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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항상 주를 바라볼 때, 은혜의 눈도 열린다 (시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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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주를 바라볼 때, 은혜의 눈도 열린다 (시 8:1-9)


여러분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은혜가 충만하십니까? 
은혜가 충만한 사람의 마음이 어떨까, 가장 잘 알 수 있는 성경 중 하나가 시편 8편입니다.

1절에서 다윗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누구나 자연을 보면서 감탄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윗처럼 자연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은 온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된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믿을 수 없다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시적인 표현이겠지.’ 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한 사람은 누구나 다윗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공감할 것입니다. 나무도 풀도 하늘도 다 달라져 있음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1962년 2월 20일 인류 최초의 우주인 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우주에 나갔다 온 소감으로 "우주 어디에도 하나님은 없었다!" 고 했습니다. 그러나 5개월 후인 7월 10일에 미국 최초 우주인 글렌 중령은 우주 여행 뒤에‘우주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였다!" 고 고백했습니다. 

같은 우주를 보고 와서 한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한 사람은 영적인 눈이 멀었고, 다른 한 사람은 영적인 눈이 뜨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24 시간 주님과 동행하게 되면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바로 보입니다. 세상 만 아닙니다. 사람이 달리 보입니다. 자연을 보면 누구나 감탄하지만 그럴수록 사람을 보면 초라해지고 볼품이 없어 보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이 뜨인 사람은 자연에서 받는 은혜 보다 사람을 보며 더 은혜를 받습니다.

3-4절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다윗은 우주 보다 사람이 더 위대함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로 알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를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5절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하나님과 늘 동행한 다윗은 이 우주가 사람을 위하여 만드신 것이라는 알았습니다. 

6-8절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창조를 보고 하나님의 사랑에 이렇게 감격하였지만 우리는 그 보다 더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타락한 우리에게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를 희생시키셔서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에게 귀중한 존재이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복음을 자주 들은 분들은 무덤덤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진리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1966년 11월에 성심여자 대학에 다니던 양모 양은 염세주의자들의 책을 읽고 학교 기숙사 굴뚝에 올라가 투신 자살을 하였는데 그의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죽어야지요.” 

중학교 3학년 학생이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자살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먼저 갑니다. 저는 아버지 어머니의 소원대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어서 부모님에게 얼굴들 면목이 없기에 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아버지는 중소기업 사장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약사였습니다. 그 학생은 자기의 존재가 오직 성적으로 평가된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자살하고 만 것입니다. 그는 세상의 창조자 하나님이 자기를 인정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눈이 뜨여야 모든 것이 바로 이해되고 판단되고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장로 부부 수련회 주제가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첫째 날은 문제가 속출하였습니다. 공항에서 30분 늦게 출발한 것부터 시작하여, 제주도에 가니 눈이 많이 오고 추워서 차가 눈에 빠져 다들 고생을 하였습니다. 운전기사가 길에 대하여 경고를 듣고도 무모한 고집으로 운행을 강행하여 고생을 한 것입니다. 저녁 식사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행복한 여행과는 거리가 먼 출발이었습니다.  

다행히 둘째 날 올레 길을 걷는 일정은 너무나 날씨가 좋았습니다. 정말“예수님 동행하는 행복한 여행”이라고 할만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예수님과의 행복한 여행은 오늘 같이 좋은 날씨가 아닌 어제와 같이 고생한 날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순간 아멘하였습니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다 보니 예수님께 감사하면서도 관심은 온통 주변 풍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았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제 불평 한 마디 없었고, 너무 즐거워했고, 밤은 늦었지만 환상적인 대접도 받았습니다, 모두들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고 말하며 하루 밤 천국의 꿈을 꾼 것 같았습니다. 
“주여, 그렇습니다. 앞으로 좋은 환경 보다 궂은 환경이 더 행복한 여행임을 명심하겠습니다.”

이단으로 인하여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성도들을 지키기 위하여 이단을 차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단 보다 더 조심해야 할 것은 사랑을 잃는 것, 충만한 기쁨과 찬송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계 2:2-3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진리 수호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소홀히 하면 큰일 납니다.

4절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여기서 처음 사랑이란, 원어적인 의미로 아가페 사랑을 말합니다.

