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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노사정신 (엡 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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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신 (엡 6:5-9)


에베소서 5, 6절을 보면 종과 상전에 관한 얘기가 있는데 노사정신이라 제목을 정했습니다. 노,사,정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성숙해 가고 개인의 자유와 주어진 책임이 중대하게 되어져 가면서 노사의 문제가 대단히 어려운 문제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함께 모든 것을 만들고 함께 모든 것을 나누는 시대가 되면서 권리와 책임과 유익을 함께 나누자는 그런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 갈등을 불러일으킴으로 본래의 목적과 의도하지 않았던 잘못된 결과로 우리가 서로 아픔을 경험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오늘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귀한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함께 나누려 합니다. 
   
에베소서의 총 주제는 1장 10절에 있는 말씀같이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모든 것이 그리스도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안에서 회복되어지고 하나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패거리를 짓고 당을 만들고 그리고 쪼개고 나누고 싸우고 이것이 우리 인간들이 해온 일입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신 다음에 ‘네가 이 모든 것을 다스리고 땅을 정복하고 번영하고 번성하라’ 여기 이말을 신학적으로 정복하라 다스리고 지배하라고만 이해했지 이것을 잘 관리하고 다스리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을 빼앗고 자연을 학대하고 나서야, 자연은 우리가 지배하고 학대하고 착취해야 할 대상이 아니요 우리의 삶의 동반자라는 것을 이제야 꺠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노와 사, 지금 종이 어디 있고 상전이 어디 있겠습니까만은 어쨌든 이 사회는 함께 살아가다 보면 사의 직책을 감당할 수도 있고 노동자, 피고용인으로서 살아갈 수도 있고 또 이들을 위한 정부의 기관으로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교우들께서도 노에 속한 분도, 사에 속한 분도 계실것이고 노에 속하다가 사에 속한분도, 사에 있다가 노에 속한분도 계실것입니다. 또한 정부의 입장인 공직에 있는 분도 계실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엡 6장 9절에 보면 ‘상전들아 너희도 그렇게 할것이요 자유자나 종이나 할것없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임’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나. 바울이 당시의 노예제도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요 정확하고 좋은것이라는 생각은 안했지만 그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이 주는 가장 중요한 것, 우리는 하나라는 이 인식을 버리면 안됩니다. 우리는 서로 붉은 띠를 두고 결사 투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 하나입니다. 한 몸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로 그리스도안에서 만물이 하나되게 하려 하심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화평을 이루고 연합을 이루고 화합을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1970년대 의식을 갖고 밀어붙이기식으로 어떤 권력, 힘이 그렇게 해야만 정신을 차린다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되지 않는 리더쉽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2020 3만불 선진국 특별 프로젝트, 30대 40대가 생각하는 미래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면 그런 사회는 이미 지나갔고 되지도 않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전문화되어지고 분업화되어지고 깊이 분석하고 연구했던 것이 이제는 다 통합을 이루고 화합을 이루고 우리가 다 하나됨을 이루어 나가는 시대입니다. 지구는 한 촌입니다. 세계는 하나로 되어집니다. 한 나라에 일어나는 정치적 사건이 세계로 번집니다. 뉴욕의 증권시세가 내려가면 다른 모든 나라도 내려가 어렵게 됩니다. 이제는 이렇게 하나된 시대, 옛생각에 빠져 언제나 너를 싸움의 대상,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우리가 새롭게 되어져야 할 세상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입니다. ‘너희는 특별히 그리스도안에서 한 주를 섬기고 한 하나님을 믿고 한 믿음을 갖고 한 소망을 가진자가 아니냐’ 
   
어저께 책상에 에큐메니칼 사전이 와 있습디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같은 세상,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느니라 그래서 그들이 갖고 있는 기능 문화 국경을 넘어서는 그리스도안의 근본적 하나임이라’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가 계속해서 은혜받고 있는 에베소서 전체 흐름입니다. 다같이 따라합시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거기에 보니까 우리는 몇가지 버려야 할것이 있습니다.  
   
