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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말 때까지 할 일 (1) (눅 24: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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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때까지 할 일 (1) (눅 24:44-49)


예수님은 부활 후 세상에 40일 동안 체류하셨습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시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놓고 이론이 많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숨겨놓고 부활했다고 헛소문을 퍼트렸다고 말하는 신학자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잠시 기절했다가 얼마 후 정신이 깨난 후 숨어버리고 부활했다고 소문을 퍼트렸다고 말하는 신학자도 있습니다. 후대에 제자들이 신화를 만들어 전파하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초유의 사건이었으니 말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간이나 머물며 각 사람들을 만나고 증언하시고 보이셨을 것입니다. 만일 부활 후 즉시 승천하셨더라면 이 부활에 대한 의심은 더 컷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 동안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다 만나셨습니다. 제일 먼저 마리아를 비롯해서 여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 왜 여 제자들부터 먼저 만나셨을까 하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우리는 그런 예수님의 의도를 잘 알 수는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여 제자들이 너무 애통해 하고 눈물을 많이 흘리고 애달파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여 제자들이 말을 잘하니까 빨리 가서 부활의 소식을 세상에 전하라는 뜻이 아니었겠는가 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성들이 말을 잘하기는 잘합니다. 그리고 소문을 전하는 데는 여성들이 일가견이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말이 어둔했습니다. 그것이 신자들은 늘 불만이었습니다. 어느 주일인가는 목사님의 설교가 갑자기 달변으로 바뀌고 말을 너무 잘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그렇게 좋은 말솜씨를 그동안 왜 감추셨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오늘 급히 나오느라 빼놓았던 틀니를 그만 아내 것으로 바꾸어 끼고 나왔다”고 대답하였다고 해서 모두 웃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여성들은 말을 잘하는 은사를 타고 났습니다. 한 가지 이야기 소재를 자유자재로 오래 끌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도 은사입니다. 한 가지 소재를 가지고 두 시간씩 대화를 이끌어갑니다. 전화를 해도 오랜 시간을 대화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인가 30분 만에 전화가 끝나자 남편이 “왜 그렇게 빨리 끝내느냐”고 물으니까 “잘못 걸려온 전화”라고 하더라고 합니다. 이쯤 되면 재주 아닙니까. 예수님은 부활 후 여 제자들을 먼저 만나신 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말을 잘하니까 부활을 전하라는 뜻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성들이 전도를 잘합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12제자들을 만나 격려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서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무엇인가 감이 좀 느립니다. 그리고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불신적 기능이 거침돌이 되기도 합니다. 도마는 남자 특유의 불신을 나타내고 말았습니다. “나는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 내가 직접 만져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 남자는 여성과 구조가 다르고 생각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들이나 빌라도 같은 사람들은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만나서 “너희들 너무 했어” 한마디쯤은 해 볼만도 한데 말입니다. “너희들이 나를 죽였지만 나는 살았어” 하고 한마디쯤은 해 볼만도 한데 예수님은 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40일이 지난 후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다시 오실 때까지 할 일을 당부하셨습니다. 그 당부는 오늘 이 세상의 모든 지상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시는 당부이기도 합니다. 

그 당부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당부를 주님은 “명령형”으로 하셨습니다. 이 명령이 모든 복음서 마지막 부분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28장19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15절에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은 오늘 읽은 본문에서는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20장21절에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1장8절에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모두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마지막 유언적 말씀입니다. 모두 “너희는 열심히 전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전도와 선교는 오늘 교회의 책임이자 직무이고 마땅히 할 일입니다.  

성경의 중심 주제 “선교”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 동안 내내 강조하신 것이 이 전도입니다. 성경의 주제가 전도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주제가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이고(46) 또 하나는 세계선교라는 것을 말씀(47)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중요함을 제자들이 잘 알고 있다고 말씀(48)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전도할 때 반드시 먼저 알아야 할 일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빨리 가서 전도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러나 기다리라 왜냐하면 성령을 받아야 하니까(4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전도는 사람을 통해서 성령이 하시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이 하시되 반드시 사람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중심은 “선교하는 것”입니다. 복음서는 공히 선교하라는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사도행전은 선교의 역사 보고서입니다. 즉 선교사역 보고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신서는 선교사들의 편지이고 계시록은 선교의 완성을 예언하셨습니다. 성경의 주제는 선교입니다.   

