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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일군 (히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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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일군 (히 11:1-6)


2011년 표어가 일군 삼으며 복음 전하는 교회입니다.
먼저 복음의 일군이 되려면 믿음이 충만한 신앙인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시101:6절 [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게 살게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 

하나님은 지금도 충성된 일군을 찾으십니다.
신약 성경에는 충성이란 말을 영어성경에 Faithful - 믿음충만이라 번역     
충성된 일군이 되려면 먼저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가 믿음에 대하여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이야기며,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으면 산을 바다에 옮길 수 있다는 말씀, 
또 믿음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얻는다는 말씀, 
이런 성경의 말씀들을 성의 있게 가르치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초등학교 5학년짜리 남자 아이가 
     환한 얼굴을 하고 불쑥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 믿음이 참 좋은 것이네요." 
"그렇고 말고." 
"그런데 선생님 믿음이 좋은 것은 알겠는데 믿음이 무엇이예요?" 
"믿음이 무엇이냐고? 그냥 믿는 거지 뭐, ” 하고는 
        믿음에 대해 분명한 개념이 떠오르지 않아서 하는 말이 
"얘, 네 아버지가 장로님이시니 아버지께 여쭤 봐, 아버지가 더 잘 아시니까!" 

그 소년은 집에 돌아와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시는 아버지에게
   꼬박 기다리다가, 대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오시는 것을 보고 
불쑥 “아버지, 믿음이 뭐예요? 믿음이 좋은 것이라면서요” 하니
아버지가 대답을 못해서 민망해 하는 말이
“네 엄마가 기도 많이 하니 엄마한테 물어보라” 고 합니다.

아들은 부엌으로 달려가 엄마에게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엄마, 엄마 믿음이 뭐예요? ” 하니 엄마가 하는 말이
“아버지한테 물어 봐라 아버지는 장로니깐” 합니다.
“아버지 한테 물어보니 엄마한테 물어 보라고 하는데요”
그러니 하는 말이 “그럼 하나님 아버지 한테 물어봐라 ” 이게 답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히11:은 믿음과 믿음의 사람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믿음이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절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바라는 것”의 원문의 의미는 
‘기대하다, 자신하다. 희망하다, 확신하다’는 뜻입니다. 
        어법상으로 확실하게 바라고 희망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여기 바라본다는 것은 방향적인 요소입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 말은 즉 방향성이 확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방향이 바르지 않으면 참 믿음이 아닙니다. 
      만일 세상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바라보아야만이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 설교 가운데 보면
       일제시대 초등학교 시절에 달리기에는 자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운동회 때 달리기를 하는데
목사님이 일본말을 잘 몰랐기 때문에 운동장을 한바퀴 돌라고 하는데 
         자기는 집으로 가라는 줄 알았답니다. 
그래서 출발선에서 출발신호인 호루라기 소리가 나자마자 뛰었습니다.            
일등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그런데 운동장을 넘어 학교 문밖으로 나가 집이 있는 동네쪽으로 달려가는데        
이를 보고 뒤에서 아버지가 아들 이름을 큰소리로 부릅니다. 
결국 그 소리를 듣고 다시 운동장으로 돌아와 뛰어보지만 
     결과는 꼴찌였다고 합니다.
믿습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향해 달려야지
         어떤 교인은 집으로 향해 내다 달립니다.
믿음은 방향성이 있고 그 바라보는 대로 되려는 특성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이 지어 준 다니엘의 이름은 '벨드사살'입니다. 
그 뜻은 '벨신이여 생명을 보존하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한 번도 그 이름을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는 자기를 말할 때마다 '나 다니엘'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재판관’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끝까지 벨신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살았던 것입니다. 
이 방향성이 정확해야 
   바라더라도 바른 믿음이라는 것 마음에 새겨놓으시기 바랍니다.


2) 믿음은 가시성이 있습니다.

