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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알아주어야 할 사람 (고전 16: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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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주어야 할 사람 (고전 16:15-18)


1920년도 평양에 백선행(白善行)이라는 여인이 아들을 낳고 16살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었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측은히 여겨주었으며 교회에서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그녀는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은혜를 받고 평생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선한 일을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녀는 바느질을 하는 동안 성경을 외우고 즐겁게 찬송을 부르며 일을 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가내공장을 차릴 수 있을 만큼 남부럽지 않게 돈도 모았습니다. 

어느 날, 남의 산자락에 묻혀있던 시어머니와 남편의 묘를 이장할 생각에 2백냥 주고 야산 하나를 사게 되었습니다. 막상 이장을 하려고 땅을 파보니 돌투성이었습니다. 겨우 묘를 이장하고 난 그녀는 한숨을 쉬며 “내가 손해 보길 다행이지, 다른 사람이 샀다면 어쩔뻔했노. 나 하나 마음 상했으니 그것으로 됐구먼” 하며 마음을 달랬습니다. 그 후 동네에 소문이 퍼졌습니다. “백 과부네 망했네! 돈 2백냥으로 돌산을 샀으니 이제 망했네!” 그러나 백집사는 묵묵히 일만 했습니다. 

어느 날 일본인들이 도청 직원을 앞세워 그녀를 찾아왔습니다. 시멘트 공장을 차리려는 사람들과 함께 왔는데 지질조사를 하던 중 백집사 산이 온통 석회석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천냥을 줄 테니 산을 팔라는 것입니다. 백집사는 깜짝 놀라며 2백냥 주고 산 것도 잘못된 거래였는데 천 냥을 주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며 거절하였습니다. 얼마 후 백집사를 찾아온 그들은 산의 돌이 석회석이며 석회석으로 시멘트를 만들면 조선 경제를 위해서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하였습니다. 그때서야 백집사는 이해하고 2만냥에 산을 팔았습니다. 

그 돈으로 대동강에 백선교를 세우고, 평양에 3층 규모의 공공회관을 건립했습니다. 백 집사는 1925년 전 재산을 빈민구제 단체에 기부하여 당시 조선총독부가 표창을 수여하려 했지만 거절하였습니다. 후에 그녀의 장례를 조선의 첫 사회장으로 지냈으며 평양에는 백선행 기념관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북한 조선영화수출입사가 뉴질랜드 현지 한 단체의 지원을 받아 기독교 영화 ‘백선행’ 을 제작키로 확정했다고 합니다. 백선행 집사는 북한체제도 알아주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알아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알아주는 사람이 됨은 더욱 더 귀한 일입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고린도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에베소 전도 때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대부분 바울을 근심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분쟁하였습니다. 우상주의와 극단적 신비주의, 부활신앙을 부인하는 세속주의로 복잡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하였습니다. 교회로 인해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고 기다리는 중에 세 사람이 고린도 교회로부터 왔습니다. 이들이 바울과 성도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런 자들을 알아주라고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행하였기에 알아주라고 하였습니까?
 
첫째로 함께 일하며 수고하니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각 지방의 청년들이 영장을 받은 후 도시로 집결하여 기차를 타고 훈련소로 갔습니다. 국민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장정들을 태운 기차는 주로 밤늦게 떠났습니다. 워싱턴에도 밤마다 유니온 기차 정거장에 수백 명의 장정들이 몰려들었고 시민들이 그들의 편의를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그때 시민들 가운데 밤늦게까지 다리를 절면서 뜨거운 코코아 잔을 들고 장정들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임시로 마련된 주방에서 친히 코코아를 끓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장정이 자세히 보니 보통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루즈벨트 (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이었습니다. “각하.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니십니까.” 루즈벨트는 소아마비로 자유스런 몸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육체의 불편을 무릅쓰고 밤마다 정거장에 나와 떠나는 장정들에게 코코아를 들고 다니며 봉사하였던 것입니다. 대통령이 친히 정거장에 나와 따라주는 코코아를 마신 젊은이들의 사기는 대단했습니다. 함께 수고함은 사람들의 마음에 힘과 용기를 불어 넣습니다. 

