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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을 마친 행복 (딤후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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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친 행복  (딤후 4:6-8)

 
내 용 

은퇴한 미국 대통령들에게 기자들이 “언제가 제일 행복했느냐?”고 질문했을 때 제일 많이 들은 대답은 “백악관에 들어가는 날과 나오는 날이었다. 큰 기대감을 가지고 들어갔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백악관에서 나올 때 너무나 좋았다.”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누구나 연초에 기대감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연말이 되면 후회스럽게 한 해가 갔다고 말을 합니다.『항상 결심만 하는 바보』라는 책을 쓴 사람이 있습니다. 

연초에 언제나 결심을 했지만 실천한 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그럭저럭 이렇게 저렇게 살다가 인생의 마지막 지점을 맞이할 때는 어쩔 수 없이 후회스러운 자기 인생의 녹음테이프를 다시 돌려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 유명한 버나드 쇼의 묘비를 보면 “갈팡질팡 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지.”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렇게 적어달라고 해서 써 놓은 것입니다. 또 어떤 시인의 묘비에는 “괜히 왔다가 간다.”라고 써있다고 합니다. 

돌아보면 모두 어리석고 잘못한 일만 많은 것이 인생같이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고 인생을 다시 한 번 살면 훌륭하게 살 것인가? 그것도 아닙니다. 또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전에 한번 이야기한 것 같은데 기독교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민속신앙 문화 가운데 흔히 하던, 시골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너무 가난하고 고난스러운 생을 살았기 때문에 죽어서 너무나도 화가 나서 염라대왕한테 가서 따졌답니다. “내 인생은 이게 뭡니까? 억울합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나도 한번 권력가가 되어서 권세를 부리고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라.” 그래서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서 대통령이 되었는데 정치를 잘못한다고 사람들이 데모를 해서 암살을 당해서 죽었습니다. 

“만족했느냐?” “어휴! 권세부리는 거 못할 짓입니다. 365일 하루도 제가 편안히 잠자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면 이번에는 돈이나 한번 실컷 쓰고 살고 싶습니다.” “그래라.” 다시 보내주었더니 재벌이 되었는데 어찌나 향락을 많이 누렸는지 못된 병이 들어서 또 일찍 죽었습니다. “만족했느냐?” “아닙니다. 그것도 할 일이 못됩니다. 제 마지막 소원 한번만 더 들어주십시오.” “그래라.”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마음 착하고 남편을 대왕같이 받들고 살아줄 여자 하나를 내게 주시면 행복하게 내가 살 것 같습니다.” “그런 여자가 있으면 내가 갖지 너를 주겠느냐?”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의미는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만족이 없다는 뜻입니다. 

40~50년 전 대한민국은 지금같이 사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추워도 추운 줄 모르고 더워도 더운 줄 모르는 시설의 주택에서 목욕시설을 갖추고 더운 물, 찬 물이 언제나 나오는 부엌에서 주부들이 행복하게 식사 준비를 하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고 자가용을 타고 주말여행을 떠나는 환상적 꿈을 그렸습니다. 지금 그런 것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쇠고기에 쌀밥을 먹는 일은 인기가 없습니다. 식생활의 향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좋은 것이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 와있습니다. 

그 당시에 직장 다니는 남자 샐러리맨들은 양복이 사실 한 벌 밖에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아주 인기 있는 유행가가 ‘단벌신사’였습니다. 그 곡이 히트곡이었습니다. “♬ 단벌 신사 우리 애인은 31살 노총각님 단벌옷에 넥타이 2개 언제나 변함없죠♪” 얼마나 은혜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동질감을 느끼는 노래를 불러주었기 때문에 히트곡이 되었습니다.

