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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 (출 15: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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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광야 여정 (출 15:22-27) 
 
 
사도 베드로는 세상을 사는 성도들을 가리켜 ‘나그네와 행인’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2:11). 히브리서 기자는 이들이 비록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아가지만 본향을 찾는 뚜렷한 목표가 있고 그 나아가는 길에 확실한 방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히 11:13-14). 구약시대 애굽에서 올라온 이스라엘 백성도 ‘가나안’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고달픈 여행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들의 앞에 불기둥과 구름기둥과 같은 초자연적인 역사가 있었고 아침마다 하늘의 양식 만나를 먹었으며 반석에서 솟아나는 생수를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이 모든 사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상징적 계시입니다(고전 10:4). 본문 말씀은 모세와 함께 홍해를 건너온 이스라엘이 수르 광야를 통과하면서 겪었던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은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묘사한 것입니다.

1. 구원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1절에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의 첫 관문인 홍해를 통과하였습니다. 그것은 죄와 죽음으로 상징되는 애굽을 완전히 벗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쇠 풀무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고 하였습니다(신 4:20).

1) 유월절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호렙산 불꽃의 계시를 통하여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출하라고 하였습니다(출 3:1-10). 당시 애굽의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혹독하게 박해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제 노역에 동원하였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도 유린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남자 아이를 낳으면 강물에 던지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고통을 보시고 바로 왕과 애굽 백성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마지막 재앙으로 애굽의 장자들과 짐승의 첫 새끼들을 죽였습니다. 그 밤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을 탈출하였습니다. 그날 밤 이스라엘 집에서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습니다. 이것이 유월절(逾越節)입니다(출 12:23-28).

2) 예수를 통한 구원의 상징입니다.

유월절의 체험과 홍해에서 나타난 이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나타내는 상징적 계시입니다. 유월절의 어린 양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였습니다(요 1:29). 애굽에서 올라온 이스라엘이 홍해 앞에 멈춰 섰을 때 그들의 뒤를 추격하는 바로왕의 군대와 사이에서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했습니다(출 14:10-14).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를 내밀어 바닷물을 가르게 하였습니다. 그 뒤를 따라오는 애굽 병정들에게는 구름기둥이 흑암으로 덮어버렸고 이스라엘의 앞에는 광명한 빛으로 밝혀 주었습니다(출 14:19-20).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의 출현은 자기 백성에게 구원이요, 원수에게는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3) 거듭남(重生)의 체험입니다.

출애굽기 14:26-31에 보면 홍해에서 이스라엘은 극적으로 구출되었지만 그 뒤를 따라서 들어간 애굽 병정들은 모두 물속에 장사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 속으로 통과한 것은 사망의 골짜기에서 구원받은 것으로 비유됩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면서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고전 10:1-2).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죽음의 바다를 무사히 통과한 사건을 두고 하나님의 백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는 중생의 의미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것을 ‘세례’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2. 고난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홍해를 건너 온 이스라엘이 그 감격을 노래할 때 미리암과 많은 여인들은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기도 하였습니다(출 15:1-21). 그러나 그 앞에 펼쳐진 끝없는 사막 길은 그들이 가야 될 광야 여행의 고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 물이 없는 수르광야

22절에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 밖에서 처음으로 접한 곳은 술 광야(창 25:18) 또는 에담 광야라고 불리우는 사막 지대입니다(민 33:8). 거기서부터 이스라엘의 접경까지 사막을 여행하면서 자연의 악조건과 싸워야 했습니다. 물이 없는 사막은 범죄한 인간이 사는 세상을 비유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렘 2:13). 홍해를 건너온 감격이 식기도 전에 그들은 물이 없는 광야 생활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2) 마라의 쓴물

23절에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혹독한 더위 속에서 사흘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하고 광야를 헤매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마라에서 샘물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그 물을 들이켰습니다. 그것은 먹을 수 없는 쓴물이었습니다. 그들은 목이 마른 고통만 생각했을 뿐 물의 성분이 어떤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마셔서는 안 될 물을 마셨다가 더 큰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면서도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24절).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영혼이 갈급하고 목말라하는 인생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마라가 있습니다. 우선 목마름을 해갈할 목적으로 그냥 들이켰다가 쓰디쓴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3) 치료 하시는 하나님

마라의 쓴물로 인하여 백성들이 원망하는 소리를 듣고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한 나무의 가지를 꺾어 물에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나무 가지를 물에 던졌더니 쓴 물이 단 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이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이적을 통하여 자기 백성에게 큰 교훈을 주셨습니다. 광야같은 세상에서 사람들은 영혼의 갈증과 쓰디쓴 마라의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처럼 자기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면 하나님께 나아가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고 하였습니다(26절). 인간이 어떤 시험이나 역경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신비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엘림의 오아시스를 만났습니다.

27절에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고 하였습니다. 홍해를 건넌 후 수르 광야에 들어서면서부터 마실 물이 없어서 고통당하던 그들이 엘림에 와서야 드디어 장막을 쳤습니다.

1) 물샘 열둘과 종려 일흔 그루

엘림은 마라에서 남쪽으로 약 10km 지점이며 홍해에서 시내 산 쪽으로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거기 물샘 열두 개와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었다고 기록했는데 어떤 학자는 이를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칠십 명의 장로들을 연상하는 숫자라고도 했습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삭막한 광야이지만 이곳에는 여러 개의 샘물이 있고 우거진 숲이 있어서 사막의 여행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가 됩니다. 사막의 오아시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천혜의 축복을 뜻합니다.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생수의 샘이 있고, 그 물을 따라서 초목이 우거지며 과일의 열매가 맺혀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라의 쓴물이거나 또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신기루가 아닙니다. 땅속에서 솟아나는 깨끗한 샘물이요, 완전한 생수입니다(요 4:14).

2) 환난을 통과한 후에 오는 축복입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여정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예정하신 훈련 코-스였습니다. 애굽을 떠나오자마자 가나안으로 직행했더라면 몇 달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지만 백성들의 불순종에 대한 징벌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 겪어야 되는 연단의 과정이었습니다(민 14:34). 애굽에서 올라온 그 백성들은 유월절의 체험과 홍해를 건너온 그 감격에 들떠 있었으나 그 기쁨도 잠시뿐이고 오히려 수르광야의 목마름과 마라에서의 쓰디쓴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도 거듭남의 체험과 순간순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지만, 그보다도 세상살이에서 시달리는 고통이 극심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과정을 잘 극복하고 통과한 사람에게 감격스러운 엘림의 시대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3) 하늘나라의 환상입니다.

세상에서 성도들은 하늘나라의 환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곳에는 목마름과 답답함이 없는 완전한 낙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수르 광야와 마라의 우물가에서 쓰디쓴 고통을 겪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앞에 엘림의 오아시스를 준비해 두셨습니다. 오늘도 세상사에 시달리는 고달픈 인생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생수의 샘이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이 있는 이상적인 교회야 말로 갈급한 영혼을 시원하게 하는 생수의 샘입니다(요 7:37-39).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예수님께서 생수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요 4:14). 계시록 22:17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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