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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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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6-29)

  
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인생을 고해라고 표현합니다. 갑자가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거센 파도가 언제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에 애굽의 바로왕 앞에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고백한 야곱처럼 세상을 살아보면 볼수록 인생의 삶의 여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60이 가까워 철이 드는지 몰라도 세상이 그렇게 쉽게 호락호락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님을 발견해 나갑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떻게 느낍니까? 지금 젊은 사람들은 인생의 고비를 쉽게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어려움이 처한 사람들은 오히려 지금 어른들보다도 더 빨리 그것을 느끼며 사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요즘 우리나라는 나름대로 최고의 학교를 나와도 자신들이 마음을 놓고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고 취업의 문은 더욱 좁아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최고의 두뇌라고 자랑하며 누구라도 한번 해보고 싶은 시험이 사법시험입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조인이 되는 것을 긍지로 여기며 자부심을 갖고 사법연수를 받았던 40기 수료식에서 미취업률이 무려 43.9%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사법연수원생 미취업률은 2008년 36.0%, 2009년 44.1%, 지난해 44.4%로 3년 연속 높아졌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는데 직장 구하는 것 보다 더 어렵고, 사업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나이 대장부라도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자유로울 수 없는 일이 있으니 그것은 곧 자식 키우는 일입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참으로 자녀를 바르게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특히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신앙으로 양육하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만나면 성도 여러분은 무엇으로 난관을 극복하고 위기를 해결하십니까? 어떻게 해결해 나갑니까? 

무엇보다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위기에 성도 여러분 스스로 도저히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만났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처신하십니까? 

우선 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와 등산을 간 어린아이가 텐트를 칠 장소의 돌들을 밖으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돌들을 옮기고 땅을 다듬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무거운 돌을 옮기려고 아무리 힘을 써도 돌은 흔들거리기만 할 뿐 도무지 움직이지 않아 끙끙거리고만 있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아버지가 마침내 말을 했습니다.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이용해 보았니?” 
“네, 그래요 아빠!” 소년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대답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아직 한 가지 사용하지 않은 것이 있단다.” 아들은 몹시 궁금해 하면서 “그것이 뭡니까?” 
“넌 아빠에게 도와 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았단다.” 
아들은 자기 방법만 생각하다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잊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노력은 조금도 하지 않고 주문 외우듯 입술로만 기도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힘만 의지하고 애쓰고 노력하지만 조금도 도움을 청하지 않는 ‘자기 의지형’이 있습니다.

기도는 자신의 노력과 함께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보다 적극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믿음의 자녀로 키우는 것을 내 힘으로 하려하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부모로서의 마지막 카드가 기도입니다. 옛날보다도 자녀를 바르게 키운다는 것이 더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어른의 문화도 아이들에게 다 열려있습니다. 이런 시대의 문화 속에 우리의 자녀들이 기댈 곳이 어디입니까? 자녀들을 마음 놓고 내어놓을 수 있는 사회입니까? 예수님은 오늘 말씀 29절에서 이미 이런 시대를 예고 하셨습니다.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왜 잉태하지 못한 여인이, 그리고 해산하지 못한 여인과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까? 우리는 어떤 경우에 ‘무자식 상팔자’라고 표현합니까? 오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무자식 상팔자’라는 뜻입니다. 왜 무자식이 상팔자여야 합니까? 분명히 하나님은 자식은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태의 열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말씀합니까? 그만큼 자식들이 부모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고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데 백성들과 통곡하며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왜 주님을 위해 울지 말고 자녀와 자신을 위해 울어라 했을까요? 예수님이 가시는 이 길은 마땅히 가야할 길입니다. 그렇게 가셔야 죄인 된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울어야 할 것은 자신의 죄를 위해 울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울면서 기도해야 할 것은 자녀들이 주님을 섬기지 않고 죄의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거역하고 믿지 않고 믿는 자까지도 믿지 못하게 막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을 가진 성도 여러분은 다음세대, 아니 나의 자녀, 손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도 울며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의 기도 없이도 잘 살 수 있겠습니까? 기도 없이, 아니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믿음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자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부모로서 자녀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못한다면 불만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준다고 해서 자녀들이 바르게 자란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를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하여 울며 기도해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템풀대학교를 창설한 ‘러셀 콘웰 박사’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끌날 무렵 미국의 백만장자들, 적어도 백만 달러 이상을 모은 사람들 4천 43명의 생애를 조사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사 결과 놀라운 것은 “4,043명의 백만장자들 중에 고졸 이상의 학력을 지닌 사람은 불과 69명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크게 성공해서 수백만 장자가 된 사람들은 그들이 백만장자가 되기까지 돈과 교육, 정규훈련 등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부족한 생활을 했다’는 결론이 추론되었습니다.

그러나 콘웰 박사는 그들의 생애가 평범한 사람들과는 동일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첫째, 그들의 삶을 출발할 때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둘째, 그들의 마음속에 열화와 같은 소원이 있었으며,
셋째, 그들은 불퇴진의 기도를 하고 있었다고 주장 했습니다. 

