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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몇 살 먹었습니까? (창 4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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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살 먹었습니까? (창 47:7-10)

1. 몇 살 먹었냐?

옛 그리스 한 도시에 조각가 뤼지푸스(Lysippus)가 만들었다고 하는 동상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이 동상은 발 밑에 날렵한 날개가 달려 있었으며 앞머리는 풍성한데 뒤는 말쑥한 대머리였습니다. 이 동상 밑에 이와같은 문답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대 이름이 무엇인가?” “내 이름은 시간이라고 하오.” “왜 그대는 발 밑에 날개를 달고 있는가?” “빨리 날아 갈 수 있기 위해.” “앞머리는 왜 그토록 풍성한가?” “내가 다가 갈 때에 누구나 붙들 수 있도록.” “왜 뒷머리는 대머리인가?” “내가 떠나고 나면 아무도 날 붙들 수 없도록.” 이 동상의 이름이 “시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 격언 가운데 “시간은 앞머리카락을 잡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옳습니다. 그 누가 지나간 시간을 붙들 수 있으며 놓친 시간을 다시 잡을 수 있겠습니까? 또 한해가 흐르고 1년 52주 마지막 주일을 맞았습니다. 

시편 90편 12절에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 나이가 얼마인가를 생각할 때마다 인간은 지혜의 마음을 얻게 되더란 말이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를 더할 때 묻는 말이 있습니다. “몇 살 먹었습니까?” 여기 ‘살’이라는 말은 ‘인생살이, 머슴살이, 타향살이, 더부살이, 셋방살이’ 할 때 붙이는 말인데 이 말은 ‘삶’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잘 살아야지”- 산다고 할 때 살이라는 말을 붙입니다. 그러므로 ‘살’을 나이로 세는 것은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한 살은 하나의 삶을 의미합니다. 두 살은 둘의 삶을 의미합니다. 한 살 한 살의 나이가 인생의 삶을 축적하는 단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먹는다’는 말은 몸밖에 있는 것이 몸 안으로 들어온다는 말로 나의 것으로 소유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속담에 ‘먹는 것만 남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말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삶을 내 것으로 먹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해동안 어떤 살을 먹었습니까?

과학적으로 말하면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돈 시간을 나이라고 말합니다. 나이는 해를 바꾸었다는 것이요, 365일은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돈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사계절이 한번 끝난 것입니다. 나이테가 생긴 겁니다. 한해의 끝자락 지금은 나의 나이테를 건강하게 다듬어야 할 시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모두에게 묻습니다. “몇 살이나 먹었냐?”

이 질문은 지금까지 그대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물음입니다. 앞으로 그대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신앙의 나이테, 인생의 나이테를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고 있느냐는 도전입니다. 

“몇 살 먹었냐?” 이 질문은 요셉이 국무총리로 있던 애굽의 바로 왕이 요셉의 아버지 야곱에게 물은 질문입니다. 일찍이 야곱은 쌍둥이 형제 가운데 동생으로 태어났습니다. 옛 이스라엘의 풍습은 맏아들이 상속권과 축복권을 가지게 됩니다. 야곱은 둘째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축복권도 상속권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형에게 팥죽 한 그릇을 팔아 장자의 명분을 얻었고 눈먼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쟁취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그는 집을 떠나야 했고 평생 길고 긴 세월을 나그네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여러분의 나그네길은 행복한 길이었습니까? 아니면 불행한 길이었습니까? 

천상병 시인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인생길을 소풍길에 비유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속이고 출발한 야곱의 나그네길은 아들로부터 끔찍한 속임을 당했습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 요셉이 사나운 짐승의 밥이 되어 죽었다는 거짓 소식을 듣고서 야곱은 피묻은 옷자락을 부둥켜 안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아버지를 속이는 시간은 잠시 잠깐 금방 모든 것이 들통났습니다.

