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만 바라는 믿음 (시 62:1-8)

첨부 1


하나님만 바라는 믿음 (시 62:1-8)


영국의 유명한 문학가로, C.S.루이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였던 그는 본래 무신론자였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있는 것은 알 수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였습니다. 이 분은 어린아이 이야기서부터 어른들의 사상적인 저작까지, 영향 있는 많은 책들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신앙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문학적 관심 때문에 어느 날 성경을 열었어요. 성경 중에서도 시편을 펼쳤습니다. 그것은 그가 원래 시에 관심이 많았고, 또 성경을 가운데를 딱 열면 시편이 나오니까... 그래서 C.S.루이스가 시편을 읽기 시작했는데 시편을 읽다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분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비교적 일찍 쓴 책 가운데 하나가 “시편에 대한 묵상” 이라는 책입니다. 

오늘 시편 본문의 말씀은 구약 시대에 믿음의 의미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시편은 다윗이 쓴 것인데, 다윗이 가장 어려웠던 시절, 아들 압살롬에 의한 반란을 경험하며 피해 다니던 시절에 쓴 시편입니다. 그의 인생이 어두운 밤이었을 때 그가 가지고 있었던 믿음, 하나님만 바라는 그 믿음은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을까요? 

오늘 우리는 그의 믿음을 통해서 이 어두운 폭풍의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믿음을 갖고 살아간다는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만 바라는 믿음, 그 믿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 믿음은 하나님 안에서만 구원의 소망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압살롬)이 자신에게 등을 돌린 일,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이런 현실에서 다윗은 누구를 믿을 수 있겠고, 또 누구에게 자신의 구원을 호소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1절)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누구만? “하나님만” 바란다는 것입니다. (2절)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오직 누구?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구원이요 요새시니....   (5절)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어떤 단어가 강조되어있습니까? ‘하나님만’ - 이 하나님 '만'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는 아주 독특한 그 발성을 가진 ‘악카’라는 단어입니다. 이 히브리어 단어가 이 시에서 무려 여섯 번이나 나옵니다. “오직 하나님 만” 

