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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진정한 순례자 (마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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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순례자 (마 2:1-12)
  

예수가 이 땅에 탄생하셨다. 예수는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다. 희미하던 길, 희미하던 진리, 희미하던 생명이 확실하게 나타났다. 수많은 인생들이 인류 역사 이래 길을 찾아 움직였다. 참 진리와 참 생명을 찾아 움직였다. 짐승이 아닌 인생들은 순례자가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나 어리석은 길로 순례를 떠났다. 속세를 떠나고 사막으로 가고 기둥 꼭대기에서 고독하게 지내고 때로는 인생은 허무하기에 쾌락에 빠져 지내며 순례의 길을 떠났다. 하지만 모두 다 길과 진리와 생명에서는 빗나갔다. 사람은 발버둥 칠수록 수렁에 서 있는 자처럼 죄의 길로만 빠져 들었다. 

여기 첫 번째 성탄절에 아기 예수를 찾아 온 동방 박사들의 이야기는 참된 순례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2:1~12에 기록된 동방 박사는 본래 이방인들이다. 하늘의 천체, 별을 바라보며 연구하는 점성가들이다. 그 점성가들이 위를 쳐다보며 지내다가 순례자가 되었다. 수 천리 떨어져 있는 예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여기 동방 박사가 보여주는 참된 순례자란 어떤 모습인가?

1. 참된 순례자란 믿음으로 시작한다. (마2:1~2)

동방 박사들은 동방의 페르시아에서 별을 보았다. 유다 땅 베들레헴은 사실 너무나도 먼 이국 땅이다. 가본 적도 없는 미지의 땅이지만 별의 나타남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게 된 이유는 믿음 때문이다. ‘왕이 태어났다. 예수가 태어났다.’는 믿음 때문이다. 

마2:2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라고 말하고 있다. 또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말하고 있다. 

동방 박사들은 여행 삼아 출발한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부터 시작한 것이다. 별을 보는 순간 예배해야 된다는 믿음이 발동되었다. 예수님이 태어났다는 믿음! 예수님이 별이 지시한 곳에 계신다는 믿음! 그 분께 찾아가 예물을 드린다는 믿음! 이 믿음이 모든 것을 싣고 떠나는 순례자가 되게 한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짐을 쌀 수 없다. 믿음이 없으면 여행을 시작할 수 없다. 믿음이 있기에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순례자의 삶이란 믿음에서 시작된다. 믿음으로 성탄을 기다리고 믿음으로 교회에 나오고 믿음으로 성탄의 기쁨을 이웃에게 전하라. 저절로 순례자가 되는 것이다.

  
2. 참된 순례자란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소동을 통과한다. (마2:3)

동방을 떠나 여행길에 오른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유대인의 왕이 나신 곳을 묻는다. 믿음으로 별을 보고 멋지게 출발은 했지만 저들의 이성적 사고는 별에서 눈을 떼게 하였다.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 것이기에 왕의 뒤를 이을 자란 당연히 왕가에서, 그리고 예루살렘 도시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왕이 나신 곳을 물었다는 것은 예수의 탄생지를 시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왕이란 왕족에서 난다. 왕이란 세습되는 것인데 왕이 어찌 평민의 마을, 그것도 무명의 마을에서 나올 것인가?’ 이런 이성적 생각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도시에 이르러 왕의 씨를 찾는 생각은 혼돈과 소동을 불러 일으켰다. 마2:3을 보면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계시는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좇아가며 믿음으로 해석해야 한다. 별의 계시로 시작한 순례자의 걸음이 안타깝게도 인간의 이성적 사고의 틀로 바뀌고 계시를 외면하고 말았다. 신앙의 순례에는 언제나 이런 소동의 과정이 있다. 헤롯 왕은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구원자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묻는다. 예루살렘에 새 왕이 나셨다고 찾는 이들이 나타났으니 헤롯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헤롯은 결국 남자 아이를 학살한다. 2살 이하의 아이부터 죽이라고 명령을 한다. 계시를 사람의 이성으로 수용하려 하면 언제나 불행한 일이 만들어진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왕의 소동, 서기관의 소동, 군인들의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예측하면서도 순례자는 으레 이 길을 간다. 이성적 사고는 신앙 성숙에 이르르는 과정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구든지 계시보다 이성을 우위에 두고 이성적 판단, 이성적 분석, 이성적 해석을 시도한다. 하지만 어느 기간 동안 소동을 겪고 어느 기간 동안 지나면 다시 계시에 기울어졌다. 이성에 의지한 삶을 후회하고 계시의 영을 구한다. 지성이 모든 것을 통달하는 것이 아니다. 계시와 영성으로 나가야 한다.
  

