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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거울과 경계 (고전 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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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과 경계 (고전 10:1-13)


지금은 우리가 한 해의 출발선상에 서서 마음의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할 시점입니다. 우리의 각오가 얼마나 새롭고 굳건한가에 따라서 올 한해의 성패가 좌우될 것입니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처음에 의도했던 것과 너무나 동떨어진 결과가 나왔을 때 사용합니다.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작은 거창하지만 흐지부지 끝내고 마는 경우를 일컫는 말입니다. 또한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어먹은 마음이 사흘을 못 간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기필코 계획대로 실행하리라고 다짐하지만, 지나고 보면 올해도 작년에 비해서 달라진 것이 없었다고 한숨지을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는 까닭은 실현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운 목표를 세웠거나, 아니면 계획만 세웠지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자기의 능력과 분수에 맞는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시편 131편을 지은 성도는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1절)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적절한 계획을 세웠으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나태하고 게을러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여서,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 합당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열심을 품고 부지런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금년에는 우리 모두가 신앙의 성숙은 물론이고 가정과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발전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우리는 성도들의 신앙과 생활 전반에 걸쳐서 원칙과 기준이 되는 성경을 통해서 필요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은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를 상세하게 보여줍니다. 창세기는 선민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으로부터 약속의 아들 이삭의 출생과 생애, 그리고 야곱이 형 에서를 따돌리고 장자권을 계승한 것과 그의 열두 아들을 통해서 열두 지파가 형성된 과정을 말해 줍니다. 창세기는 아브라함을 택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의 후손들을 번성케 하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출애굽기는 요셉의 초청을 받아 애굽으로 내려갔던 70인의 야곱의 가족이 430년 만에 큰 민족이 되었고, 모세의 지도 아래 이루어진 출애굽 사건과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신정국가의 기틀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민수기는 이스라엘 자손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 두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서 여호수아와 갈렙의 신앙적인 보고를 배척하고 열 정탐꾼의 불신앙적인 보고를 수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게 된 역사적인 사실을 말해 줍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고린도전서 10장에는 출애굽기와 민수기에 기록된 사건들을 예로 들어서 설명합니다. 1절과 2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라고 했는데, 여기 언급한 “구름”은 구름기둥을 가리키며, 바다 가운데로 지난 것은 홍해가 갈라져 바다 사이에 난 길로 이스라엘 자손이 무사히 건넌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자손이 구름기둥 아래 행진하고 홍해의 물 사이를 건넌 것을 가리켜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표시와 같습니다. 로마서 6장에 보면, 세례를 가리켜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것이라, 또는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는 우리의 옛 사람을 물속에 수장하는 의식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죽어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아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자손은 구름기둥과 홍해를 통과함으로써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옛 신분을 벗어버리고 자유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본문에 언급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모형론에 의해 해석하면, 애굽은 죄악 세상을 가리키고,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자손은 죄의 종살이하는 인생들을 가리킵니다. 출애굽은 죄인들이 구속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가리키며, 광야생활은 영원한 가나안인 천국을 향하여 가는 성도들의 신앙노정을 가리킵니다. 3절에 언급한 “신령한 식물”은 만나를 가리키며, “신령한 음료”는 반석에서 터져 나온 생수를 말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반석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볼 때 영생하는 생명수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자손과 동행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40년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땅에서 나는 곡식이나 채소를 먹고 산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늘에서 내린 신령한 식물인 만나를 먹고, 반석에서 나온 생수를 마시고 살았습니다. 인류 역사상 이런 식으로 생존한 민족은 이스라엘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만큼 선민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대우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1절로부터 4절까지를 보면, 매번 “다” 자가 나옵니다. “다”는 “모두”를 의미합니다. 선민의 조상들은 다 구름 아래와 바다 가운데로 지났습니다. 그들은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다 신령한 식물을 먹었고, 다 신령한 음료를 마셨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배려에서 제외되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는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전에는  죄악 세상에서 마귀의 종살이 하던 자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독생자의 피로써 우리를 구속하셔서 자기의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는 물세례를 받음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교회 앞에서 시인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곧 신령한 식물과 신령한 음료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다 같이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원과 관련해서 볼 때, 성도들은 누가 더 받고 누가 덜 받은 것이 아니라 다 같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제 성도 각자가 할 일은 자기가 받은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은 것이지, 달리 받은 구원을 이루어 나가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빌립보서 2장 12절에 이르기를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나 아직 구원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한번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구원이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성도들은 포도나무의 가지로서 항상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진액을 공급받아 생존하며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라도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면 그 시로 죽게 되듯이, 우리도 주님을 떠나면 영적 생명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 받은 성도로서 천국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변함없는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3장 12절 이하에 이 같이 권면합니다.

“12)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13)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14)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사도의 이 권면은 믿는 자들 가운데서도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갈 자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6장 4절 이하에 이 같이 권면합니다.

“4)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5)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6)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7)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우리는 신약 성경을 통해서 이 같은 권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의 다수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하였다고 증언합니다. 그들은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다 불기둥 구름기둥의 보호를 받았고, 다 홍해를 육지처럼 건넜으며, 다 기적의 만나와 기적의 물을 먹고 마셨으며, 다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다수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6절에 보니 ‘저희가 악을 즐겨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7절 이하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7)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9)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본문에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 앞에서 저지른 악행이 무엇이었는지 하나씩 말해 줍니다. 

