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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말씀위에 서는 공동체 (전 5:1-3, 딤후 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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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말씀위에 서는 공동체 (전 5:1-3, 딤후 3:12-17)

 
자기만족을 위한 종교

우리의 이웃들이 이 추위에 교회로 향하는 우리를 보고 “당신은 이런 추위 속에서 교회에 왜 갑니까?” 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 답을 하시겠습니까?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에게 “당신은 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 답을 하시겠습니까? 

최근 한 언론매체에 소개된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50대 중년 여성에게 “당신은 왜 신앙생활을 합니까?”라고 물었더니 상당히 많은 숫자가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하여”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응답자중 77.8%가 여기에 해당했습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나는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 중년여성의 삶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는 얘기입니다. 오직 7.4%만이 “나는 진정한 믿음을 쫓기 위함이다”라는 답을 하였습니다. 

이 통계결과를 분석한 전문가의 평가가 더욱 우리의 눈길을 끕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종교를 종교 자체로 믿는 사람은 높은 행복감을 보이지만, 현실도피와 현실탈피의 도구로서 종교를 활용할 경우에 그 행복감은 매우 불행하게도 거의 상승하지 않는다.” 이 통계결과와 해석을 신학적으로 다시 옮겨본다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어려운 세상살이로 위로받고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러한 개인적이고 세상적인 동기와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여도 열심히 하는 만큼의 행복감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현상을 보고 일찍이 공산주의를 주창하였던 칼 막스는 종교가 이 세상의 아편과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종교를 찾습니다. 그러나 종교생활을 한다고 해서 자기만족을 누리고 행복감이 느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욕망과 욕심이 더 커지고, 종교가 욕망과 욕심의 도구가 되면 행복감은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참 신앙인으로 살려면 박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다시 한 번 “당신은 왜 신앙생활을 합니까?”라는 질문에 마음으로 답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기 원합니다. 그렇지만 디모데후서 3장 12절의 말씀은 진정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우리가 바라고 세상이 바라는 삶의 모습과는 또 다른 차원의 모습이 펼쳐지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깨우쳐줍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디모데후서 3:12) 

신앙생활을 통해서 위로받고 더욱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신앙인답게 살려면 박해를 받을 수도 있음을 일러주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신앙인답게 살려할 때 박해를 받게 되는 배경과 필연적 이유를 디모데후서 3장 1~5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대는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말세에 어려운 때가 올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감사할 줄 모르며, 불경스러우며,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아니하며, 비방하며, 절제가 없으며, 난폭하며, 선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무모하며, 자만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며,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 그대는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십시오.” (디모데후서 3:1~5, 표준새번역) 

성경은 말씀합니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더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삶과 사회의 모습이 아닙니까? 

성경을 통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십시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디모데후서 3:14上)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서 악하여지지 않고 속이지 않고는 성공하기 힘들어 보이는 세상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여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그러한데 어떻게 우리는 배우고 확신한 진리 안에 거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 비결도 우리에게 일러주십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디모데후서 3:15) 

정직하고 착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통하기 힘들고 성공하기 힘들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악이 편만해진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게 하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해주고 우리를 영원한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지혜를 제공해준다는 것입니다. 너무도 심하게 왜곡된 우리의 현실,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이 세상 안에서 구원받은 자답게 사는 비결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을 확고히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제공하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따라가면서 사는 것입니다. 모두가 악하여지고 속이기도 하는 오늘의 삶속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설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성경, 오직 말씀밖에 없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3:16~17) 

말씀을 떠나면 사탄의 영에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교회와 사회의 현실은 신앙인들과 교회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하고 속기도하는 풍조가 만연합니다. 매우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회의 눈으로 봤을 때에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보며 그들은 배우고 확신한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평가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또한 실제로 신앙생활을 하는 형제자매들 중에서 세상의 기준으로조차 부끄러운 일을 당하는 경우가 너무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근래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정치, 사회, 경제적 부정비리사건에는 교회와 관련된 이들, 특히나 교회의 중직자들까지도 연루돼있는 사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교회 밖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전인 교회 안에서조차 세상에서도 일어나지 말아야 될 일들이 신앙생활을 제법 오래 했다고 하는 이들에게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중직까지 맡아 봉사하던 이들, 누구도 '저 사람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사람들이 어찌하여 세상의 기준으로 비판과 조롱거리가 될 정도의 사건에 관여할 수 있었겠습니까? 

여러 가지 원인을 지적해볼 수 있겠지만, 우리가 깨달아야할 것은 교회와 교인들마저 예외가 아닐 정도로 이 세상에 악이 편만해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두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이 교회의 중직을 맡을 정도로 교회생활을 많이 했던 이들이지만 세상의 악한 세력과 맞서 살기에는 영적으로 무력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악한 영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는 악하여져서 속이기도하고 속기도하는 이 세상풍조와 타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우리에게 교훈과 책망을 주고, 바르게 함으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는 주님의 말씀 앞에 머물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의 능력 밖으로 나가니까 악하고 교묘한 속임의 영인 사탄의 영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내 목소리를 낮추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렇다면 오랜 세월동안 교회생활을 해왔던 이들이 어찌하여 그토록 무력하게 세상에 굴복하게 되었겠습니까? 우리는 그 이유를 전도서를 통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전도서 5:1) 

