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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엡 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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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엡 6:10-20)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2011년 교회표어는 골로새서 4:3절의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로 정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알게 된 것도 꽤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봉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늘 백성으로 하늘에 속한 영광의 기업을 상속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이 표어를 정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정초부터 복음의 비밀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자꾸 생겨나고 있습니다. 엊그제 구원파에 있는 친 자매님들을 만날 수 있어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이 무엇인지 전하였고, 또 수원쪽에 계신 구원파 자매님들 소식도 있어서 연속적으로 복음을 가르칠 기회가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엊그제 만난 자매님들은 파주에 살고 있는데 저한테 성경을 배우러 오는 현규형제님과 함께 만났더랬는데, 언니가 여동생을 구원파에서 빼내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저희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복음에 대하여, 성경해석에 대하여 들어보니 구원파에 있는 동생이나 일반 교회에 다니는 언니나 두 분 다 복음을 새롭게 알아야 하는 것을 알고서는 매우 당혹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러하더라도 우리가 가진 복음을 알기 쉽게 또 강력하게 증거할 수 있어 매우 좋았습니다.
  
저희 교회가 올해에는 더욱 이 복음으로 봉사하길 원합니다. 특히 저희 교회 젊은 청년들이 거룩한 뜻을 품고 이 일에 함께 해주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잘 배우고 익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 모두에게 이 복음을 증거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골로새서와 병행관계에 있는 에베소서의 말씀으로 함께 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에게 주신 합당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베소서의 주제는 4:3절에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그럼 하나가 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가를 에베소서 안에서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주제를 위하여 사도 바울은 1:3-23절까지 교회를 위한 찬송과 감사와 기도를 합니다. 교회에게 주신 신령한 복에 대하여 찬송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신령한 복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었던 땅의 복과 대비시켜 신령한 복이라고 하며 ‘하늘에 속한’ 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럼 무엇이 신령한 복인가요? 창세 전에 예정하사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복입니다. 이 아들들의 죄를 속하사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하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1:8-10절입니다.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하셔서 그리스도 안에 때가 찬 경륜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 때가 찬 경륜은 무엇인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것도 구약과 대비시키면 구약의 경륜은 가나안 땅을 통일케 하는 기업입니다. 그러나 이제 신약 백성에게는 하늘과 땅을 통일케 하는 기업을 주셨습니다. 이 기업을 이룸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신령한 복을 받은 것입니다.
  
자주 여러분에게 구원론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이렇게 구원에 대하여 많이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에베소서가 말하는 구원론은 ‘하늘과 땅을 통일케 하는 기업’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그저 우리가 죽으면 저 좋은 공간으로 가게 된다는 복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은 우리로 하늘과 땅을 통일케 하는 기업을 얻는 것이며, 곧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에 참여하여 그 기업을 차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기업을 얻게 하기 위하여 바울은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구합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 눈이 밝아집니다. 그리하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기를 구합니다.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게 하기를 구합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무엇인지 알게 하기를 구합니다. 
  
그 능력은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심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셔서 모든 통치자들 위에 뛰어나게 하셨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시키며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교회의 그의 몸으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일에 참여합니다. 
  
