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때를 아는 사람 (전 3:1-8)

첨부 1


때를 아는 사람 (전 3:1-8) 


살아오면서 기뻤던 날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그 기쁨들이 제 삶을 윤택하게 하였고 행복하게 하였습니다. 기쁨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었습니다. 많은 기쁨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기쁨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를 깨닫는 기쁨입니다.

공자 논어에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는 말이 있습니다. 공자가 그 말을 한 뜻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진리는 도입니다. 즉 다시 말해서 길입니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면 그 목적을 달성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길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근사하고 훌륭한 목표와 목적을 정해 놓았다고 해도 그 길을 알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큰 기쁨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기쁨 중에 하나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살아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시고 내 길에 빛이셨습니다.

진리를 깨달으면, 말씀을 깨달으면 부족하지만 그 길로 가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주의 길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어 보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맞곤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믿지 못하여 잘 가지 않는 길을 믿음으로 가서 그 길이 맞아 목적을 이루게 되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깨달음 중에 제게 큰 복이 되었던 깨달음은 순서에 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래서 제 설교에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데, 마태복음 6장 33절과 누가복음 9장 62절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눅 9:62)

중국 대학이라는 책에 “만물에는 근본적인 것과 지엽적인 것이 있나니 곧 먼저 할 것과 나중할 것이라. 사람이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을 바로 알면 도에 가까우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의 순서를 아는 것이 도라는 말은 참 기가 막힌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먼저 할 일이고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하는 것은 나중해야 하는 일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을 바로 알면 도에 가깝다는 말은 대학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었지만, 언제나 먼저해야 하는 일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원죄를 가지고 있는 죄인입니다. 죄의 뿌리는 욕심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보다 언제나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일 즉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를 먼저 염려하며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를 염려하며 욕심은 부리지만 어떻게하면 그런 것들을 얻을 수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먹으려면, 입으려면, 마시려면 그것부터 욕심을 내면 안됩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그것들이 주어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 그리고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 모두를 다 얻게 됩니다. 그러나 순서가 틀리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도 이루지 못하고, 그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더하여 오는 것들 즉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범사에 때가 있다.’는 말씀도 참 귀한 말씀입니다. 순서를 안다는 것은 때를 안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지금이 무엇을 하는 때인 줄을 정확히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금이 잡을 때인지, 잡았던 것을 놓아야 하는 때인지를 아는 것, 지금이 심을 때인지 아니면 뽑을 때인지, 지금이 거둘 때인지 거둘 때인지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제가 요즘 가장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이 바로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때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 묵상과 기도를 통하여 저는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 때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참 기쁩니다.

얼마 전 그에 대한 제 생각을 높은 뜻 연합선교회 게시판에 올려놓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오늘 여러분들과 좀 더 깊이 나누고 싶습니다.

85년도라고 기억이 됩니다. 당시 장년 주일 출석이 200명 정도 되던 교회의 담임목사였을 때 교회에서 ‘돈 잘 쓰기 운동’이라는 것을 하였습니다. 교인들이 용돈이나 점심 값을 조금씩 절약하여 그 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하 써보자는 운동이었습니다. 매달 회비가 약 100만 원 정도 모였습니다. 당시 교회의 일 년 예산이 7,000만 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돈 잘 쓰기 운동 회비 월 100만 원은 작은 돈은 아니었습니다.

그 100만 원을 매달 우리 교단이 세운 실로암 안과 병원에 후원금으로 보냈습니다. 특별히 맹인개안수술 비용으로 보냈습니다. 지금 화폐 가치로 생각하면 매달 약 400만 원 정도는 보낸 셈이었으니 작은 교회로서는 꽤 열심히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실로암 안과 병원 원장은 이대병원에서 안과 교수로 봉직하시다가 은퇴하신 장로님이셨습니다. 그 장로님은 은퇴 후 무보수로 실로암 안과 병원의 원장으로 봉사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너무, 너무 훌륭해 보여 나중에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마음에 아주 깊이 품게 되었습니다.

높은 뜻 정의교회 오대식 목사님으로부터 ‘트리플 서티’(Triple thirty) 운동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트리플 서티 운동은 30까지는 열심히 공부하고, 30에서 60까지는 열심히 일하고 돈 벌고, 60부터 남은 30년 정도는 열심히 선교하고 봉사하자는 운동이랍니다. 정말 근사한 운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92년 여름 처음 코스타에 강사로 참여하게 되었다. 코스타 첫 설교가 ‘고지를 정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열심이고 나름 은혜를 받았다는 청년들이 공부와 출세는 자신을 위하여 하는 것이고 봉사와 선교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것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사로 잡혀 공부하는 것을 뒷전으로 여기고 공부해야 할 때 일하고 봉사하고 섬기려는 경향이 있어서 그와 같은 설교를 하였습니다.

고지를 정복하라고 한 것은 공부해야할 때 공부를 해서 실력을 키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만 봉사를 하고 세상을 섬기려고 할 때 보다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부할 때 공부를 하지 않아 실력을 키우지 않으면 세상을 섬기는 효율이 떨어지니 지금은 열심히 공부하여 실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의 설교였습니다.