5절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진정한 사랑이 없으면 다 허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세상이 아름답습니까? 사람들이 사랑스럽습니까?
은혜받았을 때는 순간 그런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충만함은 곧 사라집니다. 다시 매사가 짜증나고 미워지고 답답해졌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세상 때문입니까? 환경 때문입니까? 사람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눈이 감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시 부흥회를 해야 합니까? 안수기도를 받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누누이 말씀합니다.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 말은 항상 기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부흥회 때만 성령을 체험할 때만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항상 기쁠 수 있습니까? 주 안에 있는 것입니다.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요 4:13~14 “ ...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항상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열쇠입니다.

제가 2년 전 안식월 때, 예수님과 하루 종일 동행하는 기쁨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런데 안식월에서 돌아와 교회 사역으로 인하여 다시 바쁘게 지내면서 다시 피곤하고 지치는 것입니다. 그 때 안식월이 생각났습니다. 안식월이 기다려졌습니다. 점점 목회를 그만두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안식월에만 예수님과 동행할 수 있다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주님의 약속은 언제나 항상 기쁨으로 살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실험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너무 놀라운 것입니다. 휴가를 가서야 주님과 온전히 교제하게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은 나와 동행하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전 교인들에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세상 살면서 어떻게 편하고 좋은 일만 생기겠습니까? 고통, 환란, 역경, 풍파 ... 이런 것들이 계속 우리를 향해 공격해 옵니다. 그래도 기뻐하며 살 수 있는 힘이 바로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환경이 악화돼도 괜찮습니다. 형편이 나빠져도 괜찮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신 것은 이런 놀라운 은혜를 누리며 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은혜를 누리는 이들은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그러나 주님의 계획은 거기서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오신 주님의 뜻은 세상도 달리 보이고 사람이 사랑스러워지는 이 놀라운 은혜가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로 전해져 그들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것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는 여러분에게서 예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며 느끼고 변화되고 있습니까? 

지난 금요일에 설교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예정에도 없이 티벳에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 부부가 저를 만나러 왔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도저히 만나드릴 시간이 없는 상황이지만 만나지 않겠다고 말해서는 안된다는 강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것입니까?’ 마음은 허락했지만 설교 준비를 중단하기가 어려워 잠시 말씀 준비를 마무리하고 나가보니 찾아오신 분들은 중국 조선족 지하교회 목사님 내외로 티벳에서 사역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저를 보자 마자 왈칵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무작정 왔지만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만나서 딱히 무엇을 하자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만나보고 싶었답니다. 잘 아는 권사님이 한국에 가면 반드시 만나고 오라고 했답니다. 이들은 정말 주의 종들임을 느꼈습니다. 

중국 지하교회에서 목사가 된다는 것은 세상의 행복은 다 버렸다는 말인데, 티벳에 가서 선교사라니. 한국에는 처음 오신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책을 사인하여 선물로 드리고 여비를 드리고 서점에서 책과 테이프를 가져 가시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여러분 중에는‘우리 목사님 교만하시면 안되는데.’걱정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결코 교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늘 저를 보는 목사님 전도사님 장로님들 중에 저를 보고 눈물 글썽이는 분이 없습니다. 

