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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험이 올때 (마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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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올때 (마 4:1-11)


I. 아직도 이꼬라지

고 구상 시인의 「까마귀」라는 시집에 “신도행록”이란 시 한편이 실려 있습니다. 

信徒行錄(신도행록) (신자라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라고는) 
올 여름 무더기가 한창인
어느 주일이었어요.

그 성당에는 대형 선풍기가 한 대
신도석을 향해 마련되었는데
그것이 한창 돌다 회전바퀴 고장으로
통로에다 헛바람만 보내게 되었지요.

그러자 왼편 좌석의 중년부인 하나가
미사보를 오므리며 나가더니
그 선풍기 목을 제자리쪽으로
돌려놓고 들어왔습니다. 

얼마 안가 바른편 좌석의 젊은 사내가 
험한 인상을 쓰며 나가더니
그 선풍기 목을 제자리쪽으로
돌려놓고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양편에서 번갈아가며
나서기를 세 번
이번엔 회장인듯 싶은 영감님이 나가
이리 저리 돌려보다 망설이더니
그만 선풍기를 끄고 들어왔습니다. 

예수님!
우리는 당신 제단 앞에서도
아직 이 꼬라지랍니다.
예수님 우리는 당신 제단 앞에서도 아직 이 꼬라지랍니다. 

• 주님, 예수 믿고 다른 사람과 공동체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나만 중요합니다. 
  - 우리는 아직도 이 꼬라지랍니다. 

• 예수 믿고도 손해보면 큰일나는 줄 압니다. 
  - 우리는 아직도 이 꼬라지랍니다. 

• 고난과 십자가를 징그럽게도 싫어합니다. 
  - 우리는 아직도 이 꼬라지랍니다. 

• 목장에, 사역팀 안에 보기싫은 교우라도 있으면 교회도 싫고 예수님조차 싫어집니다. 
  - 우리는 아직도 이 꼬라지랍니다. 

• 조그만 시험이 와도 이기는 법을 몰라 매일 넘어집니다. 
  - 우리는 아직도 이 꼬라지랍니다. 


II. 언제 시험이 오나

구세군교단의 창설자 부처대장은 마지막 때가 되면 고난절없는 부활절만 기다리게 될 것이고 십자가 없는 축복만 기다리는 사람들로 예배당 안에 꽉차게 될 것이다. 그때가 세상 마지막날 인줄 알라는 예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시험은 언제 올까요?
마태복음 4:1 그때에
마가복음 1: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셨다.
누가복음 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자마자 시험을 당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목수일로 책상다리를 끼워맞추던 때에 시험이 온 것이 아닙니다. 30년 사생활을 마치시고 공생애를 시작합니다. 가슴은 불같이 뜨겁습니다. 세례 받으실 때 하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습니다. 바로 그때 시험이 왔습니다. 

여러분에게 시험거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이요 여러분이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소중한 소명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당하는 그 시험을 통과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크게 쓰실 것입니다. 낙심하지 마시고 긍정적으로 시험으로 이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너끈히 당신은 이겨주리라 신뢰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사탄도 죽은 자에게 총을 쏘지 않습니다. 선수에게 총을 쏘지요. 큰 문제를 여러분 앞에 던져 놓고 어떻게 해결하나 보자. 이것이 시험입니다. 사탄은 여러분을 넘어지게 만들 것이고 성령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탄의 영역 아래 있을 때 넘어지게 될 것이고 성령의 접촉되어졌을 때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 왜요? 하나님이 당신을 쓰시기로 작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랄 때 성장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성장될 때에 시험을 통하여 아픈 기간을 거치게 될 것입니다. 소위 믿음 성장통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그릇이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III. 시험은 어디서 오나?