예수님이 낮아지라고 하신 것은 자세이지 실력이 아니라며 도전하였습니다. 그 설교에 대한 비판도 많이 있었지만 그 설교에 도전을 받아 공부를 내 팽겨 치고 교회 봉사만 중히 여기던 청년들이 하나님 나라와 주를 위하여 공부하고 출세하는 것에 대한 눈을 뜨고 다시 도전하여 이곳, 저곳 집회를 다닐 때마다 본인과 그 부모들로부터 인사께나 받았었습니다. 

트리플 서티의 첫 단계에 있는 아이들과 청년들이 트리플 서티의 마지막 단계부터 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설교를 하면서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였습니다. 공부할 때가 있고 일할 때가 있고 봉사할 때가 있다고. 사탄은 공부할 때 봉사하라고 하고 봉사해야 할 때 공부하라고 한다고. 사탄에게 속아 때를 바뀌게 되면, 그리하여 그 때를 놓치게 되면 인생낭패라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사탄이 노리는 것이라고 설교하였습니다.

2001년 높은 뜻 숭의교회가 개척되었을 때 2년 동안 주일 낮 예배만 드리고 제직임명이나 조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가 열심히 교인들에게 했던 말은 ‘나가 놀아라’였습니다. 은혜 받은 청년들이 공부를 내 팽겨치고 교회에서만 놀려고 하듯, 은혜 받은 교인들은 직장과 가정과 사업을 우습게 여기고 교회에서만 열심을 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트리플 서티의 두 번 째 단계에 있는 교인들이 역시 자신의 때를 점프하여 트리플 서티의 마지막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작 트리플 서티의 마지막 단계를 살게 될 때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제대로 봉사하고 선교할 실력이 없어서 제대로 된 봉사와 선교를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트리플 서티의 일 단계에 열심히 공부하고, 트리플 서티의 이 단계에서 열심히 일하고 돈도 좀 벌었다면 트리플 서티의 세 단계가 되면 정말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쓸 것이 많을 터인데 앞의 두 단계를 놓치면 마지막 세 번째 단계도 함께 놓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때를 놓치면 그 때와 다음 때를 함께 놓치게 됩니다.

저는 그래서 교인들이 교회에만 열심을 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 봉사를 별로 강조하지 않습니다. 봉사는 봉사만큼만 하면 됩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고 돈 벌고 직장 생활을 해야 할 사람들이 때도 모르고 교회에만 정신을 팔고 열심을 내는 것 겉으로 보면 신앙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일일 수 있습니다.

저도 이제 바야흐로 트리플 서티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조금 아슬아슬 했지만 제법 무사히 트리플 서티의 첫 번째 단계와 두 번째 단계를 하나님의 은혜로 저로서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으리만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단계가 좀 미흡했지만, 그래도 나름 목회하며 일할 때 필요한 진짜 공부를 다행히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서 목회하고 일할 때 도움이 제법 되었으니 그만하면 첫 단계도 아슬아슬하지만 봐 줄만 했습니다.

하여튼 저는 이제 트리플 서티의 마지막 단계 그 입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트리플 서티의 마지막 단계 그 입구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흥분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세상과 세계가 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지금까지 살아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과 세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 꿈 때문에 흥분이 되어 어떤 때는 잠을 잘 이루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고지를 정복하라’고 청년들에게 설교할 때에 그 목적이 내려감과 섬김에 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물은 낮은데 있어도 힘이 없고 높은데 있어도 힘이 없습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를 때에만 힘을 발휘합니다. ‘젊어서 힘껏 고지를 정복한 후 때가 되면 힘껏 내려가자. 5,000명 분을 벌어 혼자 깔고 앉아 먹는 사람이 되지 말고 5,000명을 먹이는 사람이 되자.’라고 설교하였습니다.

올라가야 할 때부터 내려가려고 하면 내려가 보았자 별 힘이 없습니다. 내려 가야할 때 내려가려고 하지 않고 계속 올라만 가려고 한다면 그 역시 낭패입니다. 올라가야할 때가 있고 내려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저로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올라올 수 있는 곳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올라온 것 같습니다. 남과 비교하면 비록 보잘 것 없지만 말입니다. 이제 저는 내려가야 할 때입니다. 저는 제가 지금 내려가야 할 때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너무, 너무 기쁩니다. 즐겁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행복합니다.

