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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먼저 가 계셨습니다 (수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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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먼저 가 계셨습니다 (수 2:1-11)  
 
     
‘아덴만 여명’
     
지난 21일,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되었던 우리나라 배와 선원들을 구출해낸 작전의 이름입니다. 청해부대의 핵(核)은 수중폭파(Underwater Demolition Team)대와 육·해·공 전천후 특수타격(Sea, Air and Land)대입니다. 특수 작전을 수행하는 팀은 나라마다 있는데 이스라엘 군에는 ‘사이렛 매트칼’, 미군에는 ‘그린베레’, ‘레인저’, ‘델타 포스’, ‘네이비 실(SEAL)’, 프랑스에는 대테러 특공부대로 GIGN이 있습니다. 영국에는 세계 특수부대 효시 격인 공수특전단인 SAS가 있습니다. 영국 SAS(Special Air Service)의 신조는 ‘무모한 자가 승리한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불굴의 정신으로 도전하여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모하게 시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낙하, 잠수, 생존술, 격투기에서 각종 무기를 사용하는데 이르기까지 모두 통달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가 죽은 후, 그 사명을 이어 갈 사람은 여호수아였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주저 앉아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수 1:6),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라’고(: 7),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9)고 말씀하셔야 했습니다. 그 후에야 비로소 여호수아는 일어나 관리들에게 백성들로 하여금 요단강을 건너 갈 준비를 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 동쪽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에게 앞장서서 형제를 도우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여호수아의 지도력이 세워지고 백성들이 단결하였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I. 준비

요단강을 건너가기 위하여 온 백성들이 바삐 준비하는 동안, 여호수아는 두 사람을 뽑아 특수 명령을 내렸습니다.
     
1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 1a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호수아는 싯딤에서 정탐꾼 두 사람을 보냈습니다. 싯딤은 요단강의 동쪽 11km 지점에 있는 이스라엘의 최후 진지입니다. 여기에서 여호수아는 두 사람을 뽑아 ‘가서, 몰래 그 땅을 정탐하여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여리고 성을 잘 살피라고 하였습니다. 
     
1. 보내서 준비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여기에서 정탐하다[lg"r/라갈]는 말은 ‘답사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들어갈 길을 그대로 따라서 걸어가 보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주신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믿음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순종하기 위하여 사람을 보내서 답사하게 하였습니다. 책상머리에서 머릿속으로 계산하지 않고 실제로 미리 답사하고 길을 안내하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훈련하실 때 말씀하시고 시범을 보여주셨을 뿐만 아니라 보내어 실제 해보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명령으로 ‘가서 제자 삼으라’(마 28:19)고 하셨습니다. 부뚜막의 소금이 아니라 들어가서 녹아져서 맛을 내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계획하고 실제로 해봄으로 준비하여야 합니다.

명령을 받은 그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1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 1b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여호수아의 명령을 받은 그들은 여리고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라합이라는 기생의 집을 찾아가 거기에서 묵었습니다. 기생이라는 말은 창녀라는 말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세푸스라는 유대인 역사학자는 ‘여관 주인’이라고 하였지만 아마도 당시 여리고의 신전에서 일하는 신전 창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곳은 낯선 사람이 의심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유숙하다[bk'v/솨카브]’는 말은 ‘눕다’는 말입니다. 휴식을 위해서든 잠자려고 눕던 드러누워 머무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치밀하게 준비하였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2. 철저하게 준비하였습니다.
     
보통, 준비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건성으로 준비하면 일을 하면서 부족한 것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정탐꾼으로 드러내 놓고 돌아다닐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그곳에서 여리고의 형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려고 하였던 듯합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하십시오. 준비하되 철저하게 준비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철저하게 준비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대로 일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여리고 정복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여리고를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준비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여리고에 파송된 두 명의 정탐꾼 중에 한 사람의 이름이 살몬이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았다’(마 1:5)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라합이 바로 여리고의 기생 라합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리고 정복을 위하여 사람이 준비한 데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나 여호수아가 사람을 보내어 철저하게 준비하신 것을 통하여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시는 준비로 사용하셨습니다. 준비한 것이 당장 효과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준비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준비한 것은 언젠가 반드시 쓰임새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구체적으로 철저하게 준비하여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려고 할 때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정탐꾼들에게 위기가 왔습니다.


II. 위기

정탐꾼은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움직였다고 하겠지만 그들을 샅샅이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 2 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중의 몇 사람이 이 땅을 정탐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는 어떤 한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몇 사람이 오늘 밤에 이 모든 땅을 정탐하려고 이곳으로 왔다고 보고하였습니다. 본문에서 ‘보소서[hNEhi/히네]’하는 말은 ‘보라!’는 말입니다. 급히 달려가서 신속히 알렸습니다. 
     
1. 그들은 신고 되었습니다.
     
화재 신고는? 119. 간첩 신고는? 113입니까? 맞지만 아닙니다. 111로 바뀌었습니다. ‘국가안보가 두 번째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1입니다’, ‘간첩신고가 두 번째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1입니다.’, ‘간첩검거가 두 번째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1입니다.’는 광고와 함께 111로 바뀌었습니다.
     
여리고 입장에서 정탐꾼은 잡아야 할 간첩이었습니다. 요단강 동쪽에 이스라엘이 진을 치자 바짝 긴장한 가나안의 왕들은 나름대로 준비하였습니다. 더욱이 바로 코앞에 이스라엘과 대면하고 있는 여리고 왕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탐꾼들은 여지없이 신고 되었습니다. 위기를 당한 것입니다.

