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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사모할 말씀의 부흥 (느 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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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모할 말씀의 부흥 (느 8:1-10)


확신을 갖고 한 가지 일에 몰두해서 경지에 오른 사람을 우리는 고수, 달인, 또는 장인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모두 한 분야의 전문가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한 단계 더 나간 것이 광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광인은 글자 그대로 ‘미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옥한흠 목사님이 제가 처음 제자 훈련을 처음 받을 때에 그 예리한 눈빛으로 거기 모인 목회자들을 향해 ‘당신들은 지금 무엇에 미쳐 있습니까?’ 첫 마디를 던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미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미쳤다'라고 말할 때도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정신병이 들었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옳다고 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 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명을 거는 것을 말합니다. 가슴에 있는 불을 아무도 끌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 영혼을 살립니까? 영혼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사람입니다. 영혼을 바라보면 눈물이 흐르고 “저 영혼을 건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여러분 코카콜라를 아시죠? 세계적인 기업 코카콜라는 아사 캔들러 라는 분이 창업을 했습니다. 원래 이분은 알코올 중독자였답니다. 금주를 시도해보지만 의지가 약해서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아내가 그를 위해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귀가하는 중에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이기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허둥지둥 집에 와보니 그 시간 아내가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캔들러는 아내의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하면서 노상에서 들은 그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마음의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금주에 성공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업에 최선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수입에도 철저하게 십일조를 드리면서 사업에 몰두했습니다. 이 사업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고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코카콜라만 생각하고 코카콜라만을 말하고 다녔습니다. 심지어 그는 성공의 비밀을 묻는 기자에게 ?내 혈관에는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코카콜라고 흐르고 있습니다.?고 외치며 한 생을 여기에 매달렸습니다. 

오늘 이 아침! 예배를 드리러 나온 여러분은 무엇에 대해서 미치도록 목말라하십니까? 인생은 어떤 목마름을 갖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집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 중의 하나가 목마름의 힘입니다. 어떤 큰 일을 이룬 사람을 보면 대부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더 많이 목말라 했던 사람들입니다. 목마름이 있어야지 성취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가 부흥을 합니까? 부흥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저 밤낮으로, “하나님,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땅의 황무함을 보시옵소서! 부흥의 불길을 보내주시옵소서! 성령의 바람이 불게 해 주시옵소서! 영혼을 살리고 교회가 일어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탄원하여 엎드린 교회가 있습니다. 부흥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 목마름을 사용해서 부흥을 주십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을 보십시요! 1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여기 지금 수문 앞 광장에 모인 수많은 백성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 이들은 천신만고 끝에 그토록 소원하던 무너진 성벽을 52일 만에 재건하는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그동안 폐허화 되어 버려진 채 방치된 성벽을 쌓으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음모와 협박이 있었습니까? 그 악조건 속에서도 동틀 때부터 별이 뜰 때까지 일하였는데, 백성의 절반은 한 손에 창을 들고 일을 했습니다. 이런 고생을 해서 다시 재건된 성벽 앞에 서로 얼싸안고 눈물이라도 흘리며 기뻐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들은 이것 때문에 기뻐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견고한 성벽을 쌓았다 할지라도 성벽이 자신들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백성들은 이 모든 일이 자기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힘든 성벽을 수축하는 과정 가운데 그들이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자신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일임을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영적 부흥에 대한 목마름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백성들은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를 초청합니다. 에스라 목사님을 모시고 영적 대각성 부흥성회를 수문 앞 광장에 엽니다. 오늘 우리는 이 수문 앞 광장에서 일어난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영적 부흥의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해야 합니다. 여기 3절을 보십시오.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 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당시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의 백성들은 적어도 3만에서 5만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누가 모이라고 소집한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모든 백성들이 모였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모였습니다. 