그런 후에 사도 바울은 2:1-3:21절까지 교회를 어떤 목적으로 구원하여 세우셨는가를 말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합니다. 왜 살리셨습니까? 그저 예수를 입으로 시인하여 죽으면 천당가도록 하시려고 살리셨습니까?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던 우리를 살리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즉 예수의 구원하신 목표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2:10절에 말합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교회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목적은 선한 일을 위하여 새 창조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럼 선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저 예수 믿으니까 착하게 살라는 말입니까? 세상에서 모범생으로 살라는 뜻입니까? 신자 개인이 어떻게 인격적으로 거룩하게 되고 성결한 상태에 이르려는 목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그 선한 일에 대하여 2:14절에 말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둘로 하나를 만드신 일이 곧 선한 일입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의 막혔던 담을 허시고 이 둘로 한 새 사람이 되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방인도 이제 더 이상 외인이 아니요, 나그네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동일한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퉁이 돌이 되고,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고 완성을 향하여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럼 사도 바울이 한 일은 무엇입니까? 3:1절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은 다른 세대에서는 나타내지 않았던 비밀의 경륜이요 은혜의 경륜입니다. 그 경륜과 비밀은 바로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입니다. 둘로 하나를 만드셨던 것처럼 바울도 이방인들로 하여금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케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 말미암아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와 사도 바울은 동일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선한 일입니다. 교회는 예수와 사도의 터 위에 세움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의 본을 따라야 진정 교회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교회는 어떤 선한 일을 행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4:1절 이하에 교회가 합당하게 행해야 할 일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교회의 할 일은 4:3절의 말씀과 같이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일을 힘써 지키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교회가 어떻게 성령이 하나 되게 일을 힘써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먼저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을 하기 위하여 교회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어떤 선물입니까?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하여 교회에게 말씀의 사역자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왜 주셨습니까? 

4:13절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교회가 말씀의 사역자로부터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배워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날 것입니다.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갑니다. 그래서 교회가 한 몸을 이루며 성장하는 것이 곧 하나됨을 힘써 지키는 일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4:17절부터 두 가지로 크게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이방인과 같이 행하지 말라는 것이고, 둘째로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4:17-5:7절까지는 부정적인 권면이 되겠고, 5:8절 이하는 긍정적인 권면이 되겠습니다. 즉 이방인으로 살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지음받은 빛의 자녀로써 살라고 권면합니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함으로 바로 왕의 종으로 살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여호와의 종으로 사는 새 사람을 입었습니다. 새로운 언약관계에 들어왔기 때문에 새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혼식을 한 남자와 여자를 왜 신랑, 신부라고 부르겠습니까? 그 두 사람이 갑자기 자기 마음을 다 씻고 깨끗하고 성결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새로운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신랑과 신부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이었던 우리는 이전에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았습니다. 이런 우리를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살리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 즉 공중 권세 잡은 자의 종으로 살며 허물과 죄로 죽어 있었는데,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언약을 맺은 우리는 새 사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방인으로 살았던 모든 행위와 말을 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골로새서의 말씀을 빌어 말하자면 흑암의 권세 아래 살던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사랑의 아들의 나라에 속하여 사는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건 개인이 어떻게 성화과정을 밟아 가느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적으로 성결케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결혼을 하게 되면 총각과 처녀로 살았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남편과 아내로 사는 새 사람을 입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언약적인 관계로 말합니다.
  
5:8절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어둠에 속한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이제 빛의 자녀로 살라고 말씀합니다. 그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습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5:10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어둠에 속해 살 때에는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살았습니다. 오직 자기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하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바를 따라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빛의 자녀가 되면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을 따라 살게 됩니다.
  
어떻게 이 빛의 열매를 맺는 자녀로 살게 되었습니까? 아니 빛은 무엇입니까? 5:14절입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이는 자들이 빛의 자녀들입니다. 부활의 빛과 부활의 생명과 권세로 사는 자들입니다. 다시는 죽음 아래 속한 것을 살지 않고 부활에 속한 자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빛의 자녀로써 주를 기쁘시게 하는 부활의 빛 가운데 살 수가 있는 것입니까? 5:15절에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있는 자 같이 하여” 즉 지혜로써 행하는 자가 빛의 자녀입니다. 
  
그럼 어떤 자가 지혜있는 자입니까? IQ가 높은 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세월을 아끼는 자가 지혜있는 자입니다. 왜 세월을 아껴야 합니까? 때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시대를 분별하는 자가 지혜있는 자입니다. 
  
시대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5장17절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자가 지혜있는 자가 됩니다. 어떻게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있습니까? 

5:18절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술의 권세에 지배당하는 자는 방탕한 자요, 세월을 아끼지 못하며,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법의 통치 아래 살면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에 취하여 살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빛의 자녀들로 행하게 합니다.
  