그 시절은 30퍼센트 이상이 절대 빈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절대 빈곤이 5퍼센트입니다. 그러면 지금 대한민국 백성은 행복에 겨워서 어쩔 줄 몰라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삶도 도무지 못살겠다고 지금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출산율 세계 최저, 자살률 세계 최고입니다. 그리고 아직 세계 최고가 되지 아니했지만 넉넉히 가능성이 있는 것이 바로 이혼율입니다. 얼마 안가서 이 부분에 불명예스러운 3관왕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 누구나 다 똑같은 소원이 있는데 모두가 행복하게 살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인간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은 충분히 일을 하셨습니다. 문제는 “관리는 너희가 알아서 해라!” 성경 첫 장에서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물이 있으라. 땅이 있으라. 새가 날아라. 꽃이 피라. 밭에서는 먹을 것을 생산하라. 모든 생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되리라.” 맨 나중에 신비스러운 남녀의 만남을 창조하시고 결혼 주례를 하셔서 “행복하게 살아라. 너희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영원히 내가 만들어 주었다.” 사람들이 가끔 자원 고갈이라는 말을 쓰는데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하십시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에 자원 고갈은 있을 수 없습니다. 넉넉합니다. 

지금보다 인구가 10배가 더 많아져도 먹고 살 것은 넉넉합니다. 문제는 관리입니다. 왜 나라가 가난하게 사느냐? 관리를 잘못해서 가난한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사는 나라인가? 관리를 잘해서 잘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네 책임이야.” 내 인생의 관리자는 나 자신입니다. 내가 잘하면 행복하고 잘못하면 불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내 책임입니다. 인간 비극은 관리 부족에서 오는 것입니다. 남한과 북한이 다를 것이 뭐가 있습니까? 같은 역사, 같은 땅 덩어리, 같은 문화, 같은 민족이 같은 언어를 쓰는데 40분의1 경제력인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관리입니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주어져 있습니다. 

여러분! 분당에 살든 광주에 살든 제주도에 살든 누가 결정한 것입니까? 내가 결정한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45개국과 FTA 체결했습니다. 앞으로는 국가 개념도 없어집니다. 왜 그렇게 되는가?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단일민족 문화가 이제는 다문화로 변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농촌 청년들은 지금 15퍼센트 정도가 국제결혼을 합니다. 이제는 외국 대사관 앞에서 비자 받느라고 줄 서는 일이 없어집니다. 세계가 다 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어디를 가도 한국인들이 가득히 살고 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내가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야 행복할까?” “네 마음이야. 네가 정해.” 행복의 관리 책임자 선택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네가 결정해야 돼.” 달란트 비유에서 확실히 나타났습니다. 주인의 혜택을 받은 종들은 자신들의 능력대로 관리했습니다. 주인에게 와서 보고했는데 다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학창시절에 링크의 파랑새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씩 다 읽었습니다. 행복의 상징 파랑새를 찾으면 모든 소원이 성취된다는 말에 파랑새 찾기 여정을 떠납니다. 아무리 헤매도 안 보입니다. 지치고 지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그렇게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자기 집 처마 끝에 앉아있습니다. 

내 곁에 있는 행복은 버리고 끝없이 헛되게 돌아다녔다는 이야기입니다. 행복은 옆에 있는데 보지 못하고 삽니다. 연말이 되면 왜 후회스러운 느낌을 가져야 하는가? 오늘 말씀에서 해답을 찾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분위기는 아주 만족한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울의 말년 이야기로 최대로 만족하는 느낌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왜 이렇게 자기 인생에 대해서 만족했는가?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실했다고 말했습니다. 일을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기에 자신은 전쟁과 같은 열정의 삶을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이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싸웠습니다. 전쟁하는 군인과 똑같이 선한 싸움을 다 싸웠습니다. 결국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일을 하기 위해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장을 보십시오. 인류의 최초부터 하나님이 “너는 엿새 동안 힘써 모든 일을 하고” 힘써 일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입니다. 

기독교에서 성숙한 사람의 정의를 세 가지로 정합니다. 하나는 자신의 할 일을 찾은 사람입니다. 몸 바칠 장소가 정해진 사람은 불평이 없습니다. 이것이 안 되었기 때문에 불필요한 불평을 하는 것이지 내 할 일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불평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두 번째는 정상적 인간관계를 갖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웃과 도저히 평화 유지를 못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싸움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영혼의 갈 길이 정해진 사람입니다. 삶의 목표가 뚜렷합니다. 이런 사람을 성숙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사명을 곧 우리가 일, 직업이라고 말합니다. 직업에는 귀하고 천한 것이 없으며 노동은 매우 신성하다고 성경이 정하고 있습니다. 일이 얼마나 행복한가? 저는 일본과 영국을 많이 다닌 사람입니다. 다니면서 무엇을 느꼈느냐 하면 이 세상 그 많은 여인들 가운데 제일 좋은 자리에 있는 여자가 두 사람 있습니다. 영국과 일본 두 나라는 강대국이요 군사 강국이요 경제 대국이요 앞서가는 선진국이요 화려한 역사의 나라입니다. 

