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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염려하십니까? (마 6: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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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염려하십니까? (마 6:25-34)


우리가 흔히 하는 얘기중에 걱정도 팔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걱정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는데 걱정에 빠져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어느 어머니가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한 아들은 우산장사를 하고 한 아들은 짚신 장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늘 두 아들의 생활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느날 비가 많이 왔습니다. 비가 오니까 짚신장사아들 짚신하나 못팔아 먹겠다. 뭘 먹고 사냐하며 걱정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다음에 해가 바짝 나는 것입니다. 또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우산장사 아들 우산하나도 못팔겠다. 어떻습니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데 이 어머니는 늘 안좋은 쪽으로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비가오면 반대로 우산장사 아들 돈 많이 벌어서 좋겠다. 해가 나면 짚신장사아들 돈많이 벌어 좋겠다. 하고 생각하면 될텐데 늘 반대로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염려란 습관적이고 반복적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어느 장로님은 나이가 관연한 딸이 하나 있어서 늘 입만열면 우리 딸 시집보내 달라고 인사하는게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목사님이 좋은데 다리를 놔서 좋은 신랑감을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하는 날 목사님은 너무좋아서 장로님 이제 다리 쭉 뻗고 주무실 수 있겠습니다. 하고 40넘은 딸 시집보내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했는데 장로님 얼굴에 아직도 기쁨이 없습니다. 장로님 무슨 걱정이 또 있으십니까. 목사님 나이가 40은 넘어 시집은 갔는데 이게 애나 날수 있는지 또 걱정이 됩니다. 이래도 걱정이고 저래도 걱정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걱정도 팔자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염려해서는 안될까요? 왜 성경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왜 염려해서는 안될까 염려의 무익함 때문입니다. 염려란 아무도움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어머니가 아들을 군대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보내놓고 걱정이 되어서 제대로 밥은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병은 안 났는지 걱정이 되어서 어머니도 잠을 못잡니다. 어머니가 병이 났습니다. 아들만 생각하면 밥맛이 없습니다. 군대에 보냈으면 군대에 맡긴 것입니다. 걱정한다고 해서 아들이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을때는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염려는 무익한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27절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키가 작아서 걱정이 된다. 나는 키가 너무작아. 염려한다고 키가 커집니까. 염려하면 키가 더 작아집니다. 염려해서 도움이 안됩니다.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염려란 어떤분이 말하기를 흔들의자랑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 어르신들이 식사하시고 소화시키시려면 흔들의자에 흔들흔들 합니다. 흔들의자에서 하루종일 흔들흔들한다고해서 의자가 1센티라도 앞으로 나갑니까? 못나갑니다.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염려란 아무리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염려란 내가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려하는 것을 톱밥을 켜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하는 분도 계십니다. 염려의 무익함 때문에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25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의식주 때문에 염려하지 말아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우리는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자녀를 낳았는데 이 자녀가 6살쯤 되었는데 이상한 버릇이 있습니다. 앉아서 종이면 보면 종이를 찢습니다. 어린이집에 가서도 종이만 보면 다 찢어버립니다. 애가 이상하다 왜 이리 찢는 것을 좋아할까. 만지면 다 찢어버리니까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애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나보다해서 정신병원에 유명한 곳을 많이 찾아 다녔습니다. 

그래서 이런조사 저런조사 다 해보고 실험도 해보고 육체적으로 결함이 있는지 전염병은 없는지 각종 조사를 다 해봐도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쳐지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동네의 정신과 의사가 있는데 이제 큰 병원 가봐야 볼것도 없고 동네 병원이나 가봐야겠다하고 갔더니 이 의사가 아이를 가만히 관찰하고 지금까지 치료한 전력을 듣더니 애 눈을 가만히 쳐다보고 한마디 합니다. 얘야 앞으로는 종이 찢지마 하고 한 마디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때부터 애가 종이를 찢지 않는 것입니다. 찢지말라는 한마디에 다른 의사는 그말을 아무도 안했습니다. 얘가 왜 찢지, 왜찢지 하고 이리저리 해봤지만 찢지말라는 한 마디에 애가 그 버릇을 고쳤더라는 것입니다. 