본문 16절입니다.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바울이 아덴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스데바나가 회심한 후 아가야에 돌아와 가족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스데바나 가족들은 병든 자나 가난한 자를 도왔습니다. 집을 예배 장소로 내어놓았습니다. 또 예루살렘 성도들을 돕는 일에 헌금으로 봉사하였습니다. 스데바나의 가족들은 자발적이고 헌신적으로 봉사하였습니다. 명령에 의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격하여 온 가족과 함께 수고하며 일한 것입니다. 기쁨과 감동을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부자란 소유의 크기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나눔의 크기에 의해 평가됩니다. 나눔의 질에 따라 평가되는 것입니다. 스데바나와 같이 신앙으로 살고 함께 일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누구라도 알아주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함께 수고하는 신실한 일꾼들이 되어 하나님이 알아주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부족한 것을 채우니

마더 테레사(Madre Teresa) 수녀는 평생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녀에게는 시기와 질투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유명합니다. 우리 주변에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 병자를 위해서 수고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누군가 테레사 수녀에게 물었습니다. “수녀님, 당신보다 잘사는 사람도 많고, 당신보다 높은 사람도 많고, 당신보다 칭찬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혹 그들을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러자 테레사는 어린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대답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사는 사람은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으니까요.” 허리를 굽히고 사는 사람은 위를 쳐다보지 않으니까 남이 어떻고, 저가 어떻고 시기 질투할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럴 마음조차 없습니다.

본문 17절입니다.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니라”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는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었습니다. 성도들의 물질적 궁핍을 채웠습니다. 믿음의 교훈과 사랑을 채웠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충고와 애정을 대신 전해주었고 바울에게도 고린도 교인들의 애정을 전해줌으로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바울과 고린도 교회를 이어주었던 것입니다. 

물질과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였습니다. 자신들의 귀한 것을 드림으로 보충한 것입니다. 교회의 것이나 남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내 것을 쓰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연약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이런 실수를 범합니다.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목사는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열심을 경계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이루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생각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패 이유를 연약한 사람들에게 돌립니다. 그러면서 쉽게 다른 사람을 비난합니다. 정작 자신은 어떤 충고에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이웃을 정죄하고 결국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본회퍼는 진단합니다. 그들은 본래 감사하는 자가 아니라 요구하는 자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사귐의 기초는 열심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기쁨을 잃지 않는 사람은 요구하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초에 두고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나의 부족을 채우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 명예, 힘, 인기, 사회적인 것을 하나님이나 성도들을 이용하여 이루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것을 버리고 다른 이의 부족한 것을 채워야 합니다. 성도나 이웃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마음을 시원케 하니

미국의 시골학교 선생님이 음악교육을 위해 피아노 한 대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갑부였던 포드 자동차 회사의 포드(Ford) 회장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회장님, 학교에 피아노 한 대가 필요합니다.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얼마 후 답장이 왔는데 열어보니 단 돈 10센트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실망치 않고 10센트로 땅콩을 사왔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갑부가 피아노를 살 수 있는 돈을 주어야지 장난도 아니고 이게 뭐야 라며 불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선생님은 사온 땅콩을 학교부지에 심었습니다. 그 해 땅콩을 수확하여 팔았습니다. 이익금 중 얼마를 포드에게 보내고 나머지는 저축했습니다. 몇 년을 그렇게 했더니 피아노를 살 수 있는 돈이 모아졌습니다. 선생님은 포드 회장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습니다. “회장님의 도움으로 피아노 살돈이 모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답장과 함께 만달러가 송금되어 온 것입니다. 답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선생님 같은 분이 미국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선생님 같은 분은 처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했지만 기부금을 주면 작다고 투덜대거나 모르는 척 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작은 동전의 기부금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이익까지 돌려주시니 제가 감격하였습니다. 여기 만 달러를 드리니 피아노를 사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도움을 청하시면 액수와 상관없이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본문 18절입니다.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 스데바나와 함께 온 형제들이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에게 시원함을 주었습니다. 마음과 정신과 몸과 영혼까지 시원케 하였습니다. 물질과 사랑과 믿음과 정성으로 시원케 하였습니다. 목마르고 답답한 사람들에게 얼음냉수와 같이 시원하게 하였습니다. 

남에게 고통과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기보다, 못과 가시처럼 살을 찢고 피를 흘리게 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시원케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숨 막히고 답답한 세상을 시원케 만들어야 합니다. 기도와 물질과 사랑과 격려로 남을 시원케 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을 찾아왔던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 세 사람은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 준 사람들이었습니다. 분위기를 답답하게 만드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신앙적 분위기로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찾고 계십니다. 

교회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부자가 아닙니다. 많이 배운 지식인도 아닙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교회가 알아주어야 할 사람들은 바로 교회와 성도들을 진정으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이런 자들을 알아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인정해 주라는 것입니다. 부디 임명받은 교회학교 교사들은 함께 수고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족한 것을 채우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누구라도 알아주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하나님에게도 인정받는 복된 교사들과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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