어제는 참 속상했습니다. 회의 시간에 사역자들에게 몇 가지 지적을 했습니다.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습니다. 항상 이런 회의가 속상합니다. 제 마음에 꼭 들게 일이 처리되지 않아서 속상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기쁨을 주는 담임목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제게 화를 내지 않는 것만도 감사할 일입니다. 실망하고 섭섭해 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목사님들과 함께 나누는 영적일기 나눔방에 장로부부 수련회 중 일기를 올렸습니다.
“이번 장로부부수련회 중 장로님 부부 모두 너무나 행복해하였다. 내가 변했단다. 담임목사가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니 장로부부 수련회가 너무 행복해졌단다. 지난 날 나의 모습이 어떠했나 부끄럽고 미안했다. ‘내친 김에 오늘 저녁 집회도 취소하고, 아주 쉬게 해드려?’하는 생각을 하다가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내가 아직 너무나 인기에 연연하고 있군요! 죄송합니다.”
그랬더니 댓글이 달렸습니다. ‘지난 번에 월요일 마다 남한산성 올레 길을 걸어보자고 하셨지요? 그 때 담임목사님의 변화를 확인해야겠습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는지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부산제일교회 청소년부 교사인 최진환 형제, 전도사와 함께 처음 고등학교 앞 전도를 나갔답니다. “전도사님께서 한 남학생에게 전도지를 내밀었을 때 그 학생이 저희를 아래위로 훑으며 획 돌아섰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을 일이지만, 그 날 저는 그 학생의 눈을 보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 왜 진작 안오고 이제 왔냐?’ 라는 원망의 눈빛처럼 느껴졌습니다. 조금 더 일찍 오지 못한 마음에 너무도 미안했습니다. 그 학생을 뒤로 하고 저희는 가지고간 전도지를 계속 나누어주었습니다. 학생들 대부분은 “감사하다.” 라는 인사까지 하며 웃으며 받아갔습니다. 정말 기쁘고 은혜로웠습니다. ‘전도를 시작하길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전도를 하고 학교 옆에 주차해 둔 차로 돌아와 보니 차에 둔 지갑이 사라진 것입니다. 학생 중 한 명이 지갑을 가져가고 지갑이 있던 자리에 제가 나누어준 전도지를 놔두고 갔습니다. 순간 너무나 괘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일은 무슨, 이런 놈들에게 전도를 계속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문득 지갑이 없어진걸 알기 전까지 학생들을 좋아했었는데 지갑 때문에 마음이 무너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학생들을 원망하는 마음은 주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일찍 와서 복음을 전해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에 ‘매주 빠지지 않고 학교 앞에 나와 전도하리라.’ 마음을 바꾸어 먹었습니다. 주님께서 제 생각 마저 바꿔주셨습니다. 

그 후 저는 매일 학교 앞으로 전도하러 나갑니다. 저는 제 지갑을 가져간 학생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제 지갑을 가져간 학생은 저를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학생은 내일도 전도지를 받아갈 것입니다. 이렇게 끝까지 전도의 자리를 지키면 언젠가 그 학생의 마음도 녹아질 것이라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학생도 너무 사링하신다’ 라는 사실에 내일 학교 앞 전도가 더욱 더 설레입니다. 우리는 내일 또 학교 앞으로 나갈 것입니다” 

「아름다운 능력의 길 예수」댄 바우만은 1997년 이란에 단기선교를 갔다가 간첩이란 억울한 죄로 이란 감옥에 갇혀 지낸 9주간 고문을 당했습니다.
빨리 그곳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에게 물어보려무나.’ 그러나 그는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빨리 나가는 것만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워낙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는 묻습니다. ‘하나님, 제게 말할 수 없이 폭행하고 고문하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때 그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신의 마음 속에 자신을 심문하던 그 사람에 대한 사랑과 긍휼함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지옥과 같은 몇 주를 보내고 어느 날 감방에 들어와서 쓰러져 있는데 밖에서 간수들이 하는 이야기가 귀에 들려왔습니다. 

‘나는 기독교인들을 이해할 수 없어. 그들은 매를 맞고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자꾸 오는지.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우리가 그들을 죽이려고 하는데 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는지 더 이해할 수가 없어.’ 

그때 그가 자기 방에 도청장치가 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감방에서 자기를 고문하던 간수와 이란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다 들은 것입니다. 그때 또 다른 간수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좀 알아. 전에 한번 들은 적이 있어.’ 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대화를 들으면서 놀란 것은 그 중에 세 명이 예수를 영접한 것입니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복음을 나누면서 ‘나도 저 사람들과 같은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싶어, 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나도 가지고 싶어.’ 

그렇게 9주가 지났습니다. 이제 마지막 사형 판결을 받는 재판석에 섰습니다. 그런데 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하는데 무혐의로 석방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려와서 자기를 포옹하더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지 않았다면, 아마 댄 바우만은 그 일생에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은혜 충만하다가 서서히 세상 살기 힘들다 여겨지고 재미있는 일이 없고 사람이 미워지면 문제가 어디 있는 것입니까? 세상은 언제나 변함이 없었습니다. 사람도 그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변했습니까? 우리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항상 주를 바라볼 때, 은혜의 눈도 열립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속지 말고 진리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사람이 달리 보입니다. 
인생 자체가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여행이 됩니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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