그러나 자식들로부터 속임을 당하는 시간은 무려 20년을 넘게 속아왔습니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아들을 죽은 줄로만 알고 20년 세월 한을 품고 살아야 했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자신도 아들로부터 속았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해 7년 세월 고생하여 하룻밤을 자고나서 보니 신부가 바뀌었습니다. 삼촌으로부터 속았습니다. 그는 속이면서 출발했으나 사실은 평생 속으면서 살아왔습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고독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형과의 싸움을 선언한 야곱은 삼촌 라반과의 괴로운 암투로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억지로 빼앗은 축복이 평안할 수가 없었던 게지요. 딸 디나의 수모를 목격해야 했습니다. 아들들이 살인하는 모습을 보아야 했습니다. 맏아들 르우벤의 서모 간통,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죽음...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인생 말년, 죽은 줄로 알았던 요셉이 살아 저 넓은 대국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때는 마침 평생 모은 재산이 두해 흉년만에 모두다 동이난 처지라 야곱은 서둘러 70인 권속을 거느리고 애굽 땅으로 달려 갔습니다. 아들 요셉은 백발이 된 아버지를 보고서 무릎에 매달려 통곡했고 아버지 야곱도 아들 요셉을 만난 감격에 흐느껴 울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를 바로 왕 앞에 모셔 “이 분이 저의 부친이옵니다”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이때 아마 야곱의 얼굴에 산전수전을 겪어온 인생자국이 거칠게 자리잡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대뜸 바로 왕이 야곱에게 묻기를 “그대의 나이가 얼마냐”즉 몇 살이나 먹었느냐? 라고 했습니다. 그때 야곱이 대답하기를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야곱의 생애를 돌이켜 볼 때 이 얼마나 실감나는 표현입니까?


II. 질문의 의미

여러분은 몇 살 먹었습니까? 오늘 아침 여러분은 이 질문에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1. 이 물음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 인생 나이테를 묻는 질문입니다.

땀 흘려 일한 목적과 방법들이 정당했느냔 말입니다. 걸어온 인생자국마다 하나님이 한번도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언제나 내 곁에 계셔서 나를 지켜보시고 내 앞장 서 인도하시며 나를 밀어주고 계셨던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살아오셨습니까?

행여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야곱처럼 상처뿐이었고 아픔의 연속 또 연속은 아니었습니까? 이 시간 사랑의 주님께서 여러분 한분 한분을 어루만져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실패와 고난, 좌절과 이별, 가난과의 싸움 - 험악한 세월은 아니었습니까?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받았던 배신과 상처는 없습니까? 이 시간 사랑의 보자기를 펴시사 덮을 것은 덮고 감출 것은 감추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고 용서받아야 할 것들 모두 용서받고 새해-새삶의 문을 열고 싶지 않으십니까?

서로 불쌍히 여기고 서로 덮고 서로 용서하고 한해를 마치십시다. 

그것이 한 살 두 살 - 살을 잘 먹는 길입니다. 

“몇 살이나 먹었냐?” 이 질문에 야곱은 “예 130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130년 - 그의 생애를 돌이켜 볼 때 간단한 연륜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라고 다르겠습니까? 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것 뿐이요 죄로 얼룩진 흔적뿐이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이웃의 따뜻한 후의가 있었기에 오늘 내가 이 땅에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한없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살았지만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하고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이 땅에서 오래 살았다는 것은 내 어머니의 땅 조국에 빚을 많이 진 것밖에 없습니다. 부부간에 서로 오래 살았다는 것은 서로에게 빚을 많이 졌다는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지난 날 돌이켜 보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 지금까지 지나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이 얼마나 실감이 나는 찬송입니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느뇨? 나이 값 못하고 살았습니다. 은혜 갚지 못하고 살았습니다라는 고백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이 시간 지난 한해 속상한 실패, 미움, 원망, 더러운 상처, 특별히 고백하지 못한 죄악, 잘못된 습관 - 부정적인 것들은 모두 십자가 밑에 내려 놓고 가십시요. 

상한 음식 먹으면 토해내야 삽니다. 상한 살을 먹지 말고 건강한 살을 먹어야 합니다. 


2. “몇 살 먹었냐?”

오늘밤이라도 너 그만하면 많이 먹었다 그만 먹어라. 하나님이 부르시면 그만 먹고 하나님께 가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자신이 나이 즉 시간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시간은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일정한 시간을 주셨기 때문에, 수명을 주셨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간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전세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시간을 주실 때 시간의 법칙을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엿새동안 부지런히 일하고 이레되는 날은 하나님을 만나고 안식하라는 법칙입니다. 이 이레가 없는 시간은 완성된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 만나는 시간이 별도로 짤려져 있지 못한 인생은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주일 살을 잘 먹어야 일년 살을 잘 먹는다는 말입니다. 100살을 먹으면 뭐합니까? 잘못 먹은 살인 것을. 

