아기에게 경배하며 요셉과 마리아에게 자기들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 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말한 대로 " 오늘 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는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탄의 첫 목격자요 증인인 셈입니다. 그들이 증언 한 것은 이 아이가 인류를 위하여 탄생한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훌륭한 증인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증인이라는 헬라 말 뜻에는 "순교자 "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말은 순교할 각오를 가지고, 즉 사실을 밝히고 증언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한이 있어도 바로 증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메시야의 탄생에 관하여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알고 있지 않았던가 ? 

그런데 헤 롯의 눈치보고, 아첨하느라고 메시야의 탄생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목자들은 그렇 게 하지 않았습니다. 들은대로 본대로 증거하였습니다. 

나는 어떠한 종류의 경배자입니까? 피하여 도망가는 비열하고 나약하여자기를 속 이는 증인입니까? 아니면 용기있고 정직한 참된 증인으로서 경배합니까? 

목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한 것은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믿 었기 때문입니다.우리 인생의 모든 일은 엄격하게 말하자면 모두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태 2:11 에는 이 렇게 기록이 되어 있다. 
" 박사들이 집에 들어 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 

동방의 박사들은 마리아와 요셉에게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예수를 낳은 사람 이기는 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가리워져야 하였습니다. 예수 만이 높아지고 경배를 받아야 한 것입니다. 

본문에 목자들도 비록 어린 아기 예수이지만 그 표적을 보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안목으로는 불가능합니다.이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종종 우리는 육신적인 마음이 들어서 자꾸 “내가”영광을 받으려고 하는 죄악의 속성이 있습니다. 작은 표적이나 작은 은혜의 결과에서도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가 어제 함께 성탄을 축하하면서 찬양했습니다. 

주일학교 유치부생들과 유초등부 중고등부 청년부 찬양대 찬양대원들 모두가 열심히 잘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가 교회 속에서 드려지는 모든 찬양과 재능을 통하여 발표하는 것은 사람에게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꼭필요한 자세가 무엇입니까? 

찬양을 하고 모든 예능을 발표하는 사람들은 ‘사람 앞에서 한다’는 의식을 버리고 ‘주님 앞에서 한다’는 의식을 갖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든 적은 숫자의 사람이 모이든 내가 드리는 모든 찬양과 율동과 행위들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자세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구하는 기도를 먼저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기도하면서 모든 찬양과 영광 돌려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찬양과 경배는 먼저 중심의 동기와 중심의 마음을 하나님이 먼저 받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중심을 보시니까 연습을 하지 말고 실력이 없어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인정과 영광을 먼저 구하는 자세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생활 속에 돌아 가는 < 신앙의 실천 >입니다. 

20 절/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하며 돌아 가니라." 동방의 박사들도 와서 경배하고 돌아 갔고, 목자들도 돌아 갔습니다. 

이 사람들이 어디로 돌아갔습니까? 
일터로 돌아 간 것입니다. 그들 본연의 일터.본래의 자세대로 돌아 갔습니다. 
목자들의 일터는 양들이 있는 들판입니다. 그들은 흥분하고 들떠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생활 속으로 되 돌아 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보다도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우리가 교회당에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은혜를 나누고 교제합니다. 모이면 참 좋고 은혜가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그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비한 체험을 가지고 은혜를 받고 난 후 들뜨고 흥분하여 그자리 에 움막을 치고 기도원을 세우고 안수하고 병을 고치고 신유 은사가 있느니없느니 하면서 거기 머물며 법석입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변화산에서 모세 엘리야와 함께 변화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한 말을 기억하는가 ? "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에 초막 셋을 짓고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 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그리고 거기에서 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산 아래로 내려 오셨습니다. 거기에 머물러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누구인가? 무엇보다도 자기 생활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자기 가정 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학생은 공부에 충실해야 합니다.세상에서 자기 직업에 성실해야 합니다.,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인의 사명에 성실한 사람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만약에 세상에서 자기 생활에 충실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습니다. “예수님믿는 사람이 왜 저런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십시오. 신앙 생활을 잘했던 사람들은 세상에서도 자기 생활에 충실했습니다. 구약에 요셉은 종으로 팔려갔지만 이방나라의 총리로 인정받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했습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갔지만 이방나라의 총리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본문의 목자들은 자기들의 할 일 때문에 아기 예수 나신 곳에서 계속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찬양과 영광을 돌리고 난 뒤에 그들은 양 떼들에게로 돌아 갔습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성도들의 삶이 교회 생활과 세상에서의 삶이 어떻게 균형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이 저의 고민입니다. 너무 교회생활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어서는 안됩니다. 교회를 나오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는 분명하게 나오셔야 합니다. 예배드려야 합니다. 훈련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드리면서 받은 은혜 받은 말씀을 갖고 우리가 가야할 곳은 바로 세상입니다. 가정으로 가셔야 합니다. 직장으로 가셔야 합니다. 거기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하여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목자들은 비록 천한 직업의 소유자이지만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들은 천사들의 음성을 듣고서 마음이 뜨겁게 움직인 정열과 감정의 사람인가하면 즉시 결단하는 의지의 소유자들이기도 한 것입니다.우리의 주변 상황 이 어떻게 변하든지 어떠한 체험을 하던지, 결코 흥분하거나 당황하여서는 안됩니다. 가슴은 뜨겁지만 머리는 냉철한 이성으로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는 과감한 결단력이 요 구됩니다. 
하나님께 주어진 자기들의 일터에서 힘써서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일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것입니다.학생은 학원에서,교사는 강단에서, 군인은 전선에서, 그리고 경찰은 경찰대로 자기의 위치를 찾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있는 위치는 우리가 은헤받고 주님을 체험하고 돌아가야 할 사명지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을 지키고 그곳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피하여 도망하여야 할 곳이 아닙니다. 

이제 메시야의 탄생을 기뻐하며 찬송하였다면 그 감격을 안고 다시 돌아가야 할 장소입니다.예수님은 온 인류의 메시야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믿고, 전하며, 또한 삶의 현장에서 기쁘게 살아 갑시다. 그래서 비록 우리의 삶이 힘들고 가난한 상황일지라도 예수님을 체험한 자로서 그 기쁨의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서 더욱 능력있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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