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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곱의 아들들 (창 29:31 - 창 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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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아들들 (창 29:31 - 창 30:24)


(창29:31-30:24)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 레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도 주셨도다 하고 그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생산이 멈추었더라......... 

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하시고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도록” 자손을 주셨는데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약속하신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약속하신 후 25년 만에 이루어주셨습니다. 이삭은 40세 나이에 리브가를 아내로 맞아(창25:20) 60세가 되어서야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을 낳았습니다.(창25:26) 아브라함은 무려 160세가 되어 손자 둘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아내므로 형 에서의 원한을 사게 되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피하게 되었습니다. 도피 중 해가 져 노숙하려고 돌을 베개 삼아 누웠는데 꿈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창28:13-15)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조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바를 야곱을 통해 다 이루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외삼촌 집에 도착해서 20년을 살 동안 아들 열둘을 낳게 됩니다. 이른 바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들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외삼촌 집에 함께 살면서 외삼촌의 딸 라헬을 첫 눈에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라헬의 언니는 레아였는데 가냘프고 총기가 좀 떨어진 모습이었습니다. 반면 라헬은 우아하고 외모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성품 전체가 총명했습니다. 외삼촌 라반은 야곱이 품삯을 정하고자 할 때 라헬과 결혼하려면 7년을 봉사하는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기 때문에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여 7년을 수일처럼 봉사했습니다. 

7년 기한이 다 되어 라헬과 결혼식을 마치고 첫날밤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마땅히 라헬이 보여야 할 자리에 레아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풍습을 따라 신부는 베일로 얼굴과 몸 전체를 가리고 신랑 방에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야곱은 장인이 신부를 바꿔치리라곤 전혀 예기치 못했기 때문에 당한 일이었습니다. 라반이 이를 이용해서 야곱을 속인 것입니다. 

자기의 두 딸을 빌미로 훌륭한 노동력을 몇 년 더 무상으로 제공받으려는 라반의 치밀한 계산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계획을 듣고 마치 라헬처럼 처신했다는 것은 레아 역시 어느 정도 야곱을 짝사랑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라반의 주도면밀한 계획대로 야곱은 7년을 더 봉사하는 조건으로 7일을 채우고 다시 라헬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물론 레아를 사랑했지만 그의 첫 사랑 라헬을 더 사랑했습니다.(창29:30)  


2. 그 후 하나님께서는 레아가 남편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함을 보시고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하셨습니다.(창29:31) 그러나 라헬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마음에 없는 결혼이란 상대를 모두 피곤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기당한 결혼으로 아내가 된 레아에게 야곱의 마음이 좀처럼 기울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신혼의 단꿈을 잃어버린 레아의 삶은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시127:3)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는 말씀대로 레아에게 축복의 증표인 아들을 낳케 함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위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아의 태를 여시자 아들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레아가 낳은 첫아들은 ‘르우벤’이었습니다. “보라, 아들이다.”는 뜻입니다. ‘보란 듯이 아들을 낳았다.’ 며 야곱에게 시위한 것입니다. 당신이 사랑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먼저 아들을 주셨다는 시위입니다. 

둘째 아들의 이름은 ‘시므온’입니다.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를 33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창29:33) 주께서, 내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이렇게 또 아들을 주셨구나.”(새번역) 이 말은 남편의 사랑이 없음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셨다는 뜻입니다. 

레아가 낳은 셋째 아들은 ‘레위’입니다. ‘연합’이라는 뜻인데 34절에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며 레아가 그 속마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아들을 셋까지 낳았는데 레아는 여전히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아들 셋씩이나 낳았으니 사랑으로 연합해달라는 뜻입니다. 

넷째 아들은 ‘유다’인데 그 뜻은 ‘찬송’입니다. 35절에서 그 이유를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는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남편 야곱이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아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후에 이 ‘유다’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스도가 탄생했습니다. 이는 낮은 자를 높이시며(삼상2:7-8,겔 21:26) 그를 통해 찬양받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레아가 아들 넷을 낳는 동안,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다시피 한 라헬에게 자식이 없다는 것은 결정적인 고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결국 라헬은 시샘이 폭발하여 야곱에게 이렇게 퍼붓습니다. ‘나에게도 자식을 낳게 해주지 않으면 죽어 버리겠습니다.’ 이때 야곱이 화를 내며 ‘내가 하나님이오? 당신이 아이를 낳을 수 없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 아니오?’라고 하자 라헬이 ‘그럼 내 여종 빌하의 잠자리에 들어 나를 위해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러면 그녀를 통해서 나도 자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고 자기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첩으로 주었습니다. 