요한계시록 13장 18절에 보면 짐승의 수, 사탄의 수, 미완성의 수가 나옵니다. 666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6은 완전수인 7에서 하나가 빠진 숫자입니다. 7이 되어야 완전 숫자가 되는데 6만 있으면 불안전 숫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수가 아닌 땅의 수로 끝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한 주간을 삽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세상에서 인정을 받습니다. 때로는 땀흘려 눈물 흘리며 피를 흘리며 살아봅니다. 그러나 이레가 없는 살,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하나님 만나는 삶이 병들면 그 날은 666으로 끝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썩은 인생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한해를 마치기전 다른 결단은 못해도 한 가지 결단은 하고 마무리하십시다. 

“주님 앞에 설때까지 성수주일 신앙은 타협하지 않고 살리라!”

- 주일예배까지 타협하고 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3. “몇 살 먹었냐?” 이 말은 당신의 나이가 영원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나이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계신 분이기 때문에 나이가 없습니다. 천국의 성도들은 나이를 묻지 않습니다. “몇 살이나 먹었느냐?” 묻고 들었다는 얘기는 우리의 생명이 아직 이 땅에 있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이 생명 끝나는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늙음의 무상함을 깨닫고 이런 시를 노래했습니다.

「내 청춘 뉘 주고 뉘 백발 가져 온고 
  백발이 오고 가는 걸 알았던들 막았을 것을
  알고도 못 막는 길 이 길이니 그를 서러워하노라」

「한 손에 가시 쥐고 또 한 손에 막대잡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막으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 길로 오더라」

이 땅에서는 아무 것도 영원할 수 없습니다. 지속되지 않습니다. 지금 건강하다고 하나 그 건강도 지속되지 않습니다. 지금 청춘이라고 하나 청춘도 지속되지 않습니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하나 소유도 영원하지 못합니다. 생명은 반드시 끝나는 날이 있습니다. 겸손하게 살 줄 알아야 합니다. 내 것이 없습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며 나는 몇 살이나 먹었지?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이렇게 많이 살았나? 많이도 먹었구나! 

어리고 젊은 시절 밥이 모자라던 시절에는 학교 길에서 너무나도 배가 고파 시냇가에 가방을 내려놓고 날고기를 잡아먹은 적이 있습니다. 청년시절에는 배가 고파 기숙사에 누룽지를 긁어 먹은 적도 있습니다. 그때는 돌멩이도 씹기만 하면 소화가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과식이 두려워 집니다.

학창시절 신체검사 때마다 안 보이는 글자가 없어 개 눈이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내 눈 위에 안경이 걸쳐 있습니다. 며칠 전에 약병 하나를 들고 작은 글자가 보이지 않아서 짜증을 부리다가 안경을 벗고 보니 그 글자가 보였습니다. 그토록 설탕이 먹고 싶고 단 것이 먹고 싶어 호박 꽃을 따서 빨고 다녔습니다. 깨 꽃을 빨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벌써 단 것이 무서워집니다.

여러분이라고 다르겠으며 어찌 인생 간증이 없겠습니까? 이것이 인생입니다. 

미국의 에담스 대통령이 노년에 지팡이를 짚고 언덕을 오르다가 숨이차서 지팡이를 허리에 대고 나뭇가지에 몸을 기댄체 쉬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청년들이 전직 대통령을 알아보고 “폐하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때 에담스 대통령이 청년에게 들려준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이보게 젊은이, 내가 안녕치를 못하네. 내 장막집이 무너지려고 해서 이사갈 준비를 한다네” “아니 폐하, 폐하의 집이 무너져 이사를 가다니요?” “자네가 보다시피 내 집은 낡아서 지붕이 다 벗겨져 버렸고, 창은 낡아서 다 찢어지고, 기둥은 흔들거려 언덕을 오를 수 없고, 들보는 굽고,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라네.” 

당황하는 젊은이들에게 다시 얘기를 합니다. “이보게 내 지붕을 보게나. 머리카락이 몇 개나 남았나. 내 눈이 창문인데 앞이 보이지 않아. 안경을 써도 이제는 더듬거리며 좁은 길을 가야 한다네. 내 인생의 기둥은 두 다리일텐데 이것이 흔들거려 내가 길을 걸을 수가 없어. 들보는 내 허리인데 쇠하여 구부러졌어. 이 장막 집이 무너지면 저 세상으로 이사가야 할 것 아닌가?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네.”

