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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준비하시는 하나님 (마 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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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시는 하나님 (마 1:18-25)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성경은 약속의 책입니다. 성경 속에 많은 약속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 많은 약속들 중에서도 가장 큰 약속은 단연 예수께서 세상에 오심의 약속입니다. 구약성경의 중심은 장차 세상에 예수를 보냄의 약속입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서 내용 중 상당부분이 그런 내용입니다. 그것이 구약성경의 최대의 비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메시야가 오심을 고대하고 준비하고 연구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신약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신약성경의 중심은 약속하신 그대로 예수께서 오심입니다. 실제로 그 예수께서 세상에 오십니다. 오시는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사전 준비를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사전 준비를 하십니다. 출애굽을 위해서 80년 전부터 모세를 준비하시고 부모를 준비하시고 미리암을 준비하시 듯이 예수께서 오시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여러 사람을 사전에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참 치밀하신 분입니다. 준비가 치밀하십니다. 그리고 사전에 필요한 사람들을 준비해 놓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보면 그 과정에 많은 사람들을 활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시고 전개하시고 만들어 나가십니다. 본문도 보면 예수 탄생을 위해서 여러 사람들을 사전에 준비해 놓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을 보면 오늘 우리들도 주님으로부터 사용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리아를 준비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는데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져 오실 수는 없습니다.  손오공은 어느 날 공중에서 뚝 떨어져 세상에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만화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오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신 질서를 당신 스스로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는데 당신이 만드신 질서를 통해서 오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잉태되는 과정을 거쳐서 세상에 보내십니다. 모든 생명체는 잉태과정을 통해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님도 그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려면 한 처녀가 있어야 합니다. 잉태할 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준비된 처녀가 마리아입니다. 하나님은 그 많은 여인들 중에서 마리아를 선택하여 준비시키셨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어느 날 처녀 마리아에게 찾아와 잉태를 고지하여 주었습니다. 

18절을 보면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고 하였고 누가복음 1장31절을 보면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그때 시골처녀 마리아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꿈에 환상으로 천사가 나타나더니 “네가 아이를 잉태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시골 처녀의 가슴에 엄청난 파도가 쳤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 순간 깊이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질문하기를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누가복음1장34절)”하고 묻습니다. 

당연한 질문입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아이를 잉태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엄정한 질서입니다. 그때 천사가 대답합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누가복음1장35절).”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고  성령으로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말을 듣고 마리아는 곧 바로 순종하였습니다. “나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리이다(누가복음1장38절).” 이것은 대단한 용기입니다. 

사명자나 사역자나 부름 받은 자에게는 이런 용기와 결단력과 신속한 용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때로 너무 신중하고 재삼 두드리고 많이 생각합니다. 그것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일에는 그렇게 우유부단하고 재고하고 따지면 할 수 없습니다. 나라 지도자가 너무 신중하고 생각이 많으면 매사를 재느라고 타이밍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러면 나라가 발전을 못하고 기회를 놓치기 쉽습니다. 기업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 너무 신중하고 너무 재느라 시간을 끌면 기회를 놓치기 쉽습니다. 기회는 언제나 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마리아는 아주 시원합니다. “나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리이다.” 지금 마리아는 정혼한 상태입니다. 정혼한 사람이 남의 아이를 잉태하였습니다. 당시 법으로는 돌에 맞아 죽을 일입니다.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이다” 하고 순종합니다. 그 말은 돌에 맞아 죽을 일이 발생하면 죽겠다는 뜻도 내포된 결단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께서 세상에 태어나게 되신 것입니다. 

그 결과 구약성경에서 이사야가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탄생을 위해서 마리아를 준비시키셨습니다. 마리아는 순간 주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이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후에 마리아가 얼마나 큰 수모와 아픔과 피난의 삶과 고달픈 인생을 살았습니까. 처녀가 임신을 하고 그 시골동네에서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멸시를 당하고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또 얼마나 아픔을 당했습니까. 그래도 마리아는 끝까지 꿋꿋하게 그 일을 다 해 냈습니다. 마리아의 고뇌와 아픔과 수고는 아무나 할 일이 아닙니다. 오늘 천주교에서 마리아를 숭배하기까지 하는데 이해가 갑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입니다.  


