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버러지 같은 야곱 (사 41:14-16)

첨부 1


버러지 같은 야곱 (사 41:14-16)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15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16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사41;14-16) 

오늘 본문인 이사야서의 주제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입니다. 또 성령의 감동으로 이 책을 쓴 이사야의 이름의 뜻도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입니다. 이사야서에서는 ‘구원’이란 단어가 26회가 나옵니다. 다른 예언서에서는 모두 합해서 7회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을 볼 때에 이사야서가 얼마나 ‘구원’이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실제로 선지자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의 ‘유다’는 하나님의 마음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윤리적인 범죄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부패와 정치적인 악행이 거듭되었고, 종교적으로는 우상숭배가 만연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지 않았지요.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였고, 선민의 백성들이 회개하기를 촉구하면서 만약에 돌이키지 않으면 멸망할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어찌하든지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부르짖습니다.  

성경이 모두 66권인 것처럼 이사야서도 66장으로 되어있는데... 1-39장은 39권으로 이루어진 구약성경과 유사하게 죄에 대한 심판이 묘사되어 있고, 40-66장 까지는 27권으로 이루어진 신약성경과 유사하게 메시야의 구원에 대한 소망이 묘사되어 있어서 성경 66권 전체의 축소판 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원을 강조한 이사야서에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은 자기의 선민인 야곱 즉 이스라엘을 가리켜서 버러지, 벌레(=지렁이)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좀 표현이 마음에 안 드시나요?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선민 이스라엘을 이렇게 낮추어 말씀하실까요? 事實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약하고 힘없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버러지 같은 우리를  도우셔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로 삼으십니다.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비록 우리 눈앞에 놓여 있는 문제가 태산과 같다 하더라도 결국은 부스러기처럼 되어서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사라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랑하는 멋진 삶, 승리의 삶, 복 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마음에 더 깊이, 더 새롭게 와 닿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壹.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문자를 써서 표현하면 ‘우리의 실존, 우리의 정체성’ 입니다. 영어로는 ‘아이텐티티’ 라고 하지요.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듯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14절입니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하나님은 우리를 가리켜서 사자와 같다고, 독수리와 같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러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당신의 선민이요, 택한 백성을 이렇게 말씀하실까요? 버러지, 전의 성경에는 지렁이입니다. 

성도여러분, 이것은 욕이 아닙니다. 벌레도 지렁이도 다 하나님이 만드신 생물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이 말씀은 벌레, 지렁이의 특징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렁이가 어떠한 생물입니까? 비가 오면 땅에서 나와 길바닥에 기어다닙니다. 그러다가 비가 그치면 갈 곳을 모르고 그저 꿈틀거리기만 합니다. 그러다가 해가 비치면 말라죽는 것이 바로 지렁이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지렁이는 늘 당하기만 합니다. 새가 보아도 먹어치우고, 두더지가 보아도 먹어치웁니다. 물고기의 먹이로 쓰이기도 합니다. 밟으면 밟혀 죽는 것이 바로 지렁이요 버러지입니다. 아무런 방어 수단이 없습니다. 도망도 못갑니다.  

왜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인 우리를 버러지, 지렁이 같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우리의 실존(實存)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처음에는 이 말씀이 싫었습니다.  ‘버러지라니, 지렁이라니 나는 아니야’ 라고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말씀이 좋습니다. 은혜가 됩니다. 

인생을 살아보니.. 정말 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입니다.  정말 너무 미약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는 그냥 죄인입니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죄인, 작은 죄 하나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맞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 앞에서 편안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잘 아시니 폼 잡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 앞에서는 각도 잡고 폼도 잡아야 하는데.. 우리 하나님 앞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체면과 가식을 다 던져버리고 맨몸으로 나가도 됩니다. 울어도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버러지가 지렁이가 무슨 폼 잡을 것이 있습니까. 