1. 광야에서 

사방에 돌멩이와 모레가 흩날립니다. 사막 한가운데 하나님의 아들이 40일 금식하고 몹시 배가 고파하고 있습니다. 길바닥에 다니는 돌멩이 하나도 빵으로 보일 때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이 돌을 명하여 빵을 만들어 먹어라. 그러면 얼마나 근사하겠니. 그럴듯하지 않겠어. 유혹합니다. 사탄의 이 말에 속아 넘어가게 되면 예수님은 사탄에게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고 돈이 최고요 먹는 것이 최고라는 가치관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험은 언제 왔습니까? 
뭔가 일이 잘 안될 때, 먹고 살 일이 막막해 질때, 심신이 약해 질때, 
돈이 필요한데 급박할 때, 먹고 살 것부터 찾아야지. 수단방법 가릴 여유가 없어질때, 시험이 오더라는 것입니다. 

모든 판단의 기준이 육신이 되고 감정이 될 때 나는 이미 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당신이 기도할 때입니다. 지금 사탄은 당신의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교회생활에 찬바람이 몰아칩니다. 사막에 서 있는 예수님처럼 외롭게 느껴지고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모래만 흩날리는 시험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와도 기쁨이 없습니다. 그때 반드시 불평거리가 보입니다. 교회와 목사의 약점이 보입니다. 문득 이상한 사람이 다가옵니다. 이상한 곳으로 안내합니다. 세상 취미생활 혹은 세상 친구곁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이상한 집단으로 안내하기도 합니다. 여기 이렇게 신나는 곳이 있었는데,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여러분들이 시험에 넘어지게 된 것입니다. 


2. 성전에서

시험은 광야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5절에 보면 거룩한 성전, 성전 꼭대기에서도 시험은 왔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왔습니다. 좋은 환경속에 있어도, 좋은 교회 행복한 신앙생활속에도 시험은 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행복한 예배를 드리면서 은혜로운 말씀을 들으면서 시험 당할 수 있습니다. 

사가랴는 천사의 말을 듣고도 불신하는 시험을 당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을 때만 시험이 오는 것이 아니라 배부를 때도 시험이 옵니다. 
병들고 약할 때만 시험이 오는 것이 아니라 건강할 때도 시험이 옵니다. 
환란 만났을 때만 시험이 오는 것이 아니라 만사가 평안하고 형통할 때도 시험이 옵니다. 

신앙생활 잘못하는데, 게으르고 나태하기만 한데, 만사가 형통하고 번창합니까? 여러분이 지금 무서운 시험을 당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때 조심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겸손하게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어디서 시험이 왔습니까? 잘될 때도 시험이 오고 모든 일이 잘못될 때도 시험이 옵니다. 산다는 것은 시험의 연속입니다. 작년에 이겼다고 금년에 계속해서 이기는 것 아닙니다. 한번 이겼다고 끝난 것도 아닙니다. 


IV. 시험하는 목적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3절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6절에도 똑같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하나님의 아들이 왜 고난당해야 하는데? 예수 잘 믿은 하나님의 아들인데 왜 친구들보다 잘 안되어야 하는데? 뭐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어? 수단방법 가릴 것 없어. 일단 성공하고 보자고. 일단 영광을 얻고 보자고. 유혹이 찾아옵니다. 

성령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당당하게 시험을 직면해라.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히 십자가 짊어져라. 

그러나 사탄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 지고 고생할게 뭐 있어? 
네가 뭐가 못나서? 그 고생을 해야 되는데? 네가 왜 물질에 손해를 당해야 하는데?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 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귀의 목적이었습니다. 

십자가 지지 못하게 하는 이 집념이 얼마나 끈질긴지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마귀는 집착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마지막 달리실 때 

마태복음 27:40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공생애 시작할 때 했던 말을 십자가 위에서 똑같이 하고 있지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남을 구원하기 전에 너 자신이나 구원해라. 그 십자가에서 뛰어내려와 보라. 그대는 기적을 행하던 자가 아니냐. 왜 너 자신을 위해서 기적을 행할 수 없는데. 손발에 못이 박혀 있지만 못을 빼고, 가시관 벗어 던지고, 하늘의 천군천사를 불러 로마 군인을 멋있게 퇴치해 보라고. 하루아침에 영웅이 될 거야.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 지지 못하게 유혹하고 있습니다.