여러분 생명의 날들을 헤아려 볼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건강을 잃고 건강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것도 귀하고 늙은 후 청춘의 선물됨을 감사하는 일도 귀중하지만 주어진 모든 것이 선물인 줄 알고 감사하며 사는 일이 참으로 귀한 인생입니다.

우리의 인생 두 번 주어지지 않습니다. 인생은 연습이 없습니다. 인생은 시행착오가 없습니다. 한번 주어진 인생, 한번 걸어가면 그것으로 끝나는게 인생입니다. 젊은이들이여, 그 좋은 시절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잘 준비하고 잘 살아야 합니다. 


III. 영적인 나이가 얼마냐?

“몇 살 먹었냐?” 여기엔 육체의 나이 말고 또 다른 나이 영적인 나이를 묻고 있습니다. 교회 다닌지 얼마가 되었습니까? 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받은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묻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직책이 무엇입니까? 묻는 것도 아닙니다. 영적인 성숙도를 묻는 것입니다.

인생은 오랫동안 살았는데 나이는 들었는데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첫째, 교회 안에서도 아직 탄생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거듭나셨습니까? 영생을 얻었습니까?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하면 오늘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신다면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으십니까? 이제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세상살아갈 때 내 욕망, 내 욕심, 자기 이기심으로 가득채웠던 마음의 중심자리에 내려놓고 거기에 만왕의 왕 되신 예수를 내 주님으로 모시십시요. 개도 제 주인을 아는데 하물며 인생의 주인을 모른데서야 인생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온 인류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마음에 모시십시요.

둘째, 영적인 어린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순진하긴 합니다만 모든 일이 자기 중심적입니다. 우주의 중심이 자기가 되어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만 생각합니다. 모든 판단의 중심에 자기가 있습니다. 자기 밖에 모릅니다. 자기고집만 내세웁니다. 이제는 좀 어린아이 티를 벗어버리십시다. 하나님이 중심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면 하기 싫어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는 것입니다. 

셋째, 영적인 청년들이 있습니다. 

힘있게 일을 합니다만 유혹이 심합니다. 노련미가 없어 실수를 곧 잘 합니다. 
정욕적이지요. 언제까지 실수와 유혹을 정당화하시렵니까? 
몇 살이나 먹었는데요? 술, 담배, 포르노, 잘못된 습관 끊으십시요. 새해가 오기전에. 

네 번째, 영적인 장년들, 부모의 입장에 도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가치관이 타인지향적입니다. 자기희생적입니다. 누구나 포용할 줄 압니다. 교회안에 이처럼 아버지 상, 어머니 상을 가진 훌륭한 부모들이 있어야 교회가 건강해 집니다. 

아직도 어린아이티를 벗지 못하고 이기적 자기중심적 삶을 살고 있을 때,
아직도 넘어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고 실수를 반복하고 있을 때,
교회의 아비와 어미, 리더로서 성숙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을 때,
아직도 부정적 생각과 언어, 상처와 섭섭증에 시달리고 있을 때,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너 - 몇 살이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바로 왕은 야곱에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시간 우리에게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지나간 2010년 한해동안 여러분이 무엇을 했느냐? 하나님은 다 덮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2011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IV.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너 몇 살이냐?” 이 질문의 결국은 앞으로 네가 어떻게 살 것이냐를 묻는 질문입니다. 어떤 시간의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냐를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스티븐 코비 박사가 성공하는 사람들과 실패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조사해 보았더니 실패하는 사람들은 대게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 그러면서도 긴급한 일들에 매여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TV보는 시간이 너무 깁니다. 전화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요. 한시간 반동안 전화하고 난 다음에 끊으면서 “얘 안되겠다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라고 합니다. 컴퓨터 게임에 너무 매달립니다. 쓸데없는 참견에 너무 시간을 보냅니다. 해결점 없는 고민과 걱정에 사로 잡힙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생을 실패하며 살아가더라는 것입니다.

