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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이름이 무엇이냐 (창 32: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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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이 무엇이냐 (창 32:22-32)


창세기 11장부터 25장까지 아브라함 이야기가 중심을 이룹니다.다음에 아들 이삭의 이야기가 나오다가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는 주로 야곱과 그의 자녀들에 관계된 내용입니다.야곱 이야기는 창세기 25장 야곱의 출생으로부터 49장 죽음까지 창세기 전체 50장 내용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합니다. 그만큼 야곱이라는 사람이 하나님과 택한 백성이 맺은 언약이라는 관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는 의미입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냄을 받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첫 사람이었고, 그의 아들 이삭이 약속의 아들로 대를 이었으며, 이삭의 아들 야곱은 열 두 아들들을 낳아 대가족을 이루었습니다. 야곱의 형 에서는 쌍둥이 형으로 아버지의 가업을 이을 장자였습니다.그러나 출생 순간부터 욕심이 많았던 동생 야곱은 쌍둥이 형의 장자권을 늘 탐내었고 배고픈 형에게 팥죽 한 그릇 주면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습니다.나중에는 어머니 리브가와 공모하여 늙어 눈이 어둔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마저 빼앗은 인물입니다.

야곱 못지 않게 아버지의 축복을 생명처럼 여겼던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리는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고는 도리어 약삭빠른 동생의 탓으로 돌립니다.야곱에게 아버지의 축복을 빼앗긴 후에 속이 상하여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부르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그 녀석은 전에도 나를 속였던 못된 사기꾼입니다’ 하고 불평하였습니다. 

동생에게 복을 빼앗긴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 들었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친정 오라버니에게 보내어 형제간의 싸움을 피하게 하였습니다.외삼촌 집으로 피신하던 야곱은 도중에 벧엘에서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뵙고 그의 인생 길에 항상 함께 하시며 복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삼촌의 양들을 돌보며 결혼하고 자녀들을 얻어 가정을 이룬 20년은 야곱의 일생 중에 가장 열정적으로 살았던 기간이며 기쁨과 시련이 한데 어우러진 세월이었습니다.빈털털이로 왔다가 20년 만에 눈물어린 노력으로 자수성가하여 큰 부자가 되었지만 야곱을 대하는 외사촌들의 태도가 예전같지 않았습니다.사촌들의 위협이 두려웠던 야곱은 마침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도망치듯 급히 집을 정리하여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2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던 야곱은 엄청난 선물을 미리 보내며 형과 화해하려 했지만 형 에서가 직접 마중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떨며 얍복강 나루터에 홀로 남았습니다. 얍복강 나루터에 엎드린 야곱은 지나온 20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겁니다. 가정도 이루었고 재산도 상당히 모았지만 형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일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혹시 가족들에게 화가 미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하고 의지할 곳은 오직 하나님 뿐이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야곱을 방문하였고 야곱은 밤이 새도록 그 천사를 붙들고 씨름하였습니다.호세야 12장3,4절에서 호세야 선지자는 야곱이 천사와 밤새 씨름한 것을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다’고 해석합니다. 야곱이 홀로 남아 고민하며 기도할 때 천사가 방문하였고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지는 아픔을 겪었지만 악착같이 천사에게 매달려 나를 축복하지 아니하면 놓아주지 않겠다고 눈물로 간구했다는 말입니다. 

바로 여기서 야곱은 새로운 이름을 받았습니다.‘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은 천사는 ‘야곱입니다’대답하는 그에게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부를 것이니라’ 하며 새로운 이름을 줍니다. 그 이름의 뜻은 ‘네가 하나님과 겨루다’는 말이니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여 응답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이 사건 이후로 야곱의 인생관에 변화가 오기 시작합니다.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을 때 비로소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습니다.‘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라’ 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져 절룩거리며 불편한 걸음을 걸으며 자신의 약함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닫기 시작합니다.아직은 완전하게 변화된 성도는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이전보다 진지하게 생각하고 자기 꾀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형님이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줄 때 지난 20년 세월의 불안함과 두려움이 한 순간에 사라졌고 형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처럼 반갑게 보였습니다. 에서는 동생을 만났을 때 옛날의 분노는 사라졌고 후덕한 형님의 여유를 보였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부드럽게 변화시키셨지만 동생이 나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여유가 아닐까요? 아버지의 축복을 훔쳐간 야곱이나 축복을 빼앗기고 억울함을 못이겨 동생을 살해하려고 했던 에서 둘 다 부자가 되었고 큰 가문을 이루고 있습니다. 20년 세월이 흐른 후 형님께 머리를 숙이고 돌아오는 동생을 보니 전에 빼앗긴 축복이란 것이 결국 나에게 돌아왔다 생각합니다.나는 여전히 아버지의 장남이고 야곱은 별 수 없이 내 동생이라는 자신감, 만족감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에서가 생각하는 복과 야곱의 복이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아버지 이삭을 통해 약속하신 복이 이런 것이었을까요?에서도 야곱도 아직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두 사람을 달리 생각하고 계십니다.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 이삭에게 확인시키신 그 복은 지금 야곱을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나는 여호와니 너희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창28:13, 14)는 벧엘의 언약은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로 이어집니다.

