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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인 삶, 영적인 싸움 (엡 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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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삶, 영적인 싸움 (엡 6:10-17)

 
1. 영적 세계, 영적인 삶, 영적인 싸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을 육의 세계라고 한다면, 보이지 않는 것은 영적인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즉 물질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가 공존하는데, 둘 가운데서 성도에게 더 우선인 것은 보이지 않는 부분, 즉 영적인 세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살아계시지만 영으로 존재하셔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사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신 것도 영적인 일이고,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보이지 않는 세계, 보이지 않는 존재, 그리고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선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영적인 것들이 더 우선이고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는 신학자나 목회자에게 있는 하나의 모순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이 땅의 현실적인 문제나 육신적인 것보다 신령한 것을 우선으로 하고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 신앙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영적인 세계 혹은 영적인 존재에 대해서는 아예 무시하거나 그것을 상징적인 것으로 해석해버린다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성도 여러분, 성경을 보십시오. 

성경은 초자연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마귀, 천사들, 타락한 천사들, 악한 영들에 대한 말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들이 ‘지정의’를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즉 지식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지식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성도들을 괴롭힙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마귀와 그가 부리는 악한 영들에 대해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 20장 2절과 7절 등을 보면 마귀는 ‘큰 용’, ‘옛 뱀’, ‘마귀’, ‘사탄’이라는 네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는 세상을 속이며, 귀신들을 통해 이 세상에 직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 영향력에 대해 바울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했습니다(엡2:2). 사단의 영향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넓고 강하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와 세상 사람들의 차이가 있다면, 영적 세계를 인정하는 것과 부정하는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세계를 인정하고 사탄의 훼방과 계략을 물리쳐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지만, 세상 사람들은 영적 세계와 영적인 존재 및 사후 세계를 부정합니다. 그런가 하면 그 반대되는 모습도 있습니다. 오늘날처럼 물질주의, 합리주의, 이성과 과학을 맹신하는 시대에도 초자연적인 세계에 대한 미신적인 관심은 오히려 더 높지 않습니까? 

해마다 연초가 되면 점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자신의 운명을 알아보기 위해 도사들을 찾아 나서지 않습니까? 최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여자 아이 무당이 연예인들에 대해 무슨 예언을 했니 어쩌니 하면서 관심을 끄는 것을 보십시오. 이렇게 세상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라는 영적인 진리에 대해서는 외면하면서, 미신적이고 마귀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영의 세계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 진리 위에 서고 진리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마귀와 귀신들이 하는 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들은 어떤 일을 할까요? 우선 마귀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강신술, 접신, 초혼, 전생의 신비, 심령술, 점, 점성술, 뉴 에이지, 기, 요가 등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만들어진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 미국 영화가 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 번듯한 남편, 뉴욕 맨해튼의 아파트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30대 여성이 어느 날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면서 그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인도에 가서 인도 종교를 통해, 그리고 인도네시아 발리에 가서 샤머니즘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찾는다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헐리웃의 영화들이 이런 내용을 심심치 않게 다룸으로서 사탄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귀신은 인간의 몸에 권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말을 못하게 만들 수 있고(마9:32,33), 눈을 못 보게 할 수 있으며(마12:22), 정신을 이상하게 만들 수 있고(눅8:26-35), 자살하게 만들고(막9:22), 신체에 해를 입히거나(막9:18), 질병을 일으킬 수 있으며, 어떤 초능력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눅8:29). 

그리고 사람들을 "불의의 도구"로 사용하며(롬6:13), 마귀의 교리를 선포하는데 사용하며(딤전4:1), "이단 교리"를 가르치는데도 사용합니다(벧후2:1). 뿐만 아니라 마귀는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방종하고 성적으로 타락하게 만듭니다. 종종 사랑의 이름으로 가정을 붕괴시킵니다. 동성 간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인데도 그것을 선천적이거나 기질 혹은 성향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꾸며 합리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2절은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 한 마디로 성도의 싸움은 세상적이고 인간적이고 육신적인 것이기보다는 영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의 삶이 현실세계와 영적인 세계 둘 다에 속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영적인 세계에서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벧전5:8,9)”는 것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고 성도의 삶을 방해하는 마귀와 그가 부리는 악한 영들에게 대항하는 삶, 즉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 영적인 싸움을 어떻게 싸워야 할까요? 주문을 외워야 할까요? 캐톨릭의 Exorcist들이 성수를 뿌리고, 묵주와 십자가를 내 보이면서 “사단아 물러가라”고 외치는 것처럼 하면 될까요? 오늘 본문은 여러분에게 이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법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이 현재 영적인 전쟁터에서 전투중인 군사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싸움의 대상은 사단과 그가 부리는 악한 영들, 즉 우리 표현으로 귀신이라는 것들입니다. 마귀는 단순히 하나의 힘이라거나, 세력, 혹 영향력이 아닙니다. 마귀는 인간보다 훨씬 강하며, 훨씬 거대하며, 훨씬 교묘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부리는 귀신들 역시 강력합니다. 그들은 초월적인 힘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사악하며 또한 교활합니다. 