제자들을 파송 

하나님의 최대의 관심은 세상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이 일은 최우선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에 예수님을 파송하셨습니다.(요한복음20장21절) 구세주로, 구원자로, 메시야로 파송하셨습니다. 파송하여 보내시는 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내시는 자”(the Sender) 이십니다. 그리고 “보냄을 받은 자”는 예수님(the Sent)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에 파송 받은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구속을 위해서,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보냄을 받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오셔서 다시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전도자로, 사도로, 제자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일컬어서 “사도”(Apostle)라고 부릅니다. “보냄을 받은 자” 즉 “sent one”입니다. 그 제자들은 다시 오늘 우리들을 세상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세상으로 나가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늘 보냄을 받은 사람들을 “보냄을 받은 자”라 해서 “선교사”(Missionary)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20장21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세상에 보내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전도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전도”는 “성경의 중심”이고 “성경의 주제”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이고 마땅히 할 일입니다.  

온 천하 만민에게 전하라 

마가복음 16장을 보면 전도의 범위가 나옵니다. 그 범위를 보면 “온 천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전도할 대상은 “이 세상의 만민”이라는 말입니다. 가서 할 일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고 전할 대상은 “이 세상의 만민”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의 전파 대상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였더니 그 결과가 두 가지 종류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구원받는 자”로 나타났습니다. 전하였더니 사람들이 듣고 받아들이고 순종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 사람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이 복이고 은혜입니다. 또 한 부류는 전하였더니 받지 않았습니다.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불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정죄되어 멸망하게 되었다(마가복음 16:16)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마지막에는 두 종류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구원받고 천국을 소유하든지” 아니면 “정죄 받고 지옥을 소유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이 세상은 결국에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진리와 비진리로, 빛과 어둠으로, 양과 염소로, 천사와 악마로, 선과 악으로 나뉘어집니다. 세상이 마지막 때가 되면 이 빛과 어둠으로 둘로 나뉘어집니다. 그것이 마지막 시대에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세상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복음전도는 이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부여된 의무입니다. 

“전도는 성령의 역사” 

