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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로 번성케 하리라 (창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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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로 번성케 하리라 (창 17:1-8)


세계적 석학이며 한동대학교 총장인 김영길 박사가 이러한 가상적인 말을 했습니다. “멀지 않은 장래에 종말이 오는데,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로봇들이 전쟁을 벌이는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의 전쟁은 주로 화학전일 것이다. 그래서 생명이 있는 동식물은 다 죽는다. 그러나 로봇들만은 기계이기 때문에 최후로 살아남는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지구상에는 오직 로봇들만 살아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 로봇들은 자신들이 어디서 생겼는지 궁금해서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자기들을 만든 인간들이 다 죽어버렸기 때문에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자기들의 몸을 과학적으로 분석해보았더니 구리도 나오고, 철도 나오고, 아연도 나오고, 납도 나왔다. 이런 물질이 아디에 있나 하고 땅이나 공기 중에 찾아보았더니 거기서 이런 물질들이 나왔다. 그래서 로봇들은 한 가지 결론을 내린다. ‘아, 우리는 바로 저 땅속에서, 그리고 저 공기 속에서 저절로 생겨난 것이구나.’라고 말이다.” 

이 이야기는 우주만물과 인간의 창조자는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이 만복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생각을 로봇에 비유한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번성하기를 원하셔서 본문 2절에“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2절)하셨습니다. 번성이란 후손들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 원어의 뜻으로“결실하다”와“너무 많다”가 결합된 말로 수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여기에“심히”라는 말이 첨가되었으므로 그 풍성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뜻합니다. 후손이 이처럼 번성하리라는 것은 구약시대에 있어서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자손의 수가 많되 거지처럼 가난하게 살거나, 멸시와 천대를 받고 살아간다면 그러한 번성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또한 자손이 많기는 한데 경찰서나 재판소에 끌려 다니며 부모님의 속을 썩인다면 그것은 번성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으로 번성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숫자만 많은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번영이 함께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뚝 선 인물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며 가문을 빛내므로 부모님의 마음에 기쁨과 자식 키운 보람을 안겨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번성과 번영의 축복이 여러분들의 가정에 임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이러한 축복을 받아 누리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본문 1절에“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려는 축복은 인간의 능력 밖의 것입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이며 아내인 사라의 나이가 89세가 된 때에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노 부부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기 일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의 축복은 반드시 믿음을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23)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들의 삶 속에 나타나는 통로는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나타나는 통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의 능력을 인간의 능력의 범위 안에 국한 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마치 하나님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여깁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들이 앞을 가로막을 때 낙심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곧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하심을 보여주시고자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 몸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의 성난 파도를 말씀 한마디로 잔잔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각색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세상 죄를 담당하시고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3일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 후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 가셨습니다. 이분이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에 홍해를 가르고 건넜으며, 반석에서 샘물을 터트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은 다윗은 갑옷과 창검으로 무장한 골리앗 장군을 물맷돌을 던져 이길 수 있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 천하를 호령하던 로마 교황을 대항하여 종교 개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공부를 못해 학교에 입학한지 3개월 만에 퇴학을 당했습니다. 

집으로 돌아 온 그날부터 어머니가 선생님이 되어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인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에디슨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지혜가 생겼습니다. 에디슨이 발명하여 특허를 받은 것이 1000가지가 넘습니다. 과학자들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에디슨을 꼽습니다. 이처럼 에디슨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라도 없어지지 아니한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말은 하고 나면 없어지는데 어떻게 없어지지 않는 것인지, 어디에 기록이 되는 것인지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지혜를 얻어 발명한 것이 축음기입니다. 녹음기의 시초가 바로 에디슨에 의해 나왔고, 오늘날 컴퓨터도 에디슨의 연구 업적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여 살아가면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기적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회개하는 마음에 뿌리를 깊게 내립니다. 믿음은 영혼의 양식인 성경 말씀을 먹고 자라납니다. 믿음은 영혼의 호흡인 기도를 통해 자라납니다. 믿음은 영혼의 운동인 순종과 봉사를 통해 자라납니다. 이렇게 자라난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번성과 번영의 축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二.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행해야 합니다. 