둘째 시험도 그렇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봐. 그러면 천사들이 붙들어 땅에 내려앉도록 도와줄 것 아니겠어. 그럼 영웅이 될 것인데. 네가 돈이 없어, 지식이 없어. 마음껏 네 인생의 꽃을 피워보라고. 인기를 누려보라고. 한번만 마약에 네 몸을 의지해봐. 옷을 벗어봐. 스타덤에 올려 주실 거야. 

세 번째 시험도 그렇습니다. 

십자가 지고 하늘의 권세를 얻어 인간을 구원하겠다고? 십자가 질 것까지 뭐 있어? 나한테 절해. 그럼 내가 하늘의 모든 권세를 줄 것이고, 네가 이 세상을 구원하는 구원자가 될 수 있어. 조금만 타협하면 세상에는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한번만 타락해 봐. 한번만 타협해 봐. 세상에 근사한 길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마귀는 오늘도 우리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지방에 어느 기독교대학을 졸업한 장로님의 아들이 장래가 촉망되어지는 벤츠 신입사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첫 출근을 하는 날 금식을 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회사에 가는 것이 아니라 선교지에 갑니다. 회사에 가서 하나님이 제게 주신 비전과 꿈을 이루게 하시고 거기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줄 수 있도록 하나님 도와 주세요. 유혹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지혜와 총명으로 회사를 유익하게 하고, 나라를 섬기는 선교사로 직장에 출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출근했는데 오전 근무만 하고 오후부터 저녁부터 파티가 열려졌습니다. 전사원들이 죽 둘러서 있는데 독한 독주를 한잔씩 붓고 이것 저것 섞어 만들어서 회사의 번영과 새로이 입사한 신입사원들의 행복을 위하여를 외치며 한잔씩 먹습니다. 이 신입사원, 금식하고 출근한 장로님의 아들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어떡해야 합니까? 이 잔을 들고 떨고만 있으면 분위기를 망칠 것이고, 마시면 나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월급받기 위해 출근한 초라한 직장인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데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직속 상관이 다가오더니 “마셔 이 새끼야.” 사장님이 걸어오더니 “왜 그래? 분위기를 파악한 사장님이 마셔?” “이 술은 사장님이 저를 사랑해서 주신 술인 줄로 압니다. 제가 마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장님의 사랑을 진심으로 받겠습니다. 제 심장 가슴으로 받겠습니다.” 양복 가슴에 술을 부었습니다. 사장님이 조용히 껴 앉더니 “고맙다. 네 믿음을 지켜 주어서. 너 같은 신입사원이 들어온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도 교회 집사야.” 

하나님의 사람들은 가야할 길이 따로 있고 먹어야 할 음식이 따로 있습니다. 풀무불 속에 들어가서 해서는 안될 일이 있는 것이고 우상에게 절하고도 살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사자굴 속에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일을 중단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 

이때 예수님께서 사탄의 유혹 앞에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는 말씀을 꼭 두 번 하셨는데 오늘 본문에서 하셨고 십자가 져야 겠다고 말씀하실 때 베드로가 그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예수님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때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아 물러가라. 공통점이 있지요. 십자가 지지 못하게 할 때에, 십자가를 짓밟고 십자가를 버리고 살라고 유혹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가차없이 사탄아 물러가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제가 졸업한 시골 고등학교에서는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직업선택 10계명이라는 것을 줍니다. 
제군들이 앞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때에 어떤 직장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인생을 갈 것인가? 

월급이 적은 쪽을 가거라.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 말고 하나님과 민족이 기다리는 곳, 너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거라.

영광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지 말고 십자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거라. 
승진의 기회가 없는 곳으로 가거라.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려가면 거기는 유혹이 있다. 
너를 기다리는 곳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거라. 

하나님은 네게 오라 말씀하시는데 아내와 부모가 말리느냐. 
틀림없다. 그곳으로 가거라. 

