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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엡 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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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종들처럼 (엡 6:5-9)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성당에 사도 야고보의 무덤이 있습니다. 교통이 불편한 시절에 많은 순례자들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야고보의 신앙을 생각하며 이 곳을 찾아 왔습니다. 성당의 신부와 수녀들이 안내하였는데 매일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하였습니다. 순례자들에게 사도 야고보의 무덤을 보여 주고, 야고보의 행적을 들려주고, 함께 기도하고, 시간이 되면 식당으로 인도하였습니다. 하루에도 같은 일을 몇 번씩이나 하였습니다. 

한 해 동안에 같은 일을 매번 반복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안내를 하다 보니 따분해졌습니다. 순례자들에게는 일생 한 번 있는 감격의 길이었으나 안내하는 이들에게는 지루한 일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정성도, 열정도 없이 대충 안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신부가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느꼈습니다. 일생일대의 감격을 기대하며 찾아 온 순례자들을 최고의 정성으로 모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와 수녀들을 불러놓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곳을 찾아오는 순례자들을 순례자라고 생각하지 맙시다. 주님께서 찾아 오셨다고 생각합시다. 주님이 내 앞에 서 계신다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여 안내합시다. 최선을 다하여 설명하고, 정성을 모아 기도하고, 주님께 하듯 식사를 정성으로 대접합시다.” 이러한 자세로 안내를 시작하였더니 찾아 온 순례자들마다 큰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순례자들을 안내하던 신부와 수녀들이 더 큰 감동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가지고 만든 영성 훈련 프로그램이 바로 꾸르실료(Cursillo) 운동입니다. 그래서 꾸르실료 정신은 ‘주께 하듯 하라’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근본이 되고 꼭 있어야 될 중요한 태도를 강조하고 있는데 바로 종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종은 노예적 개념의 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의 종을 말합니다. 출애굽기 21장에 보니, 주인 밑에서 6년을 일하다가 7년이 되면 종에게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자유를 얻은 종이 생각해보니 자신이 일하는 일터가 좋고 주인이 좋아서 주어진 자유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과 함께 영원히 있고 싶습니다. 

이제 다른 곳으로 가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종은 제사장에게 가서 귀를 뚫어 그 표시를 하게 됩니다. 귀를 뚫는 것은 “당신의 영원한 종입니다” 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 종은 다른 종들과 다릅니다. 영원한 자유를 얻었던 종입니다. 마음대로 살 수 있었던 종입니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목적과 동기가 있어 값진 자유를 내어놓았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자유의 종’ 입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의 종들은 자유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억지로 사명을 감당하는,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일하는 노예 개념의 종이 되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본문에 나오는 종의 모습은 바로 이 ‘자유의 종’ 입니다. 임명받는 임원들은 자유의 종으로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첫째로 성실하게 순종해야

한국교회사 초기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서울 중화동의 경동제일교회에 영수라는 직책이 있었습니다. 영수라는 직책은 장로에 해당되는데 교회를 관리하며 섬기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 직책을 감당하던 엄영수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의 직업은 왕손을 모시는 마부였습니다. 하루는 왕손을 모시고 지방으로 여행을 가는데 가는 길에 “나으리, 예수 믿으시죠” 하고 전도를 하였습니다. 왕손이 물었습니다. “아니, 네가 예수를 믿느냐?” “예, 그렇사옵니다. 한 3년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를 믿고 마음이 너무 기쁩니다.” 

그말을 들은 왕손이 마부에게 빈정거리며 말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너 같은 상놈이 양반이라도 된다더냐?” 그때 엄영수가 대답했습니다. “나으리, 예수믿는 도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양반되기 위해 예수 믿는 것이 아니라 마부노릇을 잘하기 위해 예수 믿는 것입니다.” 이말이 왕손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열려 예수를 믿게 되었고, 훗날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본문 5절입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여기의 '성실한 마음으로' 는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오직 한 마음으로 섬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이런 자세를 요구하는 것은 비록 육체의 상전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것을 아시고 꿰뚫어 보시는 그리스도는 속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늘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고 성실하게 섬겨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최고 자산은 성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만이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부디 두려워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하듯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으면 관계가 거듭나야 합니다. 부부 관계부터 부모와 자녀 관계가 거듭나고 학교, 직장 등 모든 관계가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는 관계의 핵심은 성실한 순종입니다. 순종의 원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주신 관계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창조하신 하나님께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할 때 비로소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목회상담학자 웨인 오우츠(Wayne E. Oates)는 ‘일 중독자들’ 이라는 저서에서 켄터키주 겟세마네 수도원을 방문한 인상담을 썼습니다. 그 수도원은 치즈 제조로 유명했습니다. 수도사들이 직접 작업을 하는데 한 사람도 힘들어 하거나 지루한 기색이 없이 웃는 낯으로 찬송하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우츠 교수는 한 수도사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수도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수도원은 치즈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러나 치즈는 생계일 뿐 우리의 목적이 아닙니다. 치즈를 만드는 노동시간 자체가 기도시간이요, 찬송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치즈 제조는 수익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는 기쁨이 중요합니다. 만족과 행복을 얻기 위해서 사람들이 일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보수를 현금으로 받지 않고 있으나, 행복이라는 값을 충분히 누리고 있습니다.” 오우츠 교수는 찬송을 부르며 노동하는 그들의 만족한 얼굴을 보면서 진정한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 발견했다고 합니다. 직업의 행복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직장생활도 기도하는 시간이요 찬송하는 시간으로 만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행한다는 마음으로 하면 행복이 임할 것입니다. 

