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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 삼일을 기다리게 하라 (출 19: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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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삼일을 기다리게 하라 (출 19:1-15)


생떽쥐베리의 유명한 소설 '어린 왕자'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타납니다.
먼 별나라 어느 소혹성에서 찾아온 어린 왕자는 지구에서 이런저런 친구들을 만나게 되던 중 어느 날 여우를 친구로 사귀게 됩니다.
어린 왕자는 그 새 친구가 마음에 들어서 다음날에도 또 그를 찾아가게 됩니다. 
그때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앞으로는 자기를 찾아오기 전에 미리 그 시간을 알려달라고 부탁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령 네가 4시에 나를 찾아온다면 나는 3시부터 벌써 행복해질 거야. 하지만 네가 언제 올지 모르면 나는 마음단장을 하지 못하거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우 아니 생떽쥐베리의 이 말은,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게 되면 그 만남을 생각하면서 준비하는 때부터 이미 행복해지기 시작하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바로 그와 같은 설렘을 맛보게 된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온 백성이 함께 '하나님의 강림하심'을 대하게 된 때였습니다.
물론 출애굽 이후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들과 함께 계셨고 인도해 오셨지만, 이제 이 시내산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뵈옵고 그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 주시는 계명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출애굽 이후 최대의 공식 특별성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중요한 성회가 시작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자세로 당신 앞으로 나아와야 할 것을 미리 가르쳐 주시기까지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시내산 대성회'에 임하는 백성들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특별 지시는 '무엇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오는가?'하는 사실과 '어떻게 준비하여 하나님께 나아와야 하는가?'를 일러주시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오늘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위해 나아오는 모든 성도들이 항상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요긴한 사항들이기도 합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결코 우리의 예배 참석을 어렵고 부담스럽게 만들기 위해 내려진 지시가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제 삼일을 기다리는 동안' 즉 예배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이미 그 예배를 통해 받게 될 은혜로 인하여 설레는 기쁨이 충만해지게 만드는 사전준비가 무엇인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우리는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나아옴으로써 '선민(選民)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 성회를 앞에 두고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제일 먼저 요구하신 것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본문 1절부터 9절에 "1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부터 제 삼월 곧 그 때에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2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3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4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7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니 8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회보하매 9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으로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고하였으므로"라고 기록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밑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당신 앞으로 '올라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맺게 될 아주 특권적인 관계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 세상의 수많은 나라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뽑힌 '하나님의 선민'(the chosen people)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열국 중에 내 소유"라는 말씀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여기 "소유"란 말은 '특별한 보물'이란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하시는 말씀 그대로, 세계가 다 당신의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소유물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다는 너무나도 멋진 말씀을 내려주셨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하나님의 소유'가 된 이스라엘은 또한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덧붙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사장 나라"라는 말은, 마치 제사장이 자기 나라 백성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가르치듯이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온 세상 사람들 앞에서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전해주는 민족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거룩한 백성"이란 말은, 그렇게 남에게 가르치기만 할 뿐 아니라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부터가 어떻게 거룩한 생활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 그 본을 보여 줄 수 있는 백성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이 두 가지는 참으로 굉장한 특권이요 엄청난 명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온 세상의 모든 나라들 위에 우뚝 서서 각 민족을 이끌어 가는 '톱클래스'(top class)의 선민이 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이 그같이 하나님께서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쓰시는 '하나님의 소유'가 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는 단 한 가지의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본문 5절을 다시 보면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전 세계와 전 인류의 창조주요 주권자 되신 하나님께서는 사실 어느 민족 어느 백성이라도 당신께서 특별히 택하신 선민으로 삼으실 수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서 오로지 '당신의 말씀을 잘 듣고 그 언약을 잘 지키는 백성'만을 당신의 '특별한 소유'로, 당신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보물'로 삼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다른 민족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로 그런 말씀 청종과 순종을 통하여 당신의 선민이 되라고 명하셨던 것이었습니다.

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빽빽한 구름" 가운데 임하셔서 모든 백성들이 보고 듣는 가운데 모세와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하신 이유는 단 한 가지, 모세가 백성들에게 전해 주는 말은 바로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인 것을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전해질 당신의 모든 계명과 언약을 어찌하든지 "잘 듣고 잘 지켜서" 그들이 당신의 귀한 보물과 같은 소중한 소유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시내산의 대성회'에 모으셨던 이유였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셨던 이 말씀, 오늘날 '신약시대의 선민 이스라엘'인 우리에게 똑같이 일러주시는 이 말씀은 얼마나 놀랍고도 은혜로운 것이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매주일 하나님의 전에 모여 예배를 드리면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 얼마나 특권적인 축복인지를 꼭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을 위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일원이 될 성도들을 찾고 계십니다.
먹고 살기에만 바쁜 이 현대사회를 향하여 '사람은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며 살아야만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똑바로 가르쳐 줄 수 있는 '제사장 나라'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분명 원하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자기 한 몸조차 어떻게 주체하며 살 줄 모르고 그저 향락에 내맡겨 놓고 사는 이 열방과 민족들 앞에서, '사람은 자신의 몸과 인생을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면서 살아야 사람의 고귀한 존재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로만 아니라 몸소 보여 줄 수 있는 '거룩한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무척이나 필요로 하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그 언약을 준행하는 성도'라야만 그런 영광스럽고도 특권적인 선민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유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는 사실 '보물'이라고 불릴 만한 대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그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를 "내 소유"라고, '당신께서 특별히 아끼시는 보물' 같은 존재라고 칭하고 계십니다.
  
