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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풍랑 속의 제자들을 찾아오시는 예수님Jesus Walking on the Sea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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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오늘 본문은 갈릴리 바다 위에서 풍랑을 만나 힘겹게 노 젓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큰 바람과 싸우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 그
리고 그들의 어려운 상황을 보시고 친히 바다 위로 걸어서라도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바람과 파도를 잠재우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소망을 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의 ‘물 위로 걸어오신 사건’ 앞에는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신 사건’ 이 사복음서에 공통적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두 사건을 비교하면 오병이어 사건은 많은 무리 앞에서 행한 것이므로 공적(公的)인 이적이라 할 수 있고, 물 위를 걸어오신 사건은 제자들만 보았으므로 사적(私的)인 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배고픈 민중들을 먹이신 인간계의 이적이라면, 후자는 자연을 상대로 한 자연계의 이적입니다. 예수님의 이적은 이처럼 모든 면에서 풍성하고 예수님의 능력은 무한함을 보여줍니다. 

본문은 예수께서 오병이어 현장을 급히 떠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45,46절)

예수님은 서둘러 제자들을 강요하여 무리들과 떨어지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오병이어의 엄청난 이적을 본 무리들이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야로 생각하고 왕으로 삼고자 했기 때문입니다(마 14:22, 요 6:13,14).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육적 필요를 채워주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영적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주님은 군중들의 잘못된 메시야관을 거부하시고 급히 제자들을 배에 태워 건너편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은 홀로 피하여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셨고, 이것은 우리에게 크고 작은 성공을 거둔 후에 찾아오는 유혹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탁월한 모습입니다. 

본문에서는 환호하는 군중을 피하셔서 기도하시는 예수님, 한밤중에 바다 위에서 괴로이 노 젓는 제자들을 보시는 예수님, 물위로 걸어서 제자들을 찾아오시는 예수님, 그리고 그들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풍랑 속의 제자들을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힘겹게 노 젓고 있는 삶의 현장에 이적을 통하여서라도 역사하시는 주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1. 힘겹게 노 젓는 제자들을 보심 (=고달픈 인생)
47-48절=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홀로 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은 바다 위에서 풍랑을 만나 힘겹게 노 젓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셨습니다. 제자들이 탄 배는 바다 위에서 역풍(逆風)을 맞아 힘들게 노를 저으면서 계속 바다 가운데 정체되어 있었고, 예수님은 산에서 기도하시면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시다가 제자들을 보신 것입니다.
여기 ‘힘겹게(바사니조메누스)’ 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이 보고 계신 그 순간에도 여전히 그들은 역풍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본절은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를 저었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의 병행구절은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고 하였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지중해의 수면보다 200미터나 낮은 곳이고 동쪽은 골란 고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리적 환경 때문에 갑작스런 돌풍이 불기도 합니다. 이날 밤에도 갑자기 광풍이 불고 풍랑이 일어나서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가 나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예수께서 멀리 산에서 이 사실을 아셨고, 이에서 더 나아가 제자들을 돕기 위해 물 위를 걷는 기적의 방법을 동원해서 그들을 찾아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성도의 형편을 모두 알고 계실 뿐 아니라 성도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어려움을 당해 힘들어 하고 있을 때 ‘나의 어려움을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다’ 라고 말하며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주님의 백성이요 자녀라면, 주님은 어려움 가운데 처한 자기 자녀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성도 여러분!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게 된 것은 
예수님의 명령을 거역하거나 회피했기 때문이 아니고 오히려 그 명령에 순종하여 건너편으로 가다가 당한 고난이라는 점입니다. 제자들은 주님 몰래 행동한 것이 아닙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던 장소에 가급적 오래 남아 오랜만에 배불리 떡을 먹으며 쉬고 싶었을 것이고, 몰려든 군중들에게 자기들이 예수님의 사도된 것을 자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주님께서 명령하셨기에 순종하여 건너편으로 배를 저어가고 있었습니다(45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처럼 광풍과 파도로 인해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찌된 일입니까?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괴로움을 겪고 있으니 말입니다.
흔히 우리는 말씀대로 순종만 하면 만사형통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따라 순종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겪은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세, 엘리야, 예레미야와 같은 구약의 인물들과 베드로, 야고보, 요한, 바울과 같은 신약의 인물들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며 사명의 길을 갔지만 도중에 수많은 장애와 역경에 부딪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조차도 이 땅에서 자신과 자신의 사역을 반대하는 수많은 장애물을 만나셔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순종하는 성도에게도 역경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대적 마귀와 귀신들이 우리를 삼키기 위해 늘 도전하며 시련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욥이 까닭 없이 시련을 당했던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 나라의 길을 가다가 시련과 역경에 부딪치더라도 결코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당황하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가져서도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더욱 깊은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는 축복의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벧전 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할렐루야! 

