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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손 (계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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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손 (계 3:20)

  
어떤 집에서 기르던 개가 죽었습니다. 그 개는 가족들이 모두 귀여워했지만 특히 아들이 더욱 그랬습니다. 아들은 그 개를 뒤뜰에 묻어 주자 했지만 아버지는 개를 뒤뜰에 묻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집은 유대교 신자여서 랍비에게 전화를 걸어 가정에서 일어난 일을 정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랍비는 연락을 받고 그 집으로 가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집안에 우유가 있었습니다. 독뱀 한 마리가 우유 통으로 들어갔습니다. 독이 우유 통에 퍼졌습니다. 그것은 아무도 모르고 개만 알았습니다. 가족 중에 우유를 따라 마시려 하자 개가 짖어댑니다. 개가 왜 소란을 피우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시 우유를 마시려 하자 개가 달려들어 엎질러 버렸습니다. 쏟아진 우유를 개가 핥아먹더니 곧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 개는 사람보다 나았습니다. 
  
랍비가 들려준 이야기를 들은 가족들은 죽은 개를 뒤뜰에 묻기로 했습니다. 손은 머리의 판단에 따라서 움직입니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손이 움직이게 됩니다. 
  
예수 손은 예수의 사고에 따라 움직이십니다. 

  
󰊱 문을 두드리는 손 

초인종이 고장나서 수리점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10분내 가겠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아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했습니다. 한 시간을 기다려도 안 옵니다. 두 시간, 세시간을 기다려도 안 와서 화가 난 주인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더니 수리공이 덜덜 떨고 있는 겁니다. “이 봐요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떻게 해요.” 

그가 하는 말이 “4시간 전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문을 열어 주지 않았습니다.” 초인종 고치러 온 사람이 고장난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노크를 했어야지요.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예수님은 집을 찾아와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문을 열어 달라. 그러면 내가 들어가 함께 먹고 마시겠다고 하십니다. 
  
택배를 가장한 도적이 주택 문을 두드립니다. 문을 열어 주었더니 강도였습니다. 함부로 문열어 줬다가 낭패를 당합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예수님은 훔치러 오거나 죽이고 파괴하려는 분이 아닙니다. 생명을 주기 위해서 문을 두드립니다. 생명은 자라게 합니다.  생명을 지속하게 합니다. 예수님을 모셔들이면 풍성하게 하십니다.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은 신문팔이를 해서 모은 돈을 종자돈으로 세계 두 번째 부자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백만장자를 조사했더니 50%는 부모에게 한 푼도 안 받고 대학도 본인이 벌어서 다닌 사람이었습니다. 80%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했고, 90%가 물려받은 재산이 없었습니다. 
  
워런 버핏과 오찬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신청했는데 35만 달러(약 3억 5천만원)을 내겠다는 사람이 낙점 되었습니다. 점심한끼 같이 먹으며 투자 조언 한마디를 듣는 수업료치고는 엄청나게 비싼 것입니다. 하지만 버핏은 그 돈을 받으면 전액 센프란시스코 노숙자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와 가까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는 책도 있습니다. 부자를 증오하는 사람은 부자 될 가능성이 적습니다. 부자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부자보다 더 나쁠 수 있습니다. 부의 세습보다 가난의 세습이 더 나쁩니다. 부자를 증오하는 것이 가난을 세습하는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우리 집을 찾아오셨습니다. 열면 흥하고 닫으면 망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입니다. 예수님께 개방하고 예수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기 바랍니다. 

워런 버핏과 점심 한끼 나누며 가르침을 받듯이 예수님을 모시고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를 축복하시려고 오셔서 문을 두드리십니다. 

  
󰊲 병을 고쳐주는 손

사람은 손으로 도구를 만듭니다. 손으로 만든 도구가 문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손은 인간이 가진 창조와 생산의 도구입니다. 
  
손을 펴면 빈손이 되고, 손을 쥐면 주먹이 됩니다. 손이 주먹이 되고, 주먹은 곧 힘이 됩니다. 손으로 개척하고, 손으로 건설합니다. 손으로 수술을 하고, 손으로 약을 주기도 합니다. 손으로 멸하기도 하고, 손으로 살리기도 합니다. 
  
