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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인 슬럼프에서 빠져나오려면 (시 4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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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슬럼프에서 빠져나오려면 (시 42:1-11)


<낙심, 그 피하기 어려운 인생의 숙적>

연평도가 폭격을 당했습니다. 군사 기지만 공격을 한 것이 아니고 민가에 까지 포탄을 날렸습니다. 연평도에 살던 주민 모두가 인천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 아예 연평도로 돌아가지 않겠다고들 합니다. 지난 번 천안함 사태 때에도 북한에게 당했는데 이번에 또 당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레이더는 고장 났고 6개의 포문 중에 3개는 고장 나서 대응사격을 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어야 할 군대가 이렇게 약해졌으니 걱정이 많습니다. 천안함 침몰 사고나 연평도 폭격 사태를 예측한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막다른 골목에까지 몰린 나머지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는 북한이 앞으로 또 어떤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습니다. 연평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속한 곳입니다. 결코 인천에서 먼 곳이 아니지요.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국민들은 침울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낙심하지 않은 분은 없을 것입니다. 만일 너무 자주 낙심을 한다면 그것은 우울증이라는 정신 질환이겠지만 수없이 낙심했다가 또 다시 회복되곤 하는 것이 인생일 것입니다. 낙심이란 다른 말로 하면 슬럼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들의 경우 슬럼프에 자주 빠집니다. 한 때 4번 타자로 홈런왕이었던 이승엽 선수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방출되었습니다. 한 때 25타수 1안타까지 성적이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슬럼프에 빠지면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고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일하고자 하는 의욕이 뚝뚝 떨어집니다. 막상 일을 하려고 해도 집중력이 떨어질 때가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싫든 좋든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데 사람 만나기가 싫어집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홀로 칩거하게 되고 공동체로부터 소외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영적인 슬럼프가 있습니다. 기도하기도 싫고 성경 보기도 싫고, 심지어 교회 가는 일조차도 귀찮아질 때가 있지요. 영적인 슬럼프 역시 누구나 다 경험할 수 있는 증세인데 우리는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적인 슬럼프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인을 아는 것은 올바른 대처를 위해서 참으로 중요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영적 침체의 원인 세 가지를 지적합니다. 첫째, 타고난 '기질' 때문입니다. 꼭 마귀가 역사해서, 혹은 은혜가 떨어져서 슬럼프에 자주 빠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각각 다른데 유난히 슬럼프에 잘 빠지는 기질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도 타고난 기질이 워낙 낙천적이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쉽게 잘 극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쉽게 상처를 받고 낙심하는 것 또한 사실이지요. 물론 기질은 우리의 구원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지만 분명히 기질적인 차이 때문에 영적인 침체에 빠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둘째, '육체적인 상태'입니다. 피곤해서 탈진 상태에 빠지면 영적 슬럼프가 찾아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육체와 정신과 영혼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므로 육체적인 피로가 영적인 슬럼프를 불러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엘리야가 우상을 섬기던 선지자 850명과 싸워 이긴 뒤 극심한 피로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육체적인 탈진으로 인해서 영적인 슬럼프에 빠진 나머지 로뎀 나무 아래에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볼멘소리를 했던 것입니다. 

셋째, '불신앙' 때문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다고 믿으면 우리는 잠시 낙심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의심을 하고 믿음을 잃어버릴 경우, 우리는 영적인 침체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영적 침체로부터 빠져 나오려면>

그렇다면 우리가 영적인 슬럼프에서 빠져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편 42편은 다윗이 음악가의 가문으로 세운 고라의 후손들이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할 때 부르던 찬송시요, 기도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후렴구가 두 차례 반복됩니다. 먼저 5절 말씀을 보세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라." 11절 말씀에도 이 후렴구는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그대로 반복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라." 

여기 시편 기자는 두 번씩이나 자기 자신을 향하여 탄식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네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영적인 슬럼프에 빠졌다는 탄식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영혼이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불안해 합니까? 

천안함 사태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연평도에 사는 민간인들이 폭격을 받았습니다.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님들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가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낙심하고 불안해 하게 되지요. 사람들에게 기대를 잔뜩 걸었다가 실망할 때 우리는 낙심합니다. 그토록 건강했던 내가 하루아침에 건강을 잃게 될 때 우리는 낙심하고 불안해 합니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하는 일마다 꼬여서 실패할 때 우리는 낙심하고 불안해 합니다. 오늘 여러분 가운데에는 여러 가지 다른 이유들로 인하여 영적인 슬럼프에 빠진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속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보세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네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시편 42편 기자 역시 낙심하고 불안해 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 때문입니다. 지금 시편 기자가 이런 고백을 할 때에는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천리 먼 길 떨어져 있었을 때입니다. 어떤 학자는 이 시가 바벨론 포로 후기 때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상황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말하기 어려운 때라는 사실입니다. 만사형통하는 것이 아니라 불통할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존경할 때가 아니라 비웃을 때였습니다. 하는 일마다 성공할 때가 아니라 실패할 때였습니다. 건강할 때가 아니라 중병에 걸렸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네가 왜 그 꼴이 될 수밖에 없느냐?"는 조롱소리가 귓전을 때렸기 때문에 낙심하고 불안해 했던 것입니다.