5절 말씀에는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책을 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어섰다고 했습니다. 경외하는 마음으로 일어서서 그것도 새벽부터 오정까지 대략 6시간을 서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앉아서 혹은 누워서 들어도 힘든 시간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백성들은 말씀에 대한 목마름에 대한 갈증으로 불타올랐습니다. 
느헤미야 8장 18절에 보면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얼마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말씀을 알아듣는 사람은 설교가 아무리 길어도 지루해 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열정이 있고 감동이 있으면 지루하지 않습니다. 연애를 하는 사람들 보세요. 별것도 아닌데 그렇게 감동하고 그렇게 좋아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빨리 갑니다. 시간을 때우려고 연애하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교회는 시간을 때우러 오기에는 설교가 길어서 못오고, 또 주차장 시설도 미약해서 못 올 교회입니다. 화려함도 없고 편안함도 없습니다. 지금 어린이들 예배는 교실이 부족해서 쾌적한 환경을 만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사모해서 모이면 하루 종일 있어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부부가 서로 마주보는 시간은 하루에 5분도 채 안 된다고 합니다. 어쩌다 맘먹고 빤히 쳐다보면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뭐 할 말이 있어?” 하면서 괜한 시비가 붙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쳐다보면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그대’가 됩니다. 은혜가 충만해서 쳐다보면 상대방도 감동이 되어 마음이 여리게 돼 있습니다. 꼴도 보기 싫은 남편, 펑퍼짐한 아내라도 ‘미운 놈 떡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그윽하게 바라보십시오. 혹시 무시를 당하더래도 “여보 오늘 무척 수고했어!” 하면서 사랑의 눈길을 보내 보십시오. 그러면 지긋지긋하던 밉상은 사라지고 새벽부터 정오까지 바라만 봐도 또 보고 싶은 그대로 바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항상 말씀에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시42:1-2절에 보면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119:131절에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다윗은 항상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습니다. 주의 말씀을 먹으려고 입을 열고 헐떡였습니다. 
진정한 부흥은 말씀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목마름은 영혼이 건강하고 하나님이 부흥을 주신다는 신호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라. 부흥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기는 듣는데 소리로 들을 때가 많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칭찬받는 교회였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태도가 중요합니다. 옆 사람이 들어야 말씀이 아닙니다. 바로 내가 듣고, 내가 은혜 받고, 내가 변화되어야 할 말씀입니다.수문 앞 광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백성들의 태도를 보십시오. 말씀이 선포될 때 ‘아멘 아멘’으로 응답했습니다. 

6절을 보세요.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어지면 아멘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 바랍니다
‘아멘’은 하나님 말씀을 받아먹는 숟가락입니다. 이것은 설교하는 목사에게 힘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임을 내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아멘입니다. 입술에 아멘이 많은 사람은 말씀을 경청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또한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울었습니다. 말씀이 그들의 삶의 죄를 드러나게 했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보여주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울면서 반응합니다. 얼마나 백성들이 말씀 앞에 흐느껴 울었던지 말씀을 선포하던 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9절) 여러분 최근에 성경을 읽다가 멈추어 서서 감격하며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메시지를 듣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며 무릎 꿇고 기도해 본 적 있습니까. 없다면 우리 신앙은 어느새 메말라 버린 것입니다. 병들어 버린 것입니다. 깨달음이 더 이상 없고 삶에 변화도 멈추어 버린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선포될 때 마음이 감동되어 눈물로 반응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똑같은 말씀을 듣고도 감격하여 우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은혜를 받지 못하고 여전히 강퍅한 상태로 머무는 자들도 있습니다. 사도행전에도 말씀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사건이 둘 나옵니다. 비슷한 내용의 설교를 들었는데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생각하며 옷을 찢고 마음을 찢으며 어떻게 하여야 죄 사함을 받고 구원 얻을 수 있을까 회개했습니다. 반면 스데반의 설교를 듣던 사람들은 마음에 찔려 오히려 스데반을 정죄하며 돌로 쳐 죽였습니다. 