첫째 나누어먹기식의 평등주의는 버려야합니다. 누님좋고 매부좋으면 되지 않느냐, 너 좋고 나 좋으면 되지 않느냐 이런 생각, 그래서 고통없이 편리한 방법으로 그렇게 나가던 정책 경제 정치 그 실패가 오늘의 일본의 현상입니다. 우리는 때로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일이 있어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능히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 편리대로 하는 일들은 우리의 모든 기능과 능력을 빼앗아 버리고 다시 힘이 없어집니다. 
   
두번째 버려야 할 것은 바로 나만이 최고라고 하는 것, 우물안 개구리 의식을 버려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이 어느때입니까? ‘무슨 한가지 방법이 누가 최고다, 그것을 버려라’합니다. 우리 모두 겸손해져야 합니다. 세상은 너무 넓고 지식은 너무 다양하고 우리 모두 삶이 모두 그러네하면서 우리는 어떤 생각속에 담을 짓습니다. 그래서 많은 문제를 야기시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아픔이 되어집니다. 
  
세번째는 지역 학력  연고주의를 버리자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래도 아는 사람이 가깝고 피를 나눈 사람이 가깝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과사 앞에서 때로는 냉철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야 하는데, 우리나라 정치풍토의 몇사람이 선전하면서 만들어낸 데에 휩쓸려서, 이 백성이 이리저리 움직여서야 되겠습니까? 이제는 이런 의식을 탈피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비판과 남의 눈이 두려워서 쉬쉬하며, 의로운지 알면서도 묻어버리는 두더지 의식을 버리자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청소년이 잘못하면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할것없이 이놈들하면서 혼내주었는데 요즘은 잘못하다가는 ‘야’하고 뺨맞습니다. 그런 일이 생겨서인지 아무도 직접 내게 손해 안나고 해롭게 하지 않으면 아무소리 안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정의인가 진실인가 진리인가 상관없습니다. 쉬쉬하며 지나가버리니까 옳은줄 알면서도 옳은게 바로 서지 않고 하나님의 정의가 바로 서지 않습니다. 자기 몸만 도사리는 그런 시대를 만들어서 새로운 시대를 향하려면 ‘이렇게 해야한다’고 단적으로 애기합니다. ‘No pain no gain 고통없이는 내일이 없다’ 맞는 말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짧은 삶을 돌이켜보십시오. 어쩌다가 자고 꺠어나니 오늘이 있게 된것입니까? 아니잖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힘쓰고 애썼습니까? 얼마나 고통하고 몸부림쳤습니까? 
   
오늘 2부예배때 최춘식 장로님 기도하셨듯이 우리나라에 와 있는 많은 노동자들을 너무 학대하고 천히 여기고 업신여기는데  2, 30년전만 하더라도 우리의 청년들이 저 사우디 등의 외국에 노등자로 가서 얼마나 애쓰고 힘써서 돈벌어왔는데, 그들도 그들의장래를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이땅에 와서 힘쓰고 애쓰는데 우리가 조금 가졌다고 얼마나 학대하고 얼마나 저들을 괴롭히는지 모릅니다. 