야곱이 벧엘로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이라 확인해주시고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고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창35:11, 12)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은 땅과 이름이 창대한 것 외에 더 큰 것이 있으니 복의 근원이었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하신 복이 무엇일까요?구약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역사의 흐름 속에 이 약속이 어떻게 진행되고 발전되는가 드러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독하며 구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언약에 촛점을 맞추어 읽으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 흐름을 이해할수 있습니다.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이런 기대감으로 말씀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이름이 바뀌는 얍복강 사건을 기준으로 야곱의 일생을 통하여 드러나는 인물 됨됨이를 간단하게 평가해 봅니다.그는 20년 전 벧엘에서 꿈에 하나님을 뵙고 약속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다 했지만 야곱은 여전히 자기 방식대로 생존을 위해 투쟁했던 사람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아직은 자신의 꾀와 땀흘리는 노력을 더 신뢰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운 일 당하고 손해보는 일 만나면 참을 수 없어 펄펄 뛰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고 내가 노력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기 전까지 야곱은 그런 방식으로 살았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얍복강 가에서 이름이 바뀐 다음에도 당장 삶이 변한 것는 아니었습니다.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당하며 천사와 씨름한 후 많은 것을 깨달았던 야곱이 곧장 벧엘로 올라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겜에 머무는 동안 딸 디나가 세겜 성 추장의 아들에게 성추행을 당하였고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사람들에게 복수의 칼을 휘두른 일을 경험하고서야 야곱의 기세는 상당히 꺾인 듯 보입니다. 

벧엘로 올라갈 때 야곱의 나이는 이미 노령에 접어들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잘 익은 곡식처럼 여물어지는 시기였습니다.벧엘에 올라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약속을 다시 확인 받은 이후로 그에게는 여러 번 가슴 아픈 이별의 경험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베냐민을 낳고 죽었으며, 아버지 이삭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 요셉마저 잃은 야곱은 이제 다음은 자신의 차례라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시기였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확실하게 깨닫고 제대로 된 신앙을 고백하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이 세상을 떠날 즈음입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가 되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은 처음에는 믿을 수 없는 충격으로 졸도하기까지 했지만 아들이 보내 준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을 차리고 사실로 받아드렸습니다.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가다가 브엘세바에서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 또 한 번 복을 약속하십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 말라 내가 너의 길에 함께 할 것이며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너를 다시 인도하여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울 것이다’(창46:3,4) 는 기가 막힌 약속을 하십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어 130세가 된 아버지를 애굽으로 불러 모셨고 야곱은 바로를 축복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이만하면 야곱은 속된 말로 소원을 성취하였고 여한이 없는 생을 산 사람입니다.사랑하는 아들이 출세하여 대제국 애굽의 왕 다음 가는 높은 지위에 올랐고 총리의 아버지 자격으로 왕을 축복하는 영광을 얻었으니 더 부러울 것이 있겠습니까?그런데 야곱은 나이를 묻는 바로에게 지나온 자신의 인생 130년은 험악한 나그네의 세월이라 말하였습니다. 아버지 이삭의 축복, 하나님의 복을 그렇게 사모하며 어떤 식으로든 그 복을 내 것으로 만들려 온갖 노력을 다했던 자신의 일생을 돌이켜 생각하면 참으로 험악한 나그네의 길이었습니다.

