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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시 만나야 할 이유 (요 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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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야 할 이유 (요 5:1-15)


예루살렘에는 여러 개의 문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예루살렘 북동쪽에 있는 문을 <베냐민문> 혹은 <양문>이라고 불렀습니다. 느헤미야 3장 1절에 보면 느헤미야를 비롯한 사람들이 무너진 예루살렘성을 재건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거기 양문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문을 양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가까운 곳에 제사용으로 사용되던 양들을 사고 파는 곳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많은 양들이 드나들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근처에 연못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베데스다>였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이 베데스다 연못 주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사람은 희망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희망이 없으면 살기가 힘이 듭니다. 아무리 참고 견디어도 회복될 기미가 없다면, 그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사람들마다 희망의 줄을 붙잡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희망도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근거가 없는 희망입니다. 죽어 가는 사람을 보고 <다 잘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근거 없는 희망입니다. 그러나 주치의가 와서 <어르신, 이틀만 있으면 완치될 겁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근거 있는 희망입니다. 근거 없는 희망은 미신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베데스다 연못이야말로 사람들에게 부질없는 희망, 근거 없는 희망의 대명사였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에는 다섯 개의 행각이 있었는데, 행각마다 각종 병자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병자들이 모여 온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거기 가면 병이 낫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베데스다>란 이름은 <베드 에쉬다>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에쉬다>란 <뿜어낸다>는 뜻입니다. 결국 베데스다란 <속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샘>입니다. 아마도 베데스다의 밑에는 지열이 뜨거워서 가끔 뜨거운 지하수가 솟아 나오는 간헐천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말하자면 좋은 온천 역할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천사가 와서 물을 휘젓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제일 먼저 물에 들어가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 은혜의 집>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맛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 곳은 난치병, 불치병에 걸린 병자들이 모인 곳, 오늘날로 말하면 말기암 환자들이 모여 있는 병동이나 응급환자들이 모여 있는 병원 응급실 같은 곳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희망이 참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희망은 거짓이었습니다. 그 곳에는 은혜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대했을 뿐, 사실은 아닙니다. 그것은 근거 없는 희망이었습니다. 

이 연못이 희망 없는 현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려 38년이나 병을 앓고 있었고, 이미 오래 전에 연못에 와 있었지만, 아직도 병을 고치지 못한 병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사람은 베데스다 연못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 최고참 환자였을 것입니다. 38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본에 지배를 당한 것이 만 35년 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것보다 더 오래 앓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생애에서 38년은 인생 전부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38년이라면 예수님께서 세상에 탄생도 하시기 전부터 앓았다는 말이 됩니다. 

여러분, 38년 정도 가만히 누워 있으면 이미 피부는 욕창으로 다 상했을 것입니다. 또 근육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근육이란 자꾸 움직일 때 유지됩니다. 깁스를 했다가 풀면 근육이 다 사라진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이 사람은 38년 동안 깁스를 한 것이나 진배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길고 긴  세월 동안 근거 없는 희망, 거짓 희망을 붙잡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한 성품, 너그러운 마음, 향기 나는 마음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에게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그의 대답에는 가시가 돋아 있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원망했습니다. 남들 때문에 기회를 잃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저주받을 세상>,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질병으로 뼈만 남은 육신과 세상에 대한 원망과 저주로 가득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껍데기만 남아 있었습니다. 정말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희망 속에서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베데스다는 친절의 집이란 뜻도 있는데, 결코 친절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살벌한 곳이었습니다. 물이 움직일 때 먼저 들어가 보았댔자, 병이 낫는 것도 아닙니다. 연못에 먼저 들어가려는 경쟁은 쓸데없는 경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결코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 곳에는 친절도, 사랑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적이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빨리 죽어 나가야 경쟁이 줄어들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 사람은 38년의 세월을 흘려보낸 것입니다. 한 많은 세월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분노하는 것이 옳습니까? 분노하고 미워한다고 해서 해결됩니까? 병을 고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아무 소용없는 짓입니다. 

이 때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것은 진정한 해결책, 진정한 희망을 찾는 것입니다. 물이 움직일 때 들어가면 낫는다는 허무맹랑한 희망은 버리고, 진정한 희망을 찾는 것입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사람에게는 진정한 희망을 찾아 나서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연못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지만, 연못을 떠날 수도 없었습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이미 죽은 것과 같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베데스다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 병자는 오늘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헛된 희망에 붙잡혀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그 거짓 희망들 속에서 절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경쟁이 너무도 치열합니다. 물이 움직이길 기다리면서 물 표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충혈된 눈빛, 이게 사람들의 눈빛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이 모두 다른 사람의 책임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절망의 때에 그에게 진정한 자비의 빛이 비취었습니다.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말씀에서 확인해 봅시다. 본문 5-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거기 서른 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장면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초청한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로 먼저 오셨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발견한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발견하셨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먼저 말을 건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그에게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그가 먼저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고생하고 있는지 설명한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그의 상태를 아셨습니다. 

