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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을 바라보는 자는 (시 1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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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바라보는 자는 (시 125:1-5)    
 
 
세계의 불가사이 중에 하나인 이집트의『피라미드』를 보면 “어떻게 수축을 했을까?” 하는 신비감을 느낍니다. 고고학자들이 연구를 하다가 그 주변에서 무덤을 많이 발견했는데, 그곳에 있는 유골들을 살펴보니 한결같이 18세에서 40세 사이에 모두 죽었다는 것입니다. 무릎의 관절이 심히 다친 상태가 발견되고, 영양실조에 무거운 짐을 들어 혹사당한 흔적이 역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노동에 시달린 사람들이 고작 오래 살아야 40세 였다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에도 아마 그런 상태였을 겁니다. 그들은 모진 고통 속에서 하나님 앞에 그 고통을 울부짖었습니다. 사람이 평안할 때에는 기도의 불이 꺼지기 쉽지만 고통스러울 때에는 하늘을 바라보게 되는 법입니다.

앞이 막히고 뒤가 막히고, 희망이 사라졌을 때.... 바로 하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다 같습니다. 남모르는 깊은 신앙이 있는 사람이나 신앙이 없는 사람이나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사정을 아뢰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는 수난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세를 어릴 적부터 택하셨고, 그를 훈련시키시고 예비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했을 때 길을 열어 주셨지만, 하나님은 이미 다 아시고 예비하신 것 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길을 열어 주시고 기적의 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할 것은 우리가 의뢰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는 것 입니다. 잠25:19절에 보면, “환난 날에 진실치 못한 자를 의뢰하는 의뢰는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보면 어려움을 만날 때 사람을 의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 중에 진실한 사람을 만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미국의 어떤 종교 문제 연구소에서 11년 동안 여러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람들이 신뢰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하고 조사를 했는데 ①교회 ②신문 ③노동조합 ④의회 ⑤대기업체 ⑥T. V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첫째가 교회인데 바로 하나님의 말씀만은 진실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 요동치 아니하고 견고하게 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살게 되니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 말씀 이외의 것을 의지하면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시146:3절에도 보면,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분임을 알고 소망을 두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들의 삶을 하나님이 견고하게 하실까요?


첫째로, 믿음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에게 요동치 않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 시125:1절에 보면,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 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외부의 적이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1+1=1이지만 신앙적인 계산법으로는 1+1이 10이 될 수도 있고 100이 될 수도 있으며 1,000 혹은 100,000이 될 수 도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을 때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알 같이 많은 자손을 바라 본 것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창22:17). 히스기야는 즉위한지 14년에 재물이 많음을 자랑하고 교만 하다가 18만 5천명의 앗수르 군이 쳐들어 와서 성을 완전히 포위 했습니다. 항복 문서를 보내어 싸인을 하라고 위협했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네 입에 오줌과 똥을 넣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하나님을 모독하였던 것입니다. 삼상2:10절에 보면,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울며 기도했습니다.

왕하19:14-16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그 앞에서 기도하여 가로되 그룹들의 위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하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어 나아가 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18만 5천명의 군사들이 다 죽은 것입니다. 더구나 조금 남은 군사들이 조국에 돌아가 구테타를 일으켜 아들이 자기 부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잠시 교만하여 벌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였더니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큰 위기에서 건져 주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거짓없이 진실하게 살 때 요동치 않게 하십니다.

시125:4절에 “여호와여 선인에게와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선을 행하소서”라고 말씀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은 자연법칙입니다. 거짓이 없습니다. 문제는 ‘내가 어디서 누구에게 심었으며, 언제 싹이 나고, 언제 거두느냐’가 문제입니다.

오늘날 대형 사고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쉴 사이도 없이 사고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진짜 원인은 진실 된 양심이 실종된 것이요, 진실이 실종된 까닭입니다. 어디서 양심이 사라졌습니까? 어디서 진실이 사라졌습니까?....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고 찾게 하십니다.

야곱은 복 받기를 원하는 중심은 좋으나 거짓말을 많이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만의 유익을 위한 거짓말도 나쁜 죄악이거니와 종교적인 거짓말은 더욱 큰 죄악”이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이 축복기도를 할 때 “네가 에서냐?”하고 물으니 “네 제가 에서입니다”하고 거짓말을 했습니다(창27:19). 거짓말을 심은 것입니다. 그 결과 세월이 흘러 싹이 나고, 열매를 거두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보게 됩니다.

라헬을 사랑하여 7년을 수일같이 여기며 봉사했는데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서 그 언니 레아와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님 앞에서 서약을 한 것이므로 변개치 못하는 것이요,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외삼촌 라반은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창29:26)고 하면서 핑게를 하였지만, 실상은 야곱이 심은 것을 거두는 순간이었던 것 입니다.

이 순간, 지난날의 거짓말, 믿음으로 축복의 안수를 받는 자리에서 종교적인 거짓말을 돌이켜 보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를 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잘생겼거나 못 생겼거나 결혼하게 된 레아와 일평생을 살았더라면 나머지의 생애는 평탄하고 복된 생애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한 결과로 야곱은 계속해서 그 열매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얼굴이 예쁜 아내를 얻기 위해서 7년을 더 봉사해서 얻긴 했지만, 라헬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창31:19). 계속해서 집안에 우환질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벧엘을 떠나 세겜으로 가서 살다가 막내딸 디나가 세겜 추장에게 강간을 당하였고(창34:13), 이를 분히 여긴 아들들이 세겜 족을 죽이고 약탈을 하므로 살인죄와 도적질을 한 죄를 짖게 된 것입니다(창34:25).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죽는 고통을 당해야만 했고(창35:18), 열 한 아들들이 요셉을 종으로 팔고 죽었다고(창37:32) 속이는 등 야곱의 생애는 그가 바로 앞에서 고백한 말처럼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던 것입니다(창47:9).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죄가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이 용서하신 피 값을 바라보고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요동치 않게 하시고 복된 삶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은 평강의 복을 주십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못 먹던 시대를 지난 까닭에 “아침 진지 드셨습니까?”하고 인사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여호와 샬롬!”하고 인사를 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과 당신의 가정에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하는 뜻입니다. 얼마나 좋은 뜻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인사를 하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400년을 살았고, 광야에서 40년, 바벨론의 포로에서 70년을 살아오는 동안에 그들이 경험한 것은 ‘하나님의 평강’ 이였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식구 중의 하나가 포로로 잡혀가는가 하면, 자고 일어나면 죽어 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평강이 임한다는 것은 놀라운 복이었습니다. 가난해도, 굶어도... 하나님의 평강만 임한다면... 그것은 놀라운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귀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먼저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 거짓없이 진실 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므로 주님의 평강 가운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길을 평탄케 하시고, 우리가 귀중히 여기는 것들이 흔들림이 없이 영영이 견고케 하시며, 좋은 세월의 주인공이 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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