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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공동체-1] 함께 사랑하라 (요 13: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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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랑하라 (요 13:34-35)

- 동영상, 『펭귄-위대한 모험(March of the Penguins』 

이 영화는 뤽 자케 감독의 ‘펭귄-위대한 모험’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200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4년 이상의 제작 기간 동안 무려 370일을 모든 스태프들이 남극의 혹한 속에서 펭귄과 동고동락하며 촬영을 했다고 합니다. 

인터넷에 뜬 영화를 본 소감들을 보니까 가족간의 사랑을 다시 생각해 보고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하는 너무 아름답고 귀한 영화라는 평도 있고, 또 웬 동물의 왕국이냐고, 이런 영화도 영화냐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영화의 내용 : 

남극에 서식하는 황제 펭귄들은 겨울이 올 무렵, 각자 바다에서 나와 조상 대대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켜온 ‘오모크’라는 신비한 장소를 찾아, 몇 날 며칠을 길고 긴 무리를 이루며 그들만의 은밀한 짝짓기 장소로 여행을 시작합니다. 마법에 이끌린 듯 신기하게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 전부 집합한 황제 펭귄들, 암컷과 수컷은 곧 1부 1처로 짝짓기를 한 후 귀한 알을 낳습니다. 알을 낳느라 지친 어미는 알을 조심스럽게 수컷에게 맡깁니다. 알이 조금이라도 빙하에 닿으면 그대로 얼어버리기 때문에 암컷이 비밀스럽게 알을 수컷에게 전달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영양 보충과 태어날 새끼에게 먹일 먹이를 구하러 다시 바다로 떠납니다. 

수컷은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3-4개월 동안 굶주리며 동면상태로 알을 품습니다. 그때 수컷은 자기 체중이 반으로 줄어드는 고통을 감수함. 마침내 알이 부화하면 수컷은 새끼를 위해 자신 안에 남아 있는 거의 마지막 음식을 토해 내서 새끼에게 먹입니다. 그 무렵 엄마 펭귄은 음식을 몸에 지닌 채 돌아와서 새끼에게 음식을 토해 내어 줍니다. 엄마 펭귄이 돌아오면 수컷은 음식을 먹기 위해 급히 바다로 떠납니다. 

급히 수컷이 바다로 떠나야 하는 이유는 알을 부화하기까지 소모된 체중을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조금만 더 지체하면 탈진해서 바다까지 나가지 못한 채 지쳐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펭귄 1마리가 4년 주기로 반복한다고 합니다. 이 영화를 통해 펭귄에게서 배울 만한 또 하나의 소중한 지혜가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펭귄은 항상 떼를 지어 움직입니다. 펭귄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지게 되면 외로워서 죽고, 추워서 죽게 됩니다.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죽게 됩니다. 영화에 한 마리 펭귄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 외롭게 죽어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철저히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펭귄은 그 추운 겨울, 수개월 동안 밤이 계속되고 혹독한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 그 추위를 견디기 위해 서로 몸을 맞대어 체온을 유지합니다. 펭귄은 본능적으로 그래야 산다는 걸 압니다. 


여러분, 이것이 가정이요,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의 공동체성입니다. 춥고 험한 세상, 모여야 살 수 있습니다. 혼자서는 신앙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춥고 외로워서 죽습니다. 신앙생활의 진정한 출발은 교회에 출석하는 날이 아니고, 세례를 받는 날도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진정한 출발은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신뢰하고 거듭나는 날부터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고 누가 대신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단 거듭나게 되면 우리는 교회하는 하나의 공동체 안에 속하게 됩니다. 

올 봄에 부활절연합예배를 실내체육관에서 지역의 모든 교회 분들이 모여 함께 드렸는데, 예배 후에 어떤 집사님이 그러세요. “강단에 있는 분들 중에서 목사님만 보였어요“, 그분에게 저만 보였다는 것은 왜 그럴까요?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관계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아들을 군대 입대시켜 놓고, 그 아들이 논산 훈련소에서 퇴소를 하는 날, 퇴소식에 간 한 어머니가 하는 말입니다. “원 세상에 수 천 명 훈련병들 가운데 손발 맞는 놈이 우리 아들 하나 밖에 없어?”, 그 아들만 맞게 한 것일까요? 그 아들만 틀리게 한 것이죠? 어머니의 눈에는 아들의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눈에는 아들만 크게 보입니다. 왜요? 사랑 때문입니다. 

신약성경 곳곳에, 요한복음에도, 요한 서신에도, 바울 서신에도, 베드로 서신에도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여러분, 오늘의 이 시대를 한 마디로 말하면 어려운 시대입니다. 고통의 시대이고, 위기의 시대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시대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라 지금은 사랑해야 할 때이다” 시대가 어려울수록, 고통이 많을수록, 위기의 때일수록, 이 고통을 이기는 힘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위기를 넘어서는 능력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40일 캠페인’을 한다고 거창하게 말하더니 겨우 하는 얘기가 또 ‘사랑’타령이냐구요? 그렇습니다. 공동체를 치료하고 병든 시대를 치료하는 명약은 신개발품이 아닙니다. 가장 오래된 치료약, 예수님이 가르쳐준 명약은 바로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얼마나 많은 ‘사랑’에 관한 노래와 이야기가 있는지 모릅니다. 방송에 나오는 노래의 대부분은 사랑에 관한 것이고, 영화나 드라마에 소재의 대부분은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에 대해 많은 이야기와 노래가 있지만 진정한 사랑은 점점 엷어져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홍수가 나면 온통 물바다가 됩니다. 그런데 그 물바다 속에서 무엇이 가장 필요한 지 아십니까? 바로 물입니다. 홍수가 나서 물바다가 되면 가장 먼저, 식수가 필요합니다. 아니러니죠? 우리 시대에 이렇게 사랑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진정한 사랑은 옅어져 갑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속에 사랑에 대한 명령과 사랑의 모본과 우리가 사랑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를 가르치는 사랑의 소명이 있습니다. 1. 사랑의 명령 (34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 여기서 ‘새 계명’은 ‘사랑의 명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랑을 명령할 수 있나요? ‘너희들 지금부터 서로 사랑해’그렇게 할 수 있나요? 