야곱이 빌하와 잠자리를 같이하자 아들을 낳았습니다. 고대의 풍습 중에는 시종을 통해 잉태하여 아이가 태어날 때, 여주인 무릎에서 낳도록 하여 자기 아들로 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아들이 ‘단’이었습니다. 그 뜻은 ‘판단하심’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억울함을 판단하셨다는 뜻입니다. 다시 라헬이 여종을 통해 아들을 낳고 이번에는 ‘납달리’라고 부릅니다. ‘경쟁’이라는 뜻입니다. 

언니 레아와의 싸움에서 사랑뿐만 아니라 자녀 낳기에서도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이러자 다시 질투심이 난 레아가 자신의 여종 실바를 야곱에게 주어 아들을 낳게 합니다. 그래서 낳은 아들이 ‘복되다’는 뜻의 ‘갓’이고 ‘기쁨’이라는 뜻의 ‘아셀’입니다. 야곱이 본 그대로 용모도 뛰어나지 못하고, 결혼도 축복된 결혼이 아니었고, 남편의 사랑도 받지 못했던 레아가 많은 아들을 인하여 자신의 인생을 복되고 기쁘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아는 이어서 자신의 몸을 통해 ‘보상’이라는 뜻인 다섯째인 ‘잇사갈’, ‘거함’이란 뜻인 여섯째인 ‘스불론’을 낳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보상해주셨다.’ 그리고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거하리라”는 뜻으로 여전히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 레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때 하나님은 라헬을 기억하시고 그녀의 기도를 들으셔서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模型)이라고 할 수 있는 ‘요셉’의 탄생입니다. 

‘요셉’의 이름은 ‘더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수치를 씻어 주셨다. 나에게 하나님이 또 다른 아들을 주셨으면 좋겠구나!’ 하는 소원이 이루어져 그 이름으로 지었습니다. 

라헬은 열 두번째 아들인 베냐민을 낳다가 죽는데, 라헬이 ‘베노니’, 곧 ‘슬픔의 아들’ 이라 지으려 했지만 야곱이 ‘베냐민’, ‘오른손의 아들’ 곧 ‘능력과 총애 받는 아들’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바꿉니다. 라헬이 야곱의 12번째 아들 베냐민을 낳고 죽은 이후 야곱과 함께 살았던 사람은 레아였습니다. 

헤브론에 가면 아브라함 성지가 있습니다. 이곳은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매장지로 샀던 막벨라 굴이 있는데, 이곳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시신이 묻혔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아내로 함께 이곳에 묻힌 사람은 레아였고 라헬의 무덤은 베들레헴 근처에 있습니다.(창 23:9,19) 

이렇게 레아와 라헬이 서로 시기하여 경쟁적으로 아들 12을 낳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해 12지파의 조상이 되게 섭리하셨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얻지 못했지만 레아는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 ‘유다’(마 1:2)를 출산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야곱은 평생 동안 라헬을 사랑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레아를 택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잇게 하신 것입니다.(35절, 마1:2) 그리고 라헬이 낳은 요셉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 애굽으로 야곱의 자손들을 이주시켜 400년 동안 하늘의 뭇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성케 하셨습니다. 

오직 한 사람 야곱의 사랑을 얻기 위한 두 여자의 아들 낳기 경쟁 끝에 12명의 아들이 탄생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간섭하셔서 이들 12아들을 장차 이스라엘의 12지파로 세우셨습니다. 이 12지파는 신약시대에 12 사도로 이어져 마침내 하나님 나라의 12기초석을 이루게 됩니다.

(계21:14)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하나님 나라에 새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데 그 성전에 동서남북으로 각각 3개씩 열 두 문이 있습니다. 이는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전 세계(‘동서남북’) 모든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열 두 기초석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열 두 사도의 증거 위에 세워진 교회를 뜻합니다.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다시 모든 시대에 구원받은 성도들을 나타냅니다. 요한계시록7:4에,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십 사만 사천(144,000)은 12(완전수)?12?10³(완전수)에서 나온 것으로 전 세계, 전 세대를 걸쳐 예수 믿고 성령의 인침을 받은 모든 성도들을 뜻합니다. 