중국교포들이 조국이라 찾아왔다가 얼마나 큰 서러움을 받고 돌아가는지 모릅니다. 참 이런것들을 생각해보면 물론 고통이 없이 내일이 없지만은 우리의 선택과 각오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공감적인 얘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엇보다 가져야 하는 것은 결코 너와 내가, 싸워야 할 때 싸우고 없어져야 하는 미움이 대상이 아니라 우리모두가 감싸고 세워야 할 사랑의 대상입니다. 너와 나는 하나라는 의식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우리모두 지체가 되어졌는데 만일 온전한 지체가 불구의 지체를 너는 왜 불구냐고 하며 그 불구인 것을 잘라내버리면 누가 병신이 되겠습니까? 다 눈이겠습니까? 다 귀, 입이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내가 너를 택하여 내 백성이 되게 하겠다고 하는 것은 유대인에게는 위대한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개와 같이 치급하고 지옥의 땔감으로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과의 담을 허시고 하나가 되게 하셨다. 의롭다 하는 자들 죄인이라 하는 자들, 내가 십자가에 그들 모두의 허물과 죄를 지고 죽음으로 의인과 죄인, 하나님과 죄인이 하나가 되었느니라’. 남북도 갈라져있고 동서도 갈라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안에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 살아가는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성경 그것은 원리입니다. 그것은 높고 높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살아가는 우리는 현실입니다.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현실속에 하늘이 땅에 옴같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 같이, 말씀이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고 오시기전에 우리에게는 예수 믿는 믿음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적의 역사가 없을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마음에 받고 우리 삶속에 실천해 가는 큰 기쁨과 감동이 있는 우리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9절에 보면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노든 사든 정이든 그리스도 안에서 다 이와 같이 할 것이니라 하나된 너희들은 이렇게 하나가 되어야 한다’. 제 5절을 읽어보면 ‘두려워하며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들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에게 하듯 하라’ 우리가 서로를 대할 때에 내가 가진 능력 기능 그 것 때문에 사람을 대하지 말고 ‘서로 존경함으로, 떨림과 성실한 마음으로 서로가 그리스도에게 하듯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하나된 우리가 할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시편 37편에 ‘너희가 불의를 행하는 자가 승하는 것을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아라 그들은 푸른 채소와 같이 쇠잔할 것이요 너희는 오히려 성실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왜 불신의 사회를 만들었습니까? 우리가 서로 진실함과 성실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성실로 두려운 마음으로 너희가 서로 섬겨라 그리스도에게 하듯 하라’
   
두번째는 6절 말씀입니다.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뜻을 행하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처럼 사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직업관입니다. 내게 어떤 직책을 주셨던지 직업을 주셨던지 이것은 먹고 살고 나를 실현하는 장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일들이 직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처럼 하라’ 그때의 우리의 모든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먹고 마시고 행하는 것들이 새로운 의미로 승화되어져 그속에 기쁨이 넘치게 되기를 믿습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합니까? 잘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더 깊은 데에, 더 고상한 곳에 그리스도인의 삶과 땀방울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 왜 땀을 흘립니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은 왜 미련하게 이 고난 속에서 허덕입니까? 내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신앙이란 우리의 삶을 놀랍게 하나님의 뜻 안에서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처럼 행하여야 하느니라’ 7절을 보면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계속해서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고 네 마음에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처럼 하고 주께 하듯 함으로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라’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통일하게 하시고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 안에서, 만민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안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지하철 티켓을 파는 흑인애 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아침과 점심, 저녁 근무하는 시간에 그냥 싱글싱글 웃으면서 돈받고 표를 팔면서 한번도 그 얼굴에 수심이 있거나 억지로 하는 기색없이 너무 기쁘게 해서, 가만히 보고 있던 한 사람이 물어보았습니다. ‘당신 전철표 하나 팔면서 뭐가 그리 즐거워 허허 거리느냐’ 그랬더니 ‘왜 안즐거우냐, 내 직업이 얼마나 좋은 것인데 그러느냐, 내가 파는 전차표를 가지고 애인을 만나러 가고 사업을 하러가고 정치를 하러 가지 않느냐’합니다. 
   
미국에서 보면 상하위원들이 전철을 많이 타고 다닙니다. 학생들이 공부하러 가고 많은 사람들이 이 바쁜 시대에 전철을 타고 가는데 내가 표를  안팔면 어떻게 하냐고 합니다. 바꿔서 생각해봅시다. 어쩌다가 이 지하철에 앉아서 표나 파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 친구들은 왔다갔다 하는데 나는 여기서 표나 팔고 있나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 얼마나 따분하고 힘들겠습니까? 그러나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받는 사람이 좋겠습니까 자기가 좋겠습니까? 
   
