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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전진하는 교회Pressing on toward the Goal (빌 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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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신묘년(辛卯年) 새해 첫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난날의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새로운 해를 희망차게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살아 있는 생물의 특징은 움직이는 것이고 살아 있는 교회의 특색은 전진하는 것입니다. 죽은 신앙은 움직이지 않고 죽은 교회는 전진할 줄을 모릅니다. 생명이 약동하는 한 전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만물의 이치입니다. 

우리교회는 그동안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5대 목적의 모든 방향에서 전진해 왔고, 또 전진해 갈 것입니다. 예배, 전도, 봉사, 양육, 친교의 각 부문에서 끊임없는 성장과 발전을 이루어나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 우리 모두의 헌신적인 참여가 요청됩니다. 

우리교회는 ‘오직예수 7대신앙’ 에서 지속적인 전진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오직예수, 오직말씀, 오직성령, 오직교회, 오직예배, 오직성결, 오직천국! 사나 죽으나 이 믿음으로 달려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절기에 의미를 두고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일찍이 구약 이스라엘에게서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연초에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켰고, 첫열매를 드리는 봄철의 초실절과 가을 추수를 기념하는 수장절을 지켜왔습니다.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결심과 결단을 다지며 나아가는 것은 이와 같은 성경 말씀에 부합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자신을 말하면서 전진하는 교회의 조건, 전진하는 사람이 명심해야 할 요소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는 본문의 앞 단락(1-11절)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육체를 신뢰하는 율법주의자들에 대하여 경계하였고, 뒷 부분(3:17-4:1)에서는 반(反)도덕주의자들에 대한 경계를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간증 형식을 빌어 ‘성도들은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야 할 존재임’ 을 강조합니다. 사도는 반도덕주의자들에 대한 경계에 앞서 이들을 염두에 두고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정진하는’ 자신의 신앙 자세를 밝힌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전진하는 교회’ 로 잡아보았습니다. 새해 우리교회는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을 통하여 전진하는 교회의 요소들을 살펴보고 각자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신앙의 경주자의 자세를 가다듬는 계기로 삼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가 제시하는 전진하는 교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1.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림 (= 과거를 잊어버림) 

13절=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전진하는 교회가 되려면 지나간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전진의 조건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앞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면 그는 앞으로 가지 못합니다. 
본절의 ‘뒤에 있는 것(타 오피소)’ 은 바울이 행했던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포괄하는 표현입니다. 과거에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 했던 것과 교회를 핍박했던 것 등과 같은 잘못한 일은 물론이고, 사도로서의 소명을 받은 이후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파 사명을 감당해 온 잘한 일까지 포함한 과거의 모든 일들을 말합니다. 그는 전진하기 위하여 이 모든 일들을 잊어버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전진하는 교회, 전진하는 성도는 먼저 지나온 과거를 잊어버려야 합니다. 여기 ‘잊어버리고’ 는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다’, ‘무시하다’ 란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과거의 기억이 자신의 관심을 빼앗아 진보를 방해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자는 진전이 없습니다. 경주에 나온 자가 집 걱정 자식 걱정을 해서는 합당치 않습니다. 경주자가 자꾸 뒤를 돌아보면 속도가 늦어지고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됩니다. 따라서 경주자는 뒤에 있는 것을 아예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만을 보아야 합니다. 