믿음이란 보인다는 말입니다. 스스로 나팔 불지 않아도 나타납니다. 
성경은 믿음을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했는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란 실체는 보이지 않아도 
          믿음만으로 보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믿음은 보입니다. 농부가 남의 밭에 일하다 보화를 발견하고 숨겨 두고 
자기 집을 다 팔아 샀는데 보화는 감취여 보이지 않지만 농부의 얼굴에 나타난 
       환희와 행복의 미소만은 결코 감출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스데반의 얼굴에서 천국을 보았습니다. 
그의 얼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좋은지 나쁜지 보면 압니다. 
         얼굴만 봐도 압니다. 말하는 것을 보면 압니다. 
         사는 것 보면 압니다. 신앙 생활하는 것 보면 압니다.
         교회 생활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정 생활하는 것 보면 압니다. 
         인간관계를 보면 압니다. 교회 일할 때 보면 압니다. 
믿음은 이렇게 삶으로서 다 나타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고 나의 삶을 통해 나타내 보여주는 것

오늘 믿음 이야기 하려고 하는데
우리가 왜? 이 믿음에 대해 눈이 뜨여져야 하고 
왜? 성경이 말하는 믿음을 붙들어야 하는가 하면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인들이 믿음 없이는 
                 세상 살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가 쓰여진 목적도 당시 초대교회의 열정이 식어진 상태에서 
믿음을 상실하고 퇴보하기 시작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격려하기 위해서 기록한 말씀입니다. 

히10:38절 [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 고 경고하면서 

천사보다, 모세보다, 제사장 아론, 보다 우월하시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는 믿음에서 흔들리지 말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믿음이 흔들리지 아니해야만 세상의 어려운 삶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1서5:4절「대저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오늘 이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왜 우리가 믿음에 눈이 뜨여져야 하고 이 믿음을 붙들어야 하는가? 

2)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믿음의 선진의 반열에 서서
   하나님 나라의 충성된 일군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마 히11장에 믿음의 인물들을 이야기 하면 
     어떤 성도들은 상당히 거리감을 두고 듣습니다만 
그러나 히11장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특별난 사람들 이야기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아벨 - 일찍이 형제 간에 불화로 일찍 죽임을 당한 자입니다.
에녹 - 제 명데로 다 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간 자입니다.
아브라함 - 아내를 누이라 속여야 하는 겁쟁이요
           종 하갈을 취해 이스마엘을 낳을 만큼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인물입니다.
이삭 - 사람이 너무 물러서 약해빠진 남자입니다.
야곱  - 간사하고 남을 속이는 사기꾼입니다. 
모세 다윗 모두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저들의 약점을 간과하시고
저들이 갖고 있는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의 증거를 우리에게 말해주면서
너희도 이 증거 붙들고 믿음의 선진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가 누리는 최대의 복은
      우리가 바로 믿음의 선진의 반열에 서는 것입니다.


2. 오늘 성경은 믿음의 사람을 선진들이라고 합니다.

2절 [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 고 합니다.

오늘 성경은 믿음의 본 되는 사람들을 선진이라 합니다.
선진이란? 헬라어 <퓨레스뷔테로스>라 해서 “장자, 장로”란 말입니다.
장로교를 Presbyterian 이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내일교회를 영문으로 Naeil Presbiterian Church라 합니다.
      그리고 개혁주의 신앙을 Protestant라 합니다. 
       모두 <퓨레스뷔테로스>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니 히11:은 장로 이야기입니다.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장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사라라든지 기생라합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볼 때 
지상교회가 아니라 천상교회 장로 이야기입니다.
그럼 천상교회도 목사가 있고 장로가 있느냐? 
천상교회는 지상교회같이 직분은 없습니다. 그러나 반열은 있습니다.

찬267장4절 [예언자들과 왕들도 반열대로] 하듯이 
장로의 반열 즉 장자의 반열이 있습니다. 
누가 그 장자의 반열에 서느냐?  
바로 장자적 믿음을 가진 자가 설 수 있습니다.
누가 장자적인 믿음을 가진 자인가?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장자는 많은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야곱이 장자가 된 것도 유다가 장자가 된 것도 
   자신들의 노력이나 훈련으로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유다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유다는 넷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장자 르우벤이 아비 야곱의 첩 빌하를 범하므로 장자에서 탈락되었고
둘째 셋째 시므온과 레위는 
창34:에 여동생 디나의 겁탈 사건으로 세겜 땅 사람들을 
칼로 다 죽였기 때문에 탈락 되었습니다. 
그러니 절로 넷째 유다가 장자가 된 것입니다.
마치 대학입시에서 떨어졌지만 미등록자가 생기는 바람에 합격한 것같이 
하나님 앞에 장자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장자적 신앙에 눈이 뜨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 서울 S 교회 부흥회 1남전도회 회장 간증 >