기도는 능력자의 에너지를 내게로 가져오는 통로입니다. 불타는 성공과 승리의 에너지가 여러분들에게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그렇다면 단순히 세상 성공의 삶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그것보다는 승리하는 인생, 하나님께 인정받는 인생이 되도록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미가서7:7절 말씀을 보면,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2011년 오늘도 아니 지금도 항상 우리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왜 자녀를 위해 울면서 기도해야 하는지 다른 이유를 보다 폭넓게 찾아봅시다. 

1. 믿음의 조상들의 신앙의 모습에서 기도의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가나안으로 들어온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기도했습니다. 창13:1-4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벧엘에서 처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확실한 기도의 모습은 창세기18장에서 소돔성이 망하기 전에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한 내용입니다. 무려 여섯 번에 걸쳐서 했습니다. 창세기 20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하니까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리고 갔는데 그 날 밤에 현몽하였습니다.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고 했습니다. 꿈에서도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기를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고 하는 아비멜렉에게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아비멜렉 가문의 여자들에게 태의 문이 닫혔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다시 아비멜렉 가문의 태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창세기 28장에 기록된 야곱의 벧엘 기도는 유명합니다. 야곱은 환도뼈가 위골 뒤도록 천사와 겨루어 이겨서 결국 야곱이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나에게 축복하지 않으면 당신을 놓아줄 수 없습니다’고 하면서 매어 달렸습니다. 그리고 49장에 보면 임종 전에 열 두 아들을 불러놓고 축복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축복기도를 한 그대로 되었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와 애굽에 내리시겠다고 한 재앙을 내리지 않도록 기도할 때 그대로 응답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여호수의 경우는 여호수아 10장에 보면 아모리와 전쟁할 때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라고 간절히 기도하여 태양을 무려 23시간 20분 동안 머물게 하였습니다. (과학자들이 찾아낸 시간입니다.) 

사사기6:34-40에 보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하여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승리하게 해 주신다는 말씀을 듣고는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 양털을 가져다가 놓고서 밤에 이슬이 내릴 때 양털에만 젖게 하고 다른 주위의 땅에는 이슬이 내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어 양털을 짜니 물이 한 그릇이나 되었습니다. 기드온은 그래도 불안하여 한 번 더 간청했습니다. 오늘 밤에는 역으로 양털에는 이슬이 내리지 않고 주위에만 내리면 믿겠다고 했을 때 양털에는 물 한 방울 나오지 않고 다른 땅은 이슬로 다 적셨습니다. 

삼손, 사무엘, 다윗, 솔로몬, 엘리야, 엘리사, 히스기야, 에스라 느헤미야,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요나 등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은 대부분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예레미야 선지자의 경우는 기도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모릅니다. 
렘29:12-13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에스겔 선지자는 36:37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한 것까지도 그것이 다 이루기까지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조상들이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기도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준 분들입니다. 

2.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해야 합니다. 

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26:41절, 막14:38절, 눅21:36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눅22:40절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2) 마지막 때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24:20, 막13:18절 말씀에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3) 항상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눅18:1이하에 보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막연히 우리에게 기도만 할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기도한 것에 대하여 응답하실 것을 함께 말씀하시었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마7:7-8) 그것은 분명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곧 이어서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찾을 것이요!. 열릴 것이라!” 이는 기도한 것에 대한 응답의 약속입니다.

또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이는 명령입니다. 하지만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하신 말씀은 약속입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하시면서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고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싸움 중 가장 큰 영적싸움에서 승리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마가복음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사실 예수님은 항상 기도했습니다. 새벽기도며 철야기도를 하셨습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기도하셨습니다. 능력의 주님께서 무엇 때문에 기도했을까요?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우리도 주님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하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3. 사도들의 권고사항이기도 합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보면 베드로전서 4:7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사도 바울의 경우도 보면 에베소서 6:18절,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0-12)

이 모든 명령도 중요하고 옛 믿음의 조상들이나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의 기도한 모습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어머니 기도회, 아버지 기도회를 갖는 이유가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눅 23:26-29절 말씀에 “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기도에 대한 태만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에 보시기를 원하시는 믿음과 경건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기도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유는 
기도한 후에는 기도한 것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지만, 

기도하기 전까지는 기도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을 결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보증 수표입니다. 
기도는 새로운 기적을 일으킵니다. 
기도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움직입니다. 

여러분, 걱정하는 것 있습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다니엘은 기도하여 굶주린 사자의 입도 다물게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기도하여 하늘의 태양을 머무르게 하였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전쟁을 이기게도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에 성도들의 기도로 옥문이 열렸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옥문이 열렸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역사하시며, 우리 주님께서 약속을 지키시어 시행해 주십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가장 합ㅎ력하여 나에게 유익이 되게 하시고, 만사가 복 되게 해결됩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하나님께 문제가 없어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내가 감당할 능력 이상으로 크면 더욱 더 크게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심각하면 더 심각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어머니들이여, 아버지들이여! 우리 모두 일어나 기도의 자리에 참여합시다. 

적어도 금년부터는 기도의 사명선언문을 마음에 새기고 기도의 헌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기도하리라. 응답받을 때까지.
나는 기도하리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나는 기도하리라. 주님 앞에 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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