본문 6절입니다.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여기에서 '눈가림만 하여' 와 '마음으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그리스도의 종'을 대조시키면서 그리스도의 종들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바울은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육체의 상전이 볼 때에만 일하는 척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일을 할 때 그리스도 앞에서 행하여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행하듯이 전심으로 섬기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의 대조를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그리스도의 종들은 외모를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위선적으로 충성하지 않습니다. 

강제로 시킬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의 의식을 가지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섬깁니다. 세상의 상전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는 노예의 모습이 되면 지루하고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져, 강요당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기꺼이 선한 뜻으로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종들의 모습입니다.
 
셋째로 기쁨으로 섬겨야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영국 연방의 자치령입니다. 오랫동안 백인들이 정권을 쥐고 경제권을 독점하며 살아온 국가입니다. 흑인들이 전체 인구의 70%가 넘지만, 생활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백인정부에 의해 감옥생활을 한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는 젊은 시절 감옥에 들어가서 백발이 희끗희끗해서야 풀려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건강해 보였습니다. 긴 감옥생활에서 건강을 유지한 비결을 만델라는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감옥에서 중노동을 하러 나갈 때, 사람들은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나는 좁은 감옥보다는 넓은 자연으로 나간다는 즐거움에 오히려 노동의 시간을 기다렸다.” 푸른 하늘을 보고, 새소리를 들으며, 기쁜 마음으로 일한 것이 그의 건강 비결이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방에서 좌절과 분노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만델라는 감방 뒤뜰에서 채소를 가꾸며 새 생명 창조의 신기함을 누렸습니다. 어둡고 좁은 공간에 던져진 그는 교도소장에게 부탁했습니다. “교도소 마당 한 귀퉁이에 정원을 가꾸게 해주십시오.” 

그는 허락을 받고나서 첫 해에 손이 많이 가지 않아도 잘 자라는 고추와 양파를 심었습니다. 다음해에 여러 종의 장미도 심어보고 작은 묘목의 씨앗도 뿌렸습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정성스레 정원을 가꾸며 보람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정원을 돌보듯 자신을 돌볼 수 있었습니다. 교도소 마당에 무언가를 심고 가꾸던 그는 26년이 지난 후,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현실이 감옥이었어도 소망 중에 씨앗을 뿌리고 기쁜 마음으로 밭을 가꾸었더니 그 소망이 자라 복된 은총이 된 것입니다. 

본문 7절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마지못해 함이 아니라 기쁨으로 일하는 태도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요, 하나님이 보내신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이곳에 서게 하셨다면 기쁨으로 섬겨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있으면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휘파람을 불며 즐겁게 일하게 합니다. 이런 태도야말로 그리스도의 종들이 갖는 자세입니다. 이 자세가 바로 그리스도인답게 하는 동기와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마더 데레사(Madre Teresa) 수녀가 호주를 방문했을 때입니다. 데레사 수녀의 수행을 자원했으나 말 한마디 건넬 기회가 없었던 젊은 수사가 말했습니다. “수녀님! 뉴기니로 가는 비용을 부담하면서라도 수녀님 옆에 앉아 고언을 듣고 싶습니다.” 테레사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며 “비용을 부담할 돈은 충분히 가지고 있나요?” 물었습니다. 젊은 수사는 기회를 잡았다는 생각에 큰 목소리로 “예”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테레사는 “그 돈을 불우한 이웃에게 주세요, 그러면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듣는 것보다 실천하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입니다. 즉 입으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몸소 보여 주어야 합니다. 세워진 임원들은 부디 성실한 마음으로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눈가림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마음으로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주께 하듯 섬기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을 행하든지 그대로 받을 줄 믿고 힘써 헌신하는 임원들과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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