 貳.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무어라고 말씀을 하시나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하나님은 버러지 같은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실까요?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내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그렇습니다.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 주변에 있는 어떤 사람들이 ‘내가 좀 도와줄게’ 라고 말을 해주면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까!! 하물며 도와주겠다는 그 사람이 재산이 많거나 권세가 있는 사람이면  힘이 되는 정도를 넘어서 문제가 싹 해결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누구이십니까?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십니다.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시기에, 말씀하신 대로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의 힘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환난 날에 우리의 도움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두려움에 떨 필요가 없습니다. 

영국의 한 장교 부부가 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심한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비바람이 선체를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배는 몹시도 흔들렸고,  부인은 겁에 질려서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그때 장교가 자기허리에 차고 칼을 빼내 들었습니다. 그는 그 시퍼런 칼을 아내의 목에 들이댔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아내는 태연하기만 했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여보, 당신은 내가 당신 목에 칼을 목에 들이댔는데도 무섭지 않소?” 

그러자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칼이 원수의 손에 들려졌다면 겁을 낼까, 사랑하는 당신의 손에 들려져 있는데 왜 내가 겁을 냅니까?” 그 말을 듣고서 장교는 그의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맞소, 바로 그것이요. 이 우주의 운전대를 쥐고 계신 분이 누구요? 마귀의 손에 쥐어 있다면 겁을 낼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이 우주의 운전대를 쥐고 계신데 겁을 낼 필요가 무엇이겠소?” 그 말에 부인은 부끄러운 미소를 띠면서 찬송을 불렀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이 음성을 들으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날마다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시면서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않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參.  다음으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결과(結果)입니다.    
우리는 버러지와 같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면,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하나님은 버러지와 같은 우리를 더 이상 버러지가 아니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제 타작 기계를 삼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도 보통 타작 기계가 아닙니다.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입니다. 버러지가 변해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면 못 하실 일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날마다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처럼 능력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전과는 다릅니다. 보십시오.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것을 날리겠고 회리바람이 그것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살아가다 보면 이런 저런 문제들이 크고 작은 산처럼 우리 앞을 가로막습니다. 건강문제, 경제문제, 자녀문제, 사업문제, 대인관계문제 등등 수많은 문제들이 우리 앞을 태산처럼 가로막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태산 같은 문제라도 부스러기처럼, 바람에 겨처럼 사라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짓말 하시나요? 이와 같은 능력의 역사가 우리 삶의 현장에서 늘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헌금위원이 헌금주머니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초라한 차림의 한 맹인이 10만원 짜리 수표를 세 장이나 헌금 주머니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헌금위원을 하던 집사님이 매우 놀랐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기회가 되었을 때, 그 맹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토록 많은 돈을 헌금했습니까?” 그러자 그 맹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라고 헌금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요? 지난번 저는 교회 사무원에게 교회에서 한 달 동안 쓰는 전기료가 얼마쯤 되는지 물었습니다. 대략 30만원 정도가 된다고 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소경입니다. 볼 수 없으니 전깃불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의 눈을 뜨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교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의 눈을 뜨게 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는 사역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육신의 어두움보다 훨씬 심각한 영의 어두움을 밝혀주는 교회의 사역을 위해서 조금씩 절약해 모든 돈으로 매달 그 만큼이라도 하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입니까? 이 사람은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는 자세로 살았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영적 안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자 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도 못하는 소경이었지만, 버러지와 같이 나약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와 같은 능력 있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처럼 능력 있게 삽시다. 그리하면 홍해가 우리 앞을 가로막겠습니까? 여리고 성이 우리 앞을 가로막겠습니까? 아낙 자손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겠습니까? 그 모든 것들은 부스러기가 되어서 바람에 나는 겨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의 역사가 우리 삶의 현장에서 늘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같이 된 우리의 축복 된 삶을 살펴보겠습니다. 