3. 오늘 본문에서 야곱의 12아들들이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탄생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야곱의 두 아내의 시기와 사랑 가운데 태어났지만 모두 다 소중한 자녀들이었습니다. 사랑에 목말랐던 레아의 몸에서 ‘찬송’이라는 이름의 ‘유다’가 태어났는데 그 유다가 자기 자부와 동침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이들이 위대한 왕 다윗의 조상이 됩니다. 비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오히려 성경은 대를 잇기 위한 그 며느리 다말의 행위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습니다. 

라헬의 몸종 빌하로부터 나온 단을 통하여 삼손이 태어났습니다. 삼손은 블레셋의 빈번한 공격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스러워할 때 이스라엘 사사로 세워져 민족을 구원한 인물이었습니다. 사람들 눈에는 한낱 종의 자녀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먼 미래에 그 한 사람을 통해 이루어질 영광스러운 미래를 보고 귀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인간은 싸우며 시기하며 사사로운 목적으로 자녀를 낳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는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남편에게 시위하는 도구가 되었던 ‘르우벤’은 이스라엘의 장자로, 남편과의 연합을 꿈꾸며 지은 ‘레위’는 하나님과 연합한 지파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이름 뜻대로 장차 이 ‘레위’ 자손들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예배)를 책임지는 거룩한 제사장 지파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저마다 두 여인의 사사로운 시기와 경쟁적인 사랑 싸움에서 태어났을지라도 이들을 장차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어가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은 전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야곱은 임종 전에 이 열두 아들들을 불러 예언적으로 축복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49:1입니다. 

(창49:1)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여기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은 세상 종말에 나타나시는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이 12지파 가운데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12아들들에게 일일이 축복하는데(창49:3-27)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했습니다.’ 

(창49: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십 이 지파라 이와 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야곱은 단순히 자신의 뜻이나 계획에 따라 축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감동케 하셔서 장차 이 12지파의 후손들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따라 예언적으로 축복한 것입니다. 앞으로 이 12지파 후손들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축복들을 이루어갈 믿음의 분량대로 축복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달란트의 비유’(마25:14-20)에서 말씀하셨듯이 하나님께서 배분해주신 그 일이 많든 적든, 맡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작은 일에도 충성한 사람에게는 큰 일도 감당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12명의 아들들과 그 후손들이 장차 감당할 수 있는 사명에 맞게 축복을 베풀었습니다. 

이 12지파에 대한 축복들이 12사도(제자)를 통해 세워지는 교회를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통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 누구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축복, 아브라함의 축복을 계승하는 12지파의 축복들을 함께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7-9을 보겠습니다.

(갈3:7-9)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아십시오. 또 성경은,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이방인들을 의롭게 하실 것을 미리 내다보시고, 일찌기 아브라함에게, ‘모든 이방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는 기쁜 소식을 미리 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이방인들을 의롭게 하실 것을 미리 내다보시고” 이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를 통해 전해지는 복음을 듣고 전 세계 모든 이방인들이 의롭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과 함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을 함께 받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마태복음 1장에 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즉 예수의 족보를 살펴보면,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잘 볼 수 있습니다. 

이 족보 처음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마1:2) ‘이삭’은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 그의 아내 사라가 90세에 출생했습니다. 이는 인간적인 힘이나 능력, 노력 등으로 출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생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도저히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가운데 전혀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음의 태를 열고 이삭이 출생했습니다. 이를 히브리서 11:11-12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히11:11-12)  믿음으로 사라는, 나이가 지나서 수태할 수 없는 몸이었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약속해 주신 분을 신실하신 분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한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과 같이, 또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는 자손들이 태어났습니다. 

