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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공동체-3] 함께 교제하라 (엡 2: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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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교제하라 (엡 2:14-19)


♣ 동영상 - 『칠레 광부들의 생환 뉴스』 

얼마 전에 있었던 세계적인 뉴스거리였죠? 칠레의 한 광산에서 갱도가 무너져서 암흑 속 지하 622m에 갇혀있었던 33명의 광부들이 69일 만에 지상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뉴스를 보면, 그들이 처음 갇혔을 때,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또 식수도 확보할 수 있었으며, 약간의 식량으로 17일간을 버틴 일, 지상에서는 다 죽은 것으로 생각하였으면서도 굴착을 시도하였고 17일 만에 그들이 생존해 있다는 소식이 지상에 전달된 일, 굴착기로 파 들어가서 구조캡슐을 내려 보내 한 명씩 구조해낸 일, 등 모든 것이 기가 막히게 진행된 드라마와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 뉴스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지만, 그 중에서 신앙적인 교훈들을 생각했습니다. 

1) 그들을 구출할 때, 그 깊은 지하세계에 구멍을 파고 구조 캡슐로 한 명씩 구조하는 것을 보며 우리가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도 어두운 세계에 있는 사람들과 관계의 굴로 연결점을 만들고 한 영혼씩 건져 올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전도).  

2)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 시간이 지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시간을 보냈던 그들이 한때 절망 속에서 갈등도 있었지만 훌륭한 리더십아래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고 기도와 믿음으로 살 수 있다는 확신과 소망을 키워내고 유지했다는 것입니다(믿음, 소망).  

3) 그들은 그 안에서 심한 갈등과 부딪힘이 있었으나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한 팀(공동체)을 이루었는데, 결국 그들이 함께 고난을 이겨냄으로 인해 정말 한 가족과 같은 교제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교제, 공동체). 

결국 칠레 광부들 구출 사건은 ‘공동체 40일’의 주제가 다 들어가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속에서 정말 생과 사를 같이한 엄청난 공동체 의식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들이 ‘아름다운 공동체를 한번 세워보자’하면서 몸부림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들의 인생과 신앙생활의 본질을 잃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아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가족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셨고, 우리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엡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 말씀은 이런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있습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가족들의 모임입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조 캡슐을 통해 한 생명, 한 생명, 구출해서 세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무엇입니까? 영원히 그분과 함께 통치할 하나님의 가족을 만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공동체로 존재하십니다. 이것을 삼위일체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자신을 가족과 관련된 말로 표현하십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 존재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다 형제요 자매요 한 가족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났을 때는 내 아버지 내 어머니의 가족이 되었고, 지금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가족, 가정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 땅에 사는 동안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가족은 혈육관계의 가족보다 더 중요합니다. 왜요? 영적인 가족은 영원히 함께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가족은 서로 멀리 떨어져 살 수도 있습니다. 이혼으로 헤어지기도 하고, 소중했던 사람이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늙고 죽으면 영원한 이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가족 교회는 영원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가장 값진 일이 육적인 가족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기족이 되어 영원히 함께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교회는 가족입니다. 영원한 가족임. 교회는 빌딩이나 건물이 아닙니다. 어떤 조직이나 기관이 아닙니다. 어떤 써클이나 클럽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간다’고 할 때 이것은 어떤 장소나 건물 안으로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된 가족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족과의 관계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하나님의 가족 안에 속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공동체를 세우는 40일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그 본질에 집중하여 살아갈 때, 우리는 먼저 중요한 일, 하나님이 원하시고 계획하시고 디자인하신 것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덜 중요한 일은 잘라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워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칠레의 광부들이 공동체의식으로 한 팀을 이루지 못했으면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싸우고 죽이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한 운명공동체요 한 가족이라는 의식이 있을 때 그 공동체가 건강하게 됩니다. 

이 시간 결단해야 합니다. 먼저, 나부터 하나님의 가족에 속하여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아가리라. 그리고, 이 영적인 가족들과 좋은 관계, 행복한 관계를 누리며 살아가리라. 결단해야 합니다. 

창세기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매일같이 ‘좋았더라’, ‘좋았더라’를 연발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에 처음으로 ‘좋지 않다’는 말이 기록된 곳이 있습니다. (창2:18)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가족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교회학교 어린이부에서 선생님이 아담과 하와의 범죄, 선악과 따먹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얘들아, 아담이 범한 죄가 뭐지?”, “네, 아담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열매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받은 벌이 뭘까?”, “에이, 선생님, 그것도 몰라요? 그 벌로 하와하고 결혼했잖아요” 아마도, 그 아이에게는 아빠, 엄마가 함께 사는 것이 벌이라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아담 앞에 하와를 데리고 오셨을 때, 아담은 너무 좋아했습니다. 

(창2:23)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우리에게 가족이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그것도 영원한 하나님의 가족이 있다는 것은 복중의 복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엡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날 때 자동적으로 인류의 일원이 된 것처럼 우리가 예수를 믿기로 결단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인생은 문제투성이임. 문제없는 인생이 건강한 인생이 아닙니다. 어려움을 잘 극복할 줄 아는, 아픔을 서로 함께 잘 치유해 갈 수 있는 그런 삶을 우리는 건강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함께 가족이 되었으면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가족에 속하기로 결단했으면 다음으로는 우리 자신을 나누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가족은 삶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나누어주신 사랑의 자원들을 서로가 서로에게 나누는 자리입니다. 

