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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사 52:6-7, 눅 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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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쁨의 좋은 소식 (사 52:6-7, 눅 2:8-14)


말레이시아는 아시아의 이슬람 나라입니다. 현재 이슬람 의장국입니다. 말레이들은 거의 이슬람 종교를 믿는 무슬림이라고 봐도 괜찮을 만큼 이슬람이 강합니다. 이 나라는 포르투갈과 영국이 거의 300년을 지배하였습니다. 기독교와 함께 칼과 총이 들어와 얼마나 못살게 굴었든지 영국연방을 탈퇴한 다음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자고 하여 믿기 시작한 것이 이슬람인데 이제는 국법도 코란에 따라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난 주간 페낭 연동교회 부흥회와 임직식에 갔을 때에 쿠알라룸푸르와 페낭의 호텔에도 성탄 장식이 아름답게 되어 있었습니다. 쿠알라룸푸르의 쌍둥이 빌딩이라고 알려진 KLCC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성탄 트리가 장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크리스마스캐럴이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캐럴들이 ‘예수님’ 빼고 ‘징글벨’, ‘루돌프 사슴코’ 같은 것들만 흘러 나왔습니다. 
  
그들에게 성탄의 의미는 단지 상업적입니다. 성탄의 알맹이는 빠지고 껍데기만 남아 있었습니다. 100년 전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엄 부스 대장이 앞으로 예수님 없는 성탄절을 맞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였는데 이 일이 이루어진 것이 벌써 오래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탄을 기뻐하는 이유는 단지 연말의 흥청거리는 기분을 위해서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대목을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곳곳에 성탄의 소식이 한참입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눈에 띠고, 카드를 친지들에게 보내고, 캐럴이 울려 퍼지고, 눈도 내리는 계절입니다. 이 모두가 성탄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온 데 간 데 없는 성탄절은 의미가 없습니다. 성탄의 참 기쁨을 알지 못하면 참 성탄은 아닙니다. 
  
그레샴 메첸이란 학자는 기독교 핵심의 첫 번째는 뉴스 곧 소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이 신학이라고 합니다. 뉴스는 사상에 근거하지 않고 사실에 근거합니다. 기독교는 어느 누구의 사상이기 전에 이미 일어난 실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 사람이 되셔서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이 기독교의 핵심이며 신앙입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소식들을 대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예산파동으로 말미암은 정치권의 소식이 매일 뉴스를 장식합니다. 여야 정치가들 모두가 세계경제규모 10위권에 전혀 걸맞지 않게 삼류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올 겨울 들어 최고의 추위를 맛보았습니다. 호남 서해안에는 많은 눈이 왔습니다. 외곽순환도로에서는 유조차의 화재로 고가도로의 사용이 불가능해졌으며 철거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좋은 소식도 있고 나쁜 소식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서 들려오는 매일의 소식은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이 훨씬 더 많습니다. 세상살이가 이전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워져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이 많았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두메 사람인 분봉왕 헤롯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하루 벌어 하루 먹어야 하는 계층이 대부분이었고 로마의 예속경제로 세리들이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 백성을 착취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에는 여러 종교적 계층들이 있어 사람들을 나누어 놓았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기쁘고 좋은 소식이 필요한 시대에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최고의 소식입니다.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성탄은 좋은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은 복음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이시며, 예수님의 오심입니다.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은 역사상 가장 좋은 소식입니다. 
  
장수학의 권위자 마이클 로이젠 박사는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젊음을 유지하는 비법은 운동과 좋은 소식과 웃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소식을 듣는 사람은 젊음을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소식인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가진 사람은 항상 젊게 삽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크리스마스이브에 천사들은 목자에게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영어성경에는 ‘Good news of Great Joy'라고 합니다. 좋은 단어들은 다 모아 놓은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날의 목자의 심정으로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듣기를 바랍니다. 

첫째, 온 백성에게 미칠 소식입니다. 

성탄은 모든 백성을 위한 그리스도의 나신 날입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함께 기뻐해야 할 성탄입니다. 예수님은 온 백성의 구주시며, 모든 세대의 구주이십니다. 예수님은 목자들만의 메시야가 아닙니다. 어떤 한 사람이나 한 민족이나 한 집단의 메시야가 아닙니다. 그래서 천사는 온 백성에게 미칠 소식이라고 목자들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온 백성’이란 말은 예수님은 유대 족속으로 이스라엘에서 태어나셨지만 민족적 울타리를 넘어 세계 만민에게 개방되었다는 뜻입니다. 유대 백성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이 먼저 전달된 것은 그들을 통해 온 인류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절대적으로 좋은 소식이 있습니까? 세상에서는 절대적 기쁨이나 좋은 소식은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편에서 좋은 소식이면 한 편에는 나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목자에게나 박사에게는 좋은 소식이지만 헤롯에게는 나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제자들에게는 좋은 소식이지만 사탄에게는 나쁜 소식입니다. 
  