요셉 준비 

하나님께서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는데 중요한 역할자로 요셉을 사전에 준비하셨습니다. 요셉은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어느 날 요셉이 정혼한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베들레헴은 작은 동네입니다. 작은 동네에 처녀가 임신한 사실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소식은 작은 동네에 순식간에 한 바퀴 돌아버렸을 것입니다. 시골에서 모든 소식의 공급처는 우물가입니다. 아침이 되면 동네 아낙네들이 모두 우물가로 나옵니다. 그곳에서 간밤에 있었던 동네 소식이 긴급하게 타전되는 곳입니다. 요셉도 그 소식을 듣게 되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그 소식을 듣고 상당히 고민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약혼자가 동거 전에 남의 아이를 임신하였습니다. 요셉은 별 생각을 다했을 것입니다. 흥분도 했을 것입니다. 

신명기 22장에 의하면 그럴 경우 공개재판을 열어 규명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율법에 주어진 권리이고 자존심을 회복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당시 의로움의 행위였습니다. 규명해서 부정이 발견되면 마리아를 돌로 치는 재판에 회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곧 결심을 합니다. 

마태복음1장19절을 보면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했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아직 동거전입니다. 요셉은 조용히 이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경우 요셉은 마리아에게 이혼증서를 써 주어야 하고 또 위자료도 주어야 합니다. 마리아에게 정신적으로 충격을 주고 인격에 타격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요셉은 조용히 끊고자 했습니다. 그런 요셉을 성경은 의로운 사람(마태복음 1장19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결정은 약혼자 마리아를 배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개입하셨습니다. 마태복음1장20절을 보면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십니다. 그때 요셉은 그 중재를 받고 곧 바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하게 된 것은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예언이 성취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장차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요셉이 수난의 삶을 살게 됩니다. 마리아와 정혼하고 즐거워야 할 시기에 갈등하고 고민합니다. 그 후 아이가 낳기까지 아내 마리아 곁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신혼 초인데 아내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였는데 감히 어떻게 곁에라도 갈 수 있습니까.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사람들이 그 아이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를 엎고 애굽으로 피난을 가고 도망을 다닙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그 후로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길목에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사를 이루시는 길목에는 이렇게 말없이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다. 조금 말만 들어도 뒤로 물러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금 손해만 보아도 기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아무나 못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나 요셉은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는 대 사역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들입니다. 


동방박사 준비 

마태복음2장을 보면 동방박사들이 나옵니다. 이들이 유대 땅에 옵니다. 여기 동방이라는 말은 해 뜨는 동쪽이라는 말인데 그 당시 해 뜨는 동쪽은 페르시아를 말합니다. 박사를 헬라어로 “마고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페르샤의 사제들이라는 뜻입니다. 넒은 의미로 마고이는 이방세계의 정신적 엘리트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여기 박사라는 말은 고대동양의 지혜자 들이라는 말입니다. 이들은 당시 천문학을 연구하고 철학과 마법까지 능통했던 사람들입니다. 베들레헴에 온 동방박사들은 3명이라고 하는데 예수께 바친 선물이 세 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주석자는 동방박사가 별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아니고 동방의 세 왕 즉 가르파스(Caspar) 멜쉬오르(Melchior) 발타자르(Balthasar) 라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베들레헴에 와서 예수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께 경배하면서 세 가지 예물을 바쳤는데 황금과 유향과 몰약으로 예수께서 왕 되심과 대제사장 되심과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상징합니다. 그들의 행위는 이사야 60장9절에서 예언된 “먼 곳에서 ... 은금을 싣고 와서 ...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드리려했다”는 예언을 성취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이 동방박사들은 오늘의 이란 땅인 페르시아로부터 예루살렘까지 달려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약대를 타고 노숙하면서 별의 인도를 받고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주석자는 동방박사들이 예수를 만나러 온 날이 태어난 날부터 계산하면 13일째 되는 날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12월 25일에 예수께서 태어났으니까 그들이 베들레헴에 와서 예수를 본 날이 13일째 되는 날이면 1월 6일이 됩니다. 그래서 오는 1월 6일을 주현절입니다. 주님께서 공적으로 세상에 나타나신 날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동방의 박사들이 그 멀리에서 찾아와 예수께 경배하고 “당신은 우리의 왕입니다”라고 고백을 하였는데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는 겨우 8Km의 거리입니다. 13일 길을 걸어서 찾아온 사람들이 있는데 8Km 거리에 사는 헤롯도 예루살렘 주민 누구도 장차 메시야가 오리라고 믿고 오실 그날만 기다리던 제사장 바리새인 누구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거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과 뜻이 문제입니다. 옛날 시골에서 살 때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한다면 거리는 상관도 없었습니다. 수십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고 아예 양식을 지고 가서 숙식하면서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곳에 기적이 일어났고 병이 치유되었고 회심의 역사가 일어났고 변화가 일어나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자동차가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어도 또 교회가 집 주변에 수없이 많아 몇 발자국만 걸으면 갈 수 있는데도 가지 않습니다. 거리가 문제 아닙니다. 동방박사들은 13일 동안 걸어서 예루살렘까지 와서 주께 경배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헤롯이나 유대인들 제사장들은 알지도 못하고 오지 않았다는 것만 문제가 아니고 태어나신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멀리서 알고 찾아와 경배하는데 가까이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실을 알지도 못하였고 오히려 예수를 죽이려 하였고 예수님은 이집트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구원에서 멀어지고 이방인은 구원으로 가까워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마태복음은 세상에 예수가 오셨는데 반갑게 맞이해야 할 유대인들 제사장들은 그를 핍박하고 죽이려 하여 피난을 가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토록 경멸하던 이방인들은 예수께서 오심을 알고 찾아와 경배를 함으로 그들에게는 구원의 빛이 비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밝히려고 하나님은 동방박사들을 사전에 준비해 두신 것입니다.  