사도행전1장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최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삶은 전반적으로 성령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셔야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빨리 가서 전도하라 그러나 조금 기다리라, 왜냐하면 성령을 받아야 하니까”(49)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1장8절을 보면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의 생활은 영적인 삶입니다. 신앙의 삶은 영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한 생활입니다. 간혹 봉사하고 헌신하고 신앙생활 하다 보면 기분으로 재미로 하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기분으로 하다 보면 얼마 못 가서 시험 들고 싫증을 느끼게 됩니다. 기분은 늘 변화가 많습니다. 신앙의 삶은 영적인 생활입니다. 신앙의 삶은 헌신의 생활이고 섬김의 삶인데 섬기는 삶은 성령이 함께 하셔야 가능합니다. 기분으로, 재미로, 누가 알아줄까 하는 마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너희는 빨리 가서 전하라, 그러나 기다리라 왜 성령을 받아야 하니까“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강림하신 목적은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예수의 증인으로 살게 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세상에서 예수의 증인으로 살게 됩니다. 세상을 품고 살아갑니다. 내 것만 강조하지 않습니다. 내 집, 내 교회, 내 것을 초월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적어도 세상을 품고 시야가 넓습니다. 그래서 투자하는 돈이 아깝지 않습니다. 찾아가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도와주는 것이 아깝지 않습니다. 내 수고가 귀찮거나 아깝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던 일을 놔두고 찾아가고 봉사하고 땀 흘려 번 돈을 선교헌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못 가면 다른 사람이라도 가도록 돕는 일에 열심입니다. 문제는 나에게 성령이 함께 계시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요한 웨슬레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같은 10불짜리가 교회에서는 그렇게 크게 보이고 시장에 가면 그렇게 작아 보이는 것이 이상하다”.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는 풍부하고 너를 위해서는 아주 아까운 것입니다. 미술의 거장이었던 백클린에게 젊은 화가가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화가로 성공할 수 있습니까, 나는 2-3일 그림을 그려야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데 그 그림을 파는 데는 2,3년이 걸립니다.” 그 말을 듣고 미술의 거장 백클린이 대답하기를 “그림 한 폭을 그리는데 2-3년 걸리면 그 그림이 팔리는데 2-3일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너무 인간주의적입니다. 적게 심고 많이 거두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는 충실하고 너그러운데 너를 위해서는 인색하고 아까운 것입니다.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시지 않으면 매사가 두렵고 아깝고 귀찮고 관심이 없습니다. 전도에도, 선교에도 아무 관심도 도전도 의미도 느끼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선교는 하는 사람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여도 이 선교를 이해도 못합니다. 다 놔두고 선교지로 떠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방학 때, 여름휴가 때 문 잠그고 선교지로 떠나는 일은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오직 관심은 나 자신, 내 집, 내 직장, 내 성공만 생각할 뿐입니다. 성령의 맛도 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삶의 중심이 그만큼 얕고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은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십니다. 생각나게 하고 너를 생각하게 하고 사람들의 구원에 관심을 갖게 하고.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하게 하십니다. 내가 그들을 위해서 할 일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성령의 임재하심을 입고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도우시는 영이십니다.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그것은 내게 할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증인의 삶을 살지 않으면 내게 오시는 성령은 소멸되고 맙니다. 은사도 선용하지 않으면 녹슬듯이 은혜 입은 사람은 은혜를 선용해야 발전하고 계속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 성령이 나를 지배하시도록 위임해야 합니다. 그때 나는 나이지만 나는 중생하고 변화하고 새로워진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나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2010년도 세계선교 통계에 의하면 현재 지구상의 인구는 68억 명이라고 합니다. 그중 절반인 33억 명이 불신자라고 합니다. 그중 22억 명이 복음이 무엇인지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어찌 먼 곳에 사는 사람들만의 이야기이겠습니까. 가깝게 보면 우리들 가정에도 이웃에도 친척 중에도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편안할 수 없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관심도 달라져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나와야 합니다. 

기도의 내용이 달라져야 합니다. 나가 전해야 합니다. 내가 나가지 못하면 사람을 보내야 합니다. 보내놓고 기도로 후원하고 선교비로 후원해야 합니다. 그래야 직무유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교회에서는 13개국에 20여명의 선교사를 보내놓고 있고 있습니다. 국내 선교단체와 작은 교회 150여개 교회를 돕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서 연간 예산의 24%의 선교비를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헌금하는 연간 선교비가 4%정도입니다. 나머지는 일반헌금에서 보충하여 보내고 있습니다. 

교회 짓느라 어려워도 이 선교비는 한 푼도 줄이지 않고 오히려 늘려왔습니다. 이것이 우리교회의 장점입니다. 금년에도 세 나라에 3명의 선교사를 더 파송합니다. 지금 각 구역별로 파송한 선교사를 위해서 헌금하고 있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더 열심히 했으면 합니다. 구역예배 때마다 파송된 선교사들을 위해서 더 뜨겁게 기도했으면 합니다. 선교비를 보내는 것도 선교이지만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더 좋은 선교비를 보내는 일입니다. 우리는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그 시대의 선교사라는 점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사람들입니다. 예수의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을 선교사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동네에서, 시장에서, 가정에서, 삶의 터전에서 모두 선교사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교사는 학원의 선교사들입니다. 군인은 군사회의 선교사들입니다. 해외법인에 파견 받은 사원은 해외 선교사로 나간다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병원에 종사하는 분들은 병원에 파송 받은 선교사들입니다. 직장생활 하는 분들은 각 직장에 파송 받은 선교사들입니다. 

나는 선교사로 부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때 그 삶의 터전에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믿습니다. 내가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이 된다면 성령은 나로 하여금 입을 열게 하시고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는 대화를 통해서도 성령은 할 일을 하실 것입니다.  전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그리고 이 세상의 종말 때까지 하여야 고유한 할 일입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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