신고를 받은 여리고 왕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3절 말씀입니다.
 : 3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여리고 왕은 쏜살같이 사람들을 라합의 집에 보냈습니다. “너를 찾아 네 집에 온 자들을 내놓아라.”라고 하였습니다. 다 알고 왔다는 것입니다. 여리고 왕은 이미 정탐꾼들이 올 것을 알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정탐꾼들이 어디로 들어가는 지를 지켜보고 있다가 바로 신고하고 바로 사람을 보내 내놓으라고 하였습니다.
     
2. 그들은 추적 되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준비하여야 할 이유 중에 하나는 반대편에도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현대를 무한 경쟁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경쟁하여야 할 상대가 그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넋을 놓고 있는 순간에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생각 없이 하는 조그만 행동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노려보고 째려보고 흠잡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 위축되거나 움츠려 들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선교적 사명을 위하여 조심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믿어야 할 것은 위기를 당한 사람들을 돕는 손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움의 손길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III. 도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사람을 누가 어떻게 돕습니까?
     
4절 말씀입니다.
  : 4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이번에는 6절 말씀입니다.
 : 6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이미 라합은 그 두 사람을 숨겼습니다. ‘숨기다[ @p'x/짜판]’는 것은 그 위에 무엇을 덮어서 가려 준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합은 그들을 지붕으로 데리고 올라가 지붕에 널어놓은 삼대 속에 숨겨두었습니다. 삼은 옷감을 짜는 마의 한 종류입니다. 그 사람들 위에 삼나무로 덮어 가려준 것입니다.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1. 그들은 숨겨졌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위기 때에 감추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시편은 “주는 악을 꾀하는 자들의 음모에서 나를 숨겨 주시고, 악을 행하는 자들의 소동에서 나를 감추어 주소서”(시 64:2)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바로 이런 위기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고전 10:13b)는 미쁘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특히 여러분을 돕는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5절 말씀입니다.
 : 5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잡으리라 하였으나, 
     
라합은 두 사람이 자신에 왔었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오기는 왔었는데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미 날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떠났다고 거짓으로 말합니다. 거기에다 한 발 더 나가서 빨리 사람을 풀어 그들을 뒤쫓게 하면, 따라잡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라합의 거짓 정보를 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7절 말씀입니다.
   : 7 그 사람들은 요단 나루터까지 그들을 쫓아갔고 그들을 뒤쫓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라합은 자신의 집에 와서 정탐꾼을 찾는 사람들을 멀리 나루터로 보내버렸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두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지게 하였습니다. 여리고 왕의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뒤져서 두 사람을 찾아낼 여유를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지혜로운 사람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2. 그들은 보호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이 스스로 준비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가 필요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의 준비가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울타리가 되어 주셔야 합니다. 악한 것이 틈타지 못하도록 지켜 주셔야 합니다. 악한 사람의 꾀가 우리를 삼키 못하도록 보호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이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 함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하나님이 보호해 주심으로 ‘우리나라 만세!’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여기에서 이야기를 끝맺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기생 라합의 행위가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리고 입장에서 배신이었으며 반역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배신이나 반역은 미화되거나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IV. 이유

라합은 자신이 숨겨준 정탐꾼들이 있는 지붕 위로 올라가서 자신이 여리고 왕을 배신하고 그들을 숨겨준 이유를 말하였습니다. 
     
9절과 10절에는 네 개의 키가 나옵니다. 여기서 키는 열쇠(key)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라는 뜻의 히브리어 단어 키[yK]입니다. 이 말은 앞과 뒤의 문맥에서 이유를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라합이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보호해 준 것은 자신만 살기 위해서 배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먼저 10절 말씀입니다.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이는’은 ‘왜냐하면’이라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라합이 그렇게 행동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를 가리킵니다. 라합은 오고 가는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들었습니다. 
     
1.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그들은 인도하셨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요단강 동쪽의 두 아모리 왕 시혼과 옥을 어떻게 해치웠고 어떻게 전멸시켰는지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사막의 모래 바람을 타고 여리고에 있는 라합의 귀에 들렸습니다. 그래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 10:17)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세상의 매스컴이 아무리 어두운 소식을 전하려고 할지라고 우리는 좋은 소식을 만들어 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소문은 발이 없지만 천리를 갑니다. 
좋은 소식을 만들고 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들은 라합은 어떠하였습니까?
     
9절 후반절입니다.
 : 9b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들은 여리고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모두들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것을 강조합니다. 11절 전반절은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거듭해서 라합은 소식을 듣고 모두 넋을 잃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싸우기도 전에 이미 졌습니다. 진 싸움을 누가 하겠습니까!
     
2. 마음이 녹았기 때문입니다.
     
소문에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라합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소문을 듣고 더 이상 여리고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맙니다. 그래서 마음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시는 분입니다(사 26:3).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심지가 견고하여 평강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하지만 소문을 듣고 넋이 나가 적에게 투항하는 것이라면 라합의 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보다 더 깊은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소문에 마음이 녹아내린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9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 9a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라합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도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11절 후반절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라합은 하나님을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으로 고백하였습니다. 이 하나님을 사람이 어떻게 막겠느냐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였다면 라합의 행동은 배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기에 그의 행동은 순종입니다. 라합은 여리고 왕을 두려워하였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여리고 왕에 순종하였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리고의 군대가 요단강을 건너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소문의 말(馬)을 타고 먼저 그곳에 가 계셨습니다. 정탐꾼들이 정탐하고 돌아온 것은 그곳에 하나님이 먼저 가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사 52:12).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기 위하여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보호를 받고 승리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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