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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생의 말씀 (요 6:6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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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의 말씀 (요 6:60-70)


근자에 들어 한국교회가 침체기를 맞고 있습니다. 전도하여 늘어나는 신자의 수 보다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의 수가 더 많아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통계로도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2005년 한미준(한국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에서 실시한 통계를 보면 현재 비종교인 가운데 과거에 종교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33.7%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 중에 과거에 기독교인이었던 사람이 62.2%입니다. 그러니까 2200만 명 정도가 비종교인인데 그 중에 기독교인이었던 사람은 약 460만 명이나 되는 셈입니다.

게다가 기독교에서 타종교로 간 사람들도 상당수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눈에 띠는 것은 카토릭 신자들 가운데 18.8%가 타종교에서 왔는데 그 중에 기독교에서 온 사람이 57.1%입니다. 이것을 숫자로 환산해 보면 약 55만 명이나 됩니다. 

종합해 보면 기독교를 떠난 사람들의 수가 무려 약 500만 명 정도나 됩니다. 최근까지 합산해 보면 그 수는 더할 것입니다.

왜 이들은 기독교를 떠난 것일까요? 오늘의 한국 기독교는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교권과 이권 다툼, 지도자들의 도덕적 윤리적 문제들, 물량적이고 세속적인 행태들... 그 어느 때보다도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이런 기독교의 모습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있고 교회에 나오고 싶지 않은 생각을 가지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그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난 본질적인 이유일까요? 

예수님 곁을 떠난 사람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곁을 떠난 일이 있습니다. 66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님 곁에 모여 들었던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곁을 떠나갔고 다시는 예수님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들이 예수님 곁을 떠난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60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예수님을 찾아왔던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48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54-55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과 당신의 피를 먹고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들은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 둘 예수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저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영적 무관심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 앞에 나아온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그 놀라운 이적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누어주신 그 놀라운 떡과 물고기를 먹어본 사람들입니다. 저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기대하면 예수님 앞에 나아온 것입니다.

6:26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점을 예리하게 간파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저들이 예수님을 찾은 이유는 세상적 관심 때문이지 영적인 관심 때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저들은 삶의 무게를 지탱하기 힘든 사람들입니다. 로마의 식민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갈릴리 지역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조차 빠듯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온통 저들의 관심은 먹고 사는 문제에 쏠려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적인 관심을 멀리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온통 영적인 문제에 관해서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정말 관심 없는 문제에 대해서만 말씀하시니 더 이상 예수님 곁에 있을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예쁜 꽃이 가득 핀 아름다운 정원을 망치는 일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들어가서 짓밟고 불을 지를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냥 관심을 두지 않고 내버려두면 됩니다. 그러면 나중에 잡초가 무성해 지고 저절로 망쳐집니다.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우정을 망치는 일도 의외로 간단합니다. 헐뜯고 비방할 필요도 없습니다. 친구가 없는 것처럼 그냥 관심을 두지 않고 내버려두면 됩니다. 그러면 마치 친구가 아닌 것처럼 서로 멀어지고 나중에는 우정이 사라져버립니다.

우리의 뜨거운 신앙을 망치는 일도 의외로 간단합니다. 방탕한 생활을 하고 치명적인 죄를 저지를 필요도 없습니다. 영적인 알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바쁘게 하루하루 살아가면 됩니다. 예배의 감격이나 말씀 묵상이나 능력있는 기도와 같은 일에 관심을 끊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은 메마르게 되고 점점 주님의 곁을 떠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인 무관심이 무섭습니다. 사실 오늘도 교회를 떠난 사람들 중 대부분이 영적인 무관심 때문에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사는 것이 바빠서 영적인 관심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관심을 잃어버린 정원이 망가지듯 영적 관심을 잃어버린 신앙이 피폐해져가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예수님 곁을 떠나게 됩니다. 영적 관심을 되찾으시기 바랍니다. 더욱 그 관심을 불 일듯 일으키시기 바랍니다.