여기 은총의 흐름이 드러납니다. 은총이란 예수님으로부터 우리에게로 흘러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먼저 흘려보내 드렸기 때문에 은총을 흘려보내 주시는 게 아닙니다. 참 은총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가설 기운조차 없을 때, 그 분께서 다가와 주시는 것입니다. 이게 은총입니다. 참 희망은 이렇게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참 희망은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이지, 노력해서 쟁취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이 놀라운 은총이 있길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와 주시길 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될까요? 그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가족 사항이나 가문을 묻지 않았습니다. 나이도 묻지 않았습니다. 학벌도 묻지 않았습니다. 돈을 내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분이 요구한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할렐루야!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것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었습니다. 

본문의 병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난 손가락도 까딱 할 수 없어. 내 힘으로는 일어나 앉을 수도 없어. 그런데 어떻게 자리를 들고 간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틀린 생각이 아닙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고 말씀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께서 그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실 때, 이미 예수님은 그가 일어설 수 있도록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먼저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일어나 보기만 하면 됩니다. 한 번 꿈틀거려 보면 자신이 이미 나았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게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토를 답니다.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일어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 쓸데없는 말>이라고 무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뱀에 물렸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그 때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놋뱀을 만들어 장대 끝에 달고 백성들에게 놋뱀을 쳐다보라고 했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기만 하면 불뱀에 물린 상처가 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입는 데는 말씀에 대한 순종이 절대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이미 다 대책을 세워놓으셨기 때문에 말씀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가라고 하실 때 이미 하나님은 그들에게 능력을 주시도록 다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실 때 이미 그에게 주실 복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홍해 앞에 세우실 때는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시기로 이미 결정하신 후였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이기로 이미 작정하신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5-6절을 보세요. 너무도 분명합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예수님은 이미 계획을 세우시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예수님의 방식입니다. 우리에게 일을 맡기실 때는 그 일을 할 능력을 이미 준비해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큰 일을 하게 하실 때는 이미 그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두셨을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명령하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가끔 물이 솟아나는 베데스다 연못에 비길 수 없는 위대한 분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차별하는 세상의 힘있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분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병을 고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움츠러들지 말아야 합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올 한 해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붙잡고 일어서시길 바랍니다. 본문의 병자가 38년이나 붙잡고 있던 거짓된 희망을 버리고 일어선 것처럼, 우리도 거짓된 희망을 버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붙잡고 살았던 돈, 학벌, 명예, 권력, 건강에 대한 희망 모두 다 버리십시오.  그리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살 길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이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 말씀에 담긴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자리를 들고 일어나시길 기원합니다.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시길 축복합니다. 

자 그러면 이렇게 고침을 받은 후에, 은혜를 받은 후에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님을 또 만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성전에서 예수님을 또 만났습니다. 14절을 읽어 보실까요?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예수님은 마치 어려운 병을 고친 의사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할 때 주치의 선생님이 말씀합니다. <아주 좋아지셨어요. 오늘 오후에 퇴원하시지요. 그리고 집에 가시면 물 많이 드시고, 기름기 있는 음식은 먹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 술이나 담배는 안 됩니다. 그리고 하루에 30분씩만 운동을 하세요. 이것만 꼭 지키세요...> 의사는 환자에게 신신당부를 합니다. 당장 건강을 얻었지만, 다시 병원 신세를 지지 않으려면 의사의 당부를 따라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은혜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다시 고통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예수님의 그 다음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본문의 이 사람은 틀림없이 악하고 방탕하게 살았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축복된 삶을 유지해 가는 비결을 말씀했습니다. <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은 <말씀대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은 처음에 은혜를 입는 비결이요, 계속해서 은혜를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회복되었다가 다시 원래의 상태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나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20-22절을 보면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고 했습니다. 

또 히브리서 6장 4-6절을 보면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후에 할 일은 다시 과거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런 점에서 어리석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수백 년 동안 노예로 살다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모세를 통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애굽만 노예의 땅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가나안도 노예의 땅이 됩니다. 실제로 그들은 가나안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고, 나라가 멸망하여 포로가 되었습니다. 다시 예전처럼 자유를 잃었습니다. 다시 부끄러운 과거로 떨어진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성령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신유의 은사도 받아서 병든 어른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 분들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그 은사가 일 년을 가지 못했습니다. 성령의 은사란 끊임없이 기도생활과 말씀생활을 할 때 유지되는 것인데, 저는 어렸기 때문에 이것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은사를 모두 잃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은혜를 받은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은혜 받은 후입니다. 은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등불을 밝혔다면, 계속 기름을 부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은혜를 받았다면, 예수님을 또 만나야 합니다. 또 만나서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마치 암에서 회복된 환자가 몇 달에 한 번씩 가서 확인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지속적으로 말씀에 순종하시길 기원합니다. 지속적으로 기도하십시오. 지속적으로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만나시길 기원합니다. 집회는 끝났지만, 진정한 집회는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올해는 이런 모습으로 주님의 은총 가운데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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