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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전쟁 (엡 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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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전쟁 (엡 6:10-20)


인생은 싸움터입니다. 오늘 우리는 치열한 생존 경쟁의 전쟁터로 내 몰리고 있습니다. 직업 전선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출퇴근 전쟁, 입시 전쟁, 고부 전쟁, 취업 전쟁이라는 말도 사용합니다. 싸울 일이 없는 사람들은 심지어 살빼기 전쟁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 전 연평도 사건을 통해서 실제적인 전쟁의 작은 두려움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보이는 전쟁보다 더 치열한 영적 전쟁이 진행 중이라고 가르칩니다. 

엡6:12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대함이라”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로 이 대목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 싸움은 잠깐 출전해서 쉽게 이기고 금세 잊고 마는 한나절의 운동 경기가 아닙니다. 이 싸움은 지구전, 곧 마귀와 그 수하들을 상대로 끝까지 싸우는, 사느냐 죽느냐의 싸움입니다”

이 영적 전쟁은 태초부터 있었지만 그 본격적인 싸움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부터 우주적인 싸움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오심은 마귀의 결정적 패배의 확정을 의미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계12:7을 보십시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 전쟁의 배경은 무엇입니까? 

계12:2을 보겠습니다.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이어지는 계12:5은 이 아이의 정체를 밝히 증거합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보좌 앞으로 올려 가더라” 

이천년 전 우리 위해 이 땅에 아기의 몸(아이)으로 오시고 우리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싸움의 궁극적 승리자가 될 것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이 성탄의 계절, 승리자 예수를 힘입고 싸우는 영적 전쟁의 승리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1. 거룩한 긴장이 필요합니다.

우선 성경은 이 영적 전쟁은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절대로 승산이 없는 싸움인 것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거룩한 긴장이 필요합니다. 10절을 보겠습니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 다시 말하면 우리 힘이 아닌 주님의 도우시는 힘으로만 비로소 승산이 있는 싸움이라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상대가 평범한 인간이 아닌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인 마귀와 그의 부리는 영들이기 때문입니다. 

12절은 이런 영들의 다양한 존재들을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유진 피터슨은 이들(통치자들, 권세들, 세상 주관자들, 하늘에 있는 영들)을 한마디로 마귀의 수하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이 팀을 이루어 일사불란하게 성도들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1절에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여기 사용된 ‘궤계’라는 단어는 희랍어의 ‘메쏘데이아’(methodeia, methodias)라는 말인데 영어의 ‘method''가 이 단어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마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도들을 파괴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스스로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며 때로는 함정의 덫을 놓아 성도들의 실족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이 함정을 경험해 본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를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마귀는 나보다는 더 힘이 있고 나보다는 더 지혜로운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긴장하고 이 마귀와의 싸움을 대처해야 합니다. 마귀보다 더 능하고 더 지혜로우신 분, 전능하고 전지하신 주님 안에 있지 않고는 이 싸움을 이길 수 없다는 거룩한 각성, 거룩한 긴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2. 거룩한 무장이 필요합니다. 

거룩한 긴장이 우리를 영적 전쟁의 승자가 되게 하려면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이 실제적인 영적 무장, 곧 거룩한 무장인 것입니다. 중국의 성경 강해가 워치만 니는 에베소서를 강해하며 에베소서를 이해하는 중요한 화두로 세 개의 열쇠단어를 찾았습니다. 그것을-sit-walk-stand(좌/행/참)이라고 불렀습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를 믿는 순간 하늘 보좌에 그리스도와 함께 ‘앉힌바 된’(sit)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된 그리스도와 실제적인 삶의 마당에서 함께 걸어야 한다는 것(walk, 동행)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동행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 날 반드시 우리를 공격하는 마귀와 맞서게 된다는 것(stand)입니다. 이 때 마귀와 맞서서 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 영적 무장이라는 것입니다. 13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17절까지는 구체적인 무장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이 무장은 몸의 한 부분이 아닌 온 몸 온 존재를 지킬 수 있는 무장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전신갑주’(the full armor, whole armor)라고 부른 것입니다. 6가지 부분의 무장을 강조합니다. 머리로부터 묘사해 볼까요? 머리에는 구원의 투구가 필요하고(구원부터 받아야 하고), 가슴에는 의의 흉배(호심경, 의롭다함의 확신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 허리에는 진리의 띠(신실성), 발에는 복음의 신(전도자의 준비), 한 손엔 믿음의 방패(날마다 믿음으로 걷고 믿음으로 마귀를 대적하고), 또 한손에는 말씀의 검(말씀을 적용하고 순종함으로 승리를 누리는 삶)을 들고 살아가는 무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묘사에선 진리의 허리띠로 시작합니다(14절). 갑옷의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것이 벨트이기 때문입니다. 벨트가 제대로 안되어 있으면 모든 갑옷은 풀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든 영적 무장은 진실한 삶의 태도 없이는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무장에는 등을 커버하는 대책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결코 등을 돌리지 않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삶이 필요합니다.