왜 염려할까. 걱정할 것 없습니다. 염려하지 말라면 염려안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염려의 시작은 신앙의 끝입니다. 신앙의 시작은 염려의 끝입니다. 염려안하면 되는 겁니다. 염려의 무익함 때문에 염려하면 안됩니다. 

두 번째로 염려는 건강을 해치기 때문에 염려하면 안됩니다. 염려하면 건강이 나빠집니다. 그래서 집안에 어려운일이 있고 걱정거리가 생겨서 몇일동안 그것 때문에 신경쓰고 해보십시오.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이 안받습니다. 피부가 안좋아져서 설화수고 뭐고 아무리 좋은 것을 써도 안됩니다. 잠을 잘자고 마음이 편해야지 예뻐지고 피부에 화장이 잘되는 것입니다. 머리 세는 것도 안그랬는데 세달동안 어려운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머리가 다 세버렸습니다. 머리세는것보니 무서웠습니다. 걱정거리가 있으면 머리가 순식간에 세 버립니다. 저는 염색을 해서 그렇지만 집사람이 머리카락이 세 가는 것을 보니까 저 때문에 그런거 같습니다. 머리카락 세는것도 염려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염려하는게 신경적인 것이지만 육체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염려많이 하시는 분한테 오기 제일 쉬운것 신경성 두통입니다. 신경성두통은 염려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예민하기 때문에. 또 신경성 위염, 먹고나면 별것도 없는데 마음으로 소화가 안되고 속이 쓰리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염려에서 오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마음이 즐겁고 기쁘고 감사하면 보약먹는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내 길을 지도하시리라 묵상했습니다. 네가 여호와를 경외하고 악을 버리면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할 것이다. 뼈가 골수로 가득차서 건강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골수가 텅비면 골다공증에 걸리는 것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한다. 뼈가 마르면 나중에 활동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질병보다 더 무서운것은 질병에 대한 염려라고 합니다. 

사실 암보다 무서운 것은 암에대한 공포입니다. 암걸리면 죽는다는데 암에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암걸려도 10명중에 6명은 5년이상 산다고 합니다. 더구나 갑상선 이런것은 암으로 치지도 않습니다. 조기 발견하면 암은 90프로 이상 완치된다고 합니다. 너무너무 암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암에대한 공포 때문에 사람이 더 죽어가는 것입니다. 

염려라는 말은 원어가 메립나오 이것은 메리조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이 말의 뜻은 분열되다. 걱정많이 해 보십시오. 정신이 분열되어서 집중이 안됩니다. 그래서 설거지 하면서도 딴 생각하시는 분들은 누가와서 불러도 못듣습니다. 자기 생각에 빠져서 염려에 깊이 빠져서. 그래서 집에 우환이 있을 때 공장에 가서 사고가 많이 나는 것입니다. 손이 감겨 돌아가기도 하고 다른 생각하다가 운전하다가도 다른 생각하다가 사고가 나는 것입니다. 정신이 분열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두쪽으로 갈라진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염려란 말은 물어뜯는다라는 원어의 의미가 있습니다. 마치 짐승이 목을 꽉물어 뜯어 질식시켜 죽이는 것 같은, 염려하게 되면 서서히 자신이 죽어가는 것입니다. 염혼과 육체가 서서히 죽어갑니다. 노화가 진행되어지고 모든 육체의 기능은 마비되어가는 것입니다. 무서운 것입니다. 염려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1장 34절에 보면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 지고 둔하여 진다는 말은 감각을 잃어버린다. 온몸에 감각을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기력해 지는 것입니다. 영혼의 기능이 점점 마비되어 가는 것입니다. 염려란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염려란 건강을 해치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말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염려하는 사람은 염려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한시도 염려안하면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습관적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분은 돌아가신 남편 때문에 염려하는 분도 있습니다. 잘계시나. 별걸다 걱정을 합니다. 돌아가신 분이야 돌아가신분이 알아서 할것이지 내가 왜 걱정을 합니까. 별걸다 염려합니다. 염려는 건강을 해치고 무익하다. 