결론은 십자가 지고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손해보고 고생하고 고난당하는 길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V. 시험을 이기는 방법


1. 떡으로“만”

이 돌로 명하여 떡을 만들어 먹으라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만”이 중요합니다.  기독교는 떡을 경시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부자되고 경제를 운용하는 것을 무시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기독교 국가가 잘 살고 있습니다. 

사탄은 말합니다. 떡이 전부야. 돈이 최고라고. 떡이 먼저야.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교회에서 어린이, 청소년, 청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선은 경제학자들, 인류학자들, 정부의 책임있는 사람들이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신세 못 면한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그래서 하나 낳는 사람이 지성인이고 셋 이상 낳으면 원시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인구재앙이 올 것이라는 겁니다. 2000년대가 되면 80억으로 지구촌이 늘어나게 될 것이고 2025년이 되면 100억의 인구가 살아서 지구는 인구폭발로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예측이 얼마나 잘못된 예측이었습니까. 

지금 지구촌은 저출산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구는 인구감소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저출산의 문제, 인구감소의 문제, 어린아이들이 적어지고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었을 때에 유황불이 아니더라도 한반도에 재앙이 내려지고 있습니다. 50년 후면 대한민국이 사라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사라졌다. 


2.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우리는 가난하게 살면서 우리 아이들만큼은 배부르게 잘 먹고 잘 살아야지. 안 먹고 안 입고 모아서 뼈골 빠지게 일해서 경제적인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서 우리 자손에게 물려줘야지. 잘못된 것 없었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물질 우선주의를 가르치는 사이에 하나님 나라 우선주의를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입시위주의 교육을 하는 사이에 신앙교육을 잃어버렸습니다. 경제 가치관을 가르치는 사이에 하나님 나라 가치를 잃어버렸습니다. 아이들에게 기도하자. 말씀 외우자. 말씀 붙들고 살자. 하나님 사랑하고 살자. 

하나님이 돌리는 역사의 맷돌은 천천히 돌아가지만 정확하게 돌아간다. 정의 편에 서야 된단다.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한다. 아이들 편에 서지 못하고 공부해라. 학원 가거라. 성공 하거라. 출세 하거라. 남들을 짓밟고 생존경쟁 대열에서 처지지 말고 이기거라. 이것만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이 학원에 갈 줄은 알았지만 교회 오는 것은 잃어버렸습니다. 중직자들의 자녀들이 시험 때가 되면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영혼이 죽어 가는데 지옥을 향하여 치닫고 있는데 우리는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일을 잃어 버렸습니다. 

잘못 가르쳤습니다. 기성세대가 어버이들이 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너를 살릴 것이니라. 
말씀이 살아야 민족이 산다. 
말씀이 살아야 네가 산다. 
말씀이 살아야 우리 가문이 산다. 새로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떡이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떡이 우선이 아니라 말씀이 우선이라고. 떡이 최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즘 나라가 구제역, AI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으니까 얼마나 아픈 일인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릴때 저는 농사를 지었습니다. 시골에서 소는 가축이 아니라 가족입니다. 그들이 죽을 때 자식이 죽은 것처럼 농부는 아팠습니다. 그리고 농사는 생명이었습니다. 내 생명과 우리 민족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우리 농사였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우리는 농사를 짓고 말씀대로 가축을 기르는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이 다 돈 덩어리지, 생명이 아니었습니다. 조그만 울타리에 움직일 수 없게 닭을 모아놓고 돼지를 모아놓고 소를 모아놓고 그들에게 먹여야될 음식은 먹이지 아니하고 초식동물에게 육식을 먹이고 이러는 사이에 온갖 병이 세계를 뒤덮고 있는 것입니다. 

자동차 오일을 교환하러 가서 잠깐 기다리는데 신문에 났던 기사를 스크랩해서 이곳 저곳 붙여놓았습니다. 