반면 성공하는 사람들은 긴급한 일이 아니라 가치있고 중요한 일들에 관심과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건강이나 사건이나 예방에 관심을 갖습니다. 지도력을 개발합니다. 주변의 사람들, 윗사람, 아랫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새로운 기회를 발굴합니다. 자신의 인격과 신앙향상을 위해 최대의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긴급성이라는 패러다임에 따라 행동하느냐? 아니면 중요성이라는 패러다임에 따라 행동하느냐? 여하에 따라 당신의 인생의 결과 - 즉 열매들을 가름하게 될 것입니다.

• 우리가 만약 하루에 15분의 짜투리 시간을 정확하게 활용할 수 있다면 1년에 책 한권을 쓸 수 있습니다. 

• 1년에 악기 하나를 배울 수 있습니다. 

• 1년에 중급정도의 외국어 회화 실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 40년간 하루에 15분을 낸다면 1000권의 책을 읽었을 것입니다. 

• 대학을 5번 다녔을 것입니다. 

• 하물며 하루 1시간 중요한 일들을 위해 시간을 낸다면 여러분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시간은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시간이 돈이라고 하지만 시간은 생명이었습니다. 시간이 피와 같은 것입니다.

• 1년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암선고를 받고 1년후 죽을 여인에게 물어 보십시오. 

• 1달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1달 먼저 미숙아를 낳은 어머니에게 물어 보십시오.

• 1주일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주간지 편집자에게 물어 보십시오.

• 하루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막노동자에게 물어 보십시오.

• 1분의 소중함을 알려면 1분 차이로 집에 가는 막차를 놓친 사람에게 물어 보십시오.

• 1초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1초 때문에 교통사고를 면할 수 있었던 사람에게 물어 보십시오.

• 0.01초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0.01초 차이로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단거리 육상선수에게 물어 보십시오.

“몇 살이나 먹었느냐?” 이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가까운 사람들을 속이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상처 입으며 살아왔던 야곱에게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썩을 것들만을 위해 살지말고 영원한 가치관, 하늘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 줄 알아야 한단 말이지요.

이 땅의 것들이란 밥을 먹으면 다시 배설물로 흘러가듯이 썩고 없어질 것들 뿐입니다. 당신의 그 먹고 있는 살이 예수그리스도와 연결되고 복음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지금 당신은 살을 잘못 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진리와 정의를 위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산 것은 모두 하늘에 쌓입니다.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여러분의 보물이 무엇입니까? 시간입니까? 몸입니까? 재물입니까? 재능입니까? 하늘 커튼을 활짝 열고 내가 쌓아놓은 하늘 보물이 얼마나 되는가 점검해 보십시오.

세상에서는 성공을 했는데 하나님의 집에 들어와 보니 내 자리가 없습니까? 
그것이 먼 훗날 천국 생활의 영원한 모습이 되고 마는 것을.
새해엔 세상 살만 먹지 말고 교회 살을 많이 먹으십시요.

지난 1년 헐떡거리며 달려온 열매가 무엇입니까? 부지런히 달려온 것 같은데 주머니를 뒤져보니 남은 열매가 없습니다. 급한 것들 때문에 소중한 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현실적인 것들 때문에 영원한 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땅의 것들 얻느라 하늘 상급을 잃지 마십시오. 성공 때문에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이웃을 버리지 마십시오. 세상 때문에 교회와 천국을 상실하여 살지 마십시오. 가치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살아가야 좋은 살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지나간 시간 돌아보니 내 재주로 산 것만 같았습니다. 내가 땀흘리면 잘 살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오늘 내가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거둬 가시니 세워지고 쌓아진 것들이 모두 무너져 버리는 것을.

♪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 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없네
   오 신실 하신 주 오 신실 하신 주 

그분은 갚지 못하고 살아왔던 우리 인생 오늘까지 지켜주셨고 내일도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동행하시며 여러분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이분의 은혜 하나로 우리가 살아왔습니다.

몇 살이나 먹었느냐?
살을 잘 먹어야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만족하고 배부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 잘못 먹은 것들, 인생여정에서 쌓인 상처와 분노 그리고 부정적 생각을 토해 내고 가십시다. 
- 먹어야 할 것 먹지 못하고 살았으면 새해엔 은혜와 말씀 그리고 행복한 비전을 먹고 사십시다. 
- 나이값, 직분값, 은혜의 값을 잘하고 사십시다. 여러분 몇 살 먹었습니까?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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