염려는 왜 해서는 안되느냐? 염려는 불신앙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염려의 근원은 따지고보면 불신앙입니다. 30절 31절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여기보니까 왜 염려하느냐 믿음이 작은자들아. 

염려라는 것은 불신앙에서 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작은자들아. 다시말하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걱정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나. 이게 하나님이 걱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이런일을 하실수 있을까. 하나님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을까. 그게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작은자들아. 염려의 출발은 불신앙에서 온다. 믿지 못하는데에서 옵니다. 

오늘 성경은 두가지 예를 듭니다. 저 공중에 날아가는 새를 봐라. 새는 누가 거둬들이지도 않고 누가 먹이지도 않고 누가 입히지도 않아도 누가 기릅니까? 천부께서, 아버지께서 하나님께서 그 새를 다 먹이시고 입히시는 겁니다. 새한테 먹이 줘 보셨습니까. 참새가 다 자기가 알아서 합니다. 하나님이 다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들에핀 백합화를 봐라. 그 백합화가 꽃핀 모습을 보면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왕 중에 가장 부유하고 영화로운 왕이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비싼옷을 입었겠습니까. 그런데 솔로몬의 영광보다 들에핀 백합화의 영광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들에핀 백합화는 누가 키우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고 관리하시는 백합화를 보아라. 하다못해 불쏘시개로 살아지는 들꽃들도 하나님이 돌보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하물며 너희일까보냐는 무슨의미입니까? 내 자녀들 너희를 당연히 돌보지 않겠느냐. 그러니 염려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의심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여러분의 삶을 책임지실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인이 어찌 그 태어난 자식을 잊겠으며 어떻게 엄마가 그 아이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비정상아닙니까. 어느집에 아이가 하나있는데 이 아이가 잠을 못잡니다. 잠을 못자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왜 걱정이 되니? 내일 아침 엄마가 나 밥을 안주면 어떻게 해요? 오늘 초등학교 입학을 했지만 내일 엄마가 마음바껴서 학교가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나 집 나가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이런 자식이 있다면 정상입니까 비정상입니까? 엄마가 나를 낳았으니까 지금까지 나를 사랑해준것처럼 사랑해줄꺼야. 내 삶을 책임져 주실거야. 그런 어머니에 대한 믿음이 있고 신뢰가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내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이시라면 내 앞으로의 삶도 먹이시고 입히시고 책임지실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이 있으면 염려는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동안 광야생활했을때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이 물이 없다고 하니까 반석을 쳐서 생수가 나오게 했습니다. 먹을게 없으니까 하나님이 아침마다 만나를 내리셔서 만나의 뜻은 이것이 무엇이냐인데 눈송이 같은 것인데 그것을 걷어다가 하루종일 식사를 했습니다. 또 고기가 먹고싶다니까 동풍을 불어오게해서 메추라기를 불어오게 해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그들이 홍해앞에 걱정하고 있으니까 홍해를 가르셔서 마른땅같이 건너가게 했습니다. 이런하나님은 부르면 무엇을 걱정하고 뭘 염려하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빌립보 4장19절에 보니까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평강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쓸 모든 것을 채우실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살아계신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염려를 몰아내는 것입니다. 마치 빛이 들어오면 어둠이 물러나듯이 믿음이 있는 곳에 염려는 접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염려하지 않고 살수 있을까? 염려대신 기도해야 합니다. 염려대신 기도하자. 염려는 여러분의 기도의 제목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기도하고 잊어 버리십시오. 기도는 하나님앞에 맡기도 내 문제를 하나님앞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분께 아뢰고 맡기는 것이 기도입니다. 빌립보 4장 6절에 보니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일에 기도와간구로 너희구할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 우리 이성에 뛰어난 지혜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성경은 염려대신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에게 염려는 없어도 기도의 제목은 많은 줄 믿습니다. 기도의 제목이 많은 겁니다. 기도하면 되는 겁니다. 기도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하나님앞에 아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가끔 어릴때도 그랬지만 목욕탕에 가면 그런말 써 붙여 놨습니다. 귀중품은 주인에게 맡기십시오. 주인에게 맡기지 않은것은 분실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주인백. 여러분이 은행가서 돈을 오백만원 찾아가지고 목욕탕에 마침 가려고 갔다. 그런데 주인한테 맡기지 않고 옷장에 보관해 뒀다. 그러면 걱정됩니다. 어떤 놈이 오백만원 꺼내가는 건 아닌가. 그래서 목욕하다가 쳐다보고 쳐다보고 쳐다봅니다. 걱정됩니다. 염려됩니다. 그러나 주인에게 맡기면 주인에게 맡긴 증서하나 가지고 있으면 나갈 때 찾아가지고 가면 되는 겁니다. 여러분의 염려를 주님께 맡기면 떠날 줄 믿습니다. 맡기면 주님의 문제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너희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를 돌보심이니라. 옛날성경은 권고하심이라였는데 돌보심이라. 하나님이 너를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너희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라. 염려대신 기도하고 기도란 바로 주님께 아뢰고 주님께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맡기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도 바꿀수 있는게 있고 바꿀수 없는게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꿀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너무 키가 작아. 키좀 크게할 수 없을까. 못바꿉니다.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아버지가 부자면 좋겠는데 너무 가난해. 이건희집처럼 부자집에 태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바꿀수 있습니까.? 못바꿉니다. 못바꾸면 받아들이십시오. 