형에게도 그리고 눈이 어두워진 아버지에게 비열하게 속임수를 사용했던 야곱은 밧단아람 외삼촌의 집에서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이 원하는 뜻대로 양들이 새끼를 배도록 하여 빠른 시간 내에 부자가 되었습니다.하지만 그 똑똑하고 머리 좋은 야곱은 그의 일생 중에 몇 번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기막힌 속임을 당하여야 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 아버지와 형을 속인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아버지처럼 믿고 의지했던 외삼촌에게 결정적인 순간에 속임을 당했고 나중에는 아들들에게 속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먼저는 사랑하는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는 순간에 외삼촌에게 속아 원치 않는 신부 레아를 아내로 맞이해야만 했고 사랑하는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하여 외삼촌의 머슴살이를 7년 더 해야만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외삼촌의 아들들에게 시기와 미움을 받았고 삼촌이 품삯을 제대로 주지 않고 열 번도 더 넘게 변경했을 때 참고 살아야만 했습니다.그리고 나중에는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형들의 손에 팔려 애굽으로 끌려갔을 때 요셉이 짐승에게 물려 죽었다고 보고한 다른 아들들의 거짓말을 사실로 믿고 약 22년 동안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고통스럽게 살아야만 했습니다.형과 아버지를 속인 죄값을 치루는 것 치고 상당히 고통스런 나날을 지내야만 했습니다. 자기 꾀만 믿고 살아왔던 야곱은 이렇게 헛 똑똑이가 되어 뼈저린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참으로 험악한 세월을 보낸 야곱이 아닙니까? 야곱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는 성숙한 성도가 되기까지 그의 삶은 이렇게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야곱이 총리의 아버지로서 애굽의 바로 앞에 서는 영광이 자신의 노력이나 힘으로 어어진 것이었습니까? 아버지가 아들의 출세 길을 열어주고 뒷바라지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짐승에게 물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22 년이 지난 후에야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형제들간의 시기와 미움으로 어린 나이에 외국에 노예로 팔려간 아들 요셉이 이렇게 살아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대기근으로 고통 당하는 백성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멋지게 일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들을 위하여 아버지로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다만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며 눈물과 탄식으로 지낸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나의 아들과 함께 계셨고 그를 보호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들을 만난 아버지가 아들에게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가하도다’(창46:30) 했으며,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사실을 확인한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 그리고 자신과 맺은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 앞에 완전히 엎드렸습니다. 

요셉을 만난 야곱은 애굽에서 17년을 아들과 함께 말년을 행복하게 지냈고 죽음을 앞두었을 때 평안한 가운데 모든 자녀들을 축복하는 복을 누렸습니다.그리고 요셉에게 신신당부하며 맹세하고 또 맹세하도록 했던 유언은 하나님을 향한 야곱의 언약신앙이 얼마나 확실하고 분명한지 보여주는 행동이었습니다. ‘내가 죽거든 내 시신을 애굽에서 장사지내지 말고 조상들이 잠들어 있는 가나안 땅에 장사하라’고 유언합니다.아들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온 집안이 애굽에서 호의호식하며 부러울 것 없이 살지만 이곳은 우리의 땅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자손들에게 분명히 전달하는 아버지의 신앙고백입니다. 

아들을 만난 이후애굽에서 함께 지낸 17년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상급과 위로였습니다.그리고 147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 자손들을 불러 모아 축복하는 야곱의 예언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침상에 둘러 선 열 두 아들들을 통해 하나님이 장차 만들어가실 큰 민족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이 세상 나그네 길의 수고를 마치고 눈을 평안히 감았습니다.욕심장이, 속이는 자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이스라엘로 변화되었고 드디어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멀리서 바라보며 영원한 안식의 나라로 들어갔습니다. 

야곱의 일생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지난 날 처음 하나님을 뵙던 그 약속의 자리, 나를 부르시고 나와 동행하시며 나를 지키신다는 약속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뵈러 벧엘로 올라가는 야곱의 인생은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습니다.이전의 야곱이 아니라 변화된 이스라엘입니다.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후손들이 두려움과 갈등 속에 고민하며 방황할 때 옛날의 이름 야곱을 언급하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십니다. 사랑하는 백성을 친근하게 부르시는 이름입니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사41:14)

야곱에게‘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셨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질문하십니다.‘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시며 우리의 현재 모습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은 새로운 삶의 길을 또한 열어 보이십니다.바울의 말처럼 우리가 본래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언약 밖에 있었던 외인이었습니다 (에베소서2:12).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듯 약속 밖에 있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가까워졌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이스라엘 민족은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약속의 백성이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주 안에서 지은 바 된 새로운 백성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사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주의 말씀을 따라 살아갑니다.내 노력과 힘과 나의 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따라 사는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주의 말씀이 일년 내내 그리고 일평생 교우 여러분이 가는 길에 빛이 되고 복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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