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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굳건한 신앙 (대하 20:1-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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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건한 신앙 (대하 20:1-4, 20-23)
  

35세에 등극하여 25년간 나라를 다스린 여호사밧 왕에 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다.” (왕상22:43)

정직은 지도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덕목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정직한 척 한다. 정치인일수록 정직의 탈을 쓴다.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하고 하나님이 보실 때 정직하다고 인정받아야 한다. 마음의 중심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위장하고 속일 수 있는 사람은 없기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는 말은 최고의 찬사다. 

성경을 읽어보면 여호사밧 왕은 정치적으로도 사법 제도를 개혁하였다. 각 성의 재판이 관습법에 의하여 판단이 되므로 전문성이 결여되었다. 백성들의 원성을 줄이고 공정한 재판을 위하여 재판관을 파견하여 사법의 기강을 바로 세웠다. 

그 때도 여호사밧은 역대하 19장을 보면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재판하라.”고 말하였다. 재판조차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세로 하여 뇌물과 인맥 등 연결 고리로 되어지는 부당 재판을 개혁하려 한 것이다. 그것도 부족하여 여호사밧 왕은 상급 사법 기관을 수도인 예루살렘에 마련하였다. 왕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법적 보호를 받는데 소홀이 되지 않도록 애를 쓴 것이다. 이 모습이 곧 정직에서 나오는 개혁인 것이다. 

여호사밧은 또 남색하는 자를 땅에서 멸절시켰다. 왕상22:46을 보면 그들은 아버지 시대에 남아있던 자들이다. 여호사밧은 그들의 뿌리를 뽑았다. 여기서 남색이란 종교를 빙자한 성창을 말한다. 산당에서 몸을 파는 이 성창은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성창 행위로 풍요와 건강을 누릴 수 있다는 잘못된 의식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다분히 이방 종교 문화의 영향으로 되어진 일이다. 

바알 종교는 바알을 위해 성창 노릇하는 종교의식의 사제가 있었으니 주술, 미신 의식이 가득했던 것이다. 여기 여호사밧이 산당에 거하며 남색하는 자를 멸절한 것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신앙심 때문이다. 이들을 그대로 두고서 정직한 왕으로 서 있다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호사밧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신앙 개혁이다. 하나님만 경외하도록 산당의 여러 우상의 상을 제거하였다. 그리고 율법을 바로 세우기 위해 율법 고사일을 선발하여 파송하였다. 나라의 백성들이 율법을 바로 알아야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여호사밧 왕은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문제를 잘 다스려 나간 능력있는 왕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능력의 근원은 정직에서 왔다. 여호와 보시기에 부끄러움 없는 정직! 그 정직한 덕목을 지닌 왕이된 배경은 바로 신앙인 것이다. 

왕은 언제나 신앙 따로, 정치 따로가 아니었다. 백성을 계몽하는 사회 발전이 따로, 신앙이 따로가 아니었다. 신앙적 태도와 신앙적 안목으로부터 나라 구석 구석, 각계 각층의 발전과 개선을 해 나간 것이다. 왕의 통치는 신앙과 관련되어 있었고 신앙과 통치가 별개가 아니었다. 

오늘의 본문을 보라. 여호사밧 왕이 남왕국의 4대 왕이 되었을 때 암몬과 모압, 마온 사람이 연합하여 쳐들어왔다. 요단 동편으로부터 항상 부딪히며 살아가던 이 족속들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왕은 두려워 떤다. 그러나 큰 무리가 사해에서 밀고 들어와 엔게디에 있다고 할 때 왕은 어떻게 대처하였는가? 두려움에 빠져 소극적인 왕이 되었는가? 그는 두려움에서 빠져 나왔다.


1. 간절히 기도하였다. (대하20:3上)

대하20:3上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대하20:6~13에 그의 기도한 기도문이 실려 있다. “애굽 땅에서 나올 때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을 침노하기를 하나님이 용납지 아니하므로 그들을 내버려두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은혜를 모르고 하나님의 백성을 쫓아내고자 합니다.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기도문을 읽어보면 하나님만이 저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아뢰인다. 대하20:6下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대하20:12을 보면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고 기도하고 있다. 이 기도문을 읽어보면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도움을 구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우리 백성과 나라의 힘은 무능하기에 권세의 능력의 하나님만을 믿는다는 철저한 고백이 묻어난다. 놀라운 내용의 기도다. 내 이웃이 나를 치고 주변의 사람들이 연합하여 나를 넘어뜨리려 하고 이방인, 외국인, 외국 나라까지도 나를 거꾸러뜨리려 할 때 우리는 두려워 떨고 있는가? 아니면 기도를 시작하는가? 여호사밧 왕은 두려움에서 기도로 나아가는 왕이 되었다.
  