장자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스라엘 민족에게는 장자가 갖는 특권과 책임이 있습니다.
신21:17절에 장자는 그 아비의 소유에서 두 몫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비의 뒤를 이어 집안의 통솔권을 가집니다.
그런데 야곱은 장자권을 획득했지마는 실제로는 형 에서에게 좇겨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지 못하고 
       집안의 통솔권도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야곱의 장자의 명분은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왜 그토록 야곱은 장자권을 흠모하고 
나중에 얍복강 가에서 형에서를 만났을 때도 장자의 명분은 돌려주지 않습니다. 
야곱이 끝까지 장자의 명분을 부등켜 안은 것은 
영적인 하나님의 거룩한 축복을 받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영적인 축복이 무엇인냐?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마1: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가운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유다라고 합니다.
     본래는 르우벤이 장자였는데 실제로는 넷째 유다가 장자가 됩니다.

유다에 대해서 창49:9절 이하에
[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 하면서
[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리하 ] 합니다.
홀이 무엇인냐? 고대에 왕권을 상징하는 막대기를 말합니다.
이 홀은 바로 하늘나라에 왕권을 상징하며
바로 하나님의 성역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그래서 야곱 그리고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됩니다.

어떻게 장자적인 사명을 감당합니까?  
[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
           우리말의 <선진>이란 앞서가는 자란 말입니다.
선진이란 말을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용한다면
         믿음의 경주에서 앞서 달려가는 자를 말합니다.
이 선진이란 말 영어에 적당한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Spurt 란 말입니다.
이Spurt 란 말                                                         
92년도 바로셀로나 올림픽 때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서 
       온 국민의 마음을 흥분케 했습니다. 
마라톤 105리길 42,195Km를 달리는데 거의 결승 지점까지  
       일본 선수와 금메달을 두고 같이 달립니다. 
그런데 40Km 지점즘 와서 코너를 돌아서는데 황영조 선수가 탁 튀어 나갑니다.
그러니 일본 선수가 따라 잡으려고 하다가 얼굴이 일그러져요. 지친거죠
저도 화면을 통해 그 장면을 보고 있었는데 야! 됐다 싶어요.
그때 황영조 선수가 탁 튀어나가는 것을 Spurt 했다고 합니다.

한 경기에 어느 선수가 몇 키로 지점에서 스파트 하느냐에 따라 
그날 마라톤 기록은 달라집니다.
만약에 금메달만 의식하고 서로 견제하며 스파트 하는 선수가 없다면 
       그날 기록은 영~ 저조합니다.
이런 현상은 교회 안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오늘 내가 장자적인 신앙에 눈이 드여졌다면 
     여러분에게 주어진 사명에 스파트 하시기 바랍니다.

선진들이란 바로 믿음의 본이 되는 인물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사의 믿음의 장자들을 말합니다.
           이 사람들 바로 믿음의 증거가 있다고 합니다.
본문말씀은 그 증거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럼 믿음의 증거를 얻은 선진들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3. 믿음의 선진들의 삶이 어떠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전에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이 먼저 증거하고 있습니다.

3절 [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리라 ] 

이 말씀은 오히려 우리의 믿음보다 하나님의 신실함에 강조를 두면서 
우리가 나타내는 믿음에 대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은 
       바로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결코 부도를 내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히1:3절 [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
유가 증권있지요. 누가 발행했느냐?에 따라 신뢰도가 다르지요.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보이진 않지만
         액면가 그대로 나타나며 실행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히11:에 나타난 믿음의사람들 어떤 믿음의 증거를 갖고 있습니까? 

 
4. 4절 [ 믿음으로 아밸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게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다. ]고 합니다.

1) 믿음이 예배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에서 믿음의 증거가 나타나야 합니다. 어떤 증거 갖고 있습니까?
[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해여 증언하심이라 ]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
       드려진 예물이 믿음으로 드렸다는 것을 말해 준다는 것입니다.

창4:에 보면 형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동생 아벨은 어린양의 희생의 제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외면하시고 아벨의 제사는 열납했습니다.
이것은 가인은 인간의 의를 앞세운 것이고,             
       아벨은 어린 양의 희생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앞세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항상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죄인 된 자격으로 나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감격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의 믿음이 예배에서 먼저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예배 드릴 때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위에
우리의 마음을 쏟아 붓는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이 반드시 열납하시고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당신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2) 믿음의 증거는 죽어서도 말을 합니다.