그래서 사탄과 귀신들은 우리의 약점을 우리 자신보다도 더 잘 알아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단의 역사가 한 개인 속에, 인간적인 권세나 사회구조 속에까지 미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즉 사탄은 자기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 즉 사회 현상이든지, 사회 정치 경제적인 구조와 제도든지 그 모든 것을 이용한다는 말입니다. 그 말이 어디 나옵니까? 오늘 본문 12절,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은 그들이 이용하는 것들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귀신들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 사단을 이기 위하여 성도는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 하나님의 全身甲冑를 입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全身甲冑는 여러분의 전신을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감싸는 갑옷을 말합니다. 왜 이런 갑옷을 입어야 합니까? 이렇게 완전무장하지 않고는 파괴적이고 무서운 원수 사탄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 전신갑주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먼저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은 이미 여러분은 이 전신갑주를 입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 부턴가 제가 보기보다는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이유가 알고 보니 이 전신갑주 때문이더라고요!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지금 여러분의 몸과 영혼은 갑옷으로 둘러 싸여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는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성도가 되었다는 것은 새 옷을 입었다는 것이고, 그 새 옷이 바로 여러분의 전신을 감싸는 갑옷이라고요! 갑옷의 구성은 머리에 쓰는 투구에서부터 목과 가슴을 보호하는 것, 다리를 보호하는 것, 그리고 발과 발목을 보호하는 것 등 동서양이 비슷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이 말하는 갑옷은 동양의 갑옷이나 서양의 갑옷이 아닙니다. 성도가 입은 갑옷은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 즉 이 세상의 것도 사람의 것도 아닌 하나님이 만드시고 친히 입혀주신 갑옷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죄를 범한 아담에게 하셨듯이 말이죠. 그러면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갑옷은 어떤 것이고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허리띠, 흉배, 군화, 방패, 투구, 검 등, 갑옷으로 중무장한 고대 시대의 군인을 떠올리면서 오늘 본문을 살펴보십시다.

① 첫째는 “진리의 허리띠”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통옷을 입었습니다. 이것을 조이지 않으면 움직이기가 어려웠고 더욱이 전쟁터에서 자유자재로 싸우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꽉 조여야만 신속하고 정확한 싸움을 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허리띠는 옷을 고정시키고 행동의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J. Stott는 허리띠는 “힘과 자신감을 주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영적인 싸움을 함에 있어서 긴장하고, 제대로 싸울 수 있기 위해서는 진리를 분명히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 