2. 온 백성의 금식을 공포하였다. (대하20:3下)

대하20:3下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고 공포한다. 그 말을 들은 유다 백성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하20:4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대하20:13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금식하며 기도하자는 왕의 호소 앞에 백성들은 모두 다 순종하였다. 기도하는 왕, 여호사밧이 온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고 신뢰를 얻고 있다는 증거다. 금식의 호소 앞에 어린이까지 모두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도우심을 구한 것이다.

위기가 왔을 때 나라 안팎의 지도자가 성명을 낸다. 과연 그 성명을 듣고 하나가 되어 백성의 모든 사람들이 동조할 수 있는가? 천안함, 연평도 사건 앞에 국론의 대결만 있지 하나되어 따르지 못한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한다는 불신 때문이다. 왜 그럴까? 지도자에게 신뢰할 수 있는 정직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직은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힘이다. 당장은 속임수가 이기고 달콤한 말이 설득력이 있지만 정직은 마침내 존경심으로 따르게 한다. 정직은 어린이들까지도 믿게 해주는 힘이다. 오늘 금식을 선포하는 왕은 정직하였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기꺼이 따랐다. 한 자리에 모여 들었다. 

  
3. 여호와의 영의 역사를 신뢰하였다. (대하20:20)

회중들의 모임 속에 여호와의 영이 아하시엘에게 임하였다.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으로 대언된 예언은 이 전쟁이 승리로 끝난다는 것이다. 대하20: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이 예언 앞에 무엇을 두려워 할 것인가? 여호사밧 왕은 이 모든 예언을 신뢰하였다. 

대하20:18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최고의 신뢰, 말씀 앞에 겸손히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자세로 엎드렸다. 왕은 확신을 가졌다. 여호와의 영이 임한 대언을 의심하지 않았다. “너희는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오늘날 교회 안에서 예언이 잘못 사용되고 예언의 영이 아닌 것을 붙잡고 징조를 보았다고 하는 거짓 예언이 문제다. 그래서 예언 사역을 외면한다. 선지자의 사역을 불신한다. 성령의 나타나심 속에 예언의 은사와 선지자의 직임이 엡4:11에 기록되어 있는대도 우리는 선지자의 예언을 신뢰하지 못한다. 허나 여기 왕은 여호와의 영의 역사를 신뢰하고 있다. 순전한 마음의 왕을 보게 된다. 순수한 아이 같은 신뢰의 믿음을 엿볼 수 있다.
  

4. 찬양대를 조직하였다. (대하20:21)

전쟁을 하러 나가는 왕! 그는 갑자기 찬양대를 만들고 예복을 입힌다. 대하20:21을 보면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라고 하였다. 왕은 무기 증강보다 노래하는 찬양대를 만들었다. 왜 이렇게 했을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전쟁! 싸울 것이 없는 전쟁! 그러므로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것을 보라는 전쟁임을 신뢰했기에 찬송하게 되었다. 물론 이 엉뚱한 모습 같은 왕의 행위는 독단적인 지도력이 아니었다. 대하20: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라고 하였으니 이 찬양대의 조직은 사람들의 동의를 거쳐 의논 중에 결정된 사항이다. 찬양대를 만들어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에게 자신의 전부를 내던지고 맡기는 모습, 그것이 구원을 보겠다는 왕의 태도다. 

결국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찬송이 시작될 때에 대하20:22을 보면 하나님이 복병을 두어 모든 원수들을 패하게 하셨다. 대승을 거두고 삼일 동안 전리품을 거둬들인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시 여호와를 송축하였다. 그들은 기쁨으로 하나님의 전으로 나아갔다. 
  
이렇게 볼 때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을 얼마나 확신하는 신앙인의 모습인가? 그의 믿음과 정직한 성품! 이는 그가 왕이기 때문에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그의 정치, 사회의 계획은 왕의 높은 지위가 있어서 된 것이 아니다. 그의 성공적인 지도력이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 밑바탕에 저를 남왕국의 20대 왕 중 최고의 선왕으로 세운 것은 신앙이란 병기인 것이다. 싸워 주실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이미 승리를 확증했기에 찬양대로 군대를 이끌고 군대 앞에서 행진케 하는 왕! 참으로 놀라운 믿음이다.  

굳건한 신앙! 이것만이 나를 치러 달려드는 원수들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열쇠다. 전쟁을 평화로 바꾸고 두려움을 찬송으로 바꾸고 부당한 나라를 공평한 나라로 발전시키는 지름길은 곧 굳건한 신앙이다. 만인이 다 거짓말을 하고 속임수로 세상을 살아도 정직한 품성으로 빛을 발하는 삶의 비밀은 굳건한 신앙이다. 여호사밧이 우리 시대에 나타나고 나 또한 여호사밧이 될 것을 결단하자. 나를 치러오는 자들이 아무리 많아도 완승하게 될 것이다. 

원수 군대가 밀려올 때 당신은 찬양대가 될 수 있는가? 

군대로 맞서기보다 찬양대로 맞설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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