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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구영신]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사 43: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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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사 43:18-21)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Do not remember the former things, Nor consider the things of old.
19 Behold, I will do a new thing, Now it shall spring forth; Shall you not know it? I will even make a road in the wilderness And rivers in the desert.
20 The beast of the field will honor Me, The jackals and the ostriches, Because I give waters in the wilderness And rivers in the desert, To give drink to My people, My chosen.
21 This people I have formed for Myself; They shall declare My praise.

2010년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매 년 이 맘 때가 되면 마음이 흥분되거나 기쁘다기 보다는 뭔가 착잡한 마음이 듭니다. 그 이유는 올 한 해를 우리가 충분히 선용하지 못했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성경에 보면 “세월을 아끼라. 이는 때가 악하니라(Make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in these evil days., 에베소 5:16, 골로새서 4:5)”고 합니다. 같은 말씀이 NKJV에는 “redeeming the time”이라고 했습니다.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시간을 도로 사오면서” 라는 뜻입니다. 이미 지나가 버리고, 놓쳐 버린 시간들을 그냥 버려두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주고 사서라도 만회하라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아까운 시간들을 낭비했습니다. 충분히 다른 사람들을 도와 주지 못했습니다. 나의 도움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과 같이 있지 못했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살려서 충분히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했고,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기회를 살려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자신들을 돌아 보면, 더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살려서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일를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내 자신의 일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내 자신이 먼저였고, 우리 가정이 먼저였고, 학교 일이 먼저였고, 비지네스가 먼저였지, 하나님은 두 번째, 세 번째였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를 구하라(마태복음 6:33)”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외면서도 나의 의를 먼저 구했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는 항상 뒷전에 밀어 두었습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후회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똑바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의미 없이 반복되는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런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 주신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하고, 이제는 우리의 결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새로운 일을 행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희랍어에  시간을 뜻하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있습니다. “크로노스”는 그냥 일반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시간이지만, “카이로스”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해 들어 오시는 결정적인 사건으로서의 시간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가 여러분과 저의 인생 속에 하나님께서 들어 오셔서 내 안에 새로운 일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카이로스”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내 인생은 2010년 12월 31일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For nothing is impossible with God(하나님과 함께라면 불가능한 것이 없다., 누가복음 1:37)”이라고 말했을 때, 마리아는 그 말씀 앞에 순종의 무릎을 꿇고 "I am the Lord's servant. May everything you have said about me come true(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저에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고 말씀 드렸을 때, 마리아의 삶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새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Nothing is impossible with God"이라는 말을 "Impossible is nothing with God"라고도 표현하더군요. 좀 뉘앙스가 다른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아들이 귀신에 들려서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예수님께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할 수만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믿습니다! 제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십시오(I do believe, but help me overcome my unbelief!, 마가복음 9:24)

하나님께서 우리 생애 가운데 행하실 “새 일(New Thing)”은 첫째로, 이전의 모든 일과 확실하게 구별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 일”입니다. 그 새 일은, 이전의 모든 일을 생각하지 않을 만큼 내 삶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미국의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Robert Edwin Peary, 1856-1920)라는 사람이 개 썰매를 타고 1909년 4월 6일 북극점에 최초로 도달했습니다. 그가 한 일 중의 하나가 북극점의 바다의 깊이를 재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같으면 과학적인 장비를 이용해서 손쉽게 바닷속 깊이를 잴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원시적인 장비로 깊이를 측정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긴 줄 끝에 무거운 추를 달아서 2-3m나 되는 얼음을 뚫고 줄을 달아 내리는 것입니다. 그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며칠이고 계속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피어리는 일기 책에 “오늘은 2,000m까지 줄을 내렸다. 아직도 바닥에 닿지 않았다. 북극의 바다는 2,000m 보다 깊은가 보다”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북극의 바다가 2,000m 보다 깊으니까 그 이전에 잰 기록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북극에서 가장 깊은 곳은 무려 4,290m나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계속 반복되는 측정을 통해서 알아 낸 것입니다. 3,000m를 넘고, 4,000m를 넘고 드디어 4,290m까지 줄 끝에 달린 추가 내려가서 바닥에 닿은 것입니다. 4,290m에 도달할 때까지 그 전에 잰 모든 기록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내 생애 가운데 놀라운 일들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고,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전의 모든 일을 기억하지 않고, 생각하지도 않을 만큼 엄청난 “새 일”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새 일"은 우리 크리스천의 삶의 소망의 이유가 되고, 기쁨의 이유가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계시는 일은 우리의 경험이나 상식을 통해서는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놀라운 일입니다. 굳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새 일”을 알아듣기 쉽게 말한다면, 그것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일과 같습니다. 

오늘날에는 하도 장비가 발달해서 광야에 길을 내는 일이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막에 강을 내는 일도 기술과 장비와 경비만 주어진다면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사야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그런 일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광야에 길이나고, 사막에 강이 흐르면 사람만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광야에 사는 들짐승, 승냥이(jackals), 타조(ostriches) 같은 들짐승들도 하나님을 존경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The beast of the field will honor Me”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어느 날 광야에서 벌어진 광경을 그려 보십시오. 광야에 사는 들짐승들이 어느 날 메마른 광야를 흐르는 강물을 마시면서 “내 생전에 이런 날을 보는구나! 정말 하나님,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새 일”을 행하시는지 그 이유가 21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찬송을 받으시려고 “새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같은 의미로 20절에는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제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을 통해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영원히 배고프지 않고,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새 일”을 행하신다고 합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 행하실 그 “새 일”은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19절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NKJV에는 이 말씀이 “Behold, I will do a new thing, Now it shall spring forth; Shall you not know it?”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은 먼 장래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여기 저기서 벌써 “새 일”의 조짐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현대어 성경에는 “보라, 내가 이미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다. 그 일이 이미 새싹처럼 돋아났는데 너희는 아직도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보스턴의 2월은 아직 춥습니다. 봄이 되려면 한 달이나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겨우내 잎이 떨어진 메마른 가지에 물이 오르고, 새싹들이 움트기 시작합니다. 벌써 봄이 시작되었다는 싸인들이 여기 저기에서 나타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직 매서운 바람이 불고 싸늘한 2월인데도 이미 봄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새 일”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여전히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절망적인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의 싸인들이 여기 저기에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 싸인들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려 놓으십시오. 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새 일"이 무엇인지 말씀 드리지 않고 open-ended로 남겨 두려고 합니다. 내가 네 인생 가운데 “새 일”을 행하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여러분 인생 전부를 내려 놓으십시오. 그리고, 말씀 드리십시오. “주님, 제 삶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전부 제가 생각하고 계획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거든요.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주님, 지금 제 삶이 주님의 마음에도 들지 않는다는 것 잘 압니다. 주님, 모두 허물어 버리세요. 그리고, 제 인생을 새롭게 만들어 주세요. 이제는 제 생각대로가 아니라, 주님의 생각대로 제 인생에 새 판을 짜 주세요."
 
이런 고백으로 여러분 앞에 놓인 2011년 한 해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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