여기서 진리라는 것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진리인 복음을 말합니다.  그리고 그 복음에 대해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즉 성도는 복음의 능력을 확신하고, 말씀대로 되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 그리고 그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 앞에 진실하고 성실하고 변함이 없으며, 그리고 끝까지 주님을 신뢰한다면, 그는 어떤 전쟁터에서, 그 어떤 상대와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② 둘째는 “의의 흉배”입니다. 흉배는 인간의 급소인 가슴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가슴을 공격합니다. 양심을 定罪하고 헐뜯고 비난합니다. 우리가 실수하거나 죄를 지으면 그것을 가지고 꼼짝 못하도록 얽어매고는 양심을 찌르고,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의식하게 만들고, 결국은 사람들로부터 피하여 스스로 상처를 받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흉배를 입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의의 흉배는 영적인 방탄조끼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함께 공부하는 한 침례교 젊은 목사님이 귀신들린 자매를 위하여 기도하는데, 이 자매가, 아니 그 속에 있는 귀신이 음흉하게 씨익 웃으면서 “김 목사, 난 너에 대해 다 알아” 하더랍니다. 그 순간 잠시 흔들렸지만, 그 목사님은 “내가 어떤 지 너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나도 알고 하나님도 아신다. 그러나 지금 네게 명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라고 외쳤더니 그 귀신이 나갔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속사람과 양심을 보호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열심이나 노력으로 이룬 의를 입었다고 한다면, 그것으로는 사단이나 귀신을 당해 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고 있으면, 그 어떤 강력한 무기가 공격해 와도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③ 세 번째는 “복음의 신발”입니다. 저는 발목까지 오는 부츠나 끈을 묶는 구두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군화 스타일의 신발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군화를 신을 수 없지만 군에서 신었던 군화는 정말 全天候였습니다. 군화는 계절이나 지역에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험한 길이나 오래 걸을 때에도 그만큼 좋은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신발은 편해야 합니다. 작은 것이나 혹은 큰 것을 신으면 10분도 채 걷지 못하고 지치고 피곤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영적인 싸움을 잘해내기 위해서는 복음이 주는 평안함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평안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이 평안은 복음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즉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평안, 즉 담대함을 가지고, 세상을 향하여 담대함을 가지고, 무엇보다 사단이나 귀신들에 대해서도 담대함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④ 네 번째는 “믿음의 방패”입니다(16). 방패는 군인의 全身을 막아주는 방어용 장비입니다. 당시, 방패의 크기는 75cm × 120cm 크기의 직사각형으로 상당히 컸습니다. 비록 크고 무거워 재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불화살이나, 칼, 창, 화살이 날아올 경우, 이 방패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즉 믿음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요한일서 5장 4절,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끝까지 주님을 믿으십시오. 주님만 붙드신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종류의 공격이 와도 그것을 다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⑤ 다섯 번째는 “구원의 투구”입니다.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철모라는 것을 썼습니다. <전쟁기념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모에는 총구멍이 쑹쑹 나 있습니다. 안전하지 못했다, 생명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개발되어 널리 보급된 ‘Fiber’라는 특수 투구가 있습니다. 이것은 가벼우면서도 총알이 잘 박히지 않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이 구원받은 확신, 천국에 갈 확신, 영원히 주와 함께 살 것에 대한 확신이야말로 이 영적인 전쟁터에서 흔들리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여러분의 머리를 향한 원수의 공격을 막아 줍니다. 

이 구원의 확신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고 머리로 아는 것입니다. 즉 기분이 좋으면 믿어지고, 나쁘면 안 믿어지는 감정에 따른 확신이 아니라, 정말 주님을 믿기에 이 믿음이 나를 반드시 이기게 하리라는 확신이 바로 구원의 투구인 것이죠.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아무리 세상이 두 쪽 나도 주님의 구원은 변함이 없다는 확신 위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무리 공격해봐라, 내가 구원에서 떨어지나.’하고 자신 있게 버티시면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⑥ 여섯 번째는 “성령의 검”입니다. 회칼이나 수술용 칼날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베입니다. 얼마나 예리한지 살짝 스친 것 같은데, 어느 틈에 베여져 피가 스며 나오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말씀이 바로 좌우에 날이 선 예리한 그 어떤 검보다 잘 베여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의 위력은 그 누구도 베지 못했던 것을 베며, 어느 누구도 자르지 못한 것을 자르며, 거대한 바위를 깨뜨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바로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다가오는 사단의 공격을 이겨내는 결정적인 무기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무장되어 날마다 승리하십시오.

⑦ 전신갑주를 구성하는 것의 마지막은 “기도”입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오늘날로 치면 기도는 무전기입니다. 무전기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상부에 현 위치와 상황을 보고하는 것입니다. 전쟁 중에 전투 부대가 가장 위험하게 되는 것은 부대가 적진이나 아님 산속 깊이에서 고립되는 것입니다. 부대가 그렇게 고립되는 것은 위치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고립은 통신이 두절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성도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영적인 전쟁터에서 통신이 두절된 것과 같다는 말이지요. 