1-3절을 보세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유다 백성이 망했습니다. 성도(聖都)인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고 성전은 돌 하나 남김없이 무너졌습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굴비 엮이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 제국에 노예로 끌려왔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시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네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을 때마다 눈물이 음식이 되었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헐떡이듯 하나님을 찾아 헐떡입니다. "도대체 이 기막힌 상황으로부터 언제 나를 구원해주시렵니까?" 하나님을 향하여 울부짖다 보니 영혼이 낙심하게 되고 불안해 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뿐만 아닙니다. 7절에 보면 지금 시편 기자는 완전히 휩쓸려 버려서 정신을 잃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아마도 연평도 주민들의 심정이 바로 이런 심정이겠지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거친 파도와 물결에 휩쓸린 기분. 세상을 살다보면 이와 같은 절망을 느낄 때가 왜 없겠습니까? 

9-10절을 보세요.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사방에서 원수들이 날뛰며 빈정거리니, 그 조롱소리가 뼈를 부수는 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아예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다고 생각할 만큼, 깊은 낙심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렇다면 낙심과 절망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해야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기억해봅시다. 

4절을 봅니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과거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은혜로운 예배를 드렸을 때를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낙심할 때마다 여러분의 이웃과 함께 드렸던 은혜로운 예배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낙심과 절망으로부터 일으켜 세워주실 것입니다. 

그 다음에 6절을 보세요.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낙심할 때마다 하나님이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베푸신 일들을 기억한다는 것이지요. 지금은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건강도 잃어버린 상태에서 사람들이 네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고 있지만, 오늘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도와주신 적이 왜 없겠습니까? 여러분의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은 어디입니까? 

저에게 요단과 헤르몬 땅과 미살 산은 미국 텍사스였습니다. 일가친척 하나 없이 무일푼으로 유학 가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했습니다. 4가족이 굶거나 헐벗지 않고서 학업을 은혜 중에 마쳤습니다. 그 때 그 곳을 기억할 때마다 저는 영적인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과거에 그렇게 나를 도와주셨던 하나님이 현재와 미래에도 나를 도와주실 것이다!"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영적인 침체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소망을 둡시다. 

시편 42편 기자는 5절과 11절에서 후렴과도 같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권면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낙심하고 불안해 할 때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둡시다. 반드시 하나님이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소망은 태양과 같습니다. 우리가 태양을 바라보고 나아가면 그림자는 우리 뒤로 물러갈 줄로 믿습니다. 심리학에 '자기 암시'라는 것이 있지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상태에서 자기에게 독백으로 말하는 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낙심이 되고 불안한 일을 만날 때마다 본문의 5절과 11절 말씀을 자기 암시처럼 되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라." 

셋째로,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8절을 보세요.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선하게 만드실 하나님이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이런 하나님을 믿고 힘써 기도하면 영적인 슬럼프는 저절로 물러갈 줄로 믿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라!>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현대 랍비인 마빈 토케이어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떤 남편이 빚을 갚아야 할 날이 다가오자 안절부절 잠을 못자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참 멍청하네요. 내일 당신이 돈을 못 갚을까봐 걱정스러워서 잠을 못 잘 사람은 바로 돈을 받아야 할 사람이잖아요." 이 말을 들은 남편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을 잘 잤다고 합니다. 빚을 갚지 말라는 말이 아니고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하지 말라는 충고이지요. 

또 어떤 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의 낙심과 불안이라는 것이 마치 작은 멸치가 바닷물이 말라 헤엄치지 못할까봐 쩔쩔 매는 것과 같다. 아니면 작은 고추잠자리가 하늘이 좁아 날 곳이 없을까봐 당황하는 것과 같다. 작은 개미가 땅이 좁아 집을 지을 장소가 모자랄까봐 안절부절못하는 것과도 같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의 대부분이 우리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인간이기에 우리는 낙심할 수 있습니다. 영적 슬럼프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우리는 우리보다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행하셨던 위대한 일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영적인 침체를 극복하고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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