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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발을 사슴 같이 (합 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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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바보가 고민에 빠졌다. 그의 고민은 어느 누구도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바보는 계속 고민하다가 자기의 인생을 비관하게 되었고 답답한 마음에 산에 올라갔다. 그런데 산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실망해서 큰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나는 너를 싫어한다.” 그랬더니 산울림이 들려왔다. “나는 너를 싫어한다.” 바보는 산울림에 놀라서 산에 오른 한 사람에게 왜 산이 자신을 싫어하는지 물었다. 그 사람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큰소리로 이렇게 외쳐 보십시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 바보는 그의 말을 듣고 다시 이렇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랬더니 그에게 산울림이 들려온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내 마음에 있다. 기쁨과 즐거움은 어디에 있는가? 내 안에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이다. 맥추감사절은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의 추수감사절이다. 즉 일 년 동안 농사지은 것을 추수해서 드리는 감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리를 거두는 때에 맞추어서 매년 7월 첫째 주일에 맥추감사절을 지킨다. 옛날 보릿고개가 있을 때는 보리가 나는 이 맥추감사절이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 해의 전반기를 마치면서 지난 반년 동안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남은 반년을 시작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절기이다. 오늘 진심으로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자.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남은 반년도 함께 하실 것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자.

하박국 당시의 이스라엘은 강대국 사이에서 이리 저리 휩쓸리며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미 강대국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다. 그리고 그 앗수르도 약해지고 바벨론이 강대국으로 등장했고 남왕국 유다는 앗수르 제국에 이어 바벨론 제국의 위협을 받고 결국은 바벨론에 점령을 당하게 되었다.

이런 때에 남 유다는 신앙적, 도덕적 타락이 극에 달해 있었다. 통치자들은 강대국에게 조공을 바치기 위해 백성들을 착취하고 압제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들을 잡아 죽이기까지 했다. 백성들의 신앙을 지도하는 제사장과 서기관들도 형식적 신앙에 빠져 있었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만 생각했다. 그래서 사회는 악인들이 득세하고 의인들이 고통을 당하는 현실이었다.

이런 때에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서 하나님이 대답하시는 것이 1,2장의 내용이다. 하박국의 첫 번째 질문은 “세상에 이렇게 죄악이 많고 악인이 득세하는데 하나님은 가만히 계십니까? 공의의 하나님은 왜 악인들을 속히 징벌하지 않으십니까?”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악인들의 죄를 결코 묵과하지 않으실 것이며 때가 되면 이방 민족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인 남유다의 죄를 심판하시겠다고 하셨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이 범죄해서 그 죄 때문에 징벌을 받는다고 하지만 그들보다 더 악한 백성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힙니까? 그리고 의인을 악인과 함께 심판하십니까?”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해서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실 뿐이며 바벨론 족속도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런 중에서도 의인은 그가 가진 믿음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다. 2:4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런 하나님의 대답을 들은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한다.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새번역 “2 주님, 내가 주의 명성을 듣습니다. 주님, 주께서 하신 일을 보고 놀랍니다. 주의 일을 우리 시대에도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시대에도 알려 주십시오. 진노하시더라도, 잊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공의로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들을 믿음에 따라 살게 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놀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속히 그 일을 하시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중에도 긍휼을 베푸셔서 구원을 이루시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이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한다고 고백한다.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절망과 좌절에 빠져 있다가 이제는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그런데 사실 그가 지금 처해 있는 현실은 전혀 기뻐할만한 상황이 아니다.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그는 지금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다. 창자가 흔들리고 목소리가 떨렸다. 뼈에까지 두려움과 공포가 사무쳐서 앉으나 서나, 집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부들부들 떨고 있다. 왜인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와 심판이 임할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시고 또 원수를 무너뜨리시는 일이기 때문에 감사할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알려주신 그 진노와 심판의 내용이 너무나 끔찍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삶의 환경과 상황도 전혀 기뻐하고 즐거워할만 하지 못하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다.”고 했다. 여기 나오는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와 감람나무는 그 당시 가장 좋은 과실수였다. 그러므로 이 나무들에 열매가 없다는 것은 그 땅이 완전히 황폐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밭에 식물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다’는 것도 역시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핍절한 상태를 말한다. 흉년과 기근 때문에 밭에서 거둘 곡식이 없으니까 살기 위해서 양도 소도 다 잡아먹은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살기 위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절박한 상태이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기뻐하고 즐거워하겠다고 말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즉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악인을 묵과하지 않으시고 그 죄를 따라 공의롭게 심판하실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인생의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가 되면 반드시 악인과 그 죄악을 판단하시고 심판하시고 그 행위대로 갚아주실 것이다. 그래서 의인들의 억울함과 아픔과 약한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실 것이다.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둘째, 하나님은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그는 하나님 때문에 즐거워한다고 했다.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가?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즉 하나님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지 않으시고 그의 믿음을 따라 구원해 주실 것이 분명하기에, 믿음으로 사는 의인들을 지켜주시고 구원해 주실 것이기에 즐거워하는 것이다. “나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신 약속대로 우리가 죄와 불의가 만연한 사악한 세상에 살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믿음으로 살면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것을 믿기에, 그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오늘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셋째,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시기 때문이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하나님의 나의 능력이 되신다는 것이다. 나는 힘이 없고 연약해서 쓰러지고 넘어지고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힘이 되시고 능력이 되어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면 어떻게 되는가? “19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사슴은 뿔이 아름다운가 발이 아름다운가? 뿔이 아름답다. 그러면 뿔이 중요한가 발이 중요한가? 사람들에게는 녹용이 중요하겠지만 사슴에게는 발이 중요하다. 그 발로 뛰어다니기 때문이다.