그런데 우리 주님은 사랑을 명령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들이 사랑을 감정적인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정서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랑을 감정적인 것으로 이해하니까 인간 관계에 문제가 생깁니다. ‘저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야!’, ‘저 사람은 말 하는 것하고 행동하는 것이 내가 도저히 사랑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야!’, ... 우리는 사랑을 정서적인 면, 감정적인 면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감정이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을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랑이라는 문제를 감정이나 정서적인 것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접근하고 계십니다. 감정적인 것에는 특별히 명령이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왜 명령하십니까? 우리의 감정이 허락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 저 사람만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제발, 그 인간만은 제외시켜 주십시오”, 우리의 이러한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시고 주님은 사랑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2. 사랑의 모본 (34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여기에서 사랑의 모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사랑의 행위를 보여주신 다음,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음. 

주님의 사랑은 구체적인 섬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종이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음. 하늘과 땅의 모든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께서 종이 되셨습니다.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라고 말씀하신 주님이 마침내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아무도 종이 되려 하지 않을 때 주님이 종이 되셨습니다.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에 역마차가 장거리 교통수단이었습니다. 당시의 역마차에는 좌석 구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기차나 비행기처럼 특별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좌석의 등급을 매겼을까요? 먼저, 1등석 차표를 산 사람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몇 날 동안이든지 마차에 문제가 생겨도 좌석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차 바퀴가 빠졌을 때도 아무 상관 없이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 1등석 손님이라는 것입니다. 2등석은 마차가 고장났을 때 일단 내려서 깊 옆에 서서 구경하는 자리입니다. 이에 비해 3등석은 마차가 고장 나면 팔을 걷어붙이고 마부와 함께 수리해야 하는 차표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1등석, 2등석, 3등석 신자가 있다고 합니다. 항상 대접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1등석 신자입니다. 2등석 신자는 ‘잘 해 봐라’하면서 구경하는 사람들... 3등석 신자는 열심히 일하고 자나 깨나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요 천국에 가면 이 순서가 바뀐대요. 이 땅에서처럼 1등석, 2등석, 3등석 신자 순으로 천국 문을 향해 입장하면 좋겠는데, 천국에 다 오면 주님이 이렇게 명령하신대요. “뒤로 돌아 앞으로 왓!” 그러면 누가 제일 먼저 들어갑니까? 3등석 신자입니다. 섬기는 자, 애쓰고 땀 흘리는 사람이 제일 먼저 들어갑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이것이 사랑의 모본입니다. 사랑의 본보기 인 것입니다. 


3. 사랑의 소명 (35절)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우리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이 말씀이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된 증거는 무엇입니까? 주님은 “너희들이 성경을 갖고 다니면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너희가 찬송가를 잘 부르면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가 이 세계를 바꿀 수 있는 능력과 힘을 상실한 근본 원인은, 주께서 가르치신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교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없어서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사랑하라’는 말이 56번 나옵니다. 이 56번 가운데 예수님의 고별 설교를 하시는 13장에서 21장 사이에 44번, 즉 대부분의 내용이 나옵니다. -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지금 제자들 곁을 떠나가야 할 상황입니다. 제자들은 스승을 잃고 방황할 것이며 그 충격으로 제자 공동체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바로 이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고난을 뛰어 넘을 수 있는 힘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40일 캠페인’ 기간 동안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들을 매 주 다루게 될 것입니다. 매주 다루게 될 보석같은 각 주제들을 꿰는 실처럼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가족-공동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40일 캠페인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교회 모든 가족들은 소그룹 공동체인 속회안으로 다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아직 속회에 속하지 않았거나 참석한 적이 없는 분들은 이번에 속회에 들어가고 싶다고 주변 분들에게 말씀하십시오. 아니면 그런 분들끼리 속회를 만들어도 좋을 것입니다.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사랑한다는 말, “I Love You”라는 말을 너무 많이 사용한대요. ‘I love a pie\', \'I love a pizza\'... 그러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땐 어떻게 할까요? “I need you(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한대요. ’나는 당신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에게 당신이 꼭 필요합니다‘... ’함께 가족이 됩시다‘는 말은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삽시다‘라는 제안입니다.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합시다. “우리 교회는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가족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신앙의 여정을 함께 걸어갈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의 아픔을 나눌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목회하면서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속회와 여러 소그룹을 통해서 초대 교회의 원형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세우시길 원했던 바로 그 교회라고 믿습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40일 캠페인!’ -

모든 성도들이 교회를 사랑하는 한 마음으로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속회들마다 새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역팀들이 동일한 비전으로 세워지길 바랍니다. 내일 새벽부터 모든 성도들이 일어나십시오. 함께 기도하십시다. 우리 교회를 세우고, 가정을 세우기 위해 울며 기도하십시다. 서로 격려하고 서로 위로하시기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 40일 캠페인으로 놀라운 역사를 체험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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