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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 (신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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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 (신 8:1-6) 

  
일류대학을 졸업한, 두 명의 젊은 엘리트가 있었다. 그들은 같은 회사에, 취직하였다. 그들은 부푼 마음으로, 회사에 첫 출근했다. 그런데 그들에게 주어진 첫 번째 업무는, 백화점에 있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손님들을 안내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내심 불만스러웠다. 

그래도 자신들은 일류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인데, 하찮아 보이는 일을 맡기니, 정말 불만스러웠다. 그래서 한 사람은, 자기 능력과 학벌에 맞는, 직장을 찾겠다고 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은 달랐다. 물론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안내하는 일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장님이 자신을, 그곳에 배치한데는, 틀림없이 뜻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내하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손님들을 안내하면서, 손님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백화점 손님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손님들의 취향이 무엇이며, 어떤 상품이 원하는지 파악했다. 회의가 있을 때마다, 윗사람들에게 보고했고, 그때마다 그의 보고는 받아들여져, 손님들의 기호에 맞출 수 있어, 백화점의 매상도 점차 늘어났다. 회사에서 인정받게 되었다.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여, 백화점의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에게 처음에 주어졌던 일은, 하찮은 일이었다. 그러나 사장님의 깊은 배려를 생각하면서,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끝내는,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었다. 

살다 보면, 내가 원하지 않는, 험한 광야의 길을, 걸어갈 때가 있다.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잊지 말자. 나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의미 없는 시련을 허락하겠는가? 험한 광야로 인도하실 때, 하나님의 깊은 배려가 반드시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을 나와,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축복의 땅 가나안까지는, 사흘 길에 불과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곧장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다. 그리고 사십 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걷게 하셨다. 

왜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바로 인도하지 않고, 광야의 길을 사십 년 동안이나 걷게 하셨나?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가? 아니다. 하나님은 못할 일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그러면 왜 광야로 보냈나? 이스라엘 백성은 가데스바네아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다. 

불신앙을 보였다. 뽑혔던 12명은 사십 일 동안, 가나안 땅을 두루 정탐하고 돌아왔다. 여호수아와 갈렙만 제외하고, 나머지 10사람들은 아주 부정적인 보고를 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들이 가나안 땅을 탐지한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40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걷게 하셨다. 

그렇다고 그들이 미워서, 일부러 괴롭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더 성숙한 백성으로 만들기 위한 징계였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그들을 훈련시키고, 연단을 하셨다.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마침내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로 하여금, 복을 주기 위해, 그들을 광야 길로 인도하셨다. 왜 하나님은, 힘든 광야의 길로 인도하시는가? 

1.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기 위해, 광야로 인도하셨다(2上).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16上)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이, 교만하기를 원치 않으셨다. 겸손하기를 원하셨다. 왜 겸손하기를 원하셨나? 하나님은 언제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지만,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 

교만은 반드시 꺾어버리고 만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면, 언제나 온유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다. 은혜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교만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대적하신다. 그래서 자연히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고, 은혜를 베푸시기 위하여,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다. 그러면 교만과 겸손은 무엇인가? 교만은 '내가 잘나서 잘된 줄 알고, 하나님을 잊어버림'을 말한다.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하나님을 잊어버림이 교만이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쉬운가? 형통하고 잘될 때, 잊어버리기 쉬운가? (12-13)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마음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된다. 

우리가 잘되고, 형통하고 풍부할 때, 오히려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쉽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17)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다 자기가 잘나서, 잘된 줄로 생각하기가 쉽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내가 잘나서 잘된 줄 알고, 교만에 빠지게 되는 말이다. 이와 반대로 겸손은 내가 형통할 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하나님을 잊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18上)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하게 된 줄로 알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된다. 우리는 지난 한 해를 무사히 마쳤고, 희망찬 새해를 출발하였다. 금년에도 형통하기 바란다. 그러나 내가 잘나서 형통함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형통이, 감사의 조건이 되어야지, 교만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차라리 가난했더라면 겸손했을 텐데, 부유하게 되어 교만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불행한 사람들이다. 왜 하나님은 교만을 그토록 싫어하시는가? 다른 죄는 하나님 앞에, 벌벌 떨면서 달아나지만, 교만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대적함이 교만 죄다. (출5:2上)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했다.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헤롯 왕이 그랬다. 바벨론의 왕들이 다 그러했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 교만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다. 

그래서 다른 죄는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다루지만, 교만 죄만큼은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철저하게 다루신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여, 억지로 겸손하게 만드신다. 모세도 애굽의 궁중에서, 40년 동안 지내며, 하나님을 잊고 지냈다. 

혈기와 자만심에, 가득 차 있었다. 이러한 모세를 하나님은, 미디안 광야로 내모셨다.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 살면서, 철저히 낮아졌다. 하나님은 모세가 겸손하게 되니까, 비로소 그를 부르셨다. 그리고 나서 그를, 하나님의 위대한 종으로 사용하셨다. 
지금까지 내가 잘나서, 이 날 이 시간까지 살아왔다고 생각하지 말라. 모두 다 하나님의 사랑이며, 은혜인 줄 알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순종여부를 시험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다(2下).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때때로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시험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 

그에게 나타나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다. 만일 아브라함에게 이런 시험이 없었다면,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의 복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욥도 시험하셨다.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두 번씩 그에게 허락하셨다. 욥은 극심한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자기의 믿음을 잘 지켰다. 만일 욥에게 그런 시험이 없었다면, 그의 믿음이 얼마나 순수한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욥이 시험을 잘 견디고 이겨냄으로, 하나님은 욥에게 허락하셨던 모든 곤경을 돌이키시고, 그에게 갑절의 복을 허락하셨다.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기 위해,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다. 지금 힘든 광야 길을 걷고 있나요?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심을 기억하자.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순수하고 진실한지, 알아보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시험하신다. 따라서 힘든 길을 걸을수록,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시기 바란다. 우리의 살림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힘들다, 못살겠다, 죽겠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그런 사람에게, 여기 1절을 말하라.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면, 사는 역사가 있다. 번성하는 역사가 있다. 