이 두 나라의 왕비는 죽을 때까지 최고의 좋은 것만 누리고 삽니다. 자기 남편은 왕이요 그가 죽으면 자기 아들이 왕이 됩니다. 어디를 가나 최고로 좋은 시설과 환영을 받고 국빈 대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왕비들은 불경기를 염려할 필요가 없고 전쟁을 염려할 필요가 없으며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다 도와주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다이아나비는 그런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서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습니까? 여러분! 일본 왕비는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있는 대표적인 두 분께서 왜 그럴까? 

저는 일이 없는 게 그분들의 문제라고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거지와 왕자”를 읽으셨습니다. 왕궁의 왕자는 왕자 생활이 지긋지긋해 졌습니다. 뛰쳐나가서 거지 생활에서 오히려 행복을 느끼지 않습니까? 왜 세상에 이렇게 평민이 제일 많은가? 그렇게 사는 것이 제일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사는 대로 사는 것이 제일 좋은 일입니다. 여러분! 유명해지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유명해지면 그 시간부터 생활에 비극이 생기고 온갖 거짓말 소문에 시달려야 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대한민국에서 제일 요리 맛있게 하는 고급 집에 가서 그 집 메뉴대로 최고의 음식을 먹었다고 합시다. “이야! 이런 맛있는 요리는 생전 처음 먹었다. 평생 제일 좋은 것을 먹었다.” 다들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한테 복을 주셔서 “아, 그러냐? 잘 되었다. 그러면 오늘 먹은 이 요리를 네가 평생 먹고 살게 해주겠다.” 그렇게 사시겠습니까? 일주일만 그 요리를 잡숴 보십시오. 쳐다보기도 싫습니다.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누려도 똑같은 것이 반복되면 질력이 나서 못 견딥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도저히 맛을 느낄 수 없는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으로 만족도 감퇴 이론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중국의 왕들은 그렇게 많은 요리사들을 수백 명씩 두고 날마다 다른 음식을 만들어내라고 합니다. 서태우 별장에 가보십시오. 같은 음식이 두 번 반복되면 요리사를 사형시켜 버렸습니다. 그래서 살아남으려고 온갖 것을 다 만들어서 중국이 요리의 천국이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잘 먹는 게 복이지만, 잘못 먹는 것도 복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한국은 음식 문화 가운데 죽이 고급 음식으로 문화화되었습니다. ‘본죽’이라는 음식점도 있는데 아주 비쌉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저는 죽만 보면 죽을 거 같습니다. 왜 그러느냐? 가난했을 때 엄마가 식량을 아끼느라고 죽을 자꾸만 요리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죽만 보면 벌써 짜증부터 나서 내 머릿속에 죽은 절대 나쁜 것이라고 입력되어 있기 때문에 저는 죽 사먹으러 돈 내고 들어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들어보니 이것이 건강식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제가 어린 시절에 그렇게 건강식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당뇨도 없고 콜레스테롤도 없고 혈압도 안 높고 이렇게 사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은 다 복이로구나!’ 이렇게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어려서 농촌 생활에 익숙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농부의 삶은 창조적입니다. 내가 수고하면 생명의 근원이 수확된다는 신비가 있습니다. 봄에 손가락만한 고구마 싹을 땅에 꽂아 보십시오. 몇 달만 지나면 고구마를 캐내는데 그 줄기를 잡아당기면 거기서 큰 고구마가 줄줄이 올라올 때 신이 납니다. “나 때문에 다 먹고 사는 거야!” 농부의 자존심이 나타납니다. 또, 건축가를 보십시오. 자신의 머릿속에서 설계한 건물이 하늘을 찌르고 서 있는 것을 볼 때 이 일이 행복입니다. 저는 직업 중에 신나는 직업이 노래 부르는 사람 같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 도구도 필요 없고 언제나 몸만 가면 됩니다. 