4절 하반 [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 
   믿음의 증거는 죽어서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2010.4월 방영 K.B.S 스페셜  휴먼 다큐드라마 - ‘울지마 톤즈’
친구가 되어 줄래요? 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찡한 감동을 주는 수단 선교사 이 태석 신부 
이 태석 신부는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7년 인제대 의대 졸업 후
군의관으로 복무를 마치고 광주 카톨릭대학을 나와 2001년 사제 서품을 받고 
2008년 11월 까지 약 8년간 남부 수단 톤즈 마을에서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이신부는 로마의 살레시오 신학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케냐의 나이로비로 답사여행을 떠났다가, 
         30여 년간 남수단에서 활동해온 제임스 신부를 만나 
나이로비에서 2,800km 떨어진 남수단에 와서 톤즈 주민들을 보고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하는 것이 나에게 하는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그들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사람이 저렇게도 가난할 수 있구나, 
  저렇게 죽음 가까이서도 살 수 있구나…."하고 느끼면서 
아프리카 남수단에 가서 선교사로 생활하기로 결심을 굳혔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쟁과 가난과 무지의 오지 마을 톤즈에서 의료선교를 하면서 
      특히 나병환자들을 돌보았으며 학교를 세우고 벤드를 조직해서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태석 신부가 대장암 판정을 받고 1여년 투병생활 끝에 
작년 1월 14일 하나님 부름을 받았습니다. 

저는 재방송 드라마를 보는 가운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왜? 하나님 이렇게 훌륭한 종을 일찍 불러 갑니까? 라고 하는데
나레이터가 하는 말이 그는 죽어서 더 큰 일을 한 사람이라고 멘트를 합니다.
이태석 신부의 죽음을 통해 
의료 선교사가 지원을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선교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증거는 아벨같이 죽어도 말을 하고 있는 삶입니다.
스테반의 죽음은 바로 초대교회의 획기적인 부흥을 가져왔다는 사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죽어서도 지금도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참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5.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증거로 나타나야 합니다.    

5절 [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옳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옳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입니다.
성경은 에녹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다만 창5:24절에 [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 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
바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되게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유14절∼15절에
에녹은 아담의 칠세 손이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몹시도 타락했습니다. 
노아의 홍수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에녹은 동시대 사람들의 경건치 않은 일과 경건치 않은 말을 정죄하면서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그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며 
        죄악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 에녹은 세상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세상과 벗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365년동안이나 하나님과 더불어서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그는 "Sunday Christian"이 아니었습니다. "Everyday Christian"이었습니다. 
에녹은 날마다 매순간마다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삶으로 그의 믿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해 주신 것입니다. 


6. 에녹이 어떻게 세상에서 구별되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느냐?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 그 답이 6절입니다.
[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은 
1)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한 빈민가에서 목사와 이발사가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주변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며 지저분하고 
       악취가 풍기고 아주 좋지 않은 환경이었습니다. 
이발사는 그런 모습을 보며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 정말로 목사님이 증거 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왜 이런 것을 보시고 내버려 놓습니까?” 
그 목사님이 대답을 안하고 한참 그 이발사와 걸어가는데 
마침 청년 한사람이 다가왔습니다. 
머리를 산발로 하고 수염을 이렇게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여보세요. 왜 당신같이 훌륭한 이발사가 있는데 
           저 사람은 머리를 저렇게 늘어뜨리고 
          수염을 저렇게 길게 기르고 추잡하게 다닙니까?” 
그 이발사가 허허 웃으면서  “내게 안 오니까 그렇지요. 
이 친구가 내 이발소에 왔다면 내가 미남으로 만들어 놓지요” 
“그래요?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가난한지 압니까? 
하나님께 안 오기 때문에 가난한 겁니다. 
하나님이 안계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2)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자이심을 믿는 자들입니다.
여기에 상이라는 말은 약속이란 말입니다.                              
반드시 약속의 말씀을 지키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던컨 도너츠의 설립자 로젠버그는 72세 생일 축하 자리에서 
기자들이 성공의 비결을 묻자
[ 저는 가난하고 못 배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과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주일날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릴 때 말씀에 은혜를 받는 다면 
  그는 반드시 성공자가 될 것입니다. ]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려는 자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믿기어져야 하고 
또 반드시 약속을 지키는 자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나는 오늘 어떻게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증거를 갖고 있습니까?
내 생명을 하나님 살아계신다는 편에 걸고 있습니까?
환경과 여건이 변해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 믿음을 가지고 
세상에서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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