목자들 준비 

하나님은 예수 탄생에 역할 하도록 또 목자들을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처음 들은 사람들은 목자들이었습니다. 목자들은 당시 그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장 빈천하고 초라하고 뒤쳐진 관심 밖의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외된 사람들이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처음 듣게 되는 영광을 안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밤에 양떼를 지키는데 주의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났습니다.(누가복음2장8절) 그들이 양을 치던 들은 베들레헴에서 3km 정도 떨어진 빈들입니다. 추운 날 밤 밖에서 양을 돌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날이 12월 25일이었으니까 동지 축제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동짓날이면 일 년 중 가장 어두울 때이고 밤이 길 때입니다. 그래서 밤에 팥죽을 끊여 먹는 날로 명절날입니다.

이 가난한 목자들은 동짓날 축제와 무관하게 양들을 지키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갑자기 천사들이 나타나 예수의 탄생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우신 아기를 보라(누가복음2:10-12).” 그들은 하던 일을 놓고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경배하였습니다. 축복입니다. 

당시 그 시대에 가장 천한 직업, 아주 빈천한 부류, 가장 소외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예수께서 태어나신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왜 가장 천시되던 사람들에게 알려주셨을까요. 그것은 태어나신 예수께서 장차 어떤 삶과 어떤 일과 어떤 죽음과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일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33년간의 짧은 인생을 보여주신 상징과도 같이 사셨습니다. 무시당하셨습니다. 핍박 받으셨습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초라하게 사셨습니다. 비웃음 당하고 업신여김 받았고 조롱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예수를 보내시면서 많은 뜻과 상징과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탄생을 위해서 여러 사람을 준비하셨습니다. 마리아를 준비하셨습니다. 요셉을 준비하셨습니다. 동방박사들도 준비하였습니다. 그 시대에 가장 빈천한 목자들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밖에 하나님은 여러 명의 엑스트라들도 준비하셨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과 의로운 시므온을 준비하셨고(누가복음2장25절) 주야로 금식 기도하던 안나를 준비하셨습니다(누가복음2장37절). 

이 엑스트라들은 모두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주도면밀하신 분이십니다. 철저하게 준비하시고 계획을 세우시고 환경을 조성하시고 역사의 길목을 지키십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액션을 취하십니다. 예수는 그렇게 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예수께서 오심으로 준비가 다 끝난 것이 아니고 지금도 여전히 준비하시고 계십니다. 그 준비는 나를 위한 준비입니다. 나의 인생을 펼치시기 위해서 준비하시고 나의 내일을 준비하시고 나의 종말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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