본문 1절에“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내 앞에서라는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길은 어디에서도 그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습니다. 이렇게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 양심의 가책이 없도록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 보이는 우리의 모습은 참모습이 압니다. 사람 앞에 보이는 우리의 모습은 모두 위장된 모습니다. 나의 참된 모습은 아무도 보지 않는 데에서 내가 무엇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느냐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감시카메라는 24시간 쉼 없이 나를 감찰하신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비로소 참된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행하라는 것입니다. 예배에 참석한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전에서 듣고 배운 말씀을 예배당 밖에서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심을 믿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끝나면 교회 밖에서 행하는 생활의 예배가 이어져야 합니다.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하신 것은 허물과 티가 전혀 없는 절대적인 완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완전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이 말씀의 완전이란, 완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라는 것입니다. 자라나는 어린아이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서투른 말과 행동이지만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그 서투른 모습을 보고 누구도 핀잔을 주지 않습니다. 온 가족이 이를 보고 기뻐합니다. 이러한 어린 아이가 자라나 훗날 성인이 됩니다. 

이처럼 부족한 점이 우리들에게는 많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고자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믿음은 무럭무럭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성도들을 사랑하셔서 번성과 번영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언제나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지시할 곳으로 가라”하셨을 때에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백세에 얻은 금지옥엽(金枝玉葉)같은 기적의 아들을 모리아 산에 가서 제물로 바치라 하셨을 때에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제물로 바치려고 아들의 목에 칼을 겨누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급히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너의 믿음을 내가 알았으니 그에게 손을 대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참된 믿음은 언제나 행동과 함께 갑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하여 성경에 말씀하시기를“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14-17)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구약 성경 가운데 가장 큰 번영의 축복을 받은 사람을 찾는다면 다윗 왕을 들 수 있습니다. 그가 받아 누린 축복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삶을 살고자 다윗은 시편 86편 11절-12절 에 다짐하기를“여호와여 주의 도로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영토록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오리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섬기되“일심으로”“전심으로”“영토록”섬기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다윗을 보신 하나님은 흡족해 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사도행전 13:22)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은 넘치는 복을 받아 영광이 가득한 삶을 살았습니다. 

미국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 어느 봄날, 한 젊은이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오하이오주 워디 테일러의 농장을 찾아왔습니다. 농장 주인은 청년의 이름이 짐이라는 것 외에는 별로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짐에게 여름 동안 일자리를 주었습니다. 짐은 그해 여름 내내 스토브와 벽난로에 쓰일 나무를 베고, 우유를 짜고 건초를 쌓고, 수확을 거들고 그 밖에도 주인 이 시키는 일은 뭐든지 열심히 하면서 지냈습니다. 

식사는 부엌에서 하고 잠은 건초더미에서 잤습니다. 그 집에 머무는 동안 짐은 주인의 딸과 깊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짐은 주인에게 용기를 내어 청혼을 했습니다. 농장 주인은 돈도 없고, 직장도 없고, 기술도 없으며, 장래성도 없어 보인 떠돌이 짐과 딸이 결혼하면 불행해질 것만 같았습니다. 주인은 한마디로 단호히 거절하며 짐을 그 날로 집에서 내쫓았습니다. 미쳐 자신의 살림살이도 제대로 챙길 틈도 없이 짐은 쫓겨났습니다. 농장 주인과 그의 딸은 그 후로는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3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농부 테일러는 큰 헛간을 새로 지으려고 건물을 헐었습니다. 그 창고 안에 짐의 책보자기가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짐이 애독한 흔적이 가득한 성경도 있었습니다. 그 성경에 짐의 이름을 보고 모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 이름은“제임스 가필드”(James Garfield. 1831-1881) 미국 20대 대통령이었던 것입니다. 비록 떠돌이 신세였지만 짐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온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간 떠돌이 청년 짐이 훗날 미국의 20대 대통령이 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비천한 사람일지라도 온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을 가장 존귀하게 높이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전심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우리의 삶에 진보가 있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4장 15절 말씀에“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하셨습니다.