2. 바다 위로 걸어 오심 (= 초자연적 능력의 예수님)
48-49절=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한밤중까지 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 풍랑 속에서 힘겹게 노 젓는 제자들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물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다가오셨습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주님은 자연법칙을 초월하면서까지 제자들의 고난의 현장으로 가까이 임하신 것입니다. 
배는 육지에서 십여리 떨어진 곳(요 6:19), 그러니까 갈릴리 바다 한 복판에 있었고, 시간은 밤 사경(새벽 3시~6시) 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물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49절). 이 모습 속에 제자들과 우리 자신의 모습이 있고, 신앙 이전의 모습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제자들의 배에는 한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그 자리는 바로 예수님의 자리입니다. 조금 전까지는 주님이 함께 하시므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수천 명이 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을 경험했는데, 지금은 주님이 계시지 않으므로 풍랑 속에서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십니다. 반갑게 맞이해야 할 텐데 제자들은 오히려 두려워하고 유령이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만민의 구주이신 그분을 유령이라, 귀신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예나 지금이나 여러 가지로 오해받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목숨을 걸고 충성스럽게 따랐던 제자들이 있었던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 귀신을 내쫓았다는 식으로 예수님을 왜곡해서 모함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를 ‘먹기를 탐하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 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오늘도 공산주의자들은 그리스도를 인간의 아편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의 가르침을 건전한 이성을 마비시키고 중독시키는 마약 쯤으로 폄훼합니다. 최근에는 인터넷 매체를 통하여 안티 기독교(anti-christianity) 세력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사건건 교회의 가치관에 반대되는 이슈를 제기하며 시비를 걸어오고 있고, 특히 교계의 일부 세속적이고 부패한 모습들을 가지고 기독교 전체와 그리스도에 대하여 사악한 공격을 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예수님께 절대 순종하는 충성된 신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성도들입니다. 이들을 통해 지금 하나님의 나라는 끊임없이 확장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물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은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백한 음성을 듣고 놀란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마음 속에 참된 평안을 가질 수 있고, 따라서 모든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를 건너갈 때에 피곤하셔서 고물에 주무셨습니다. 그때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25-26절=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제자들이 급하게 깨우면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 예수님은 눈을 뜨시면서 모든 사정을 아셨습니다. 

주님은 누워계신 자세로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라고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책망하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을 책망하시고 이어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주님은 먼저 제자들의 마음 속에 믿음이 작은 것을 책망하셔서 그들의 마음의 문제부터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해결 받을 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제자들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바로 알 때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지금 풍랑 가운데서 힘겹게 노 젓고 있는 분은 안 계십니까? 어려움 속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가지고도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빠져 있는 분은 안 계십니까?
풍랑 속의 제자들을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유령이라고 놀라지 말고, 우리의 구주요 주님이신 그분을 기쁨으로 맞이하십시오. 지금도 주님은 필요하시면 물 위를 걸어서라도, 이적적인 방법으로라도 우리를 도우러 오십니다. 할렐루야!

3.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침 (= 인생 풍랑 잠잠케)
51절=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풍랑 이는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이 노 젓고 있는 배를 향해 접근해 가신 예수님, 그리고 유령인 줄 알고 놀라는 제자들을 안심시키신 예수님은 이제 배에 오르셨고, 사납게 불던 바람은 이내 잔잔해졌습니다. 주님 앞에서는 자연까지라도 순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자연 재해를 당할 때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인생의 풍랑을 만날 때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불어오는 역풍이 제자들의 길을 방해했던 것처럼 우리를 괴롭히고 인생 길을 방해하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인생의 풍랑은 육신의 
질병일 수도 있고, 사업의 어려움이나 가정의 파탄 등 불행한 사건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제자들을 괴롭히고 뱃길을 막던 심한 풍랑조차도 예수께서 배 안으로 들어오시니 이내 잠잠해지지 않았습니까? 우리 인생의 풍랑이 아무리 거세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아무리 우리의 인생 길을 방해한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즉시 잠잠해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인생 풍랑을 잠잠케 하십니다. 현대인이라고 해서 인생의 풍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지금 우리는 옛날 사람들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잘 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전보다 훨씬 견고하고 편리한 집에 살고 있습니다. 훨씬 오래 건강하고 부유하게 살고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아는 것도 많아지고 풍성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풍성함에 반비례하여 현대인의 내적인 삶은 텅 비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엔 외적으로 가난하고 초라하고 소박한 사람들도 내적으로는 든든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현대인의 삶을 안팎으로 좀먹고 있는지 모릅니다.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적지 않은 젊은이들과 운동 선수들이 대마초나 환각제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습니다. 끔찍한 범죄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고, 세상은 점점 사랑이 식어가는 각박한 생존경쟁의 정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속이 비어 있는 결과입니다. 예수님의 자리가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 계신 세상에서 인생 풍랑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3세기의 전설적인 순교자 크리스토퍼(St. Christopher)의 일화입니다. 그는 중년에 은혜를 받고 회개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여 세상을 섬기기로 헌신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으로 어려운 이웃을 봉사하기로 결심하고, 물이 세차게 흐르는 강에서 약한 사람들을 업어 강을 건네주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어느 날 한센씨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크리스토퍼 앞에 섰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망설였습니다. 
이 더러운 환자를 업으면 자기 몸에 무서운 나병균이 들어올 것 같았습니다. 차마 환자 앞으로 등을 내밀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에 그는 문득 십자가에 달려 모진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나병균보다 몇 천배 더 흉칙한 인류의 죄짐을 지시고 나무에 달려 온갖 모욕을 당하셨는데 내가 못할 것이 있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나환자를 업었습니다. 
강을 건너가는데 그날따라 물살이 어찌나 거세든지 자칫 강물에 빠질 뻔 했습니다. 겨우 강 건너편
까지 건너서 그 환자를 내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보니까 나환자는 간곳이 없고 찬란한 빛의 주님께서 거기에 서 계셨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이 오셔야 합니다. 주님을 우리의 삶 속에 모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십자가를 달게 지고 주님을 따를 준비를 갖춰야 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의 어떠한 인생 풍랑도 이내 잔잔해질 수 있습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던 예수님은 오늘도 인생 풍랑을 만나 힘겹게 노 젓고 있는 자기 백성을 찾아오십니다.
여러분은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을 위협하는 인생 풍랑을 말씀으로 꾸짖어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을 뵌 적이 있습니까?
이를 위해 주님은 때로는 기적을 베푸시기도 합니다. 주위의 모든 것들을 사용하여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목적지로 안전히 인도하십니다.
풍랑 속의 제자들을 찾아오시는 예수님! 이 예수님을 기도와 말씀으로 초청하셔서 천국까지 동행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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