하루는 사슴이 숲속 호숫가에서 물을 먹다가 물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 자기의 뿔이 그렇게 아름답고 멋지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문득 자기 발을 내려다보니 무척 못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실망을 하고 자기 발이 싫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숲속에서 포수가 총을 쏜다. 그래서 쏜살같이 도망을 치는데 그만 뿔이 나뭇가지에 걸려서 잡히고 말았다. 뿔이 좋은가 발이 좋은가? 뿔이 중요한가 발이 중요한가? 아니다. 발이 중요하다. 발이 비록 못생겼지만 그 발에 힘이 있어서 높은 곳으로 도망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면 내 발에 힘을 주셔서 사슴처럼 저 높은 곳으로 달려 올라갈 수 있게 해주신다. 시편 18:32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케 하시며 33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34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그러면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첫째, 나로 높은 차원의 신앙으로 올라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고난과 역경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하늘의 비밀을 알려주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셔서 지금보다 높은 차원의 신앙의 길로 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믿음의 힘이 있는 사람은 고난의 때에 신앙이 더 좋아진다. 

둘째, 내게 힘을 주셔서 환경과 상황을 뛰어넘게 해주신다. 즉 환경과 상황에 매이거나 구애받지 않고 앞으로 달려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사슴의 발은 힘이 있어서 자기를 잡으려는 위험이 있을 때에 모든 것을 뛰어 넘어 높은 곳으로 달려 올라갈 수 있다. 시편 18: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을 의지하면,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면 어떤 환경과 상황이라도 뛰어넘고 힘 있게 달려가게 해주신다.

 셋째, 나를 모든 사람들에게서 높여주신다는 것이다. 사슴이 위험한 맹수를 피해서 높은 바위에 올라가 서게 되면 다른 모든 동물들이 그 사슴을 보고 부러워하며 칭찬한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면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높여주시고 내게 영예를 주신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믿음으로 사는 자가 승리하고 구원받는 증거로 삼으신다. 시편 91:14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1930년대 미국에 대공황이 닥쳤을 때 무정부주의자인 클래런스 대로라는 유명한 무신론자가 있었다. 그는 미국이 경제 공황에 들어가자 자기의 무신론을 선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연할 때마다 “여러분, 이 사태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이 어려운 상황을 우리에게 주시겠습니까? 우리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만 보아도 분명히 하나님은 없습니다”고 했다. 그리고 정부를 비판하면서 무정부주의적인 자기의 신념을 선전했다.

하루는 흑인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무신론 강연을 하고 있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잃어버렸습니다. 꿈과 재산을 잃었고 노래까지 잃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소리치자 갑자기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한 할머니가 손을 번쩍 들면서 “저는 노래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어떻게 우리가 이 지경이 됐는데 노래할 수 있단 말입니까?”했더니, 그 할머니는 큰소리로 “예수님 때문에 노래할 수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런데 할머니 한 사람이 자신만만하게 외치자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맞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 때문입니다”라고 동조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한 무신론자가 하나님이 없다고 외치던 강연장의 분위기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인정하는 군중들로 인해 바뀌었고, 그는 이런 군중들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여러분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고민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 살고 있는가? 아니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살고 있는가? 고민하고 괴로워한다면 무엇 때문인가? 그리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면 무엇 때문인가? 이렇게 살기 힘들고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무엇으로 어떻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살 수 있는가?

하박국 선지자는 죄악과 불의로 가득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가까이 오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한다고 고백했다. 무엇 때문인가? 하나님 때문이라고 했다.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환경과 상황을 보고 절망하고 좌절하지 말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가 행하실 구원을 보고 희망을 가지라.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기뻐하라. 그가 나의 힘이 되셔서 내 발을 사슴 같게 해주신다. 그래서 높은 곳에 다니게 해주신다.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을 의지해서 그 힘과 능력으로 사슴처럼 높은 곳으로 뛰어 올라 힘차게 달려가라.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 때문에, 내 발을 사슴 같게 해주시는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믿음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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