‘자기가 노래 부를 수 있도록 그렇게 돈을 많이 들여서 화려한 무대를 번쩍번쩍하게 준비해 놓고 수천, 수만의 행복한 얼굴들이 자기 얼굴만 쳐다보고 거기서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면 온갖 박수와 함성이 들리고 돈도 많이 받으니 저 사람 정말 좋겠다!’ 이런 생각 많이 합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해야 행복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따라 거기에 정열을 기울여야 행복한 것입니다. 영국의 처칠이 말했습니다. “나는 정치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처칠이 된 것입니다. 

그 유명한 정치 때문에 영국이 빛났습니다. 사업가는 사업에 미쳐야 합니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많을수록 행복해야 사업가입니다. 그림 밖에 몰라서 피카소가 되었고, 음악 밖에 몰랐기 때문에 모차르트입니다. 리빙스턴은 선교밖에 몰랐습니다. 가끔 본국에 가서 선교 보고를 하면 본국에 있는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리빙스턴이 오셨다고 모두가 “어휴! 그런 곳에 가서 얼마나 고생하며 사십니까?”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면 “무슨 소리입니까?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 가운데 선교 사역이 최대 축복입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에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당신들을 볼 때 불쌍합니다. 나한테 동정하는 말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서 평생 선교했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여러분! 학생은 공부가 행복해야 학생입니다. 사실 군인은 전쟁밖에 몰라야 합니다. 그래야 용감한 군인이 됩니다. 그래서 맥아더가 나오고 이순신이 나온 것 아닙니까? 저 같은 목사는 목회 밖에 몰라야 합니다. 목회하는 일이 많을수록 행복해야 목사입니다. 축구 왕 브라질의 펠레가 은퇴하는 날 10만 명이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가 한 말 “여러분! 제 인생은 축구 밖에 몰랐습니다.” 그래서 세계 제일이었습니다. 

에디슨은 하루에 8시간씩 연구 밖에 몰랐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들은 그가 만들어준 전깃불을 밝혀서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까? 에디슨은 세상의 어두움을 없애버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장춘 박사는 농장 밖에 몰랐습니다. 그 분 때문에 지금 우리가 씨 없는 수박을 먹고 있지 않습니까? 일이 싫은 사람이 성공하는 일은 없습니다. “네 인생의 시간 속에서 네가 선택했어. 네 일을 네가 해. 그게 네 책임이야.”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천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나는 이것을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이다.”라는 뜻입니다. 이탈리아의 한 갑부가 자기의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를 두었는데 이 정원사가 얼마나 정원을 예술적으로 가꾸는지 주인이 볼 때마다 감탄을 합니다. ‘이야! 이 녀석은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예술적 머리를 가졌다.’ 그래서 ‘안 되겠다. 이 아이를 노동자로 쓰기 아깝다.’ 어느 날 불러서 “너는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는 머리가 아니다. 

미술적 영향력이 대단한 것을 봤으니까 이 작업을 그만 두고 내가 너한테 미술 공부를 시켜 줄 텐데 할 것이냐?”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사람이 미켈란젤로입니다. 가톨릭교회가 가장 위대하게 존경하는 미술가로서 지금 바티칸 궁전에 가보십시오. 바닥도 벽도 천장도 다 그의 그림입니다. 사실 가정주부는 평생 가정 살림이 행복해야 가정주부입니다. 요즘 좀 이상한 문화가 가정주부를 이상하게 만드는 게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살림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제가 심방하면서 들은 소리인데 아내한테 얻어터진 네 명의 영감이 가정 법원에 고소하러 갔다고 합니다. 

아내들에게 맞아서 시퍼렇게 얼굴이 멍이 들었는데 판사가 도대체 왜 맞았느냐고 물었더니 한 사람은 “밥 달라고 했다가 맞았습니다.” 또 한 사람은 “어디 가느냐고 물어봤다가 얻어터졌습니다.” 또 한 사람은 “잠자려고 아내 옆에 드러누웠다가 얻어터졌습니다.” 한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니까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리느냐고 얻어맞았습니다.” 그런데 판사가 여자였답니다. 판결을 내리는데 “당연히 맞을 짓을 했음.” 우리 교회는 이런 여자 한 사람도 없기 바랍니다. 남자들이 “아멘” 하시는군요. 일이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야 행복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일보다 더 행복한 것은 일을 마쳤을 때입니다. 주어진 책임을 완수했을 때 제일 행복합니다. 예수님은 33살의 그 고통스러운 십자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다 이루었다. 내 일을 다 했다.” 그래서 인간 구원이 거기서 완성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바울은 최고의 행복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일을 마쳤습니다. 나의 선한 싸움을 다 싸웠고 내 생애 가운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 앞으로 나는 주님이 주시는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고백입니까? 