여러분 기쁜 마음으로 하면 모든 일이 쉬워지고 아름다워지지만 억지로 해보십시오, 그것이 율법의 멍에입니다, 그게 무거운 짐이 되어지는 것이고 스트레스가 되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지금 주신 일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기쁜 마음으로 하되 섬기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섬김을 받기는 좋아하지만 섬기기는 힘들지 않습니까? 섬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운데 야고보와 요한이 하나는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으시오 하니 다른 제자들이 얼마나 시기가 났습니까? ‘우리는 뭔가’ 그때 주님이 그들을 아시고 ‘네가 높고자 하느냐? 낮아져라, 으뜸이 되고자 하느냐, 섬기는 자가 되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높이리라.’ 여러분 섬기는 자가 되면 높아진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섬김을 받으려고 하니까 비난의 대상이 되버립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려니까 남을 무시하려 하고 교만하게 되고 그래서 ‘너희는 오히려 낮아져라 그리하면 높아지리라’

우리가 좀더 서로 섬기는 마음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감싸, 하나가 되거니와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합니다. 요즘 그런 얘기없이 성숙한 사회가 된 것이 참 감사합니다. 처음 70,80년대 아메리카 꿈을 갖고 이민간 이민사회에서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겁나는 사람이 유대인이라고. 그런데 유대인이 겁내는 사람이 한국사람이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유대인은 ‘너는 죽고 나는 살아야 한다’ 하는데 한국인은 ‘너죽고 나죽자’ 그런답니다. 그래서 한국사람 겁을 안낼 수가 없다고 합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흑인이 사는 캄캄한 거리에 한국사람이 들어오니 그냥을 닦아서 길가에 짝 깔아놓으면 지나가는 사람이 안들어가고 배깁니까? 보면 다 먹고 싶습니다. 과일 가게에 들어가면 꽃도 같이 팝니다. 얼마나 장사를 잘하는 줄 모릅니다. 죽었던 가게를 장사를 잘해서 비싸게 팔고 가버리고 또 팔고 가버리고 그럽니다. 왜 그러느냐 하니 과일 팔아서 언제 돈 버느냐하면서  우리끼리 뜯어먹고 그럽니다. 가슴아픕니다. 한국에서 친하게 잘 지냈던 사람한테 물려주고 받고 보면 봉입니다. 원수가 되고 얼마나 험악해 지는지 모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는 것 없는 것 같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안에 하나이니라’ 주님이 오실때에 아주 이상적인 것을 이사야서가 말하기를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하나되고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뛰놀고 어린아이가 독사의 구멍에 손을 넣느니라 아는자와 모르는자가 하나가 되어지고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가 하나가 되어지고 높은 산들이 낮아지고 평곡이 이루어 지느니라’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그런 곳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다 서로 기쁜 마음으로 섬기라. 
   
8절 말씀입니다. ‘사람이 무슨 선한 일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너무 평범한 상식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8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긍휼이 없는자는 긍휼이 없는 심판을 받으리라. 세상속담에 있지 않습니까 ‘사람팔자 시간문제’라고. 언제 사가 노되고 노가 사 되겠습니까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운영할 힘을 잃어버리고, 또 노를 생각해 보십시오 열심히 일했는데 그 댓가가 지불되어지지 않고 의견이 전달되지 않으니까 전체가 일을 그만두더라도 이것을 관철시켜야겠다 합니다.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고가 없습니다. 결국 죽는 것은 누구입니까? 너죽고 나죽는 일입니다. 결국 누가 손해봅니까?  나라가 손해보고 개인이 손해 안보는 것 같지만 나라가 손해보면 결국 개인이 손해보게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라가 손해 낳다는 것은 개인이 빚졌다는 얘기요 참 가슴아픈 일입니다. 
   
