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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 (시 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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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거두지 마소서 (시 51:1-11)
   

지난 주간 교역자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강원도 양양에 숙소를 정하고 사역자들이 새해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을 수립하며, 영성을 충전하는 진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설악산 권으로 갈 때마다 놓치지 않고 들르는 곳이 있습니다. 설악동 자락에 위치한 추양 한경직 기념관입니다. 그분의 생애 앞에 서노라면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면서 사역자가 어떤 자세로 사역에 임하며, 어떤 발자취를 남겨야 할 것인지에 대해 그때그때마다 남다른 영적감화를 받기 때문입니다. 

차에서 내려 입구를 올려다보는 순간, 호흡이 멎는 듯 했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울퉁불퉁한 글씨체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이 가슴에 꽂혔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서도, 무화과 잎으로 자신의 하체를 가기고선 숲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아담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신 바로 그 음성이 메아리처럼 내 귀에 들리는 듯했습니다. ‘성석아, 네가 어디 있느냐?’ 중요한 것은 그 글귀가 이전에 방문했을 때도 대면했던 문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날따라 그 말씀이 그렇게 크게 웅장하게 내 심장에 마치 비수가 꽂히듯 들렸을까요? 

그날 아침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숙소의 로비에 비치된 한 유력 일간지를 무심코 펼쳤습니다.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의 어깨를 도닥거려 주며, 희망을 줘야 할 교회가 오히려 손가락질과 조소의 대상이 되어버린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종일토록 마음이 무척 무거웠습니다. 그런 심정으로 기념관을 찾았던 그날 오후 내 귀에 들린 ‘네가 어디 있느냐?’는 분명 하나님의 통곡 소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우시면서 나를 향해, 아니 한국교회를 향해서 묻고 계셨습니다. ‘지금 도대체 어디 있느냐, 뭘 하고 있느냐? 어떤 모습으로 있느냐? 누구와 있느냐?’고 말입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은 인류의 대표인 아담에게 하신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후손인 우리 모두에게 던지시는 질문입니다.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위)가 있는 데라”(계 2:13). 우리는 지금 사탄의 권좌가 있는데 서있습니다. 사탄은 여기저기 두루 돌아다니는 존재입니다(욥 1:7, 벧전 5:8). 사탄이 가지 못하는 곳이 없습니다. 가정, 사업장, 직장, 은밀한 곳, 교회, 심지어 우리 마음속까지 휘젓고 다니는 존재입니다. 

이 사탄은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빼앗아가는 일을 제외하고, 사탄이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나타나 우리를 가장 위하는 모습으로 접근합니다(고후 11:14). 이 사탄이 다윗을 타깃(target)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은밀히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그 순간 한때 잘 나가던 다윗, 한 순간에 넘어졌습니다. 거목 다윗을 쓰러뜨린 것은 태풍이 아니었습니다. 사탄이 나무속을 갉아먹는 수많은 작은 개미와 같은 욕망을 이용했습니다. 한 사람이 넘어지면 그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밧세바, 우리아, 요압장군, 갓 태어난 아이, 수많은 후궁들, 심지어 나라까지 두 동강나 버리지 않았습니까? 

시편 51편은 처참하게 쓰러진 현장에서 도움을 구하는 다윗의 울부짖음입니다. 이 말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10절과 11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그는 자신의 마음이 정결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또 하나 그는 정직하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어서 이렇게 간구합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1). 

이 말씀에서 다윗이 지금 그 무엇인가를 심히 두려워하고 있음을 행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임할 징계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집안에서 반역자가 일어나며, 왕위를 찬탈하는 모반이 일어날 것입니다. 둘째, 가정이 파괴될 것입니다. 셋째, 죄 없는 아이까지 태어나자마자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런 말씀을 받고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천하의 장군 다윗이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둘째, 성령을 거두어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새해 어떤 소원을 가지고 출발하고 있습니까? 다윗의 두려움이 나의 두려움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다윗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면 안 됩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마 25:11-12). 한 달란트 받은 자, 쫓겨나고 말았습니다(마 25:30). 성령이 내게서 떠나시면 안 됩니다. 무엇보다 한국교회,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시면 안 됩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났을 때, 그가 한 순간 얼마나 비참한 인간이 되었습니까?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삼상 16:14). 

그러므로 다윗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성령이 떠나시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때문에 그는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립니다. 어떤 자세로 매달립니까? 하나님이란 단어가 28번 등장하는 반면, ‘내’라는 1인칭이 무려 32번이나 등장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핑계를 대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범죄한 죄인이요, 죽일 놈이라고 강조합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말씀으로 찾아오셨을 때에 아담은 말이 많았습니다. 변명들을 늘어놓았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일절 변명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하여 손가락질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 그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 은혜가 꼭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시 51:1). 지금까지 내가 잘나고 똑똑한 줄 알았는데,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인자를 베푸셔서 오늘의 내가 있습니다. 이 은혜와 긍휼이 더욱 필요한 존재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는 것과 성령이 떠나가시는 것을 두려워하십시오. 그 무엇보다 이것을 두려워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다윗과 같이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는 소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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