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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심령이 가난한 자 (마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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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 (마 5:3)


얼마 전, 어느 교도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짧은 10분간의 예식이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신부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신랑은 죄수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신랑은 절도혐의로 출소하기까지는 아직 4년이나 남은 죄수였고, 신부는 말기 암환자였습니다. 앞으로 한 달 정도 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인데,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기에 단 하루만이라도 결혼하여 부부가 되고 싶다는 이들의 간절함을 안타깝게 여긴 교도소측에서 결혼식을 하도록 배려해 준 것입니다. 

이 결혼식에는 수 백 명의 하객들이 참석했는데, 교도소의 교도관들과 두 사람의 사연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신부는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웨딩 카펫을 걸어왔지만 입장 도중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체력이 소진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신랑이 재빨리 다가가 신부를 업고 주례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결혼식은 서둘러 10분 만에 끝내야 했습니다. 신부가 앰블런스로 병원에 가야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신랑이 절도범이 된 이유는 신부의 살인적인 암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그 치료비를 마련하고자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다. 1시간 동안 허락된 결혼식 시간이 신부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10분 만에 결혼식이 마무리 되었지만, 신부를 업고 결혼식장을 나온 신랑은 “죽기 전에 그녀의 평생의 꿈을 이루어주어서 다행입니다.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함께 있어주진 못하겠지만 부부가 되었기 때문에 행복합니다”고 말해서 주위에 듣는 사람들에게 더욱 쓸쓸함을 남겼다는 이야기입니다. 죄를 지은 것은 잘못된 것이고,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어느 누구도 이 가슴 아픈 사랑에 돌을 던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하신 ‘팔복’의 말씀을 보며, ‘참 행복의 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참된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에 있다는 것입니다. - 성서학자들은 팔복의 말씀을 ‘산상수훈의 열쇠’라고 부릅니다. 그 중에 ‘일복’인 ‘심령이 가난한 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오늘 팔복 중에 이 일복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일복의 말씀은 팔복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팔복을 천국가는 사닥다리라고 한다면 이 사닥다리는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그는 그리스도인 중에 가장 으뜸입니다. - 심령이 가난해야 자신의 죄를 인해 애통하게 됩니다. / 심령이 가난해야 성품이 온유하게 됩니다. / 심령이 가난해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됩니다. / 심령이 가난해야 남을 긍휼히 여길 수가 있습니다. / 심령이 가난해야 마음이 청결해 집니다. / 심령이 가난해야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됩니다. / 심령이 가난해야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 

여러분, 심령이 가난해야 고난 가운데서도 행복의 뜻을 깨달아 가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국에 LSE(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 런던정치경제대학)라는 대학이 있습니다. 그 대학의 로버트 우스퍼 교수가 몇 년 전, 세계에서 54개국을 상대로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도를 조사해서 국가별로 그 순위를 매겨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그 내용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는데, 그것은 그 나라의 경제와 그 나라 국민의 행복도는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 지수가 높은 국민이 어느 나라냐 하면 방글라데시입니다. 방글라데시는 세계가 다 걱정하는 나라 아닙니까? 가난해서 굶어 죽는 사람이 있는, 그래서 비참함이 있는 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거기가 행복도 1위입니다. 잘 사는 나라 미국은 46위입니다. 아시아의 경제대국 일본은 44위입니다. 

참고로 2위는 아제르바이잔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나라요, 3위가 나이지리아, 4위가 필리핀이요, 우리가 못 사는 것 같이 생각하는 인도가 5위입니다. 경제 강국들은 전부 40위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우리나라는 몇위로 나왔는지 아십니까? 그 조사결과로는 23위입니다. 

뭘 말하는 것입니까? 돈과 행복, 경제와 행복지수가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셋방 살던 사람이 셋방살이 면해보자고 열심히 노력해서 드디어 자기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행복해진 것입니까? 아님. 경제가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저희 아버님이 서울 금호동이라는 곳, 산동네에 조그마한 집터를 사서 새로 집을 지어 이사를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새 집이 좋아서 잠을 못잤습니다. - 인생의 가치나 행복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고 존재의 문제입니다. 

하나님나라의 가치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환경 여하에 따라서 행복지수를 빼앗기지 않습니다. - 오늘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이 말씀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심령이 가난한 자는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1.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발견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어느 날 성령의 도움으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 순간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무능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줄 것도 없고, 가르칠 것도 없고, 주장할 것도 충고할 것도 없는 가난한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토록 간절했던 기도도, 하노라고 했던 전도도, 봉사도, 헌금도, 내 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은 죽음과 진노와 심판 앞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 자비와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는 알몸의 자기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상태입니다. 

마태는 가난이란 단어를 헬라어로 “프토코스”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 말은 너무나도 가난하여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생존조차 불가능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부요하여 자기 철학과 주장과 선입견이 강한 사람, 자기 의로 가득 찬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조차도 거부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구원하실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심령의 가난을 설명하는 가운데 이렇게 요약을 했습니다. “치료를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자기 상태는 발견하였지만 남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도 교만한 사람이다. 자존심이 강할수록 남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이것도 죄다. 자신이 연약하고 병든 것을 알며 또 죄인인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거절하는 것은 가장 무서운 오만이다. 가난한 마음이란 밖으로부터 오는 도움을 겸손히 받아드릴 줄 아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치료를 수용할 줄 아는 마음이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십니까? 