이 고백을 우리가 똑같이 해야 합니다. 인생의 승전가를 부르는 순간 전쟁에 이기고 돌아오는 개선장군과 같이 고백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 29장을 쓰는 해로 우리교회가 금년을 출발했습니다. 평가는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 기쁨이 오늘 우리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세계 45개국 1,272명 선교사들과 약속한 것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이행했습니다. 다음주일부터 31명이 추가되어서 1,303명으로 2011년을 시작할 것입니다. 

선교지 성전 건축은 기다리는 만큼 현장에서 다 못해내고 있습니다. 금년에 약속한 것을 다 했습니다. 2010년 하나님 앞에 내 인생의 결산서는 적자인가, 흑자인가? 영적 대차대조표를 계산하는 날이 마지막 주일 오늘입니다. 어차피 인생은 젊음도 시간도 영광도 물질도 다 지나갑니다. 그 가운데서 내가 무엇을 했느냐 하는 것만 남습니다. 인생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한 시인이 성경에 글을 남겼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만이 세세토록 있도다.” 일 년이 지났다는 것은 누구나 다 똑같은 상황이 되는데 그만큼 죽음 앞으로 우리가 다가가는 것입니다. 

‘고희’라는 말을 우리가 쓰는데 70까지 사는 사람이 드물다고 해서 쓴 말입니다. 인간의 세월을 계산해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내 인생은 지금 어느 지점에 와 있는가? 종착역까지 몇 역을 더 가야 내 인생이 끝인가? 아!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무엇을 해야 될까?’ 지혜스러운 사람은 모든 일을 미리 미리 합니다. 바울은 아직 건강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나는 일을 끝냈습니다.” 미리 선언합니다. 

저는 일주일 전에 이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기억할 것입니다. 저는 20대에 이필재 목사님이 저의 집에 전도를 하러 오셔서 그때부터 제가 예수를 믿고 목사님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35년 전 일인데 지금 돌아보니까 내 인생의 최대 축복은 그때부터였습니다. 지금은 저도 목사가 되었습니다. 20대 민감할 때 목사님의 전도를 받아들였던 그때를 생각하면서 20대들에게 전도를 하려고 캠퍼스 사역을 선택해서 한국에서 미국에 이민 온 유학생 중심의 교회를 만들었는데 수백 명이 나오고 있습니다. 

나는 이들에게 목사님이 옛날 나에게 전도해 주었던 그때를 생각하면서 전도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까 아직도 이필재 목사님이 왕성하게 목회 활동을 하시는 것을 보고 너무나 반가워서 이메일을 보냅니다. 시간 있을 때 답장 주시면 너무나도 고맙겠습니다.” 이런 글을 받았습니다. 언젠가 그 목사와 제가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분이 20대였다면 저는 30대 초반이었을 텐데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동안 뭘 하셨소?” “네,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잘했소. 우리 피차 평생 선한 싸움을 싸웠소.” 그렇게 만나야 합니다. 사람은 지나간 추억 중에서 누구나 다 지우고 싶은 부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나약했기 때문에 있었던 안 좋은 추억은 오늘로써 다 기억에서 지우시고 하나님이 나에게 또다시 새해라는 기회를 주심을 희망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선한 싸움의 영적 병사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또다시 새로 이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지나간 일 년 하나님께서 저희들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저희들에게 주신 이 소박한 사명을 최선을 다해서 다할 수 있었던 것을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기도와 헌금을 통해서 사역하고 있는 1,300명의 세계 선교사들이 계십니다. 하나님이여! 내년도에도 저희들이 그들을 계속 선교할 수 있도록 우리 교회에 힘을 주시고 교우들을 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나간 일 가운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지 못했던 모든 부분들 용서하여 주시고 삭제하여 주시고 지워주사 백지에서 또다시 새로움의 역사를 시작하는 아름다운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고난스러운 가정에 배나 더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여 주시옵시고 아픈 순간을 지닌 모든 형제들을 주님이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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