운전사의 생명이 달려있는데 거기 탄 가족들이 몰살할 수도 있는데 돈 1만원, 2만원 벌자고 낡은 부속품을 끼우고, 쓸 수 없는 중고품을 끼워서 새 것 값을 받으니까 조심하십시오.라는 기사가 실려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치관이 되어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아이들이 죽을지 살지 모르는데 아이들의 장난감에 수은이 있는 페인트를 칠해서 입으로 장난감을 물게 만듭니다. 한푼 더 벌자고. 
우리아이들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쳐야 됩니다. 


3. 주님만 바라보라.  

예수님 시험당하셨듯이 우리도 언제든지 시험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 지셨듯이 우리에게 짊어지어지는 십자가를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지는 법을 배워야 됩니다. 시험당할 때 마다 우리는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어떻게 주님이 이기셨는지 주님을 바라보아야 됩니다. 

아프리카에서 명마 훈련하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훈련을 다 시키고 마지막에 말을 몹시 목마르게 만들어 놓고 냇물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말을 풀어 놓습니다. 쏜살같이 달려가서 물 앞에 섰을 때 스톱 명령을 내립니다. 그때 스톱한 말들은 모두다 살지만 스톱 명령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 말들은 칼을 뽑아 말의 목을 쳐 강물에 흘려보냅니다. 

명견을 훈련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냄새 맡고 마약을 찾아내고 도둑을 잡고 적을 공격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마지막 훈련이 오랫동안 배를 굶깁니다. 그리고 구수한 냄새가 나는 고기를 휙 집어 던져줍니다. 그때 너무 배가 고픈 개들이 그것을 덥석 물면 칼을 뽑아서 개의 목을 쳐 버립니다. 그때 주인을 쳐다보고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개들이 있습니다. 먹어 그러면 먹고 갖다 버려 그러면 버립니다. 물고 이리와 그러면 고기를 물고 옵니다. 얼마나 괴로울까요. 그러나 주인이 가져 오라고 하니까 주인한테 갖고 옵니다. 그러면 통과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살아갈 때에 인생의 목이 마를 때에 인생의 배가 고파 올 때에 사탄이 던져주는 고기 덩어리 하나가 휙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주님 어떻게 할까요?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의 자녀들이지만 사탄이 주는 고기를 먹고 배불러 좋아하면 그건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닌 것이지요. 

교회를 섬기면서 예배당을 두 번 건축했습니다. 

마두동에 예배당을 건축했고, 지금 예배 드리고 있는 비전채플을 건축했습니다. 건축하는 과정속에서 오가는 서류가 수십 가지, 과장하면 수백 가지가 오고 갑니다. 건축허가를 받으려면 파주 지역이기 때문에 군사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군부대를 들랑 거려야 됩니다. 나무들이 있어서 나무를 베고 수목을 정리해야 되는데 조사하는 사람들이 와서 수목의 크기와 밀집이 어떠한가? 잡목인가? 쓸만한 나무가 있는가? 조사해서 이 사람들이 안돼! 그러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허락을 해 주어야 합니다. 

이 가운데 또랑이 흘러가는데 소위 말하는 구거라고 합니다. 우리 땅이 아닙니다. 정부 땅입니다. 이것을 우리 땅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시에서 안돼! 그러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혀 자격이 없습니다. 

건축 심의를 넣습니다. 건축을 시청에서도 허락하지만 건축 심의위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민간인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안돼! 그러면 안되는 것입니다. 건축 심의 과정이 있습니다. 도로도 확보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문화재 관련법을 통과해야 됩니다. 건축하다 보면 이미 계약된 회사와 타절되어서 새로운 건설회사와 계약을 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수없는 기재들을 계약하고 들어오고 나가고 합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건축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문득 지나갑니다. 

그럼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뇌물이 오가면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방법이 생각이 안날 수 없습니다. 

이때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나님 여기는 하나님의 집인데 하나님의 집에 부정의 재물로 예배당을 건축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건축하고 하나씩 하나씩 허가를 얻다 보면 10년이 걸릴지 15년이 걸릴지 초조해 지기 시작합니다. 