롯의 처를 보십시오. 멸망의 도성을 빠져나오던 롯의 일가족 중 그녀는 뒤에 남겨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창 19장). 그뿐입니까? 출애굽 1세대들은 광야에서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애굽을 돌아보다가 결국 광야에서 진멸되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눅 9:62) 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의 바울 사도는 뒤에 있는 것을 적극적인 자세로 잊어버린다고 말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의 길에 있는 성도들에게 잊어야 할 과거의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우리의 잘한 것들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성공 경험을 자랑만 하면 거기에 안주(安住)하기 쉽고 진전이 없습니다. 성경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잘 하는 것은 모두 주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또 무엇을 잊어야 합니까? 지난날의 잘못한 것들도 잊어버려야 할 대상입니다. 잘못한 것에 집착하면 낙심하기 쉽고 전진할 수 없게 됩니다. 만일 바울이 자신의 과거 폭행자의 모습을 잊지 못했다면 그는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 몸의 구조, 특히 두 눈의 위치를 보십시오. 사람의 눈은 두 눈 모두 앞을 향해 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앞에, 또 하나는 뒤로나 옆을 향해 붙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복잡한 도로에서 운전하기에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 몸은 전진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과거에 살지 않고 미래에 사는 것, 이것이 전진의 조건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과거를 잊을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좋은 일은 감사함으로 주님께 맡기고, 잘못한 일은 주님 앞에 고백함으로 맡기시기 바랍니다. 과거의 모든 부족과 잘못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전진하기를 원하십니까? 과거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시다. 과거는 우리의 시간이 아닙니다. 지나간 일을 잊어버립시다. 이것이 전진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입니다. 

2. 아직 온전히 이루지 못했음을 고백함 (= 현재의 부족 통감)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전진하는 교회의 두 번째 조건은 현재의 부족을 겸손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본절에서 바울 사도는 현재 아직도 부족한 자신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10, 11절에서 말한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연합과 부활’ 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얻었다 함도 아니요’ 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완전히 본받는 것을 아직 얻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또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는 말은 영생 부활에 이르는 것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즉 사도는 자신의 구원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전진 동력은 그가 현재의 부족을 깨닫는 것에서 더욱 힘을 받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바울의 고백을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12절)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 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났던 일을 시사합니다. 그는 그날 주님을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통해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신앙의 체험입니다. 

그런데 그의 회심은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그의 고백은 구원을 얻게 되었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정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그토록 원하던 완전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믿음의 경주, 즉 영적 성장을 위하여 계속 달음질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빌립보 교회에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더 이상의 영적 진보를 위한 싸움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고, 바울은 이들 반도덕주의자들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부족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지만 아직 완전한 구원에 이른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 구원의 도상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엡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들’ 입니다. 완성된 자가 아니라 계속하여 지어져 가야 하는 자들입니다. 전진하기 위하여는 지금 우리의 부족을 느끼고 이를 고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본문에서 부족하다고 고백하는 바울은 어떤 분입니까? 노년의 완숙한 사도이었습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름받은 후 오랜 세월을 준비하여 1차 여행, 2차 여행, 3차 여행을 다 끝내고 예루살렘에 가서 체포되어 가이사랴 옥에서 수년간 갇혀 있다가 로마로 호송되어 로마의 옥에 갇혀 있는 중입니다. 
수십년간 목숨을 건 전도자의 삶은 살아온 사도입니다. 그런 사람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고 고백한다면 누가 감히 하나님 앞에 온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이 전진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만일 우리가 다 이루었다면 전진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전진하는 교회는 항상 자신의 부족을 알고 끝없이 구원을 추구하는 공동체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는 고백을 하지 아니할 수 없는 줄로 생각합니다. 중세 기독교 역사에 완전주의(完全主義)라는 것이 있어서 예수님 믿으면 완전한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불교에서도 도통을 하면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과연 우리의 불완전한 육체로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요? 

이와는 반대로, 어거스틴이나 칼빈 선생은 성경에 근거하여 사람의 전적 타락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는데, 일부는 이루어지고 일부는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지나간 58년의 역사를 회고해 보면 감사할 조건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부족한 면도 많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우리교회에서 지난 13년의 목회 기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부음 받은 축복의 해들이었습니다. 동시에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이렇게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현재의 부족을 통감하면서 앞을 향하여 전진하는 자세로 서야 할 것입니다. 

