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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잃은 양을 다시 찾은 기쁨 (눅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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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양을 다시 찾은 기쁨 (눅 15:3-7)


눅15:에는 세 가지 비유가 기록되어 있다. 
①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다시 찾았다. ②잃어버린 동전 드라크마를 다시 찾았다. ③집을 나간 탕자가 다시 돌아왔다.

이 세 가지 비유의 공통점은 네 가지이다. 
①잃었다.=양, 드라크마, 아들(32) ②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으려고 애를 썼다. ③마침내 다시 찾았다. ④기뻐하여 잔치를 배설했다.

예수님께서는 눅19:10에서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고 말씀하셨다.

본문에서 잃어버린 양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세 종류의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다. 
①아직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은 택한 백성들. ②예수를 믿다가 그 믿음을 잃고 세상으로 나간 사람들 ③교회를 출석하고는 있지만 그 마음과 생활을 하나님을 떠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비록 교회를 출석하고 있지만 마음과 생활이 하나님을 떠나 말씀과 무관하게 산다면 하나님이 보실 때 그는 잃어버린 양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잃은 양을 찾기 위해 애를 쓴 사람은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을 가리킨다. 

구원받지 못한 모든 인생은 잃어버린 양이다. 벧전2:25=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주님께서는 이렇게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 

1.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양이다.

양은 방향감각이 없는 짐승이다. 양은 자기의 집을 잘 찾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양은 참 우둔한 짐승이다. 양은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자구책이나 방어능력이 전혀 없다. 외부의 도전과 공격에 무방비상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 양이다. 싸우지도 못하고, 도망치지도 못한다. 양은 스스로 먹이를 구하지도 못한다. 

양은 목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짐승이다. 목자의 보살핌이 없이는 결코 생존이 불가능한 짐승이다. 양은 멀리 볼 수도 없다. 좌우를 살피지도 못하고, 적인지 친구인지도 구별하지 못하며, 그저 본능대로만 살아가는 짐승이다. 

인간은 이처럼 연약한 양이다. 인간은 출세와 명예를 위해 동분서주하며, 본능대로 살고, 돈 따라다니며 살고, 세상향락을 따라가고, 정욕만 따라가다가 인생의 참된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연약한 존재이다.

사53: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예수 없는 인생은 길 잃은 양이요, 목자 없는 양이다.

2. 한 생명을 귀히 여기는 목자.

100마리의 양 중 한 마리를 잃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별 대수롭지 않은 숫자이다. 쉽게 포기해 버릴 수도 있다. 소홀히 여기기 쉽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러나 이 목자는 그렇지 않았다. 현대와 같은 물량주의나 실리주의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찍이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말씀하심으로 생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셨다.

생명의 가치는 수(數)나, 양(良)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에 있기 때문에 사랑의 원리에서는 아흔 아홉이나, 하나나, 동일한 가치로 취급하며, 이해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잃어버린 양은 다른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 더 병들고 허약한 양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목자의 마음은 더욱 아팠을 것이다.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지신다. 예수님은 수다한 군중보다, 오히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신다. 

3. 찾으려고 애쓰는 목자.

목자는 잃어버린 이 양 한 마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찾기를 결심하고, 산을 두루 헤맸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라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는 목자가 아니라 삯군이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 중 한 영혼이라도 하나님을 떠나 죄악에서 헤맨다면 그 하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애타는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그를 찾으시는 것이다.
그 한 영혼도 하나님이 지으신 자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양을 찾는 목자는 지속적으로 그 양을 찾을 때까지 계속해서 찾았다. 찾다가 포기한 것이 아니다. 발견할 때까지 찾았다. 

4. 양을 다시 찾은 기쁨

목자는 마침내 잃은 양을 찾아서 어깨에 메고 돌아온다. 아마 목자가 양을 발견했을 때, 그 양의 형편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굶어서 허기가 져 아사직전이었을 것이다.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목자는 동네 사람들을 불러 큰 잔치를 베풀었다. 잔치 값이 양 한 마리 값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까짓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주님께서도 죄인 한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왔을 때 이렇게 기뻐하신다. 목자이신 주님이 왜 기뻐하시겠는가? 주님은 죄라는 것이 가져다주는 불행을 나보다 더 잘 아신다. 주님께서는 지옥의 참상을 더 깊이 아신다. 그런데 우리가 그 속에서 구원을 받았으니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기쁨이 얼마나 크시겠는가? 

하늘나라에서는 이미 구원받아 천국에 와 있는 자보다 이 땅에 있는 죄인이 회개하여 구원될 때마다 더 큰 기쁨이 있게 되는 것이다.

겔18:23=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오늘날도 주님께서는 이렇게 잃어버린 양 한 마리 같은 영혼을 찾으시려고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셨고, 우리들을 먼저 부르셔서 구원받게 하셨다. 교회와 성도를 통해서 다른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기를 주님은 오늘도 원하신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은 마귀에게 유괴를 당한 것이다. 주님이 얼마나 안타깝게 여기시겠는가?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심정을 기억하여 아직도 죄 중에서 방황하는 길 잃은 영혼들을 찾는 일에 힘써야 한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에 앞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통해 성령이 임하시는 목적과, 그 결과를 우리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성령이 임하시는 목적이 바로 증인되게 하기 위해서요, 성령을 받은 결과는 역시 증인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결론. 

교회는 선교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지금은 마귀가 영혼구원을 방해하는 최고, 최후, 발악의 때이다. 
이 시대의 교회는 사단의 이러한 방해공작에 과감하게 맞서 선교해야 참 교회요 선교해야 참 성도이다.
교회가 영혼 구원하는 일에 우선할 때, 하나님은 우리교회와 성도 여러분을 더 축복해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선교나 전도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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