우리가 많은 경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돈도 믿고, 다른 사람들도 믿고... 우리는 항상 인생을 살면서 어쩌면 양다리 걸치기를 하면서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집에 돈이 없어서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하고, 아들 대학 등록금도 내야 하고... 그런데 어떻게 해서 생각지도 않은 유산이 발견되어서, 아니면 정말 맘 좋은 친척이 1억 원을 주면서 이것 갖고 한번 일어나 보라고 해서 돈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그 1억 원 어치의 근심과 걱정은 안하게 됩니다. 이 돈에 대한 믿음으로 염려와 근심이 딱 맡겨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제로 그래요? 안 그래요? 돈 백 만원이 있으면 오늘 하루 뭘 먹을까? 뭘 입을까? 걱정이 안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얼마짜리인가요? 돈으로 계산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분이죠?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계시니까... 그래도 우리는 돈을 더 믿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믿습니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 나를 도와주던 사람이 내 곁을 떠났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이 멀리 이민을 갔습니다. 그렇게 나를 좋아하던 친구가, 어려울 때 도움이 되던 친구가 멀리 떠나갔습니다. 그러면 갑자기 마음에 고독감이 밀려옵니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사나? 이제까지 남편 믿고 살았어요. 자식 믿고 산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다 하나님이 보내준 사람들이죠?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믿고 살았습니다. - 여러분, 참된 믿음이란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또 그 무엇도 나의 믿음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는 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1절에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5절에도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잠잠히’ 이 ‘잠잠’이라는 것은 흔들림이 없는 고요한 침묵,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요동하는 세상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3절)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나를 보호하고 있는 담이 넘어집니다. 지금까지 나를 보호한다고 믿었던 울타리가 막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세상이 나를 넘어뜨리려고, 나를 죽이려고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의 한복판 속에서도 당당한 고백을 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이 시편기자가 구원의 소망을, 하나님 안에만 둘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5절)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믿습니까? 세상은 흔들리는데 담은 무너지는데 내 맘에는 쉼이 있고, 안정이 있고, 흔들림이 없는 청정한 침묵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구원의 소망을 하나님 안에만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과 이 축복이 여러분과 저의 몫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중에 국제전도폭발 한국본부를 대표하는 목사님 일행이 우리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지역에 몇 분 목사님들도 함께 만나 우리 제천을 복음으로 성시화를 이루어나가는 일들을 위해 논의를 하였습니다. 그 목사님이 20년 이상 이 사역에 힘쓰면서 보람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믿음, 그 복음의 본질로 우리가 무장하여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힘씀으로 그 열매가 열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전도폭발에서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오늘밤 당신이 죽는다면 당신은 천국에 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이때의 확신이 구원의 믿음이죠? 여러분, 믿음은 하나님 안에서만 구원의 소망을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믿음이란 하나님 안에서만 관계의 자유를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정말 그 하나님만이 나의 믿음의 대상이요, 그 하나님만이 내 유일한 신뢰의 대상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그 분에게만은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어야지요. 그 분이 다 아시잖아요? 내 좌절도 알고, 내 이중성도 알고, 내 속에 있는 그 거룩하지 못한 동기들도 알고, 내 좌절과 내 모든 약점도 알고, 열등감도 알고, 내 상처도 아시는 하나님, 그분이 이미 아신다면 감추는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분에게 정말 내 마음을 내어놓고 열 수가 있다면 그분과의 관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넉넉한 자유가 생깁니다. 저는 이것이 신앙인이 향유할 수 있는, 신앙인이 누릴 수 있는 삶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8절에서 다윗이 이것을 경험하고 우리에게 뭐라고 권면합니까? (8절)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 ‘시시로’라는 것은 언제나, 어느 때나, 낮에도, 밤에도, 황혼녘에도, 새벽에도, 내가 어디가 있든지 어디서나, 시시 때때로를 말합니다. 시시 때때로 그를 의지하고, 그 다음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마음을 토하라’, 

교회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습니다. 길에서 매맞고 강도당해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는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워낙 실감나게 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모두 감동을 받고 있었어요. 선생님이 이야기를 마치면서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만약에 길에서 이렇게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러자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한 여자 아이가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토해요” ... 

‘토하라’, 이것은 ‘다 끄집어내라’는 말입니다. 내 속에 숨어있는 열등감과 좌절과 눈물과 갈등을 다 내어놓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다 내어놓으세요. 그때 자유하게 됩니다. 여러분 자유한 관계란 것은 뭡니까? 투명한 관계, 숨길 것이 없는 관계. 하나님이 아시는데 그분 앞에 숨겨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다 내어놓으세요. 그리고 그 분 앞에서 위로 받고, 치료받고, 그 분 앞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 이것이 신앙이요 믿음입니다. 

