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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외모를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 (행 10:3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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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를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 (행 10:34-43)


유대인들에게는 선민 의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 이스라엘을 특별히 선택하셨다는 의식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선택하셨고 그의 후손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왜 그들을 선택하셨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이해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7) 그들이 잘나서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민족들을 깔보고 업신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신 까닭은 다만 그들을 통해서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려는 목적 때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교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인종 차별이라는 말이 이제 우리에게도 아주 익숙한 말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산업 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습니까? 작업 환경이 나쁜 것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격적으로 그렇게 심한 모욕을 당하는 것과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은 그들도 더 이상 참기 어려울 것 아닙니까? 솔직히 말해서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 미국에서도 아직까지 인종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흑인인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을 보면 전보다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교포들이 미국 사회에서 성공한 이야기들을 들을 것 같으면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아직도 소수 민족들에 대한 차별 대우가 미국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도 지역 감정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남과 북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으르렁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영남 사람과 호남 사람이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 틈에서 충청도 사람들도 제 몫을 찾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서 차기 대선 주자 가운데 한 사람인 박근혜 씨에 대한 기사를 읽고 입맛이 매우 씁쓸했습니다. 지지율이 40% 가까이 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종 시 원안 고수 방침을 통해서 충청도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에 특별히 악재만 없으면 영남과 충청도 표를 합해서 차기 대권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가히 망국적인 지역 감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이방인이 최초로 구원받은 사건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넬료는 성경이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최초로 구원받은 이방인 신자의 이름입니다. 고넬료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최초의 이방인 신자가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의 세계를 누가 지배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세계는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로마의 군대가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도 이런 사실을 예언한 바 있습니다. 그가 뭐라고 예언했습니까? 이사야 42장 1절 말씀입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하나님께서 보내실 메시아가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정의를 베푸실 것이라고 예언하지 않았습니까? 

또한 이사야 42장 3절 말씀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또한 이사야 42장 7절 말씀입니다.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셔서 사회적 약자들, 소외되고 잊혀진 자들, 그리고 이방인들을 위해서 하실 일에 대해서 선지자 이사야는 아주 분명하게 예언했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구원을 베푸실 것이라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구원하십니까? 복음을 듣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까?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35) 겉으로 드러난 것을 기준으로 삼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외모를 보지 아니하신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십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의를 행하여야 합니다. 그 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베드로가 고넬료를 포함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이방인들에게 무엇을 전했습니까? 그가 전한 복음의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만 유대인의 주가 되실 뿐 아니라 만유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전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시며 성령과 능력이 충만한 분이셨습니다. 예수는 선한 일을 행하시고 모든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는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사람들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차별 없이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고 분명히 전했습니다.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하는 그 설교를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랐다고 이어지는 45절 말씀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유대인 신자들도 그릇된 선민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여간 베드로를 비롯하여 함께 온 유대인 신자들도 모두 다 하나님의 구원이 유대인뿐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미친다고 하는 뚜렷한 증거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증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도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분명히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 역사에 동참하기 위해서 그 옛날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에서 베드로는 자신이 전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과연 어떤 분이시라고 선포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만유의 주라고 선포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의 주님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도 이 점을 강조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고백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결코 그렇게 고백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하반절) 때문에 우리는 오직 믿음 안에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능력 안에서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도록 바른 길로 행하여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도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동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마 28:19 상반절) 충만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장벽을 허물고 나아가 이 생명의 복음을 널리 전파함으로 말미암아 장차 그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과 함께 영광의 면류관을 상으로 받는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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