회당장 야이로라 하는 이가 예수님께 찾아와 절하며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일어나 그 사람을 따라 가실 때 사람들도 따라 나섰습니다.  
  
12년이나 혈루증을 앓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가진 재산도 모두 허비했습니다. 어느 날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길에 그 여인이 끼어 들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내 병이 나을 것이라!’ 그녀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집니다. 순간 혈루의 근원이 막혀 병이 나은 것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에서 능력이 나간 것을 느끼시고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이 많아 밀치다가 닿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니다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다”고 하시니 여인은 숨길 수 없어 자기가 그랬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았습니다(마9:18-22). 
  
손을 얹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가시는 예수님께 손을 내밀었던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12년 동안의 고통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이 통곡했습니다. 그 집 딸이 죽었습니다. 예수께서 죽었다는 소녀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 하시니 죽었던 아이가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 소문이 널리 퍼졌습니다(마9:23-26).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려 내셨습니다.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합류하려 오심이 아닙니다. 병자를 고치고 죄인을 고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2:13) 주님께서 문을 두드리는 것은 내 병을 고쳐 주려 하심이요, 죄인된 나를 의인으로 고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손은 능력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의 손은 전능자의 손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손을 대시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워 있을 때 예수께서 그 집에 가셨습니다.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은 일어나서 예수님께 수종들었습니다(막1:31). 
  
성질이 괴팍한 남자가 병원에 갔습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 의사가 알아야지 내가 말해야 합니까? 의사가 말하기를 그러면 동물 병원에 가보시죠. 거기는 묻지 않고 의사가 처방합니다. 그러더랍니다. 병은 자랑해야 고친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상처를 드러내십시오. 주님께서 손을 얹으시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주님의 손이 여러분을 치료하심을 경험할 것입니다. 

  
󰊳 발을 씻어 주는 손

남자들은 이발소에 가면 기분이 좋습니다. 덥수룩한 머리를 말끔하게 자르고 다듬어 줍니다.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소리가 야릇한 쾌감을 느끼게 합니다. 또 면도를 해줍니다. 지저분한 수염을 말끔하게 밀어줍니다. 면도할 때 수염 깎이는 소리가 상쾌합니다. 
  
세면대에 엎드려 놓고 머리를 감겨주는 시간이 좀더 길었으면 싶습니다. 이발소를 나올 때는 날아갈 것 같은 개운함을 느낍니다. 누가 나를 봐주기를 은근히 바랍니다. 
  
예수님은 대야에 물을 떠다 놓고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좀 천대받는 지체가 어딜까? 아마 발이 아닌가 싶습니다. 수건을 써도 얼굴 닦는 수건과 발 닦는 수건이 다릅니다. 발의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발을 천대하지만 예수님은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사람 몸 전체의 뼈가 206개인데 한쪽발의 뼈가 26개입니다. 양쪽 발 뼈를 합치면 52개입니다. 발은 몸의 기초입니다. 발은 무거운 자기 체중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발이 있으니까 서기도하고 걷기도 합니다. 피곤할 때 발을 씻어주고, 맛사지를 하면 피로가 풀립니다. 발이 편해야 온 몸이 편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발에서 신발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에게 가라!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 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의 벗은 발이 바로에게 가는 발이요, 애굽을 떠나야 할 발입니다. 그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하나님이 주신 땅입니다. 
  
예수님은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발을 씻어주신 것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내가 네 발을 씻기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상관은 관계입니다 예수님께서 발을 씻어 주신 것은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인생이란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내가 누구와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예수님과 관계된 제자들을 둘 씩 짝지어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누구의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 유하라,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집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 발에 묻은 먼지를 떨고 나오라고 하셨습니다(막6:11).  
  
주님께서 씻어주신 발은 깨끗한 발입니다. 그 발은 행동하는 동사였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보내시는 곳에 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귀신을 내쫓고 병자를 고쳤습니다. 씻음 받은 발은 평안의 복음을 전하는 발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발로 복음 전하는 발입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냐? 강하고 능하신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영광의 왕이시로다!(시24:7-10)
  
문 두드리는 그분은 빛이십니다. 그 빛이 우리 집을 빛의 집, 빛의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그분이 오셔서 여러분을 고쳐주고 싶어하십니다. 그분을 영접하고 고침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오셔서 여러분을 씻어주셨다면 화평케 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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