2022년 월드컵의 주최국으로 카타르가 선정되었습니다. 카타르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나쁜 소식이었습니다. 김길태가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는 기쁜 소식일지 모르지만 살해당한 피해자의 어머니는 “내가 낸 세금으로 그 놈을 먹여 살려?”하고 하면서 분통을 터트렸다고 합니다. 어머니에게는 나쁜 소식이었습니다. 지난 주간의 강추위가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소식이지만 노숙자들에게는 말할 수 없이 나쁜 소식입니다. 
  
조금 있으면 언론사들이 2010년의 10대 뉴스를 선정하여 발표할 것입니다. 큼지막한 사건들을 열거할 텐데 두고 보면 알겠지만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이 대부분일 것이 뻔합니다. 삼성연구소가 선정한 올해의 ‘10대 히트상품’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첫째가 스마트폰입니다. 둘째가 슈퍼스타 K2이고, 셋째가 국가대표 여자축구팀이고, 넷째가 소셜 미디어이고, 다섯 번째가 테블릿 PC이고, 여섯 번째가 기아자동차 K 시리즈이고 일곱 번째가 아바타이고, 여덟 번째가 블루베리이고, 아홉 번째가 발열의류이고, 열 번째가 제빵 왕 김탁구입니다. 선정된 상품을 만든 사람들에게는 좋은 소식이지만 이런 히트상품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는 나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의 성탄 소식은 모든 사람에게 즐거운 소식입니다. 온 인류에게 희망입니다. 예수님이 나신 소식은 절대적 기쁨의 소식입니다. 이것이 곧 복음의 보편성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통해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복음에는 남녀노소가 없습니다.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절대적 복음입니다. 그리스도가 나심은 모든 사람, 온 백성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요한복음 3:16에는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이런 인류의 필요를 아시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백성을 위해 오신 메시야이십니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은 생명의 물입니다. 물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은 물이 필요합니다. 씨가 발아하여 싹이 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흔히 물과 흙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흙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시를 촉촉한 솜에 둬도 싹이 납니다. 흙은 없어도 되지만 물은 없으면 절대 싹이 나니 않습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먹고 마셔야 합니다. 사람이 밥은 안 먹어도 한참 견디지만 물은 마셔야 삽니다. 물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에게, 모든 인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온 백성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또 물은 어디에나 들어갑니다. 조그마한 틈만 있어도 물은 들어갑니다. 작은 구멍이 큰 댐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장마 때 물이 넘치면 방 구석구석에까지 물이 들어와 온 방을 다 적게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다 들어갑니다. 조금만 마음의 문을 열면 누구에게나 예수님은 들어가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신 메시야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 오신 메시야아십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한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반드시 필요한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후서 3:9에는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을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온 백성을 위해 가장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감람산에서 하신 대 명령을 보세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왜 땅 끝까지 가야 합니까? 예수님의 복음이 온 백성에게 미칠 소식입니다. 온 백성에게 다 복음이 미쳐야 하니까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부터 이 땅을 떠나가실 때 까지 오로지 관심은 온 백성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복음을 믿고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온 백성’이란 말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메시야가 오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이방인과 다른 백성에게도 좋은 소식으로 오신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이며, 복음도 유대인의 복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이방인인 동방의 박사들이었고, 당시의 소외계층이며 천민으로 취급되었던 목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누구를 위해 오셨는가 하는 이유가 드러나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작은 자인 고아나, 과부나, 가난한 자나, 여성이나, 저학력자나, 장애인을 차별하고 소외하는 종교는 결코 좋은 종교가 아닙니다. 성탄은 작은 자, 가난한 자, 눌린 자, 그리고 죄인에게 빛을 주시려고 예수님이 오신 사건입니다. 이사야 9:2에는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라고 합니다. 빛을 주시려고 오시는 예수님에 대한 구약의 예언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온 백성을 위해, 모든 사람을 위해 오늘도 이 땅에 오십니다. 

  
둘째,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작은 기쁨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돈을 좀 벌었다는 것은 작은 기쁨입니다. 좋은 학교에 합격했다는 것은 작은 기쁨입니다. 아무 탈 없이 건강하다는 것은 작은 기쁨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절대적 기쁨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작은 기쁨은 금방 사라지고 여전히 슬픔과 고민을 몰고 옵니다. 큰 기쁨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간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탄은 작은 기쁨의 나쁜 소식이 아니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이런 큰 기쁨을 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성탄입니다.  
  