3.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감 (= 미래의 푯대를 향한 전진) 

13-14절=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전진하는 교회는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달려가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달려가는 곳은 미래의 푯대가 있는 곳입니다. 과거를 잊어버리고 현재의 부족을 통감하는 교회는 이제 미래의 푯대를 향해 달려갈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앞에 있는 것’ 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여기 ‘앞에 있는 것’ 은 복수 명사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14절에 나오는 ‘푯대’ 가 단수형인 것과 대조를 이룹니다. ‘푯대’ 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면류관(sing.)을 말합니다. 이것은 성도가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천국의 소망입니다. 
반면에 ‘앞에 있는 것’ 은 성도가 이 면류관을 향하여 나아가는 중에 이루어야 할 많은 것들(pl.)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보다 성화된 삶을 사는 것, 이웃을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일, 복음을 널리 전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 등이 여기에 포함될 것입니다. 
그리고 ‘잡으려고(에펙테이노메노스)’ 는 ‘~하려고 손을 뻗다’ 라는 의미인데, 계속하여 몸을 앞으로 굽힌 채 무언가를 움켜잡으려고 손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동작을 매우 현실감 있게 잘 나타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항상 달려가는 도중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교회 안에 들어온 반도덕주의자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았다는 한 가지 사실에만 안주하며 천국 상급에 관하여는 관심도 없이 방종한 삶을 살았지만, 사도는 뚜렷한 푯대를 정하고 쉬임없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성도는 비록 현재 구원을 받은 존재라 할지라도 미래에 이루어질 최종적인 구원의 상급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생명의 면류관’을 향하여 전진해야 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미래의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것, 이것이 전진하는 성도의 셋째 요소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푯대는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통하여 가나안 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당시 그 땅은 전부 이방의 일곱 족속이 점령해 있었고, 그에 비해 아브라함 가족은 몇 사람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원대한 푯대를 향하여 단을 쌓아갔습니다. 
바울 사도의 푯대는 또 무엇이었습니까? 그의 마음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던 예수님, 그분이 원하신 ‘이방인의 사도직’ 에의 부르심에 의해 온전히 지배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십자가만을 알기로 하고(고전 2:2) 십자가 만을 자랑하기로 하고(갈 6:14) 십자가만을 전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뜻을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것을 자신의 푯대로 삼아 전진하는 자세로 오늘 본문에 있는 것처럼 평생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새해 벽두에 여러분의 푯대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몸을 앞으로 굽혀 잡으려고 달려나가는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푯대를 향하여 맹렬하게 전진할 준비는 되셨습니까? 

저는 일찍부터 우리 교회의 목표를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교회’ 에 두어야 되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것은 오직예수 신앙의 자연적인 귀결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음부의 권세를 이기며 천국 열쇠를 소유한 교회가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 목표에 가장 근접한 지상 교회는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입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는 ‘사도행전에서 보여주신 바로 그 교회’ 를 우리의 푯대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2년 전 대예배 설교 시간을 통하여 세 번에 걸쳐 ‘사도행전적 교회’ 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보여주신 바로 그 교회’ 는 성령으로 충만한 공동체(2장), 예수님의 삶을 사는 공동체(2장),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공동체(3장),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4장), 거룩과 정직을 추구하는 공동체(5장), 주의 종의 동역자를 세우는 공동체(6장)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보여주신 바로 그 교회’ 는 순교하는 공동체(7장), 이방인을 품는 공동체(10장), 땅끝까지 선교하는 공동체(13-28장)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푯대를 향하여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항해하는 서현 방주의 한 식구들입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는 감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지난 2주간의 송구영신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은혜가 적지 않습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 교회는 계속하여 전진하는 교회여야 하겠습니다. 서현의 모든 성도님들은 그리스도 재림의 날까지 쉬지 않고 전진하는 주의 군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과거의 일들은 잊어버립시다. 현재의 우리가 부족한 존재임을 겸손히 인정합시다. 그리고 미래의 푯대를 향해 달려나갑시다. 
이를 위해 금년은 우리 교회를 기쁨이 넘치는 곳으로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예배의 감격, 봉사의 감격, 구령의 감격이 교회 안에 충만해지는 모습을 꿈꾸어 봅시다. 
우리 모두 사도 바울처럼 결승 테이프를 향하여 열심히 달음질하는 경주자로 나섭시다. 온 교회가 함께 푯대를 향하여 큰 소리로 찬양하며 달려나가는 공동체--우리의 사랑하는 서현교회입니다. 사랑합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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