C.S.루이스가 시편을 읽을 때 보니까, 시편의 하나님은 우리가 뭘 쏟아놓든지, 무슨 얘기를 하든지, 내가 어떤 절망과 어떤 불평과 좌절을 말하든지, 심지어는 그 하나님 앞에 “하나님 나 당신 믿을 수 없어요. 왜 그랬습니까? 너무 잔인하십니다” 이런 소리를 해도 그 모든 푸념과 독백과 절망의 언어들까지 다 받을 수 있는 큰 가슴을 지니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여러분의 절망, 눈물, 좌절, 아픔이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 앞에 다 내어놓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토하라’... 이 모든 것을 받으시고 나를 안아주시고 그리고 내 상처를 치유하시는 그 하나님을 경험할 때 여러분은 거기서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는 믿음이란 바로 이 하나님 안에서 관계의 자유를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3. 믿음이란 하나님 안에서만 가치의 변화를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믿음을 이해할 때 믿음이란 것은 예수 믿고 구원받고 그 다음에 천국의 소망을 갖고 사는 것, 거기서 믿음에 대한 이해가 끝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본질적인 것입니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이지만 우리의 믿음이 그 정도에서 끝난다면 우리의 믿음은 보험 수준밖에 안 되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생명보험 들듯이 천국보험을 듭니다. ‘내가 예수 믿어두면 이다음에 천국이 있으면 천국 가겠지’, 만약에 우리가 신앙을 저 멀리 있는 천국, 저 미래를 향한 투자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한복판에서 오늘 현실의 한 복판 속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파도가 불어오는 세상의 한 복판 속에서 우리의 믿음은 무기력한 신앙이 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내 존재의 근거로 믿는다면, 시편기자처럼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시오, 산성이시오, 내 삶의 근거가 되시고, 내 삶의 진정한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이라고 믿는다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치의 변화임. 변화된 가치를 갖고 살아갈 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그 가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해서 이런 고백을 드립니다. (11~12절)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인자함도 주께 속하였다’, 두 가지, 권능과 인자, 능력과 사랑에 대한 얘기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모든 가치는 이 두 가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는 권능(Power, 능력), 또 하나는 인자(Love,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조화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사랑이 없이 우리가 능력만 추구한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권능과 능력은 그것은 폭력이 될 수가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권능은 폭력이 될 수가 있어요. 또한 우리가 만약 능력이 없이 사랑만 추구한다, 그냥 사랑에만 매달린다면 그 사랑은 무력한 감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시편기자는 그가 가만히 묵상하면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 권능은 하나님께 속해있습니다. 그 다음에 인자도 사랑도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안에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중요한 가치가 다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근원이시고 하나님은 사랑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 안에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가치가 다 들어있습니다. 

신촌에 가면 ‘민들레 영토’라는 카페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14년 전에 생겼는데, 처음에는 한 10평쯤 되는 작고 허름한 건물에서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훨씬 넓어졌고, 전국에 20여개의 분점도 생겼습니다. 그 민들레 영토는 아주 당당한 문화 카페, 아주 격조 높은 젊은이들과 생각있는 사람들,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소문이 나서 마치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상당한 정신적, 문화적 수준이 있는 것같은 자부심을 갖게 하는 곳입니다. 그 카페를 연 사람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장로교의 목사고시까지 합격한 사람인데, 이름이 지승용이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낸 책 “민들레 영토에 핀 사랑”이 있습니다. 그 지승용이라는 사람의 삶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이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어려서부터 그의 집은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다른 사람의 보증을 서주었다가 망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압류가 들어와서 살던 집에 빨간딱지가 다 붙어졌습니다. 온 가족이 괴로워했습니다. 매일 같이 빚쟁이들이 찾아옵니다. 그 빚쟁이들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버지에게 돈을 융통하기 위해 혹은 사업상 필요에 의해 선물 꾸러미를 들고 드나들었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자다가 새벽에 깨어보니까 아버지가 불을 켜고 성경을 읽고 계신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그 새벽에 아들을 불렀습니다.  “요즘 네 마음이 많이 상했지?”, “아닙니다”, “오늘은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불렀다. 사람들은 내가 이제는 다 망했다고 말하더구나. 망했으니 불행하겠지?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란다. 지금까지 아버지는 돈을 벌어 재산을 모으는 것을 즐거움으로 알고 그것을 행복으로 알고 살아왔지, 하지만 이제부터는 나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빚을 갚는 일을 즐거움으로 알고 살 작정이다. 

물론 너희들이 고생이 되겠지만 이것을 알아야 한다. 기쁨이란 즐거울 때만 오는 것은 아니란다. 망할 때에도 즐거울 수 있단다. 빚을 갚는 것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즐거울 수 있단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겠니?”, 아버지로부터 그 말을 듣는 순간 자기인생은 변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 날 정말 자유한 삶을 사는 분으로의 아버지를 보았다고 합니다. 

복음성가 -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 도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나의 소망이 저에게서 나는 도다... ” 

시편기자가 말하는 믿음의 삶의 모습은, 울타리가 넘어지고 담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나를 공격해 들어와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 그러한 믿음의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