영국이 낳은 선교의 아버지 윌리암 케리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인도에 가서 선교를 하는데, 한 인도의 지식층이 그를 비난했습니다. “선생은 구두 만드는 직공이었다면서요?”, 그러자 켸리는 “아닙니다. 저는 그 만도 못한 헌 구두를 수선하는 수선공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일본의 ‘이누가이’라는 한 외상이 있었는데 그는 애꾸눈이었습니다. 국회의원들 앞에서 정사에 관하여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반대당에 있는 국회의원이 조롱하기를 “당신은 애꾸눈이 아니오. 그 눈 가지고 어떻게 세상을 본 단 말이오. 그러니까 시각이 삐뚤어진 것 아니오.”, 이 정도면 정치적 비난의 도를 지나 노골적인 인신공격인 것입니다. 이때 외상은 대답했습니다. “의원님, 일목요연이란 말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십니까? 여러분이 처해 있는 환경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수용하십니까? 용납이 안 되고, 이해가 안 되고, 납득이 안 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인생의 커다란 아픔 가운데 있을 때, 이러한 모습까지도 수용할 수 있고, 인정할 수 있는 마음. 성경은 이를 두고 가난한 마음이라 일컫습니다. 


2. 시간도, 물질도, 인생도, 의도, 더 이상 내가 주인이 아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내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직 심령이 부자인 사람입니다. 

‘안토니 드 멜로’의 수필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히브리인 구두쇠가 억만 재산을 모아 놓고 나름대로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설계가 끝나갈 무렵 목덜미의 싸늘한 손길을 느껴 뒤를 돌아다보니 죽음의 천사였습니다. 구두쇠는 천사의 허리띠를 붙잡고 단 몇 년 만 시간을 연장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3년만 주십시오. 아니 석 달만 주신다고 하면 내 재산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싸늘하게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세 시간만? 한 시간만? 마지막 1분을 문고리 잡고 바둥바둥 부둥켜 떨면서 한 마디를 남기고 어디론가 끌려갑니다. “돈도 시간도 내 것이 아닌 것을!” 

여러분, 여러분 것이라고 착각하는 무엇이 남아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아직도 심령의 부자입니다. 천국을 소유하지 못한 것입니다. 


3. 하나님만 의존하고 그의 도움을 갈망하는 사람입니다. 

장신대의 한 교수는 말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것이란 하나님 앞에서 헐떡거리는 마음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한 순간도 숨 쉬고 살 수 없는 절박한 심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부족을 알았으면 겸손해야 합니다. 실력도, 인격도, 신앙도, 가진 것도 없으면서 교만까지 하다면 하나님이 그를 받아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에게 복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난 주중에 군부대 교회에 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빵굼터에서 만든 빵을 가지고 갔는데,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군인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조금 늦게 군대에 갔습니다. 신학대학원도 졸업했고, 입대 전에 교회 전도사로 청년들을 지도했었습니다. 그런데요 군인의 신분이 되었을 때 사람이 참 단순해지더라고요. 특별히 먹는 것에 대해서 참 단순해 집니다. 왜 그렇게 과자가 맛있고, 빵이 맛있고, 초코파이가 맛있는지.... 회식이나 배급을 통해 빵이나 초코파이가 나오는데 두개 이상 주어도 항상 부족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 몇 사람이 계를 들었습니다. 한 개 먹으나, 두 개 먹으나 거기서 거기.... 그러니까 계를 든 사람끼리 나올 때마다 한 개씩을 내서 한 사람이 계를 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친구는 그 숫자대로 먹습니다. 7~8개. 그 계 타는 사람은 실컷 먹습니다. 왜 그렇게 빵이 맛있는지.... 

여러분 심령이 가난해야 은혜의 맛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목말라 사모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갈급히 찾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복을 찾아 헐떡거리는 마음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몇 년 전, ‘아침형 인간’에 대한 책들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일본 사람이 쓴 것이 몇 권 있었는데, ‘사이쇼 히로시’라는 사람이 쓴 책,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 『아침형 인간의 비밀』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에 영향을 받아서 인생의 성공을 꿈꾸는 사람 가운데, ‘아침형 인간’으로의 변신을 결심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러한 책 다음으로 기독서점에서 히트 치는 책이 나왔었습니다. 지금은 목사님이 되셨죠? 우리나라의 외교관으로 대사를 지내셨던 분, ‘문봉주’ 목사님의 『(아침형 인간을 넘어서는) 새벽형 크리스천』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을 읽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당시 온누리 교회 집사님이셨던 문봉주 목사님(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서 뉴질랜드대사, 주미 정무 공사를 역임하고 본부대사를 역임하셨던 분임). 이 분은 모태신앙인입니다. 그러나 주일에만 교회에 가고 평일에는 보통 사람처럼 살아간 사람이었습니다. 늘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았고, 서울 강남의 술집들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사람이 어느 주일 날, 그것도 전날 술을 많이 마시고 술냄새 풍기면서 예배에 참석했다가 자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엉터리로 살았다는 것을.... 그래서 성경공부 모임을 참석하여 말씀으로 교제하기 시작하면서 삶이 변합니다. 말씀의 맛을 알고부터 성경 말씀에 대해 헐떡이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각종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게 되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속이 이상해서 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위암4기였습니다. 수술하고, 항암제 맞고 그러면서도 말씀을 파내려가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결국 암을 이깁니다. 그리고 새벽기도의 맛을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기도도 못하니까 새벽에 가서 맨숭맨숭했지만, 점차로 새벽기도의 맛을 알게 되고, 그 이후로는 새벽형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새벽기도를 통해 엄청난 축복을 체험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이 사람이야말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내일부터 ‘신년 특별집회’를 여는데, 2011년은 좀 특별하게 시작하십시다. 이번 집회 이후로 ‘새벽형 크리스천’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번 집회 이후로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복음 전도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기회에 나태했던 신앙생활, 닫혀졌던 기도생활의 문을 열고,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심령이 가난하여 헐떡거리는 마음으로 사모하면서 집회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치 등산하는 사람이 산에 오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반드시 만나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의 문을 열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가난한 심령으로 인해 천국의 삶, 축복의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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