16절 하반부의 말씀입니다. “....너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들은 그것이 태산과 같다 하더라도 부스러기처럼 산산조각이 나버릴 것입니다. 그것들은 바람에 나는 겨처럼 다 날려가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 할 것이며, 우리를 도우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복된 삶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힘, 자기의 외모, 자신의 학식, 자신의 재물, 자신의 권세를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일시적인 것들입니다. 결국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며, 하나님 때문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을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버러지와 같이 연약한 우리의 모습을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처럼 능력 있는 모습으로 바꾸어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다윗은 어린 시절 양치는 목동이었습니다. 몸에는 양털이 붙어있고 냄새가 진동하는 보잘것없는 사람이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의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문자 그대로 다윗은 버러지 같은 존재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처럼 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했으며,  그의 앞에서 모든 대적들은 부스러기처럼, 겨처럼 되어서 이리저리 흩어져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것을 날리겠고 회리바람이 그것을 흩어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우리는 오늘 말씀을 거꾸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쓰시는가? 어떤 사람을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같이 쓰셔서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로 만드실까? 자기를 버러지 같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은 힘 있고 지혜 있는 자를 쓰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버러지 같다고 고백하는 낮아진 자를 쓰십니다. 왜 그럴까요? 그래야 오직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겸손한 사람만이 오직 하나님을 능력만을 의지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야곱은 잔머리를 굴리고 성공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부리는 자였습니다. 그는 형이 배고파하는 것을 틈타 형의 장자권을 넘겨받았고,  눈이 침침해 앞을 잘 보지 못하는 아버지마저 교묘히 속여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 후 야곱은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 20년 동안 재산을 많이 모은 후 집으로 돌아오는데   형이 복수하기 위해 400명을 거느리고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야곱은 형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많은 재물을 보냈지만 그것으로 형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게 되자 할 수 없이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위기만 넘겨보겠다는 얄팍한 기도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은 굴복하지 않는 야곱의 환도뼈를 치셨습니다. 환도뼈가 부러진 후에야 야곱은 버러지 같은 자가 되었고 기도가 변했습니다.(창세가32:26) 하나님이 축복해주지 않으면 아무 쓸모없는 자임을 고백하고 매달리자 야곱을 축복해 주시고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했을 때 꾀 많은 야곱은 죽고 축복받은 이스라엘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 야곱같이 수단과 방법을 앞세우고 살던 자들이었습니다. 아멘? 그러나 하나님 앞에 여러 가지 시련과 환난을 통해 깨어져 버러지요 지렁이 같은 존재라고 깨달으면, 그 때부터는 내 힘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만 바라보고 살게 됩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이 교회 나와서 기도하실 때 자기를 어떤 모습으로 고백하십니까?  바리새인처럼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그러나 세리처럼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18;13)  예수님의 결론은 세리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18;14)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버러지 같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고 고백하여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굳이 세상에 치이고 눌려서 마지막 순간까지, 끝까지 가실필요는 없습니다. 막다른 골목까지 가서 모든 것을 다 잃은 후에야 ‘아 나는 버러지구나, 나는 지렁이구나 하나님 이제 나 좀 살려주세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고백하시면 됩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사시는 길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야곱이 자기를 낮추어서 버러지 같은 자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산을 부술 수 있는 타작기계가 되게 하셨습니다.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창33;1-4) 

그랬더니 에서가 버러지 같은 야곱을 죽이기는커녕 얼싸안았습니다. 타작기계의 위력이 발휘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고 승리하려면 야곱처럼 하나님 앞에 버러지요 지렁이 같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깨어지면 하나님은 우리를 타작기계로 삼으시고 승리자가 되게 해주십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힘 있고 지혜 있는 자를 쓰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낮아진 자를 쓰십니다. 그 까닭은 오직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고린도전서1:26-27)“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우리는 다 야곱같이 수단과 방법을 앞세우고 살던 자들이었으나 하나님 앞에 여러 가지 시련과 환난을 통해 깨어져 버러지같은 존재가 되면 그 때부터는 내 힘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만 바라보고 살게 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약하디 약한 존재라고 고백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 같은 삶을 매일 매일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너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는 삶이 매일 매일의 삶이되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