그럼 성령 충만한 삶은 어떤 것입니까? 5장19-21절에 말씀합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성령충만한 삶은 예배의 삶입니다. 예배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삶이 성령충만한 지혜로운 빛의 자녀로 행하는 삶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삶을 부부관계에서, 부모와 자녀관계에서, 그리고 종과 상전에서 어떻게 사는 것인가를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럼 이러한 빛의 자녀로 지혜롭게 성령충만한 삶은 쉽게 얻어지는가? 하늘과 땅을 통일하는 기업을 우리는 편하게 얻을 수 있는가? 성령이 하나 되게 하는 것을 힘써 지키는 이 삶이 그저 마음만 품으면 가능한가? 아니라고 에베소서는 말씀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성도들이 주 안에서 강건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강건해져야 합니까? 전쟁터에 나서는 군사들처럼 무장하고 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을 쉽게 얻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기업을 얻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싸워야 했습니다. 가나안 족속과 싸워 정복하여 얻은 땅을 기업으로 얻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도 무장하고 싸워야 영원한 기업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절대로 예수를 입으로 시인만 하면 공짜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끝으로, 종말로 성도들에게 강건해지라고 명령합니다. 왜 강건해져야 합니까? 이제 교회는 이방인과 싸우지 않습니다. 마귀의 간계에 대적하여 싸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무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강건해지기 위하여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싸움의 상대는 누구입니까?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상대했던 대적과 다릅니다. 6:12절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마귀의 간계가 바로 이 대적들을 통하여 나타나고 교회를 해하려고 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대적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6장13절에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 전신갑주가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14절부터 17절까지 말씀합니다. 이렇게 싸워야 하는 것은 교회를 군대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에서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면서 말씀과 기도로 경건을 훈련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전신갑주는 마귀의 간계에 대적하여야 하기 때문에 주로 진리, 복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이 전신갑주의 무장은 로마군병을 보고 말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이사야 59장17-18절에 말씀한 이스라엘의 무장을 본보기로 말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옛 나라의 군대와 새 나라의 군대를 대비시켜 보자는 말입니다. 거의 모든 무장은 방어에 주력하고 있고, 오직 상대를 무찌르는 무기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그럼 이 전신갑주를 취하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싸움은 준비가 끝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기도가 또한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그래서 6:18절에 기도에 대한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싸움에 나서는 장수나 군사들은 왕께 여러 가지를 구합니다. 무기를 공급해주기를, 병사들을 더 많이 보내주기를, 군수품을 더 풍성히 채워주기를 왕께 구합니다. 왕으로부터 권세를 받을 뿐 아니라 왕의 능력과 힘을 빌어 싸움에 이겨야 하기 때문에 이런 간구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의 영광을 위하여 싸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없는 군사는 자기 혼자 힘으로 상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왕을 인정하지 않는 자가 됩니다. 기도가 없는 군사는 왕의 백성이 아닙니다. 신자들이 가장 잘 넘어지고 패하는 이유는 바로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 백성은 때와 기한에 맞추어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신약 백성인 교회는 항상 기도합니다. 이는 24시간 기도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든 기도하면 왕께서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말입니다. 항상 왕과 군사와의 관계가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왕이 기뻐하시는 일에 군사들이 지혜롭게 행하기 때문에 항상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마치 병사들이 훈련을 땀흘려 하는 것처럼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마귀의 간계에 속지 않습니다. 또한 자기만이 아니라 여러 성도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 개인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항상 싸움에서 내가 강하더라도 다른 쪽이 약하게 되면 그로 인하여 패배하기 때문에 같이 싸움에 나서 아군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한 몸으로, 군대로 싸워야 합니다. 이런 싸움에서 무엇보다 장수가 중요합니다. 선봉장으로 나선 장수를 위해서 응원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위하여 교회에 기도를 요청하였습니다. 
  
