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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려움, 그것을 넘어서야! (수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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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그것을 넘어서야! (수 1:5-9)    
 
      
: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 깡총 깡총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 산고개 고개를 나 혼자 넘어서 / 토실토실 알밤을 주워 올테야
      
동요 ‘산토끼’입니다. 이 산토끼의 고향은 어디일까요?
경남 창녕군 등에 따르면 이 산토끼의 고향은 경남 창녕이랍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28년 가을, 창녕군 이방면에 있는 이방보통학교에 재직하던 이일래 선생이 직접 작사, 작곡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일래 선생의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딸을 안고 학교 뒷산에 올라가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앞에서 산토끼가 깡충깡충 뛰노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민족도 하루 빨리 해방이 되어 저 산토끼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가락을 흥얼거렸고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곡을 만들고 가사를 붙였답니다. 
      
토끼해라는 2011년,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 함께 희망으로 건너가는 도전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영웅 모세는 죽었습니다. 그를 대신하여 시종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일어나 요단을 건너 백성들과 함께 가야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여호수아처럼 일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일어나 건너가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넘어서야 할 두려움입니다.

I. 두려움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새로운 지도자로 세움을 받은 여호수아가 얼마나 지독하게 두려움에 사로잡혔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6절에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힘을 내고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7절에서 다시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9절에서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거듭 말씀하셨음에도 여전히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화를 내시는 듯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굳세고 용감하라고 명하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지독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듭해서 세 번씩이나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셔야 했습니다. 담대하다[$m'a/아마쯔]는 말은 용감하다는 말입니다. 겁이 없고 배짱이 두둑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모든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책임을 맡은 지도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영광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엄청난 두려움입니다. 

구체적으로 여호수아가 겪는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5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 5a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네가 사는 날 동안 아무도 너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대적하다[bx'y:/야짜브]는 말은 일반적으로 ‘서다’를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서 있는 것 그 이상을 내포합니다. 군사적으로 거인 골리앗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군대에 대항하여 서 있었던 것을 가리킵니다(삼상 17:16).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역설적으로 여호수아에게는 대적할 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는 그를 두렵게 하는 대적이 있었습니다. 
      
1. 대적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나이 마흔에 모세의 명령으로 다른 열한 명의 정탐꾼들과 함께 가나안을 정탐하였습니다. 돌아와 보고할 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의 동료들은 가나안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기는 하지만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민 13:28) 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 13:30)고 말했던 사람은 갈렙 뿐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갈렙의 편에 섰습니다. 그리고 40년이 흘렀습니다. 여전히 가나안에는 그들을 두렵게 하였던 사람들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영웅 모세는 죽고 그 모세를 대신하여 여호수아 자신이 백성을 이끌고 그 땅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많은 경쟁자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훼방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싸워야 할 상대 없이 부전승으로 올라가 우승까지 할 수 있는 싸움은 없습니다. 반드시 반대하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는 훼방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합시다. 그래서 도전할 가치가 있습니까! 

여호수아에 있었던 두려움은 대적들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또 어떤 두려움이 있었습니까?
      
6절입니다.
: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을 통하여 그가 가졌던 두려움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굳세고 용감하여라. 내가 이 백성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을, 이 백성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사람이 바로 너다.”[새번역]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 바로 네가 약속의 땅을 백성에게 나누어 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7절과 8절에서 거듭해서 ‘형통’을 약속하셨습니다. 형통하다[lk'c;/싸칼]는 말은 ‘신중하다’는 말입니다. 용의주도하고 지혜롭게 잘해서 마침내 끝을 마칠 수 있다는 격려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여호수아에게 ‘과연 내가 이 어마어마한 일을, 모세도 하지 못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2.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비결을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가 되면 많은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그 일을 시작하는 경우는 드믑니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여 변명거리를 늘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지만 성공도 없습니다. 우리는 물 위를 걷다가 물에 빠진 베드로를 실패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배 안에 있던 다른 제자들은 아예 물 위를 걸어볼 시도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도전하였던 사람입니다. 실패를 사랑합시다. 실패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십시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또 한 가지 방법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대적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것으로 두려움의 끝이 아닙니다. 또 어떤 두려움이 있습니까?
      
9절 말씀입니다.
 :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거듭하시는 말씀 중에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너는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말아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주, 나 하나님이 함께 있겠다.”[새번역] 이것은 역설적으로 여호수아가 홀로 남았다는 고독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늘 모세의 곁에서 모세를 의지하고 모세의 시종으로 만족하였던 여호수아였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모세의 빈자리는 너무나 컸을 것입니다. 그는 모세가 지시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능히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여야 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두려움이었겠습니까?
      
3. 고독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서 “나만 남았나이다.”(왕상 19:10,14)하였습니다. 정말로 혼자 남은 것 같은 고독이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합 1:3)고 탄식하였습니다. 불의한 세상을 홀로 살아가는 고독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신 예수님께서 잠을 자고 있는 베드로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 26:40)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외롭게 자신의 길을 가야 하는 고독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혼자 있다는 것은 단순한 외로움을 넘어 두려움일 수 있습니다.