천사는 “좋은 소식...전하노라”고 합니다. ‘유앙겔리조마이’라는 헬라어는 기쁜 소식을 전파하다는 뜻입니다. 좋은 소식은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입니다. 이사야 52:7에는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라고 합니다. 기쁨과 좋은 소식은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기쁨을 전하고 좋은 소식을 전해야 교회가 아름답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아름답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나타나는 가장 뚜렷한 증거는 믿음이나 사랑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기쁨은 그리스도인의 상표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신앙생활 가운데 전혀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신앙생활에 어딘가에 구멍이 났다는 증거입니다. 테스터튼이란 분은 기쁨은 기독교의 거대한 비밀이라고 하였습니다. 성탄은 이 비밀을 공개한 아주 특별한 사건입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에게 반역하여 아버지 대신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하였습니다. 다윗의 군사들은 압살롬을 쫓아서 죽이려 하였고 다윗은 자신을 반역한 아들의 소식을 궁금해 합니다. 다윗은 신하에게 압살롬의 소식을 묻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이 어떻게 되었느냐?” 

사무엘하 18:25에는 다윗의 아버지로서의 마음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파수꾼이 이르되 내가 보기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같으니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 오느니라 하니라”. 

다윗이 기대했던 좋은 소식은 아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을 기다리던 다윗은 나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자신의 군사들에 의하여 아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다윗은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하며 통곡을 합니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나쁜 소식 더 많이 듣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누구나 나쁜 소식을 매일 접하게 됩니다. 참으로 좋은 소식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스도의 선물입니다. 
  
마르바 던 교수는 고난의 영성가입니다. 이 분은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있어 걸음이 불편하고 육체적으로 고통이 많은 분입니다. 이 분이 쓴 ‘의미 없는 고난은 없다’라는 책에서 “나는 기쁨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쓴다. 기쁨이 환경으로 인한 단순한 벅참이나 행복이나 감격을 뜻하는 말이 아님을 상기하기 위해서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 삶이 변화되면 그 깊고 영속적인 확신과 감사와 신뢰가 내 것이 되는데 바로 그것을 나타내고 싶을 때만 나는 기쁨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하였습니다. 기쁨을 대문자로 쓰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한 기쁨이 크기 때문입니다.  
  
성탄이 즐거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크리스마스 장식 때문입니까? 카드 때문입니까? 선물 때문입니까? 이런 것들 때문에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때문에 성탄절이 즐거운 것입니다. 예수님을 빼면 성탄은 아무 즐거움도 기쁨도 없을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보세요. 찬송이나 노래는 다 감정이 있습니다. 기쁨이나, 슬픔이나, 회개가 있습니다. 일반 노래에는 불평도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캐럴은 한 결 같이 유쾌하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캐럴 듣고 우는 사람을 봤습니까? 캐롤을 부르면서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사람을 봤습니까? 예수님은 기쁨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이 큰 기쁨입니다. 그래서 “기쁨의 근원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라고 찬송합니다. 기쁨의 근원인 예수님 때문에 성탄은 기쁨소식입니다. 누구에게나 기쁜 것이 성탄입니다. 

  
결론 

아르헨티나의 골프 선수 로베르토 드 빈센조는 아주 성품이 뛰어난 선수입니다. 마스터스 골프 대회에서 멋진 경기를 펼쳤지만 그린재킷을 입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날 라운드에서 최소타의 기록으로 사실상 우승자이었지만 타수를 기록하던 파트너가 실제로는 네 타이었지만 다섯 타로 기록을 하였고 그는 거기에 서명을 하였습니다. 대회 규정에 의하면 잘못된 카드에 서명을 하는 즉시 선수는 실격 처리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파트너를 비난하지 않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을 졌습니다. 

얼마 후 다른 경기에서 그는 우승을 하여 상금을 탔습니다. 탈의실에 왔을 때에 어떤 여인이 들어와서 자신의 병든 아기가 죽어간다고 하며 병원에 갈 돈 없다고 애원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상금 받은 돈을 서명하여 여인에게 주었습니다. 다음 주 클럽에 PGA 담당 직원이 와서 그가 사기를 당했다고 일러주며 그를 속임수의 희생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여성은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기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그는 “그럼 병든 아기가 없었단 말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정말 다행이군요. 내가 올 해 한 해 동안 들었던 것 중 최고의 소식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려고 오신 그리스도를 모신 온유한 사람은 항상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헤롯에게는 나쁜 소식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의 욕심 때문입니다. 왕의 자리에 대한 욕망 때문입니다. 영적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올 성탄은 우리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과 온 인류에게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매년 맞는 성탄절이지만 올해의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우리가 한 해 동안 들었던 최고의 소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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