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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민 6: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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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민 6:22-27)


새해 인사를 나누고 함께 말씀을 나눕시다. 옆에 계신 분들과 서로 축복하며 함께 인사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십시오’ 우리 그림을 하나 보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그림이 무엇처럼 보이십니까? 술잔으로 보이십니까? 사람의 얼굴로 보이십니까? 어떤 분은 술잔으로 보이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또는 사람의 얼굴이 마주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요. 술잔으로 보인다고 해서 믿음이 없은 사람이고, 사람의 얼굴로 보인다고 해서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술잔으로 보이든, 사람의 얼굴로 보이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림을 보는 순간 어떤 것이 내 눈에 먼저 들어 왔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 보일 뿐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마주하고 있는 얼굴로 본 사람이 동시에 술잔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술잔으로 본 사람이 동시에 얼굴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이나 지각하는 감각에 따라 술잔, 혹은 얼굴이 먼저 보일 수는 있어도 두 가지를 한꺼번에 지각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귀가 두 개가 있어도 오른쪽과 왼쪽에 들리는 내용을 동시에 들으며 말할 수가 없습니다. 왼쪽 귀에 들리는 내용에 주의를 기울이면 오른쪽 귀에 들리는 내용을 지각할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외국말인지, 여자의 목소리인지 남자의 목소리인지 정도만을 인식할 뿐이지 내용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처음에 그림을 본 것처럼 어느 쪽에 집중하느냐에 다른 하나의 그림은 보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마음도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느냐,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다른 한 부분은 보이지 않습니다. 긍정은 기쁨과 감사를 낳고, 부정은 불평과 원망을 낳습니다. 2011년 새해를 맞이해 첫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긍정적인 믿음의 자세를 가짐으로 행복하고 희망찬 새해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제사장을 세우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축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축복하는 내용도 매우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24-26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이 선포한 복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이렇게 축복하라’는 내용은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24절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지킨다는 뜻은 ‘울타리를 쳐서 철저하게 지킨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는 시기입니다. 온갖 위협과 고난 중에서 이스라엘을 지키신다는 말씀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25절에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험한 광야를 지날 때 그들만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얼굴을 비추시고 그들에게 때에 따라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은혜는 값없이 주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무 조건없이 어린 아기에게 필요에 따라 주며 돌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평강 주시기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26절에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갈 때 미래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그곳이 어떤 곳인지 불안해하고 초조해 할 때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평강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의 축복을 통해서 약속하신 ‘지켜주심’ ‘은혜주심’ ‘평강주심’의 축복 내용도 중요하지만 이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호와는 00을 원하신다’는 ‘원하시며, 원하노라’입니다. 보호, 은혜, 평강은 우리들이 받기 원하는 축복의 내용이지만 본문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보호, 은혜, 평강’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원하노라’은 시제를 보면 미완료 동사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고, 지키고 계시고, 앞으로도 지켜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축복은 우리가 받고자 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고기 원하시는 것이라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그렇게 축복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축복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수기 구조를 중심으로 보면 하나님의 축복은 무조건의 축복이 아닙니다. 그 축복 전에 한 가지 요구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5장의 내용입니다. 거룩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하라는 것입니다. 죄에서 떠나 이웃과 바른 관계를 맺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정을 거룩하게 만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진 사람들은 구별되어진 사람답게 거룩하게 본을 보이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거룩하게 구별되어진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은 축복하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독교 신앙을 복의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그들에게 가장 먼저 주신 것이 복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은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축복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되면 기복신앙, 기복종교가 됩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말하는 복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기복신앙은 복 자체가 신앙의 목적입니다. ‘기복신앙’은 ‘복을 비는 신앙’입니다. 

복이 신앙의 중심이고 목적입니다. 기독교에서도 복을 강조하지만 기독교 신앙의 목적은 복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입니다. 하나님이 신앙의 대상이고 목적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은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 세워지는 복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목적은 하나님이고 수단이 복입니다. 복은 하나님을 섬기는 수단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복은 진정한 복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을 위해 복이라는 수단을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다니엘이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습니다. 

시편 1편에서 이러한 기독교의 복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시편 1편 1,2절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증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복 있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세상이 말하는 물질과 사회적인 성공을 기준으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가지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시편 128편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1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걷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는 사람이 복되다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그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즉 우선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그 외의 모든 것을 다 허락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2011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정으로 축복된 사람을 여러분에게 한 사람 소개합니다. 한 해 동안 살면서 이 사람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롤 모델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니 평생의 롤 모델이 되기 바랍니다. 초대교회에서 활동한 바나바라는 사람입니다. 바나바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도행전에 조금 나옵니다. 그러나 그가 끼친 믿음의 영향력은 초대교회는 물론이고 하나님의 섬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단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바나바에 대해 말하고 있는 곳을 성경에서 두 곳을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4장 32절에서 37절의 말씀입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팔레스틴 지역에 심한 기근이 들어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울 때 믿음의 사람들이 밭과 집을 팔아 사도들에게 가지고 나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귀한 일들이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나바였습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에서 그는 헌신적인 모습으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의 것을 드리며 헌신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집과 밭에 집중하는 모습의 신앙입니다. 바나바는 집과 밭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목적이고 집과 밭은 수단일 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신앙의 본질이고 기독교의 복입니다. 

사도행전 11장 24절을 보면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고 말씀하십니다. 안디옥이라는 이방지역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이 바나바를 사역자로 파송합니다. 최초의 선교사입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에 와서 정성을 다해 사역했습니다. 그는 착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다고 말합니다. 그의 믿음의 삶을 모습을 보고 안디옥 도시에 있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예수님을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고 말합니다. 사역자로서 부러운 모습입니다. 

바나바는 어느 곳에서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말없이 묵묵히 충성을 다한 사람입니다. 어려운 교회 섬김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만들어 냈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복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자로 일을 할 때 ‘아, 저렇게 해도 되는 것이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는 ‘아, 저렇게 까지 섬기는 것이구나’라는 섬김의 감동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은 신임제직 임명과 제직헌신예배를 드립니다. 모든 직분자들이 ‘아, 저렇게까지 섬기는 것이구나’라는 감동을 주는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직분과 역할을 소중히 여기며 바나바와 같은 섬김의 자세로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 첫 주일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을 향해 민수기 6장의 말씀으로 축복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2011년 한 해 동안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겨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자리에 서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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