(행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초대교회 성도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다 함께 있어’, 그들은 시간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서로 바빠도 함께 시간을 나누었습니다. 교제의 기본은 서로 시간을 나누는 것입니다. 서로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는 것은 그 일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뜻이죠? 시간은 우리의 삶 자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나누는 일은 가장 중요한 선물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디에 모였습니까? 가정에 모였습니다. 기독교 역사 초기 300년 동안 교회 건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가정에 모였습니다. 그들이 가정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그들의 삶을 나누었던 바로 그때가 지난 2000년의 기독교 역사 가운데 가장 놀라운 영적 부흥이 있던 시절임을 아십니까? 

여러분, 우리 교회의 속회는 가정을 나누는 곳입니다. 가정을 나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정에서 모여서 서로의 경험을 나눕니다. 더 나아가 문제를 나눕니다. 나의 아픔은 너의 아픔이 되고, 너의 기쁨은 나의 기쁨이 되는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기쁨을 제대로 나누면 기쁨은 두 배가 됩니다. 어려움과 고통과 슬픔을 제대로 나누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가족이 되었으면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3. 가족 관계를 깨뜨리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가족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하나님의 열심이라면, 그 하나님의 가족을 파괴하기 위해 온갖 몸부림을 다하는 것이 사탄의 열심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가족을 만들었고, 사탄은 그 가족을 파괴했습니다. 하와가 가족을 떠나 혼자 있을 때 사탄은 그를 유혹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교회공동체에서 멀어지고 마음이 떠난 사람, 하나님의 가족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사람을 유혹합니다. 그리고 사탄이 하는 가족 파괴 전략이 있는데, 그것은 내 입을 통해 하나님의 가족을 비난하고 불평하며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다른 교우들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나의 적이 아니라 여전히 내 소중한 가족입니다. 이제는 우리 가족을 비난하고 불평하는데 보내던 그 시간을 가족과 화목하게 지내야 합니다. 그 사람을 칭찬하고 격려하는데, 또 그를 높여주고 세워주는데에 우리의 시간들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월라드 F. 할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가 말한 내용입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고기를 잡는 그물과 같다. 지혜로운 어부는 고기를 잡아서 바구니에 담는 것과 동시에 그물에 끼어있는 찌꺼기를 잘 걷어낼 줄 안다. 그러나 어리석은 어부는 고기를 잡아 챙길 줄만 알았지 찌꺼기를 걷어내지 않는다. 그물을 한 번 던지고, 두 번 던지고, 열 번, 스무 번 던지는 사이에 그물에 찌꺼기가 끼어서 마침내 그물이 찢어지고 마는 것이다’ 

공동체로 모이다 보면 작은 상처를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찌꺼기를 걷어내야 행복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고, 또 그것을 잘 걷어낼 줄 알 때에 행복하고 건강하고 영향력 있는 사역자로 쓰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4. 우리 심령의 용량을 키워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 교회, 우리 속회, 우리의 관계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잘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의 사랑이 나누어 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체들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마음의 용량을 키워야 합니다. 나의 영적인 용량을 키워야 합니다. 

요즘은 컴퓨터가 많이 발달해서 온갖 작업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조그만 휴대폰도 예전의 큰 컴퓨터보다 더 많은 일을 합니다. 예전에는 컴퓨터의 용량을 말할 때, Kb(킬로바이트)를 이야기 했는데, Mb(메가바이트)를 넘어, Gb(기가바이트)도 넘어서 이제는 TB(테라바이트)를 이야기합니다. 동영상에 이것 저것 복잡한 것을 돌리려면 용량이 따라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어떤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만한 용량이 안 되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리더가 나보다 더 커지는 사람을 잘 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 용량이 큰 리더는 새신자가 들어와서 신앙이 자라서 나보다 커지면 더 기뻐하고 행복해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싫어해도 그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입니다. 이것이 가족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그 용량이 엄청 크신 분이셨습니다. 모든 죄를 다 수용하셨고 걸머지셨습니다. (엡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 예수님은 화평이십니다. 십자가로 원수된 것을 소멸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 예수 이름의 능력과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십시다. 

여러분, 바다는 모든 물을 다 받습니다. 샘물, 강물, 흙탕물, 구정물, 똥물... 다 받아도 바다는 그 물이 변하지 않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나면 강물이 흙탕물이 되어서 흘러가다가 바다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런 시뻘건 흙탕물이 바다로 흘러가도 바다는 흙탕물이 되지 않습니다. 왜요? 용량이 너무 커서... 어떤 것을 받아도 다 소화가 됩니다. 

우리 교회에 바다와 같은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큰 교회는 예배드리는 성도 수가 많은 교회가 큰 교회가 아닙니다. 바다와 같은 사람이 많은 교회가 정말 큰 교회입니다. 바다와 같은 사람, 용량이 큰 사람이 많은 교회가 큰 교회입니다. 사람이 많이 모여도 작은 교회가 있고, 어떤 교회는 많이 안 모여도 하나님 보시기에 큰 교회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의 가족공동체 안에서 진정으로 함께 교제하십시다. 이 한 주간도 매일 새벽 말씀 묵상을 하고, 소그룹인 속회에 참여하여 훈련을 하며 ‘함께 교제하면 우리의 삶이 풍성해진다’는 사실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진정 풍성한 삶을 체험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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