어떤 기도입니까? 19-20절입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장수가 성문을 먼저 열어야 합니다. 그에게는 날카로운 검이 필요합니다. 왕이 하사하신 보검이 필요합니다. 그 검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복음의 비밀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장수가 사슬에 매였습니다. 두 손 두 발이 다 묶여 있습니다. 그러니 입으로만 싸울 수가 있겠지요. 또한 세상 주관자들과 권세자들에 대한 싸움이니 바울은 사도행전에서 보았던 것처럼 죄수로 사슬에 매여 로마의 황제 앞에 서려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수로라도 사슬에 매이면 로마의 황제 앞에 담대히 설 수가 있고 복음의 비밀을 입을 열어 증거할 수가 있게 됩니다. 
  
바울은 그 세상의 군왕들 앞에 당연히 할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만왕의 왕을 증거할 것입니다. 모든 나라와 백성이 그 발 아래 무릎 꿇고 경배해야 할 것임을 선포할 것입니다. 죽음에서 구원하사 영원한 기업을 주실 이 왕을 증거할 것입니다. 참으로 해야 할, 마땅히 나타내야 할 말인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어렸을 때 골목에서 아이들끼리 벌이는 그런 소꿉장난 같은 싸움이 아닙니다. 마치 세계 제 2차 대전처럼 강력한 세력이 뭉쳐 벌이는 큰 싸움과 같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담대해야 하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싸움은 어린 싸움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싸움은 악한 마귀에 대한 싸움입니다. 그러니 사도는 교회에게 담대함을 주기를 기도로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싸움에 나서는 장수가 용기와 기백이 대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우리 주님의 권세를 힘입어 담대히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사도행전의 사도들이 구했던 것과 같습니다. 주 예수의 부활을 전하다가 사도들이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났습니다. 사도들은 풀려나니까 다시 감옥에 가지 않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세상의 군왕들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기를 간구했습니다. 사도행전 4:29절입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그 담대함은 주님이 주시는 표적을 통하여 더욱 나타나 마귀의 권세가 굴복하도록 병을 낫게 하고 기사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담대함을 위하여 기도하는 자들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에게 하나님께서 복음의 비밀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로써 지혜와 총명의 신이 함께 함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하늘과 땅을 통일하는 영원한 기업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때가 찬 경륜이 무엇이지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구속하신 목표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선한 일을 위한 것이며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주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막힌 담을 허시고 한 새 사람이 되게 하셨으며, 그리스도의 종인 사도 바울도 이방인이 함께 기업에 참여케 하는 일에 고난을 당하며 예수의 일에 참여하였습니다. 그건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비밀을 봉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방인에게 베풀어진 그리스도 안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도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졌고 그 본을 따라 사는 것이 참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천당가고, 개인이 예수 믿어 평안을 누리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일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왕을 따라 군사로써 함께 싸워 마귀의 간계를 이기고 모든 천하 만민이 하나님께 경배케 되도록 무장하며 기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약하고 부족함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을 무장하고 기도로 싸운다면 능히 강건해져서 구원의 완성을 이룰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헛된 가르침, 잘못된 교리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속고 있으며 자기 가정의 안일함만을 구함으로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찬송가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 전부 자기 마음의 죄를 회개하고 자기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변화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자기 구원만이 기도의 내용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기도의 찬송을 부를 수가 없습니다. 함께 무장하고 담대히 싸우자는 기도가 없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강건해져서 이 악한 때에 깨어 구하지 아니하면 우리가 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이는 수가 적다고, 우리 이름이 유명하지 않다고 스스로 나약한 모습을 가져서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미련함을 알았다면 주님의 지혜를 구하여 담대히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싸움에 왕께서는 잠자코 가만히 바라만 보고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싸우고 복음의 현장에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복음은 자기와 자기 자신의 가족만을 위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만물을 충만케 하시려고 교회를 머리로 세우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만물의 충만은 무엇입니까?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모든 천한 만민이 하늘과 땅을 통일하는 기업을 얻는 것입니다. 이 일에 여러분과 저에게 이 복음의 비밀을 알게 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봉사케 하시려고 존귀하게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우리에게 부으셨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함께 이 일을 감당해서 주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에 힘써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그 일에 말씀으로 무장하고 기도로 힘써 구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어 올해 교회의 표어를 따라 그 목표를 이루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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