三. 소망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4절~5절에“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하셨습니다. 자식 한 사람 없는 99세 된 노인을 가리켜“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뒤늦게 이름을 바꾸라고 하셨습니다.“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 하리라”하셨습니다. 아브람은“고귀한, 영광스러운 아버지”란 뜻이며, 아브라함이란,“많은 무리의 아비”란 뜻입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꿈을 심어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99세의 나이에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주위의 사람들이 이러한 아브라함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저 불쌍한 노인이 후손을 기다리다가 이제 정신 이상이 생겼구먼.”하면서 동정하는 눈으로 바라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꿈은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 이루어 졌습니다. 그 후 1년 뒤 이삭이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후손들이 지금의 유태인들입니다. 영적인 후손들로 본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이 지구촌의 20억이 넘는 기독교 신자들이 다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이것은 모두 꿈의 열매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꿈의 결과입니다. 절대빈곤 속에서 허덕이던 우리민족이 현대 문명의 꽃이라 불리는 자동차 물결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요함이 저절로 우연히 왔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고 꿈을 외치며, 땀을 흘린 결과입니다. 꿈이 있어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그 결과가 오늘의 부강한 나라를 이룩했습니다. 

“꿈꾸는 힘이 없는 사람은 사는 힘이 없는 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벌레의 눈을 가진 민족은 망하고 새의 눈을 가진 민족은 흥한다.”라고 했습니다. 낮은 것, 천한 것, 눈앞의 것만 바라보는 벌레의 눈이 아니라, 먼 것, 높은 것을 바라보는 새의 눈 즉 소망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번영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핵심은 소망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지키시는 아버지가 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목자가 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장 33절에 말씀하시기를“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는“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셨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렸을 때에 집이 너무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침 식사 대신 양조장에서 버리는 술 찌꺼기를 먹고 등교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술 취한 학생으로 오해한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매를 맞았다고 합니다. 다음날 아침에, 아침밥(역시 술 찌꺼기)을 먹지 않고 등교하려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이거라도 먹고 학교에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명박 씨는 어머님께 그 사실을 차마 말할 수가 없어서 그냥 학교에 가곤 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가정 방문을 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어디 가셨느냐는 질문에 “어머니는 길가에 뻥튀기와 풀빵 장사하러 가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방안을 살펴보니 단칸방에 먹을 것은 없고 먹다 남은 술찌꺼기가 그릇에 담겨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밥을 먹었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못 먹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선생님은, 이명박 학생이 불량 학생으로 알고 야단친 것을 마음아파하며 이명박 학생을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합니다. 

그 후 그 선생님이 이명박 학생의 진학을 도왔다고 합니다. 이명박 씨는 “그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자신은 진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이명박 씨의 어머니는 새벽마다 아들을 깨워 기도하시기를 “우리 명박이가 장차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하는 일꾼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고는 교회로 새벽기도를 갔다고 합니다. 당시의 처지로는 허황된 기도로 밖에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은 그 가난한 여인의 소망과 기도대로 이루셨습니다. 

후손의 번영을 소망하십니까? 자식에 대해 좋은 날을 꿈꾸며 자식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되 끊임없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쌓인 사람을 들어 쓰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가장 큰 난제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죽음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므로 그 난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하셨습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믿는 사람은 언제나 소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시도 없으면 안 될 신앙생활의 3대 요소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말씀에“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우리들은 어떠한 경우라에도 소망을 가져야만 합니다. 가정에 대해서나, 자녀들에 대해서나, 교회의 앞날에 대해서나, 국가의 장래에 대해서나 어제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 소망에 믿음이 더해지고, 순종이 더해지고, 기도가 더해지고 노력과 인내가 더해진다면 그 소망은 우리 앞에 현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들이 번성하며 번영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듯, 하나님의 심정이 그와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번성과 번영의 복을 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 속에 내려오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이 믿음은 성경 말씀을 들음으로 생기게 됩니다(로마서 10:17). 그러므로 말씀 듣는 예배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예배를 경시하는 곧 하나님을 경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살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본문에“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하신 것은 허물과 티가 전혀 없는 절대적인 완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악 속에서 태어나서 죄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처럼 완전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완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라는 것입니다. 역대하 16장 9절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섬기되 절대 소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낙심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는 불신앙입니다. 낙심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소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소망하는 것을 위해 이름을 바꾸어 부른 아브라함처럼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 11:1)이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성품을 닮기 위한 최선의 노력과, 절대 소망의 삶을 살아가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번성과 번영의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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