첫째는, 우상 숭배의 악행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산 아래에 머물러 있을 때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러 산위에 올라가서 40일이 지나도록 내려오지 않자, 백성들이 아론을 강요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게 하고, 그 우상 앞에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먹고 마시고 일어나 뛰놀았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모든 백성을 진멸하시려는 것을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간절히 호소해서 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 자손에게 우상 숭배를 금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장에 이르시기를 “3)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죄가 우상숭배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그리고 우상 숭배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우상에게 돌리는 것이므로 무서운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도 우리 사회에는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피조물을 신으로 섬깁니다. 특히, 현대인들은 황금을 숭배합니다. 다시 말해서, 돈을 사랑하고 그 앞에 굴복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르기를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했습니다(골 3:5).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우상 숭배를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한 것과 같이, 오늘날 신자들은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섬기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을 섬길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돈을 사랑하고 탐한다면 그것은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 이르기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돈을 사랑하게 되면 믿음에서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는 돈이 우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고 했습니다(히 13:5).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행한 두번째 악은 음행이었습니다. 

8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이 사건은 민수기 25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모압 왕 발락이 이방선지 발람이 낸 꾀를 이용해서 이스라엘 자손을 범죄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을 때였습니다. 모압인들이 그들의 신들을 위한 축제를 열고 먹을 것과 술을 준비하고는 이스라엘 자손을 초대했습니다. 이에 많은 백성이 우상의 축제에 참예하여 우상의 제물을 먹고 저들의 신들에게 절하고, 모압 여자들과 더불어 행음했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습니다. 이 우상숭배와 행음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염병을 보내시니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십계명의 일곱째 계명이 “간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8절에 이르기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자기의 몸이 거룩하신 성령의 전이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행음은 성전을 더럽히는 죄가 됩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3장 17절에 이르기를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성적인 타락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예술 또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온갖 더러운 행동이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영화, 연속극, 연극, 소설 등을 통해서 성적인 퇴폐를 부추기고 간음을 조장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서 음란물들을 무제한적으로 대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는 이 시대의 타락한 풍조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하고 성결한 생활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행한 세번째 악은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었습니다. 

9절에 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이 사건은, 민수기 21장에 나오는데, 한번은 이스라엘 자손이 홍해 길을 따라서 에돔 땅을 둘러 가게 되었는데, 길이 험하므로 백성이 마음이 상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했습니다. “어쩌자고 우리를 애굽에서 이 광야로 끌고 나왔소? 도대체 이곳에서 죽일 작정이요? 여기는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지 않소? 만나를 먹는 것도 이젠 진절머리가 났소.” 

백성들의 이 같은 악한 언행은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의심한 것이므로 사도는 백성이 하나님을 시험했다고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물게 하시니 죽은 자가 많았습니다. 그제야 백성들이 모세를 찾아와서 말하기를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보고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시련을 만나 힘드십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소망 중에 인내로써 시험을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이 닥치는 것일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형편에 처할 때일수록 입에 파수꾼을 세우고 불신앙의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행한 네번째 악은 원망한 것이었습니다. 

10절에 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사건은 민수기 16장에 나옵니다. 레위 지파 고핫의 자손인 고라와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백성 중에서 유명한 족장 250인과 작당하고서 모세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말하기를 “당신들은 해도 너무하는 것 같소.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당신들은 어찌하여 백성들 위에 군림하려는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세운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는 것은 곧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그들의 가족을 다 멸하셨습니다. 그들이 서 있던 곳의 땅이 갈라져서 함몰되어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동조했던 250인은 향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왔다가 향로에서 불이 나와 타죽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꾼들을 비방하고 대적하는 것은 곧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죄가 됨을 알고 그 같은 악을 행치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직분자들을 비방하고 대항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그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들의 인도에 순복해야 합니다. 직분자들을 대적하는 것은 곧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며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므로 그래서는 절대로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이처럼 이스라엘 자손에 대한 악행들을 성경에 기록해 두신 까닭이 무엇일까요? 본문 11절에 이르기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거울은 우리 모습을 비춰보는 도구입니다. 거울을 보면서 우리는 자기 얼굴에 무엇이 묻었는지, 머리는 단정히 빗었는지, 옷을 잘 입었는지 등등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의 실패와 악행과 그로 인해 저들이 받은 하나님의 징벌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신앙상태를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알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마치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보고서도 곧장 돌아서서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아무 유익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성공과 실패에 대하여 읽고서 잘한 점은 본받고 잘못한 점은 멀리한다면, 거울을 보고서 제 모습을 바르게 하는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성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범죄와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징벌에 대한 기록은 우리에게 경계 곧 경고를 줍니다. 저들이 우상을 숭배하다가 심판을 받았으니 우리는 우상숭배를 하지 말아야겠구나. 저들이 간음하다가 심판을 받았으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하지 말아야겠구나, 저들이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멸망했으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아야겠구나, 저들이 하나님의 종들을 향해 원망하고 대적하다가 멸망했으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하지 말아야 겠구나. 깨닫게 되므로 이스라엘 자손의 범죄와 징벌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우리에게 경고가 되는 것입니다. 

경계를 순순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지혜롭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그러나 경계를 무시하고 제 생각대로 행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으로서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고 맙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그 마음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12절에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한 것입니다.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먹는 것, 마실 것, 추위와 더위, 길의 험난함으로 인해 시험을 당하였고, 우상숭배와 우상의 제물과 음행의 유혹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시험과 유혹에 직면했지만 다 시험에 들고 유혹에 넘어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순종했던 사람들은 그 모든 시험을 이기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살펴본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거울과 경계”로 삼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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