둘째, 영적인 오해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오해했습니다.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앞세워 자기들의 세상적 욕구를 채워보려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역시 예리하게 이 점을 간파하셨습니다. 6:15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저들이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오해하고 엉뚱하게 세상 임금으로 세우려 하자 예수님께서 피하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저들에게 생명의 떡 즉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떡을 주시려고 하나 저들은 오해해서 예수님께 육신의 떡을 구했습니다. 예수님과 핀트가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저들을 떠나시고 만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영생의 문제에 대해 크게 오해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영생을 글자 그대로 영원히 사는 것으로 오해하고 예수 잘 믿으면 이 땅에서 영생할 줄로 믿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그렇게 가르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전도관의 박태선입니다. 자기는 죽지 않으므로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도 죽지 않게 해 주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런데 안됐지만 박태선은 이미 죽었습니다. 전도관 출신 조희성은 아예 영생교라는 사이비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죽는 것은 종교가 아니다 영생교에 다니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안됐지만 조희성도 이미 죽었습니다. 최근 극성을 부리는 신천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전에 PD수첩에서 공개된 내용을 보면 신천지 법무부장을 하던 전 모라는 사람은 “영생이 별것입니까? 죽지 않는 것이지요 나는 영생이 있음을 믿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안됐지만 이 사람도 이미 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인 오해가 무섭습니다. 사실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 중 영적인 오해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바른 신학이 필요합니다. 올바른 신학 훈련을 받은 지도자들의 영적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성경을 올바로 읽고 올바로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주님 곁을 떠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 곁을 지킨 사람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12제자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이 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곁을 떠나자 예수님께서 12 제자에게 물으셨다는 것입니다. “너희도 저들처럼 내 곁을 떠나겠느냐?” 이 때 베드로가 놀라운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하여 “우리들은 예수님 곁을 지키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곁을 지키고자 한 이유를 영생의 말씀이 예수님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이 대답 속에서 중요한 교훈을 받게 됩니다.

첫째, 영생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영생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영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곁을 떠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영생이란 무엇일까요? 영생이라는 말은 성경 원어로는 생명이라는 뜻의 ‘조에’(Joe)와 영원하다는 뜻의 '아이오니오스'(Aionios)가 합해진 말입니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양적인 개념으로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질적인 개념으로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새로운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는 주로 이 영생은 내세에서 믿는 사람들이 누리게 될 생명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막 10:30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현세에서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내세에서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런데 또 성경 여러 곳에서는 이 영생은 현세에서도 이미 얻고 누리고 있는 생명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요 5:24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그리고 요 10:10에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결국 영생이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새롭게 받게 되는 새로운 차원의 생명을 말합니다. 이 새로운 생명은 내세에 온전하게 누리게 되지만 이 땅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맛보고 누릴 수 있는 생명인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영생을 누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요 17: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러니까 영생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친밀한 인격적 교제 안에서 전인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영생이란 하나님과의 친밀한 인격적 교제 안에서 하나님을 알고 그 안에서 누리는 새로운 차원의 생명을 말합니다.

젊은이들이 즐겨 듣는 힙합 스타일의 노래 가운데 ‘리쌍’이라는 가수가 부른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가사 가운데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또 내가 걷는게 걷는게 아니야 너의 기억 그 속에서 난 눈물 흘려 너를 기다릴 뿐” 
실연의 아픔 속에서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사실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이렇게 부르짖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게 사는게 아니야” 
사실 산다고 하지만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 그 고통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오늘의 감당하기 힘든 인생의 무게에 눌려 신음하면서 살아갑니다. 또한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미래 때문에 불안해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는게 사는게 아닌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만나고 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과거의 모든 죄와 허물을 다 털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있는 상처들을 다 치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다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오늘의 인생의 무거운 짐을 예수 그리스도께 다 맡겨버리게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신 주님 앞으로 나와 참된 쉼을 누리게 됩니다. 염려, 근심, 걱정을 다 떨쳐버리고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다 떨쳐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앞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꿈과 비전을 가진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우리는 이미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생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을 얻어야 이 땅에서 제대로 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영생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 그들은 예수님 곁을 결코 떠날 수 없습니다.

둘째, 영생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매우 중요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바로 영생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영생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말씀을 들으며 영생을 얻게 되었고, 또한 그 말씀과 함께 영생을 누리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영생에 관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면 믿게 되고 믿고 난 뒤에 깨달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롬 10:17에서 보다 분명하게 설명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다시 그 말씀을 깊이 새겨보면 깨닫게 되어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으로 다시 말씀을 깊이 살펴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생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자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기록된 말씀인 성경 말씀을 듣고, 선포된 말씀인 설교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믿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깨닫고 알게 해 줍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코 주님 곁을 떠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영생을 풍성히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영생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그 영생의 말씀을 늘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늘 주님 곁을 지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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