또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 그러면 안해야지요. 하나님이 기다려라 그러면 기다려야지요. 기도해라 그러면 기도해야지요. 우리의 기도가 모자라서 그런가 보지요. 하나님 앞에 결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기도의 방법으로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할 때만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부정의 봉투를 주고 받으면서 건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이제는 우리가 갑이 되어서 우리에게 오다를 얻기 위해서 설계회사, 건축회사, 의자, 음향, 영상, 조명, 인테리어, 수많은 업자들이 우리의 오다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응모를 했는데 내가 선택될 수 있는 길이 망막해 보이니까 돈을 주자. 그래서 누구에게 돈을 갖다 줄까? 그래도 최종결정은 담임목사님이 할테니까 담임목사한테 봉투 좀 갖다 줘야지. 이 생각이 왜 안들겠습니까? 

그때 목사님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도 천사가 아닌데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돈은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사탄이 주는 고기덩어리는 먹지 않겠습니다. 제게는 힘이 없사오니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되겠습니다. 그들이 유혹하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막아 주시고 종을 하나님 지켜주십시오. 그래서 1원도 밥 한그릇도 부정과 더러움이 묻어있는 성전을 하나님께 올려드리지 않겠습니다. 주여, 주의 보혈의 피를 부어 주시고 성령을 보내주시고 진리로 파숫군을 세워주시고 말씀으로 종과 건축위원들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허가를 얻을 때에도 업자를 선정할 때에도 밥 한그릇 사 준적이 없고 밥 한그릇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우들 앞에서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건축위원들이 출발부터 마칠때가지 수도 없이 수십번, 수백번 모이는데 그때마다 오늘은 장로님이 사고, 집사님이 사고 내일은 내가 사고 밥을 돌아가면서 샀습니다. 마지막 건축을 다 마치고 입당 감사예배를 드리고 건축위원회 해산식을 하면서 오늘은 내가 사야지. 오늘은 마지막으로 교회돈으로 밥을 사 줘야지. 밥 한그릇 먹으면서 해산합시다. 밥을 먹었습니다. 제가 계산하러 갔더니 누가 돈을 냈는지 모르는데 제가 돈 낼까봐서 화장실에 가는 척 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누가 돈을 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내가 낼려고 했는데”“내가 낼려고 했는데”“내가 낼려고 했는데”전부 “내가 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웃으면서 끝이 났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탄이 주는 고기를 먹으면 죽는 것입니다. 이 성전에 하나님이 지켜 주셔서 오늘 깨끗하고 거룩한 전에서 예배드리게 된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를 돌려드립니다.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VI. 결론

똑같은 햇빛이지만 그 햇빛에 쵸콜릿은 녹아 없어지고 진흙은 굳어집니다. 똑같은 햇빛인데 죽은 나무는 더 바싹 마릅니다. 산 나무는 더욱더 싱싱하게 사는 것입니다. 죽어 있는 고기는 물결속에 떠내려갑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고기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을 역류하는 힘, 역사를 거슬러 살아가는 힘, 시대의 가치를 거꾸로 살아가는 힘이 나와 여러분에게 있는 것입니다. 

시험이 온다 그래서 시험에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더 믿음이 단단해 질 것이고 우리의 신앙이 더욱더 싱싱하게 성장하는 기회가 될 것이고 축복의 그릇이 키워지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결론 11절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귀가 비웃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도 있고 
천사가 받들고 존경하는 사람이 되어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귀가 비웃는 사람으로 살아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시련과 환란과 고통 가운데 빠져 있다 할지라도 바로 그때야 말로 내 믿음이 진짜인 것을 보여 주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여러분 자신에게도 보여주고 세상에게도 보여주고 마귀에게도 보여주고 하나님 앞에도 보여 주어야 할 때입니다. 천사들이 존경하는 그리스도인, 천사들이 수종하는 그리스도인, 천사가 흠모하고 받드는 성도님들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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