미국에서 데모하는것을 많이 봤는데 참 싱겁습니다.  표를 목에 걸고 왔다갔다하면서 데모하는 거라 합디다. 일곱명 여덟명이 ‘임금 몇프로 올려라’써붙이고 왔다갔다 하는데 한참 보니까 한 사람이 다른사람에게 목에 건 것을 주니까 그 사람이 또 왔다갔다 합니다. 기자들에게 물어보니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열심히 일하고 보통 공장에서 삼개조로 나뉘니 일할 때 일하고 일 안할때 데모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일할까 멈출까 죽일까 살릴까, 결국 누가 손해 나는겁니까? 조금은 지혜로워야겠습니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목사님도 가진 자의 편입니까?’라고 누가 그럽디다. 가진자의 편이 아니라 너무 가슴 아파서 그럽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자녀들이 싸우는 것 보세요 저희들끼리는 이유가 있어요 형이 먼저 동생이 먼저 그랬느니 해요 부모는 누가 먼저 그랬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야 이놈들아 싸우지 말아라 너희들은 형제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뭐라 그럴 거예요 ‘너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 네가 저주하고 욕하는 그를 위하여 내가 십자가에 못박혔느니라 그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고 너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는 하나이니라 너희가 행한대로 내가 갚으리니 피차 물고 먹으면 망할 것이요 너를 세우면 내가 설것이요 아내를 사랑하는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요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자기가 복 받을 것이요 너희는 결코 남이 아니라 하나이니라 
   
그러므로 주께 하듯 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것처럼 행하라’ 누가 이러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렇게 하겠습니까? 이는 오늘 에베소서를 통하여 오늘 1200만 기독교 교인들을 향하여, 5만의 교회를 향하여, 우리를 향하여, 나를 향하여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는 이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 
  
9절 말씀입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그와 같이 할 것인데’, 상전들에게는 한 말씀  더하십니다. ‘너희는 저들에게 위협을 그치라’ 그렇습니다. 아는 자의 상식적인 얘기가 모르는 자를 부끄럽게 할 수 있습니다. 가진 자의 정당한 권리가 가지지 않은 자에게 깊은 상처와 절망감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남을 위협하는 일이 되지 않게 하라. 강남에 사는 사람을 보니까 ‘강남에 왜 화장터를 만드느냐’합니다. 우리가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 ‘우리의 지역에는 결코 쓰레기를 버리지 못한다’ 그러면 당신 쓰레기는 어디에 버립니까? 우리는 좀더 이제는 욕심내지맙시다. 그게 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제는 많이 성숙해졌잖아요? 이제 많이 경험했잖아요? 자연을 마구 짓밟았더니 너를 마구 욕했더니 결국 누구를 욕한 것이 되었나요? 우리모두 그리스도안에 진리를 깨달았으니 ‘너희는 그리스도안에서 그리 하지 말아라 위협하지 말아라’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너 위해, 그들 위해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생각해보면 내가 똑똑하지만 하늘에는 나보다 더 똑똑한 하나님이 계시고, 내가 지혜롭게 잘 하는 것 같지만 나보다 더 지혜로우신 이가 하늘에 계십니다. 너희를 무식하다고 했는데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십니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 모두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 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외모로 취하고 기능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중심을 봅니다. 때로는 마음은 여기 있으면서 다르게 행동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동기와 그 숨은 뜻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에베소서는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필요한 삶의 진리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고통을 감수하고, 희생이 될지는 모르지만 너를 생각함이 나를 생각함이라 돕고 사랑하고 화합과 통일을 이루면 위대한 힘을 발하게 될 것이요, 당을 만들고 찢고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노,사,정,신이 하나이니라. 그러므로 네게 주신 일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처럼 하고 사람을 대하듯 하지 말고 그리스도에게 대하고 하나님에게 대하는 것처럼 기쁨으로 서로 섬겨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총이 우리가운데 실천되어져 여기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교회가 이런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복된 교회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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