3. 거룩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좋은 갑옷으로 무장하고 값비싼 검을 들고 있다고 해서 저절로 전쟁터에서 승리가 보장될 까요? 아닙니다. 이제 갑옷을 잘 여미고 무기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몸과 손을 움직이는 내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모든 인간적인 조건이 갖추어져도 기도 없이는 영적 승리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본문 18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이 구절 말씀을 영어 성경(NIV)으로 읽어보면 ‘모든 기도’가 all kinds of prayer, ''항상''이 all occasions, ‘여러 성도’가 all the saints로 되어 있습니다. 곧 모든 유형의 전심을 다한 기도로 모든 성도가 이 싸움에 임할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도 친히 자신을 위한 중보 기도를 부탁합니다. 중보 기도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강한 그리스도인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9절을 읽어 보십시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로 자신 후계자인 여호수아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자신의 재능만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하고 그들을 공격하는 적들의 손에서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어떻게 했습니까?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 부족의 공격을 받고 전투가 시작되자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꼭대기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손을 들고 하늘의 여호와께 도움을 구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모세의 팔이 내려가면 이스라엘이 지고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승리합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은 모세의 팔을 함께 치켜들고 기도하지요. 우리는 이런 기도를 중보의 기도라고 말합니다. 저는 우리 민족, 우리 교회에 무엇보다 중보의 기도가 필요한 때가 바로 이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연평도 사건이후 이 땅에는 심각한 전쟁의 기류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처럼 긴장하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많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 안팎에서는 이 땅에서의 전쟁을 예언하는 예언자들의 경고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 진지하게 기도하는 교회나 성도들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 교회는 그동안 한국 교회 내에서 보기 드물게 민주적이고 모범적인 승계 절차를 통해 유능하고 미래 지향적인 지도자를 다음 담임 목사로 세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우리 교회의 위대한 미래가 저절로 보장되고 열릴 것으로 기대할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그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먼저 광야로 가셔서 40일을 기도로 보내셨습니다. 기도의 승리 없이 구속 사역의 승리는 불가능한 것을 아신 까닭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진재혁 목사님과 내년의 동역을 설계하는 중에 2011년 새해 첫 주를 <특새>(1/3일-8일)로 열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방심하지 마십시다. 거룩한 긴장을 하십시다. 기도로 거룩한 무장을 하고 민족의 새 날을 열고 가정의 새 날을 열고 교회의 새 날을 여십시다. 그래서 진정한 영적 승리를 경험하는 새 해를 기대하십시다.

중보기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리즈 하월즈>(Rees Howells)란 이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한때 영국 웨일즈 성경대학장을 지냈습니다. 당시 영국은 독일의 침공을 받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당시 독일 공군기가 영국에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 상황에서 영국은 거의 방어 수단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940년 9월 15일 나치 독일 공군기들이 영국에 총 공격을 퍼붓고 있었고 그 공격이 10분간만 더 계속되면 영국은 손을 들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독일 공군기들이 갑자기 전면적인 후퇴를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영국 공군 전투 총 사령관이었던 다우딩 경은 “이날 독일군의 갑작스런 퇴각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고 하나님의 개입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역사의 반전이었다”고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전날 웨일즈 대학 채플에서 리즈 하월즈는 대학내 대학 교회 모든 신앙 공동체 식구들을 모아놓고 기도회를 인도하며 “여러분, 독일 공군의 공습으로 마음이 흔들리고 계십니까? 여러분과 제가 지옥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믿는 자들이라면 그가 이 공습에서도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왜 믿지 못하십니까? 

이와 같은 때에라도 우리가 믿음과 기도로 주님께 나아와 참으로 기도할 수 있다면 나치 속에서 역사하는 마귀의 체제를 하나님은 결코 오래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기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 그들은 아침부터 전 공동체가 채플에 나아와 기도하고 있었고 바로 그날 역사를 바꾼 독일군의 퇴각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유명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 경도 그의 ‘전쟁 회고록’(War memories)에서 이 날의 영국군의 승리는 아주 특별하고 결정적인 하늘이 도운 승리의 사건이었다고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결코 평범한 승리가 아닌 기도의 승리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전쟁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고 영적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거룩한 전쟁에서의 승리, 그것은 바로 거룩한 기도의 승리였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바로 이런 승리가 필요한 때가 아닙니까? 바로 지금 이런 기도가 필요한 때가 아닙니까? 이천년 전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우리에게 이런 승리, 이런 기도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할 때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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