어차피 부모는 바꿀수 없는 겁니다. 나는 성이 노씨인데 노씨가 싫어. 김씨면 좋겠어. 김씨로 바꿀수 있습니까? 못바꿉니다. 못바꾸면 받아들이십시오. 바꿀수 없는 걱정하지마시고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나 바꿀 수 있는 건 바꾸십시오. 너무 과식해서 밥을 너무 좋아해서 두 그릇씩 먹잖아. 그런분들 조심하셔야합니다. 밥을 풀때 조금 반그릇만 퍼달라고 그러십시오. 그 밥먹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한 숟갈 더 먹더라도 두 그릇씩 두고 드시지 마십시오. 어떤 집은 양푼에 넣고 먹는 집 있습니다. 그럼 두그릇 먹었는지 세그릇 먹었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먹는대로 먹으니까 조절이 안됩니다. 할 수 있는일은 노력하십시오. 그러나 할 수 없는건 바꿀수 없는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때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지실 줄 믿습니다. 

또 우리가 때로 내려놔야 할 기도의 제목들도 있습니다. 어떤 집사님은 남편 전도하는 것이 기도 제목이였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작년하고 다르게 남편에게 잘하는 겁니다. 남편앞에서 웃고 음식도 최고로, 밥도 최고로 맛있게 옷도 다려서 파리가 넘어질정도로 반짝반짝 다려주고 최대한 서비스를 잘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이러면 남편의 마음이 감동되겠지. 남편은 실실대고 주일에 그렇게 졸라도 교회를 안가는 겁니다. 6개월 지나고 1년되었는데도 교회를 안나갑니다. 잘 해줬는데 내가, 그때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남편이 미워지는 겁니다. 남편이고 뭐고 필요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공들였는데 저런 인간이 어디있어? 이러면서 자꾸 마음에 실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마음이 우울해지고 교회가는 것도 재미없고 행복해 지지 않습니다. 왜 이리 인생이 불행한지 모릅니다. 남편하나 구원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 보잘것 없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때 번쩍 떠올랐습니다. 이러면 안되겠다. 내가 끌고가면 안되겠다. 하나님께 맡기고 내려놔야지 그래서 어느날 하나님께 나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남편이 교회에 나오는 것, 제가 소원하는 기도고 하나님께서도 원하시는 것인데 제가 이제 이것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하나님께 맡겨드립니다. 저는 늘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며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을 바꿨습니다. 기도는 하되 마음은 늘 행복으로 바꿨습니다. 늘 즐겁게 감사하게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웬걸요. 2년도 안돼서 어느계기에 남편이 교회에 나오게 된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목적으로 이것을 이루어야 하는데 안되면 괴로운겁니다. 우리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데 안되면 괴로운 겁니다. 그거 이루기위해 기도하는데 그게 늘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느순간에 내려 놓으십시오. 하나님앞에 내려 놓으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우리아들이 그 좋은 대학에 들어가도 좋지만 못들어가도 저는 행복합니다. 못들어가도 여전히 하나님 사랑하고 저는 하나님 찬양할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시라는 겁니다. 내려놓으라는 겁니다. 그때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가운데 역사하실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계속 붙들고 있으면 괴로운겁니다. 고통스러운겁니다. 행복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에 즐거움이 없습니다. 거기에 매여 있기 때문에 내려놓으십시오. 십자가앞에 내려놓으시고 주님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자유함을 얻으세요. 그리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방법으로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실줄 믿습니다. 