3. 참된 순례자란 별의 안내를 따르는 자다. (마2:9)

박사들은 잠시 가야될 길을 잃었다. 예루살렘이란 화려한 도시에서 왕을 찾느라고 시간을 잃었다. 그러나 다시 박사들은 별의 안내를 받는다. 순례자의 정도는 별의 계시를 다시 수용하고 따르는 것이다. 

마2: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고 하였다. 박사들은 그 때 별의 안내를 따랐다. 

마2: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라고 하였다.

왜 기뻐하는가? 찾았기 때문이다. 걸어가야 할 순례자의 길을 다시 원위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별이 안내하는 데로 가야 길을 잃지 않는다. 소동도 나지 않는다. 신앙은 이성적 판단에서부터 계시의 별에 내어맡길 때부터 제대로 보인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이 내어맡기는 믿음 속에 부어진다.

이어령 교수는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썼다. 그 분은 진짜 영성의 세계에 자신을 던진 지성인의 챔피언이다. 허나 영성으로 건너뛰었다. 진정한 지식인이요 크리스챤이다. 
  
그러면 계시의 별, 우리가 좇아가야 별의 의미는 무엇인가?

① 말씀이다. 

성경 말씀을 찾아보면 베들레헴 작은 고을에서 한 다스리는 자, 왕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미5:2을 찾아보니 그 예언의 말씀이 적혀 있다. 그러므로 말씀이 계시의 별이다. 말씀을 따라 나를 내어 맡기라. 말씀을 앞세워야 길을 잃지 않는다. 목표를 잃지 않고 소망의 미래를 잃지 않는다. 

② 예수님 자신이다.

계22:16을 보면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별은 그리스도다. 우리가 다른 것을 바라보지 말고 집중하지 말자.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자. 그리스도가 별빛이 되어 어두움의 길을 이끌어준다. 불신앙의 자리에서 믿음의 길로 이끌어준다. 그리스도는 별빛처럼 빛나는 세상의 빛이다. 어디서든지 보이는 빛이다. 보고 따라가면 된다. 여러분과 나는 오직 별이신 그리스도의 안내를 따라가자. 말씀과 예수를 따르는 것이 참된 순례자다.
  

4. 참된 순례자란 예수 앞에 엎드리는 자다. (마2:11)

동방 박사는 드디어 아기 예수가 머물러 있는 곳을 찾았다. 동방 박사는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들어갔다. 마2:11을 보니 거기에는 아기가 계시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도 함께 있었다. 그것을 본 동방 박사들은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세 가지 예물을 드렸다. 

순례자의 끝은 진정한 예배다. 예수를 찾아 만나는 사람의 길은 기쁨, 만족, 뒤로, 쉼, 평안이라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순례의 끝은 예배로 나타난다. 예배로 전개된다. 진정한 예배를 위해 순례자가 된 것이다. 예수를 만난 순례자, 엎드리는 순례자다. 최고의 존경이 담긴 모습으로 엎드리는 겸손이 드려진다. 예배 속에 예수를 높이려는 모습이 담겨진다. 예배 속에 예수님의 가치만큼 존귀하심만큼 예물이 드려진다. 황금, 유향, 몰약이 드려진다. 

여기 세 가지 예물이 지닌 가치는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발견한 순례자의 고백이다. 예수님을 발견했기에, 예수님이 길이기에, 진리이기에, 생명이기에 나를 내어맡기고 다 드리는 것이다. 마음과 몸을 드리고 겸손함에 담아 드리고 귀중한 보배합도 드리는 것이다. 미련하고 무식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다. 참된 순례자는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이기에 예배로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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