복된 땅이 우리 눈앞에 활짝 열리게 된다. 성경에는 이런 예들이 많다. 벳새다 빈 들판에, 장정만 오천 명이 모였다. 때가 되어 모두 배가 고팠지만, 가지고 있는 것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받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눅9:16下) "…무리에게 나누어주게 하시니"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어떻게 오천 명을 먹일 수 있나? 그러나 제자들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나누어주니,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남은 조각을 거두자, 열두 광주리가 되었다. 

이처럼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사는 역사가 있다. 번성하게 된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어부였다. 물고기가 어디에 있는지, 훤히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어쩔 수 없어, 아침에 배를 바닷가에 대놓고, 그물을 씻고 있었다. 

그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는 순종하기 어려웠다. (1) 베드로의 전공과 예수님의 전공은, 피차 서로 다르다. 베드로는 한평생, 바다에서 고기를 잡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목수였다. 

(2) 고기 잡는 시기와 방법에 문제가 있다. 갈릴리 바다는, 낮에는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 밤중에 고기가 잡힌다. 그런데 지금은 아침이 되어서, 더럽혀진 그물을, 깨끗하게 씻고 있는 중이다. 거기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지쳤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깊은 곳에 들어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베드로는, 상식을 뛰어넘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그러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가 잡혔다. 가나 혼인잔치의 이적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순종할 때 일어났다. 

(요2:7-9上)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순종할 때, 물이 포도주가 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학교만 다니면, 졸업장을 주지 않는다.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광야처럼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살고 있나요? 그럴수록 하나님의 명령에, 더 순종하기 바란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지만 시험을 이겼다. 시험을 이겼을 때 (마4: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순종하면, 사는 역사가 있다. 번성하게 된다. 축복의 땅에 들어갈 수 있다. 

3.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다(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람이 떡으로만 살겠다는 생각은, 자기 힘을 의지함을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알면,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 사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신다. 광야가 어떤 곳인가? 사람의 힘으로 살 수 없는 곳이, 바로 광야다. 광야는 삭막하고 메마른 곳이다.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또 목축도 할 수 없다. 방향도 알 수 없다. 체력 소모가 많다. 

(15中) "불뱀과 전갈이 있다." 짐승이 부르짖고, 황무지 열매가 없다(신32:10). 인간의 기본 문제인, 의식주조차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곳이, 바로 광야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사십 년 동안, 그곳에서 살게 하셨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살아가면서, 농사도 지을 수 없고, 목축도 할 수 없고, 그저 하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구하면서,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그들이 굶주렸을 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그들을 먹이셨다. 만나는 땅의 소산물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힘으로 농사지어서, 수확한 양식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신 음식이다. 그들이 배고플 때, 하나님이 먹여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목마를 때는,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게 해서, 그들의 목을 축여주셨다. 또 갈 길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을 띄워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을 띄워주셔서, 그들의 걸음을 친히 인도해 주셨다. 

(4)처럼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들이 광야 길을 사십 년이나 헤매는 동안, 하나님은 그들의 의복이 해어지지 않게 하셨고, 그들의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해주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건강까지도, 다 책임져 주신다. 

그들에게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면 살게 됨을, 깨닫게 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다. 힘들고 어려운가요? 그럴수록 자신을 의지하려고 하지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의지하시기 바란다. 

하루는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아이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아이가 베란다 밖으로 떨어졌다. 아이는 다행스럽게도, 떨어지려고 하는 찰나에, 난간의 철창을 꼭 쥐었다. 아이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손목의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아이는 고함을 질렀다. 아버지는 아이의 고함소리를 듣고, 놀라서 뛰어 나왔다. 아이가 힘이 빠져 떨어지려고 할 때, 아버지는 아이의 손을 덥석 잡아 주었다. 아이가 자기의 힘으로, 난간의 철창을 쥐고 있을 때가 안전한가?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아버지의 손에 잡혀있을 때가 더 안전한가? 

아버지의 손에 잡혀있을 때가 안전하다. 마찬가지다. 내가 무엇을 쥐고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의 손에 잡혀있을 때가 안전하다. 내가 떡을 많이 움켜쥐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다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하나도 먹을 수가 없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가 그러했다. 그 해 농사가 잘 되었다. 창고에 곡식을 가득 쌓아놓았다. 요즘 말로 사업을 잘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눅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준비한 떡을 먹을 수 없다. 내가 아무리 떡이 많아도,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말씀하시면, 먹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내게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말씀만 하시면, 만나로 나를 먹여주신다.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 나오게 하셔서, 갈한 목을 축여 주신다. 이처럼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깨닫고, 주님만 의지하며 살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는, 낮추시기 위함이었다. 겸손하자.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자. 복을 주시기 위한 시험임을 알고, 순종함으로 살고, 번성하고, 축복의 땅을 차지하자. 또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하나님을 더욱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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