제 나이 오십이 조금 지났을 때 어느 기자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기자가 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이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준비하고 계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저는 숨도 쉬지 않고 ‘은퇴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기자가 당황하였습니다. 이제 갓 오십이 된 사람이 벌써 은퇴를 이야기하니 그 말이 장난처럼 느껴졌던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기자에게 ‘내 나이가 은퇴할 나이는 아니지만 벌써 은퇴를 준비해야만 하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나이 오십은 은퇴를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는 나이다. 그래야만 훌륭하고 근사한 은퇴를 할 수 있다.’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기자에게 비행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면 대개 착륙 15분 전쯤 착륙을 준비하라는 어나운스멘트가 나온다. 비행기는 착륙 15전 쯤부터 서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여 도착지에 이르게 되면 미끌어지듯 착륙을 한다. 만일 15분 전부터 착륙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도착지에 와서 착륙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착륙이 아니라 추락이 될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40대 때 동안교회의 목사로 부임하여 인간적으로는 제법 성공적으로 목회를 했고, 오십이 되어 느닷없이 교회를 개척하였는데 그 교회가 개척 3개월 만에 주일 장년 출석이 천 명이 넘어가는 등 그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가 어떤 면에서 전성기와 같은 때였습니다. 한참 힘이 생길 때이기 때문에 그 상승기류를 타고 올라가면 더 올라 갈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 올라가는 것은 별로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무작정 올라만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올라갈 때가 있고 내려올 때가 있는데 내려올 때 준비를 하지 않고 올라갈 수 있다고 무작정 올라만 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은퇴를 늘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름 은퇴를 준비하였습니다. 은퇴를 위하여 제법 많이 기도한 것은 후임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그때도 교회 분립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물론 지금과 같은 식의 분립은 아니었지만) 1,000명 정도의 교인을 내게서 뺏어 갈 수 있는 사람 넷을 달라고 꽤 오래 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래야만 제가 은퇴한 후에도 교회는 건강하게 몸살없이 잘 유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기도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더 올라갈 수 있는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런 생각과 준비를 하게 하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셨습니다. 때문에 그 일을 결행할 시점에 왔을 때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평생에 한 일 중에 가장 잘 한 일이 목회 일선에서 손을 떼고 내려앉은 것이었습니다. 이제 벌써 만 2년이 지났지만 한 순간도 섭섭한 마음이 들거나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고지도 정복하기 전에 자세를 낮추지 않고 실력을 낮추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젊은이들이 안타까웠습니다. 세상을 우습게 생각하고 교회만 와서 봉사한답시고 설치는(죄송합니다. 말이 거칠어서. 그러나 꼭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에는 너무 많다. 그래서 교회는 오히려 복잡해지고 시끄러워지고 질이 떨어지게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영향력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지도 정복하기 전에, 출세도 하기 전에, 자세를 낮추지 않고 실력부터 낮추는 젊은이들만 문제가 아닙니다. 트리플 서티의 첫 단계와 두 번 째 단계를 성공적으로 지난 많은 사람들이 트리플 서티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결국 모든 성공을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 안타깝고 속상합니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 중에 은퇴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떠날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떠나면 죽는 줄 알고, 내려가면 못 사는 줄 알고 추하게 끝까지 그것에 집착하고 매달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들은 더 큰 세상을 보지 못합니다. 더 큰 성공을 보지 못합니다. 자신이 이룬 성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크고 훌륭하고 근사한 삶과 세상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트리플 서티의 마지막 단계를 보지 못합니다.

고지를 정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일중독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일에서 손을 떼지 못합니다. 일만할 줄 알지 놀 줄을 모릅니다. 놀 줄을 모르니 친구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외롭습니다. 치명적입니다. 어느 여행사의 광고 카피가 생각납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트리플 서티의 마지막 단계에서 실패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벌 줄만 알지 쓸 줄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위하여 쓸 줄도 모르고 남을 위하여 쓸 줄도 모르고 하나님을 위하여 쓸 줄도 모릅니다.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나중에 돌이켜 보면 자신의 그와 같은 어리석음이 한도 없이 억울할 겁니다. 속상할 겁니다. 사탄에게 속았기 때문입니다.

60이 넘으면 다른 세상을 바라 보아야만 합니다. 인생의 새로운 창업을 해야만 합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꿈꾸어야만 합니다. 60이 넘어서도 여전히 60 이전의 삶에 붙잡혀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추한 일입니다.

60년 동안 벌었던 돈과 60년 동안 배웠던 지식과 경험과 60년 동안 맺었던 인연과 관계들을 총동원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한번 올인을 하고 간다면, 세상과 사람들을 축복하고 섬기고 세상을 떠난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만해도 황홀합니다.

어렸을 때 동네 골목에 나가서 어떤 놀이를 시작할 때 엄지 손가락을 올려 세우고 ‘이런 놀이를 할 사람 여기 붙어라’하고 소리를 지르면 아이들이 그 엄지 손가락을 붙잡습니다. 그러면 그 아이들과 재미있는 놀이가 시작됩니다. 저도 지금 제 엄지 손가락을 높이 올려 세우고 ‘나하고 늘그막에 트리플 서티 게임 할 사람 여기 붙어라.’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그리고 신나게 좋은 친구들과 그 게임을 하며 놀다가 하나님 앞에 가고 싶습니다.

범사에 때가 있습니다. 제 때를 알고 제 때에 맞는 삶을 산다는 것이 지혜입니다. 축복입니다. 자기 때에 맞게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