귀하게 여길 대상이 있을 수 없으신, 스스로 너무나도 고귀하시고 지극히 존귀하신 하나님께서 정말 놀랍게도 우리 같은 성도들을 보시면서, 그저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 외에는 별달리 아무 내보일 것 없는 연약한 인간을 향하여, 당신께서 '아주 귀히 여기셔서 뽑아 놓고 보관하시는 최고의 보물'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죄인에 불과했던 저와 여러분으로서는 말로 표현할 길이 없는 놀라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전에 예배드리러 나아옴으로써 바로 그 귀한 말씀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앞에 불러 놓으신 후에 무슨 '3천 배(拜)'의 절만 올리고 무슨 '반서갱동, 좌포우혜, 어동육서' 등등의 제사상만 가득 차려놓고 돌아가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하셨다 해도, 사람은 예배 시간을 통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몽땅 바치기만' 하고 돌아가야 한다고 명하셨다 해도 사실 우리는 아무 항의할 처지가 못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 앞에서의 예배가 그런 일방통행이 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 앞에 모여서 그저 한 시간 내내 춤추고 소리만 지르다가 돌아가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모이는 자리가 그런 식으로 단순히 사람의 답답한 심정을 잠시 정화시켜 주는 극장 같은 곳으로 전락되는 것 또한 결코 원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인격적인 교통'이 일어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말씀'하시고 사람은 그 말씀을 '듣고 지킴'으로써 그 교통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런 '말씀의 교통(communication)'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예배 시간은 그야말로 은혜로 충만한 기쁨의 시간, 축복의 시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청와대의 만찬에 초대를 받아 가더라도 정작 대통령과 직접 인사말 한 마디조차 나누지 못하고 밥만 먹고 돌아온다면 그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만일 그 대통령께서 자기를 보고도 아무 말 한 마디 없이 그냥 지나쳐 버리신다면 오찬이고 뭐고 무슨 입맛이 나겠습니까?
청와대로 초청을 받게 된 사람이 가지게 되는 최고의 설렘은 대통령 관저에 직접 들어가 본다거나 그 청와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게 되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직접 가까이에서 만나 뵙고 그 대통령과 몇 마디의 말이라도 직접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집으로 초청해 주시고 예배에 참석하게 해 주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몸 된 교회에 우리를 불러 주셔서 우리에게 친히 '말씀해' 주십니다.
바로 그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준비함으로써 예배드리러 나오기 전부터 벌써 설레는 기쁨을 누리고 예배를 통하여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는 특권적인 축복을 주일마다 만끽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는 '성결생활로 준비된 자세'를 가지고 예배에 참예함으로써 '사죄(赦罪)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시내산 아래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번째로 가르쳐 주신 것이었습니다.
10절 이하 15절에 기록하기를 "10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11예비하여 제 삼일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제 삼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 시내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12너는 백성을 위하여 사면으로 지경을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지경을 범하지 말지니 산을 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 

13손을 그에게 댐이 없이 그런 자는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거나 살에 쐬어 죽임을 당하리니 짐승이나 사람을 무론하고 살지 못하리라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 이를 것이니라 하라 14모세가 산에서 내려 백성에게 이르러 백성으로 성결케 하니 그들이 자기 옷을 빨더라 15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예비하여 제 삼일을 기다리고 여인을 가까이 말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3일 동안' 자신을 스스로 "성결"하게 함으로써 준비할 것을 명받았습니다.
성결에 관한 규례는 출애굽기 이후에서도 성경 여러 군데에서 계속 나타나지만, 그것들은 특별히 제사장을 위한 것이라든지 혹은 특별한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반면에 본문에 기록된 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동시에 적용된 성결 규례였고 이것은 그들이 시내산 성회를 바로 준비하기 위하여 모두가 다 함께 지켜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전에 이처럼 성결로써 준비해야 할 이유는 바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아주 심각하고도 결정적인 차이점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은 바로 '거룩'임에 반하여 사람의 대표적인 속성은 그 정반대인 '죄로 더러워짐'입니다.
본문 12절과 13절에서 하나님께서 시내산 가장자리에 '접근금지 경계'를 설정하고 계신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거룩'과 '죄'는 결코 섞여질 수 없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자신의 죄인 됨을 인식하지 못하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역에 분별없이 함부로 출입하려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자신을 동일한 수준으로 취급하는 크나큰 오만이요 용서 받을 수 없는 신성모독적 경거망동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런 죄는 "죽임을 당해" 마땅한 크나큰 죄악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처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예배하러 나아가는 자는 먼저 '성결'로써 자신을 준비해야 함이 필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이 내려진 '성결'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였습니다.
그 하나는 10절에 기록된 대로 "옷을 빠는 것"이었습니다.
옷을 세탁하는 것은 물론 외면적으로 단정한 모습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내면적으로 그 심령의 더러운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는 것을 외면적으로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겉에 입는 옷은 대부분 자기의 마음 상태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마련입니다.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러 가는 사람이야 그냥 편하게 청바지에 티셔츠 입고 가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환자를 맞이하는 의사는 적어도 흰 가운을 입고 단정한 몸가짐을 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환자는 그 의사가 자기의 병을 깨끗하게 고쳐줄 능력이 있고 준비가 된 사람이라고 신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입고 있는 가운부터가 때가 주룩주룩하고 수염도 깎지 않아 더부룩한 얼굴을 하고서 의사라고 나타난다면 아마도 환자는 그 의사의 면허부터 의심하게 될 것 아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나아오는 성도는 단정한 몸가짐과 아울러 그 심령이 경건함으로써 준비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된 두 번째 성결은 15절에 기록된 대로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물론 부부간의 동침을 죄악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 뵙는 즐거움보다 육신적인 쾌락을 더 사랑하는 죄에 빠지지 않아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준비되어야 할 내면의 자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주 하나님 여호와를 마음과 정성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그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는 마음도 없이 그저 하나님을 만난답시고 예배드리러 나온다는 것은 사실 본인에게도 얼마나 귀찮고 괴로운 일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실제로는 전혀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하루 데이트를 해야 하는 것과 같은 심정이 될 것입니다.
  