우리가 말씀의 능력을 제대로 체험하며 살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게을리 한다면 아무리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아도 우리의 삶이 잘못된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잘못을 신앙의 힘과 모양으로 정당화시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로 서야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매주, 매일 방송과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나름대로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그저 습관적으로 말씀을 듣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차원에서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우리를 온전한 구원에로 이르는 말씀에 대한 영접이자 항복이자 완전한 순종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전도서 5장 2절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전도서 5:2) 

우리가 함부로 입을 열고 급한 마음으로 말을 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기독교인들이 말이 많다는 세상의 평가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혹 우리가 너무 말을 많이 하다가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앞서는 말들을 조심해야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5장 2절의 말씀같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으니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임이라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심판자 되신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에 인간은 자신이 심판자가 되려 했습니다. 자신이 선과 악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말이 많아집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으니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임이라! 우리는 우리의 심판과 우리의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하늘에 계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들어야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실 때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라는 기도를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라는 기도보다 먼저 하라고 일러주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그 후의 모든 것을 허락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신의 뜻을 급한 마음으로 말하고 일을 벌이는 자들에게는 허황된 일과 우매한 자들의 소리가 더욱 크게 나타난다고 일러주십니다.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저 자신들의 소리를 내기만하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지도, 이루어지지도 아니하고 그저 목소리 큰 사람들만이 득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에 대한 충분한 공부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기도의 시간 없이 인간적인 관점과 생각에서 일을 계획하다보면, 세미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시간도, 공간도 없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지혜의 있음과 없음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저 목소리 큰 사람들이 신앙공동체마저 좌지우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경고를 경청하십시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신앙이란 천지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운영하시고 결국에는 심판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인격적인 존재이심을 깨닫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분을 향해 절대적 신뢰를 보내고 그분을 향해 절대적 충성의 삶을 살겠다는 결단과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과정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이라면 그분의 마음과 뜻을 아는 것에 온 목적의 궁극성을 두어야합니다. 또한 그 뜻에 맞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는 그분의 말씀위에 서야합니다. 그분의 말씀 외에는 어떤 것도 우리의 신앙의 토대와 동기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위에 서지 않는 신앙과 하나님의 말씀위에 서지 않는 교회는 값싼 은혜와 값싼 복을 추구합니다. 값싼 은혜의 특징은 고난과 박해와 십자가를 회피하는 것입니다. 동기와 방법이 어떠하든,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아니하고 그저 오늘 나에게 만족감을 주기만 하면 되는 신앙은 값싼 은혜에서 나오는 값싼 신앙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행복의 기준이 되는 신앙야말로 값싼 은혜를 사는 비성경적이고 비복음적인 신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혈을 흘려가며 우리에게 주신 값비싼 은혜는 오직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신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는 고난이 함께 합니다. 십자가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난의 이유는 다양합니다. 때로 세상의 불의로 인하여 고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 세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신비에 의하여 고난 중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의인이라 해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고난은 때로 우리자신의 잘못으로 올수도 있음을 기억해야합니다. 특별히 오늘 신앙인들은 우리가 신앙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더욱이 교회의 중직자라는 이유 때문에, 우리가 교회라는 이유 때문에 더욱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삶의 기준이 그들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보다 훨씬 더 구별된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가장 마음이 아프신 분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어떻게 세운 성도들이요 중직자들이요 교회인데, 거룩한 나라요 제사장의 직분을 갖고 하나님의 덕을 선전하기는커녕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어 선교의 걸림돌이 되는 사건을 일으키고 있으니 얼마나 아버지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눈과 세상의 법으로부터 숨기지 않으셨고 도피하도록 방치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신앙도 없이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 교회도 다니지 않으면서 더욱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유독 우리들을 세상의 부끄러움에 드러나도록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더욱 악하여지고 더욱 속고 속이는 이 세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더 악하여지고 속이기도하겠지만, 그리고 그것이 인생이라고 말하겠지만, 너희들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그래야만 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 사랑의 경고를 연속되는 사건들 속에서 읽어내야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게 하는 시작이요 중간이요 나중은 오로지 성경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을 급하게 함부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듣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은 말씀으로부터 비롯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커집니다. 그리고 그 커지는 신앙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혼과 영과 골수가 쪼개어지고 새로워지는 지혜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말씀과 믿음의 역사는 구체적입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먼저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그리고 그 교훈대로 살지 못했을 경우에는 우리를 책망하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바르게 인도하며 결국에는 우리로 의로 교육하여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참 신앙인답게 살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말이 옳게 들려질 정도로 왜곡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그렇지만 말씀을 우리의 삶에 우선되는 등불로 삼고 그 말씀으로부터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서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되어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이라 불릴 수 있을 정도의 믿음의 공동체로 거듭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직 말씀위에 서는 공동체가 되어 이웃과 민족을 섬기고, 세계선교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릴 수 있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오직 말씀위에 서서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값비싼 은혜를 받아 그 값비싼 은혜로부터 주어지는 값비싼 소망을 세상과 나누는 신앙공동체가 되기를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임성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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