인도에 오래 전 부터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양이를 두려워하는 쥐가 있었습니다. 쥐는 마술사에게 자기를 고양이로 바꾸어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고양이가 된 쥐는 한 동안 두려움 없이 다녔지요. 그러나 개를 만난 순간, 고양이로 바뀐 쥐는 다시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고양이가 된 쥐는 마술사에게 자기를 개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마술사는 고양이로 바뀐 쥐를 개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한 동안 개가 된 쥐는 무서움 없이 다녔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를 만나는 순간 다시 개로 바뀐 쥐는 무서움에 시달렸습니다. 다시 한 번 마술사에게 자신을 호랑이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 하였습니다. 이번에도 마술사는 개로 바뀐 쥐를 호랑이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로 바뀐 쥐는 사냥꾼을 만나는 순간 다시 한 번 엄청난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호랑이로 바뀐 쥐는 다시 마술사에게 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마술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너를 다시 쥐로 바꾸어 놓을 생각이다. 네가 호랑이의 모습을 하고도 쥐의 마음을 갖고 있으니 넌 쥐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우리의 삶에는 이런 저런 두려움이 끝이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습니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계획을 하였다고 해서 그것이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쉽게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더욱 혼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이만 저만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제 어떻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두려움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두려움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II. 극복의 길

한 남자가 귓속에 들어간 진주알을 41년 만에 우연히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다섯 살 때, 누나가 어머니의 진주목걸이를 갖고 놀다가 실수로 줄을 끊는 바람에 진주알 두 개가 귀로 들어간 사고가 기억났습니다. 당시 병원에 갔었는데 의사가 진주알을 다 꺼냈다고 말하면서 사탕 두 개를 주어 그 사건을 곧 잊었었다고 합니다.
      
큰 불편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탕 두 개에 그 사건을 잊었다고 하는 것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사탕 몇 알에 고통을 잊고, 두려움이 없는 것처럼  지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감추어진 두려움은 언젠가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두려움이 폭발을 하면 파괴적입니다.

어떻게 해야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습니까? 혼자서 일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 혼자라는 고독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5절 말씀입니다.
 :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내가 모세와 함께 하였던 것과 같이 너와 함께 하며,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겠다.”[새번역]고 약속하십니다. 9절 말씀에서도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9b)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가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할 근거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오셨을 때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었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계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b)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을 때에 우리는 두려움을 이기고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고독에서 오는 두려움에 대한 해결책은 바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함께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인기라는 소금물을 마시고 갈증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으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음으로 언제나 담대하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체험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사방이 대적들로 둘려 쌓여있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8절 말씀입니다.
: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께서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주신 처방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심껏 실천하면 앞길이 열려 모든 일이 뜻대로 되리라는 것입니다. 7절에서도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있는 근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약속을 붙들 때 담대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이것은 아닌데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두려움을 이기는 길이자,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경험하는 길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분이 계십니까?
      
그러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b)는 말을 어디에서 들어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고후 4:8)라는 말을 어디에서 들어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는 말을 어디에서 들어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는 말을 어디에서 들러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연구하고, 암송하고, 묵상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경험합니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라도 말씀을 멀리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능력을 잃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대적 마귀를 이기는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어 있는 것입니다.
      
올 해, 모든 성도들이 말씀을 읽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능력을 경험할 수도 없고, 승리할 수도 없습니다. 최소한 일 년에 한 번은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통독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읽고 5천원의 감사헌금을 드려서 성경을 반포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영생교회 교인의 조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심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시고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음으로 고독의 두려움을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함으로 대적의 두려움을 이깁니다. 그래도 실패할 것이 두렵다고요? 여기에도 방법이 있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에게 굳세고 용감하라고 명하지 않았느냐!”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해야 할 지 말아야 할지를 선택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담대하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3. 하나님의 명령으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명령하심으로써 그 말씀의 진실성을 보증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조상들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그 후손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 것은 순종이자 하나님의 복을 받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더라도, 심어지는 많은 실패를 경험하였더라도 겸손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소명, 그것으로 인간적으로 성공이냐 실패냐를 초월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소명에 따라서 사는 사람은 그것으로 이미 성공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늘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 이루며 가는 것입니다. 성공은 이미 하늘에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니 땅에서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세기 리더십의 권위자인 J. Maxwell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7가지 원리를 제시합니다. 
첫째, 두려움의 근원을 발견하라. 둘째, 두려움을 인정하라. 셋째, 발전의 대가로서 두려움을 받아들여라. 넷째, 내적인 타오르는 열정을 개발하라. 다섯째, 조절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라. 여섯째, 승리하는 습관을 가져라. 일곱째, 믿음을 기르고 두려움을 양성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두려움의 근원을 발견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조절할 수 있는 믿음을 기르면 뜻밖의 상황에서도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그러나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오. 담대하게 도전하시기를 십자가가에 죽으셨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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