예배당 좌석에 앉아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하시는 말씀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고 그 대신에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골프 친구'들이나 '쇼핑 친구'들이 눈앞에 내내 어른거린다면 자연히 안절부절못하는 예배 시간이 될 수밖에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
실로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음"을 진정으로 고백할 수 있는 마음이 그 심령에 넘쳐야만 진정 하나님을 만나 뵈올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22장 1절부터 14절에 있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우리가 잘 압니다.
그 임금은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고 종들에게 명했습니다.
하지만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은 바깥 어두움에 내던져졌습니다.
'청함을 받았다고 다 택함을 입은 것은 아니라'고 예수님께서는 실로 따끔하게 우리에게 경고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예복을 입지 않은 자' 곧 '죄를 회개하는 성결함'과 '주님만을 사랑하는 성결함'으로 준비되지 못한 자가 바로 그처럼 임금의 잔치를 즐기기는커녕 바깥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별로 가보지 못한 클래식 음악회에 어쩌다 초청을 받아 가게 되면 '그런 곳에는 어떻게 입고 가야 하나?', '그런 자리에서 지켜야 할 기본 에티켓이 무엇인가?'라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보게 될 것입니다.
자기의 재능 있는 자녀 덕분에, 혹은 친구가 주는 공짜표 때문에 그런 곳에 가게 되면 누구나 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이 음악에 조예 있는 사람들과 만나야 할 자리에 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죄인인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옵게 되었을 때 어찌 그보다도 못한 준비 자세를 가지고 나아올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전에 예배드리러 나올 때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마음'과 '내 구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성결로써 미리 준비함으로 그 모든 죄를 사함 받고 그 주님께서 따뜻이 맞이해 주는 은총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참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러 나아오는 자'는 이처럼 예배를 기다리고 준비할 때부터 이미 그 은혜와 축복이 시작됩니다.
주일예배 시간에 하나님께서 내리실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는 주일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이미 그 심령이 설레게 됩니다.
  
연인과 데이트를 약속한 장소에 앉아 기다리는 사람은 '오늘 그이를 만나면 무슨 말을 나눌까?'하고 자기 머릿속에서 온갖 리허설을 하는 동안 벌써 혼자 황홀경에 빠지게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오늘도 불러 주시고 만나 주시고 말씀해 주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가 어찌 가볍고 기쁜 발걸음으로 교회에 나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도 그저 하나님의 말씀만 잘 듣고 지키면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보물이 될 수 있다.'는 설렘은 우리의 발걸음을 그 주님 만나게 될 예배의 시간과 장소로 더 빨리 달려가게 만들 것이 틀림없습니다.

또한 '성결이라는 치장'으로 몸과 마음을 단장하면서 주일예배를 기다리는 성도는 한 주일 내내 이미 그 기쁨을 맛보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을 할 때에 '프람'(prom)이라고 불리는 '졸업 파티'를 합니다.
그것을 기다리는 여학생이 그때 입을 드레스를 고르기 위해 돌아다니는 동안에도 내내 그 들뜬 마음은 이미 무도회장에 가 있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엿새를 살아가는 동안에도 순간순간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매사를 통하여 주님과 사랑으로 교통하는 성도는 그 다가올 다음 주일이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기다려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일의 예배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하여 정해 주신 최고의 복스러운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처럼 복된 성일은 그것을 기다리는 '제삼일'의 시간까지도 성도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나를 거룩한 제사장으로 만들어 주실 말씀을 사모하는 간절함'과 '내 죄를 씻어 주시는 주님을 이전보다 더 사랑하는 성결'로써 예배를 준비하심으로, 주일뿐 아니라 주일을 예비하는 엿새 동안에도 항상 기쁨으로 넘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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