같은 말씀인데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복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드러납니다.여러분은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말씀이 여러분 삶에 절대적인 가치와 영향력이 있다고 믿습니까? 아니면 교양이나 마음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교양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강의 정도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삶의 진정한 변화를 원하신다면, 가정이 새롭게 회복되기를 원하신다면, 이 민족이 부흥하기를 원하신다면 말씀을 대하는 태도부터 바꾸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할 생명의 말씀인 것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다시 한번 여러분의 삶과 민족에 부흥이 일어나기를 소망하신다면, 듣고 깨달은 말씀에 대해 응답해야 합니다. 말씀을 깨닫고 울면서 회개하던 백성들은 회개에서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듣고 삶의 진정한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10절 말씀처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 됨을 믿었습니다. 다시 말해 자기 삶의 목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자신들의 방패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신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죄 가운데 머물러 괴로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갔습니다. 12절 보시면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드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자신의 것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의 백화점 왕이 된 존 워너 메이커가 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대통령으로부터 체신부 장관직을 제안 받았습니다. 그 때 그는 한 가지 조건을 걸었습니다. “대통령 각하! 저는 토요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제 고향 필라델피아에 가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해야 합니다. 주일마다 주일학교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수락해주신다면 체신부 장관직을 수락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장관을 맡지 않겠습니다.” 기자들이 그에게 주일학교 교사직이 체신청 장관직보다 중요하냐고 물었습니다. 

워너메이커는 이렇게 말합니다. “장관직은 임시직, 부업이지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교회학교 교사직은 영원한 직책이고 나의 본업입니다.” 그리고 기자들이 어떻게 백화점 왕이 될 수 있었는지를 묻습니다. “저는 45년간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고 달려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마 6:33입니다. 그 말씀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입니다

 기자들이 다시 묻습니다. “당신 생애에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11때에 2불 75센트를 주고, 할부로 산 빨간 성경책을 지금까지 보물처럼 소중히 여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항상 백화점 안에도 기도실을 만들어 놓고, 말씀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과서로 여기고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워너메이커는 미국 최고의 백화점 왕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오늘도 놀라운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주의 말씀은 우리 인생을 밝혀주는 등불입니다. 내 인생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교과서입니다. 말씀 안에 삶의 모든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날마다 가까이 하십시오. 날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읽으십시오. 그리고 깊이 묵상하십시오. 말씀이 나를 사로잡게 될 때 내 인생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가 말씀의 자리에 바짝 다가앉아서 내 영혼의 거울인 말씀을 통해 나의 신앙 상태를 점검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모스는 이런 진단을 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암 8:11절에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고 말씀했습니다. 부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생의 부흥(revival), 교회의 부흥, 민족의 부흥이 무엇입니까, 숫자가 늘어나고 예산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채워지지 않고는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없다는 고백과 함께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 부흥의 시작입니다. 말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 인생에 부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회의 부흥도, 민족의 부흥도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나의 황폐해진 마음과 지친 심령에 말씀에 대한 목마름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무엇보다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천국을 볼 것이요” 라는 말씀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란 ‘하나님 말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살기는 살겠지만 말씀으로 인해 주어지는 기쁨과 감격 그리고 삶의 의미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매 주일마다 습관적으로 말씀을 듣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주님의 말씀 앞에 아멘으로 영광을 돌리고, 말씀 앞에서 내 죄와 상한 모습을 바라보며 울어본 적은 언제입니까? 여호와의 말씀이 내 삶에 힘이 되고 능력이 됨을 경험 적은 언제입니까? 

나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함으로 우리의 메마른 심령에 ‘말씀의 부흥’이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먼저 함께 새벽부터 모이기에 힘쓰십시오. 그리고 불방망이같은 말씀이 나에게 임하시기를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말씀 앞에 반응하십시오. 그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붙들고 순종의 삶을 사십시오. 그 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고, 든든한 바위가 되심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메마른 심령위에 은혜의 단비가 내리고, 생수의 강이 흘러 넘쳐서 새롭게 변화되고 회복되는 놀라운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주여! 내 영혼에 부흥을 주옵소서! 
기도 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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