또한가지 있습니다. 염려하지 않는 비결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33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염려하지 말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 바꿔말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이게 먼저 구할것입니다. 삶의 우선순위입니다. 하루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겁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 일어나면 기도하고 말씀묵상, 이것이 하나님과의 우선순위가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을 먼저 찾되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우선적으로 구하라.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영적으로 능력으로 통치하시는 영역, 그게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경험됩니까. 내가 예수를 믿는 순간 내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평화의 나라, 내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가 우리 가정으로부터 점점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는 어떻게 시작이 됩니까. 내가 누군가에게 복음을 영접함으로 복음을 전해짐으로 그 나라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복음을 위해 살아가라.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 그 일을 너희가 먼저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 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공의, 공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자세입니다. 이 땅에 살 때 공의롭게 사십시오. 공의롭게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복음을 증거하며 사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먼저 구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빛과 소금된 삶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빛이요 소금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빛은 무엇입니까? 어둠을 비추는 복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죄악의 어둠을 비치는 복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소금이라는 것은 부패를 방지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의로운 삶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이 모든 것을 내가 다 채울 것이다. 그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먹고, 마시고, 입는 것 그것 때문에 걱정하시지 마시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하나님의 복음과 하나님의 의를 위해 내 삶을 드리고 그것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여러분의 의식주를 책임지실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게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어떤 선교사가 아프리카에가서 특별한 후원도 없이 한 30년동안 열심히 많은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어느분이 만나서 물었습니다. 선교사님은 변변한 후원도 못받으면서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일을 했습니까. 그는 말합니다. 내 후원자는 마태복음 6장 33절입니다. 나는 이 선교지에 와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내 전심을 다해서 노력할 때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채워주셨습니다. 이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의 나라와 그의 복음을 위해서 열심을 다할 때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겁니다. 

어찌보면 교회도 그렇습니다. 우리교회가 재정이 더 늘어야 하는데 이런 이야기 많이 합니다. 교회가 더 부흥되어야 하는데 그게 부흥되려고 부흥되는것이 아니고 헌금많이하라고 해서 헌금 많이 하는게 아닙니다. 방법은 주의 나라와 주의 의를 위해서 교회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그 교회가 전력을 다할 때 하나님이 그 교회에게 부흥의 선물도 주시고 재정의 축복도 주시고 교회에 은혜와 기쁨도 더하실줄 믿습니다. 그러니 교회의 방향은 그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교회가 헌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 교회가 앞장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내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빌립보 1장 6절에 보니까 너희안에 착한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우리가 헌신하고 노력하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속에 시작하신 선한일을 마지막에 완성하실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는 무익한 것입니다. 건강을 해칩니다. 불신앙에서 나왔습니다. 오직 염려대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으로 하나님 주시는 놀라운 축복과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복된 새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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