‘믿음으로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한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과 같이, 또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는 자손들이 태어났다.’ 는 이 말씀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망권세를 이기고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어떠한 노력이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족보에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다섯 명의 여인이 끼어 있습니다. 즉 다말, 라합, 룻, 그리고 밧세바와 마리아 등입니다. 원래 유대인 족보에는 여자 이름이 오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유대 족보에 오른 5명의 여자 중 라합과 룻, 그리고 다말 등 3명은 이방인이었고, 밧세바와 마리아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게다가 마리아를 제외한 4명의 여인들은 혼인법상 불륜의 관계까지 저지른 타락한 여인들로 불명예스런 과거를 안고 있는 여인들이었습니다. <다말>은 원래 유다의 아들인 ‘엘’의 아내였으나 그 남편이 죽자 아들을 낳기 위한 집념으로 시아비 유다까지 유혹해서 자식을 낳은 집요한 여인이었습니다.(창38:6, 대상 2:4) 

<라합>은 잘 알다시피 여리고 성의 기생이었습니다.(수 2:1-7) 이 <라합>이 여호수아가 파견했던 두 정탐꾼 가운데 한 명인 살몬의 아내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든 것입니다. 

그리고 <룻>은 모압 여자인데 원래 모압 족속의 조상은 롯입니다. 롯이 유황불 심판으로 소돔과 고모라에서 나올 때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어 죽고, 두 딸만 데리고 나왔습니다. 이 두 딸이 아버지의 대를 이을 자식을 낳기 위해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우고 아버지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큰 딸이 낳은 아들이 ‘모압’이고, 작은 딸이 낳은 아들이 ‘벤아미’로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창 19:31-38) 그러므로 <룻>은 근친상간을 통해 퍼진 불륜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불륜의 후손인 룻이 마침 베들레헴에서 이주해온 나오미의 아들과 국제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오미의 남편도 죽고, 룻의 남편도 죽어버리자 룻이 시어미 나오미를 따라 유대 나라 베들레헴으로 따라 들어와 역시 자식을 낳기 위해 근친인 보아스와 결혼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낳은 아들이 ‘오벳’인데 이 ‘오벳’이 바로 다윗 왕의 아버지 ‘이새’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므로 룻은 불륜의 후손인데다 이방인이었음에도 결국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가 된 것입니다. 

<밧세바>는 본래 충신 우리아의 아내로, 다윗이 비겁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우리아를 전쟁 일선에 내보내 파놓은 함정에 빠뜨려 죽이고 빼앗은 여자였습니다. 이들 네 여인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불륜을 저지른 수치스런 여인들, 그리고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가히 이방 여자에, 그것도 명예스럽지 못한 타락과 불륜의 여인들이 들어 있는 세계(족보)에 예수께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죄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고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모든 인간의 장벽을 무너뜨리시고 죄 많은 이 땅에 태어나신 분이심을 말합니다. 이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는 남자나 여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방인) 등 누구나 다 평등하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3:28입니다.

(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는 인종간에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는 모든 인종을 뛰어넘어 남녀노소 모두가 다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유대인만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십니다. 유대 족보에 들 수 없었던 여자들의 이름이 올라 있다는 것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서는 남녀의 차별이 없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모두가 다 소중하고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죄인들이지만 하나님 앞에 다 귀하고 다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예수께서 타락과 불륜의 여인들로 더럽혀진 유대 족보 가운데 태어나신 것은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그대로 취하여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신 겸손하신 분이심(빌 2:5-8)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인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여러분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팎에 있는 죄인들 모두를 다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의 족보에 온갖 종류의 죄인들이 다 올라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인류의 역사가 죄악에 가득 찬 역사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죄인들의 혈통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것은 그만큼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죄인들과 함께 하시며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들이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태어났듯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사연을 안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출생과 삶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과 은혜가 담긴 인생, 아브라함의 축복을 함께 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살게 하십니다. 부

모의 사랑을 받고 태어났든 그렇지 않든, 어떤 지파의 후손으로 태어났든, 부요한 가운데 태어났든 극히 가난한 자식으로 태어났든,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났든 천민의 자손으로 태어났든, 미움 속에 태어났든 사랑가운데 태어났든, 어떤 환경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태어났든,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됩니다. 

자신의 출생의 사연과 그 비밀이 어떠하든지 예수 믿음으로, 삶을 의롭게 하시며, 비천함을 존귀하게 하시며, 없는 것을 부유하게 하시며, 미천한 것을 가장 영광스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랑과 축복이 영원히 함께 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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