하나님과의 기도가 단절이 되면 그 싸움은 보나마나 뻔 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는 영적인 싸움을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출애굽 당시에 아말렉 군대와 이스라엘 군대의 싸움에서 팔을 높이 치켜들고 기도했던 모세의 모습을 연상해 보십시오. 치열한 싸움터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원한다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성도의 삶은 영적인 것이며, 그 안에 끊임없는 싸움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싸움에서 이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하여 갖추어야 하는 전신갑주를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전신갑주를 잘 살펴보십시오.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라.” 전신갑주의 특징이 뭔가 하면 사단이나 세상을 대적하기 위한 직접적인 무기라기보다는 성도로서의 믿음과 확신과 하나님을 향한 기도생활 말씀생활이 전부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님과 복음에 대한 확신 위에 서 있는 성도, 주 안에서 열심히 사는 성도, 말씀과 기도에 게으르지 않는 성도라면, 곧 전신갑주를 입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이 영적인 싸움은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진리 위에 서 있는가?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었는가? 평안의 복음 위에 서 있는가? 믿음으로 충만한가? 구원의 확신은? 말씀 생활은? 이러한 무기들을 늘 점검하여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C. S. 루이스는 “마귀가 가장 쉽게 조종하는 사람, 마귀가 마음대로 이용하는 사람은 마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단은 모든 것을 과학이나 이성이나 합리주의로 생각하는 사람, 또 어떤 문제들을 사람들의 관계나 사회적인 현상이나 병리나 구조적인 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어느 날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꿈을 꾸었습니다. 사단이 기독교인들을 전멸시키기 위한 작전을 짜기 위하여 부하들을 모아놓고 그들로부터 작전보고를 받고 있었습니다. 첫째 부하는 “저는 사막을 걸어가는 예수쟁이들에게 사자를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사자 앞에서도 그들은 평화스럽게 기도했습니다. 저의 작전은 실패했습니다.” 그러자 두 번째 부하가 보고했습니다. 

“저는 바다를 항해하는 예수쟁이들에게 폭풍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암초에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저의 작전은 실패였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부하가 보고했습니다. “저는 한 교회를 찾아가 10년 동안 모든 일이 잘되게 하고 평안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의 영과 육이 모두 썩어버렸습니다. 저의 작전이야말로 예수쟁이들을 없애는 가장 효과적인 것입니다.” 이 이상한 꿈을 꾼 마틴 루터는 이로 인하여 종교개혁의 불길을 높이 쳐들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 강원도 태백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도 이와 같은 글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사단이 한국교회를 타락시키기 위하여 택한 첫 번째 작전은 “핍박”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신자들은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점점 더 강해졌으며, 오히려 핍박을 기뻐하면서 신앙은 더 성숙해졌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작전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두 번째 작전은 “면역화”였습니다. 

可能한한 사람들로 하여금 신앙의 가벼운 것만 가지게 하여 깊이 빠지지 못하게 했습니다. 깊은 신앙을 ‘광신적이다, 지나치다, 품위가 없다, 정통적이지 못하다, 이단적이다’ 라는 딱지를 붙여 예수를 적당히 믿게 만든 것이죠. 한때 이 작전이 성공한 것처럼 보였으나 한국교회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의 열심과 헌신을 막을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 작전을 택했습니다. 그것은 “타락화”입니다. 대형교회들, 뛰어난 설교자들,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국의 설교, 수많은 설교집들, 홍수 같이 쏟아지는 신학 서적과 경건 서적들 …. 그리하여 교인들로 하여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관심을 세상으로 향하게 하고, 세상의 것을 가지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랬더니 한국교회는 이 작전에 말려들어 정말 타락해 버렸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영적인 세계, 사단과 그가 부리는 귀신들과의 영적인 싸움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고 무시하는 것이 결국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이 땅을 망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삶은 전쟁이며 씨름입니다. 여러분이 인정하던 하지 않던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거대하고 강한 적과 대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마치 초등학생이 골리앗 같은 거인과 씨름을 벌이는 것과도 같은 상황에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씨름이라면 차라리 낫지요! 영적 세계의 현실과 영적 전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 구체적인 실상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다만 여러분은 여러분의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원수와 그의 수하들과 맞서서 보이는 세계에서 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도 전투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대적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막강한 힘을 갖고서 전 세계적으로, 삶의 전 영역에 미쳐서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빼앗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과 자녀들, 그리고 교회를 유린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갑옷을 점검하십시오. 그리하여 장소의 제한이 없고, 시간의 제한이 없는 이 광활한 영적 전쟁에서 날마다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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